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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번역 불가능한 우리말로 본 한국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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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불가능한 우리말로 본 한국 · 한국인]
“괜찮은 용모의 괜찮은 남자와 요즘 괜찮게 지내고 있어”

(3) 괜찮다

글 |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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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불가능한 우리말로 본 한국 · 한국인] 
 
 
한국에서는 이런 대화가 가능하다.

A : 어제 만난 남자는 어땠어? 집안은 괜찮은(①) 사람이야. 그 형보다 인물도 괜찮다(②)던데?
B : 괜찮은(③) 옷차림이더라. 얼핏 듣기에 괜찮게(④) 들리는 말들을 잘 하더군. 여자 성격만 좋다면 돈이 있든 없든 괜찮다(⑤)고 그러대.
A : 너야 부잣집 딸이니 돈 문제로 남자가 어떻게 나오든 괜찮은(⑥) 거 아냐?
B : 남자가 책임감만 있다면야 나로선 괜찮지(⑦). 우리 아빠 돈으로 바람만 피우지 않는다면 나와 괜찮게(⑧) 어울릴 수 있을 테니까.

‘괜찮다’ ①은 ‘좋다’의 의미다. 품질이 괜찮다. / 성격이 더 할 나위 없이 괜찮다.
②는 ‘낫다’. 서민들 살기에는 아무래도 겨울보다 여름이 괜찮다. / 그는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대우가 더 괜찮은 회사로 옮겼다.
③은 ‘수수하다’. 즉,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어지간하다는 의미다. 부인은 괜찮은 한복 차림이었다.
④는 ‘그럴듯하다, 그럴싸하다’. 이 음식이 보기엔 이래도 요리사가 만들어서 맛은 괜찮다. / 잘만 하면 적은 돈으로도 괜찮은 물건을 살 수 있다.
⑤는 ‘관계없다, 상관없다’. 물건만 좋다면 돈은 얼마가 들어도 괜찮다.
⑥은 ‘무방하다’의 뜻이다. 남이 들어도 괜찮은 이야기 / 내 방에서 공부해도 괜찮다.
⑦은 ‘일없다’. 즉, 걱정하거나 개의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약 한 봉지면 괜찮을 아이가 연이틀이나 설사를 했다.
⑧은 ‘무난하다’의 의미다. 괜찮은 빛깔의 한복 / 그 옷에는 이 모자가 괜찮게 어울린다.

보다시피, 한국어 ‘괜찮다’는 영어의 ‘do’나 ‘make’ 만큼 다양하게 쓰인다. 실제로 일상 회화 영어 가운데 우리말 ‘괜찮다’로 번역해서 아무 무리가 없는 표현들의 스펙트럼도 아주 넓다.

Are you OK? / Do you feel all right? → 괜찮으세요?
Do I look all right? → 나 괜찮아 보여요?
Yesterday's play was not bad. → 어제 연극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This water is safe to drink. → 이 물은 마셔도 괜찮다.
Now we are out of danger. → (위험을 벗어나) 이제는 괜찮다.
Is it all right if I park here? → 여기 주차해도 괜찮나요?
Could you close the door if you don't mind? → 괜찮으시다면, 문 좀 닫아 주시겠어요?
What time is convenient for you? → 몇 시가 괜찮으세요?

위의 예들에서 보듯, 괜찮다는 ‘좋다’(nice, good, fine, all right, okay)와 ‘안전하다’(safe, secure)의 뜻을 다 갖고 있다.
그런 이유로 “Do you mind if I sit here?”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No, I don''t mind / Absolutely not” 또한 “괜찮습니다”로 번역된다.

상대방의 사과에 대한 다음과 같은 다양한 답변, “Forget it / No problem / Don’t worry about it / No big deal / Never mind / Think no more of it”이 모두 ‘괜찮다’인 것이다.

한국어 ‘괜찮다’는 심지어 다음과 같은 영어 표현과도 뜻이 통한다.
You may do as you like. →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다.
It doesn't matter if we are late. → 우리는 늦어도 괜찮다.
Drinking is all right as long as you don't do it to excess. → 과하지 않는 한 음주는 괜찮다.
The job is tiring but rewarding. → 일은 고되지만 보수는 괜찮다.

이쯤 되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겐 ‘괜찮다’가 무슨 ‘만능열쇠(master key)’ 쯤으로 느껴질 법도 하다. 아마도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가장 잦은 빈도로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한국인들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대중문화 분야만 보더라도, “아무리 약해 보이고 아무리 어려 보여도 / 난 괜찮아 나는 쓰러지지 않아”라며 가수 진주가 폭발적 가창력을 쏟아내는 대중가요 ‘난 괜찮아’(1997)도 있었고, 조인성과 공효진의 러브 라인이 달달하면서도 애잔했던, 노희경 극본의 16부작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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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사 ‘괜찮다’는 ‘괜하지 아니하다’의 준말이다. ‘-하지 않-’이 ‘-찮-’이 된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괜치않다’라고 쓰고 있다. 나이 지긋한 층에서는 ‘개않다’ ‘괴않다’ 같은 경상도 방언 식으로 소리 내는 이들이 많다.

