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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우 기자의 컬쳐쇼크

유재석, 설경구, 전도연 15년째 톱스타...선배들이 빼앗아간 2030의 삶이여!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지나

글 | 이원우 대중문화평론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6-06-21 11:00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가 있었다. 무려 15년 전, 그러니까 2001년 작품이다. 관객은 28만 명 정도 모았다.
주인공은 설경구와 전도연. 한미은행(現 씨티은행)에 다니는 설경구는 영화 속에서 33세의 '노총각'이다. 결혼이 너무 하고 싶은 그는 아직 누군지도 모르는 미래의 신부를 위해 캠코더로 영상 메시지를 녹화한다. 먼저 장가가는 친구 얼굴만 봐도 짜증을 낸다. 그 정도로 결혼을 원하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진희경과 잠시 '썸'을 타기도 했던 설경구는, 그러나 결국 은행 옆 보습학원 선생님인 전도연과 손을 잡는다. 둘은 데이트 초반부터 설경구 혼자 사는 집으로 간다. 집안에서도 과일을 깎아 먹으며 '아내'의 의미에 대해 대화한다. 소위 말하는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가 시작된 것이다.
 
결혼이라는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두 청춘의 이야기를 영화는 풋풋하게 그려냈다. 15년이나 지난 이 작품을 지금 거론하는 이유도 바로 '풋풋함' 때문이다. 결혼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 정도의 청초함을 유지한 건 아무리 봐도 이때가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충무로는 이듬해인 2002년 곧장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내놓는다. 2007년에 이르면 두 쌍의 부부가 서로 다른 짝을 향해 가는 작품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까지 나온다. 2015년엔 간통죄가 폐지됐다. 돌이켜 보면 2001년은 21세기의 시작이었을 뿐 아니라 결혼에 대한 환상이 산산조각 난 원년이기도 했다.
 
다시 2016년으로 돌아오자. 영화 속 설경구가 여전히 은행에 다니고 있다면 마흔여덟 살이 된 지금은 팀장, 빠르면 부장쯤 됐을 것이다. 아이는 초등학생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은행권을 출입하면서 직접 만나본 이 연령대 '설경구'들이 아내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경우는 유감스럽게도 거의 없다. 애들 얘기만 한다.
 
"하루 중에 언제 웃나 돌아보면 애들이랑 있을 때 유일하게 웃더라고요. 아내는 한 '팀'이죠. 사랑이랑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아내요? 글쎄요 만난 지가 오래 돼서…. 물론 사, 사랑합니다."

"너무 힘들 땐 어떻게 하느냐고요? 가끔 아내에게 말하지 않고 하루짜리 휴가를 씁니다. 아, 근데 이 얘기 아내한텐 비밀입니다. 절대 말씀하시면 안 돼요." (그분 아내를 만날 리 만무함에도 이런 당부를 한다.)
 
상기 멘트들은 전부 실제로 들은 얘기들이다. 탓하려는 의도는 없다. 내가 만나지 못한 '결혼 만족남'들도 어딘가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결혼담론의 대세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들 '결혼 선배'들이 점심시간에, 회식 중에, 퇴근길에 후배들에게 하는 결혼 조언 내용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최대한 늦게 하거나 심지어 아예 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쪽으로 논점이 표변한 것이다.
 
"마흔까지 버티세요. 그때 돼도 사실 안 해도 됩니다. 근데 그때까지 안 하면 주변에서 좀 측은하게 보잖아요? 그러니까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같은 말에 반쯤 속아주면서 그때 만난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죠. 그게 가장 좋은 전략(?) 같아요."
그렇게 결혼이 하고 싶다던 그 시절의 '설경구'들에게는 15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유는 어찌 보면 간단하다. 삶이 너무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성장률이 너무 낮아졌다. 성장률은 단순히 그래프만 꺾어놓는 게 아니다.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희망'을 함께 부러뜨린다.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는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누구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설령 개천에서 용이 났다 한들 너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가 아무리 힘들어도 미래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있으면 인간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에는 바로 그 희망이 결여돼 있다.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얼마나 부족한지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위상과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다. 무려 15년 전 영화 주인공이었던 설경구와 전도연은 여전히 충무로 최고 배우다. 여전히 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연이어 제작된다. 특히 전도연의 경우 다음 달부터 방영되는 tvN 드라마 '굿 와이프' 회당 출연료가 9000만원에 육박한다는 보도가 나기도 했다(전도연 측에서는 부풀려졌다고 정정했다).
전도연 입장에선 좋은 일이겠지만 후배들 입장에선 '일자리'가 줄어든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계뿐인가? 15년 전 톱이었던 유재석은 지금도 톱이다. 15년 전 최고의 인기 가수들을 배출했던 SM, YG, JYP는 여전히 '3대 기획사'로 손꼽힌다.
15년 전 잘 나갔던 선배들이 지금도 쌩쌩한 통에 후배들은 전성기를, 인생의 스포트라이트를 유예 당했다.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도 33세 남성을 '노총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45세까지를 '청년'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2030은 육체적으로는 어른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애'다.

어른으로 인정받는 시기가 지나치게 늦춰지고 있다. 그런 데다 이미 가정을 꾸린 선배들은 그다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현재 대한민국의 2030들은 삶의 환희도, 고통도, 시행착오조차도 전부 선배들에게 뺏겨 버린 채 딱딱한 콘크리트 속에서 박제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그 콘크리트 주물이 굳기 전에 이름을 새긴 사람들만이 역사에 기록될 특권을 얻었을 뿐이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글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회'부터 되찾았으면 좋겠다.
이원우 대중문화평론가
전 시사주간 미래한국 편집장, 현 미디어펜 기자

등록일 : 2016-06-21 11:00   |  수정일 : 2016-06-2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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