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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이원우 기자의 컬쳐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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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의 성공, 마동석의 열연...스크린쿼터 고집해야 하나?

여전히 자국영화 보호? '해도 너무 한 일'

글 | 이원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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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부산행' 포스터
영화 '부산행'이 만족스러운 이유는 사실 좀 서글프다. 애초에 기대치가 낮았던 '반작용' 덕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좀비 영화라는 장르적 특징을 감안했을 때, 아무리 한국영화가 성장했다 한들 이런 것까지 잘할 거라 생각되진 않았다. 이 영화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그 은밀한 자기비하를 고백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좀비들의 연기가 어설프거나, 지나치게 신파로 내달리거나, '공권력은 나쁘다'는 훈계를 하거나, 정치적으로 편향됐거나, 어쩌면 그 모든 함정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이 존재했기 때문일까. 이 영화 '부산행'은 정말로 재미있었다. 상술한 함정 그 어느 것에도 빠지지 않고 관객들을 목적지까지 훌륭하게 데려다 준다.

영화는 석우(배우 공유)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는 그와 그의 딸 수안(김수안)은 이혼 직전의 아내(이자 수안의 엄마)가 있는 부산행 KTX 열차에 오른다. 출발 직전 정체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가 열차에 탑승하면서 바이러스는 삽시간에 확산된다.

열차라는 폐쇄공간은 공포감을 증폭시키지만 바깥은 더 위험하다. 석우 일행은 상화(마동석)와 성경(정유미), 영국(최우식)과 진희(안소희) 등과 힘을 합쳐 좀비들과 사투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는 단연 마동석이다. 

자칫 '진지병'에 빠져버릴 수도 있는 영화의 국면마다 마동석은 관객들에게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덧붙여 석우의 이기주의적 태도를 살신성인의 자세로 돌려놓는 수훈갑 역할도 그의 몫이다. 마동석의 출세작인 '이웃사람'보다 훨씬 매력적인 캐릭터로 업그레이드한 모습이다.

물론 언제까지나 웃을 순 없다. '부산행'은 재난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장르적 클리쉐 – 누군가는 죽는다는 이 명제로도 착실하게 달려간다. 이 과정에서 몇몇 캐릭터는 납득하기 힘든 행동을 한다. 또 누군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이기적으로, 혹은 이타적으로 행동한다.

자연스럽게 관객은 살면서 맞닥뜨렸던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혹은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 정도면 오락영화로서는 가히 최고의 경지 아닐까?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보라'고 말해주면 되는 영화다. 재미있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설명할수록 김이 빠지니까.

내재적 관점에서 훌륭한 작품인 '부산행'은 뜻밖에도 극장 바깥에서 전혀 다른 성격의 논란에 휘말려 있다. 이른바 '변칙 개봉' 문제다. 원래 7월 20일 개봉 예정이었던 '부산행'은 개봉 직전 주말 '유료 시사회'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일정을 앞당겨 상영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정식개봉을 하기 전에 431개관에서 약 56만 5000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이에 대한 영화계의 비난은 거세다. 대작인 '부산행'이 스스로 공언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소규모 작품들이 피해를 보는 등 영화 생태계가 교란됐다는 이유다. 상황이 더욱 옹색해진 건 '부산행'이 인간의 이기주의적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메시지와는 정반대로 혼자 살겠다고 변칙 개봉을 한 모양새라 더 큰 비난을 받는 건 사필귀정인지도 모르겠다. (배급사 'NEW'는 마케팅의 일환이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포착된다. '부산행'의 변칙 개봉으로 피해를 본 대표적인 '소규모 영화'가 다름 아닌 할리우드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한겨레는 '부산행'의 반칙 때문에 지난 13일 개봉한 '데몰리션'이 최대 40% 정도의 관객을 손해 봤다고 추산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영화감독 장 마크 발레가 연출하고 제이크 질렌할과 나오미 왓츠가 출연하는 전형적인 미국 영화다.

흥미롭지 않은가? '강자 한국영화 부산행'이 '약자 미국영화 데몰리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이 상황 말이다. 딱 10년 전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때를 반추해 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2006년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오늘의 상황을 말해준다면 과연 몇 명이나 믿을까? 

스크린쿼터 완전 폐지, 혹은 다른 제도로의 전환을 논의해 볼만한 시점이다. 좀비 영화마저 이렇게 잘 만드는 나라가 여전히 자국영화 보호 장치를 갖고 있다는 건 '해도 너무 한' 일인지도 모른다.
등록일 : 2016-07-23 07:34   |  수정일 : 2016-07-2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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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우 대중문화평론가
전 시사주간 미래한국 편집장, 현 미디어펜 기자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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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son  ( 2016-07-24 )  답글보이기 찬성 : 13 반대 : 13
조선은 스크린쿼터를 처음부터 반대했지.그러니이런 일반화의 오류와 난필스런 억지글을 지면에 싣는거겠지.
허허  ( 2016-07-24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9
참 쓸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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