‘괜하다’는 ‘공연(空然)하다’의 의미로, “괜한 소리, 괜한 트집” 등에서 보듯 ‘아무 까닭이나 실속이 없다’의 뜻이다. 따라서 ‘괜하지 아니하다’는 ‘까닭이나 실속이 없지 않다’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 하필 ‘~이 없지 않다’라는, ‘부정(否定 ․ denial, negation)의 부정’일까 의문을 가져볼 만하다. ‘있다/ 낫다/ 멋있다/ 착하다/ 좋다’라고 말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없지 않다/ 못하지 않다/ 멋없지 않다/ 나쁘지 않다’라고 말하는가.

이러한 ‘부정의 부정’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중부정(double negative)’과는 사뭇 다르다. 이중부정은 대부분 강한 긍정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다. “사람이라면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문장이 “사람이라면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문장보다 어감이 강한 것이다.

이에 비해 ‘괜찮다(괜치않다)’에 쓰인 ‘부정의 부정’은 완곡한 표현, 다소 유보적인 표현에 해당한다. 본인 의사의 적극적 표현이 아닌 소극적 드러냄인 것이다. 이는 우선 조선시대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성리학의 영향으로 ‘권위 또는 권력’(임금 스승 아버지 ․ 君師父) 앞에서는 이견(異見)의 적극적 표명을 자제해온 문화의 탓일 것이다. 현대의 한국인들에게는 자기 기분을 말하는 자리에서조차 “참 좋은 거 같아요”라고 표현하는 형태로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또한 20세기 내내 한반도를 뒤덮은 정치적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일본에 의해 강점돼 식민 통치를 겪었고, 해방된 뒤에는 다시 미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동족상잔을 겪은 데다 오랜 기간 군사독재 기간을 거치지 않았는가.

100년 가까이 ‘자주 독립’ ‘자유’ ‘계급’ ‘빨갱이’ ‘민주화’ ‘독재’ 같은 단어를 입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철창에 갇히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까지 했으니 소극적이고 완곡한 의사 표현이 자연스레 몸에 배일만한 것이었다.

나아가, 이러한 소극적 긍정 표현에는 여전히 부정적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령 내가 심한 육체적 고통을 앓고 있는 상황에게, 상대방의 “많이 아파?”라는 안부 말에 “괜찮아”라고 대답할 때는 ‘견딜 만하지만 고통스럽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지 않은가.

‘That wasn't bad for a first attempt’ 즉 ‘첫 시도치곤 괜찮았다’고 말할 때, ‘첫 시도’라는 걸 감안하지 않는다면 ‘만족스럽지 않다’는 내용이 깔려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괜찮다’라는 한국어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괜찮지 않다’의 뜻이 동시에 담겨 있는 셈이다.

‘괜찮다’에 가장 가까운 영어는 아무래도 ‘not bad’일 것이다. 이 ‘not bad’ 또한 결코 ‘good’이 아니다. 서양인들은 ‘How are you?’ (잘 지내? 어떻게 지내?)라는 물음에 웬만해서는 ‘Not too bad’ (뭐, 괜찮아)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우리가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It's) Fine / Good’이라고 대답한다.

필자는 짧게 미국에 머무는 동안 한 미국인 클래스메이트로부터 “당신은 어째 항상 못 지낸다고 그러느냐? 무슨 일이 있는 거냐?”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인사를 나눌 때마다 별 생각 없이 한국식으로 “Not bad (괜찮아)”라고 답했던 모양이다. 그는 나의 ‘괜찮다’라는 대답에서 ‘괜찮지 않은’ 내 모습을 본 것이다.

‘괜찮다’라는 단어의 이러한 속성은, 논리의 비약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 1903~1969)의 ‘부정 변증법’을 떠올리게 한다. 사회 비판이론으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적 학자였던 아도르노는 저서 <부정 변증법>(Negative Dialectics, 1966)에서 ‘부정의 부정’(negation of the negation)에 대해 헤겔과는 다른 견해를 피력했었다.

‘정-반-합(正反合)’으로 유명한 헤겔의 변증법이 논리학의 모순율(principle of contradiction)을 토대로 부정의 부정으로부터 긍정을 도출하는 데 비해, 아도르노는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부정의 부정이 여전히 부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아도르노의 눈에는, 헤겔이 어느 한 부정적인 상태의 부정을 통하여 나타난 새로운 상태를 긍정적이라고 봄으로써 여전히 부정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현실을 긍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요소를 부정하고 등장하는 사회주의가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여전히 전체주의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정의 부정도 여전히 부정적이라는 것이 아도르노의 견해다.

“누구나 한번쯤은 다 겪는 이별일뿐야/ 난 괜찮아 자꾸만 돌아보지마”(진주 ‘난 괜찮아’)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지만, 사실 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때문에 괜찮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는 또한, 한국인들이 좌절과 실패의 순간에 가장 떠올리고 싶어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홈팀의 결정적 실수에도 관중들이 “괜찮아~, 괜찮아~”를 연호(連呼)하는 것이고, 요즘 대세 집밥 백종원(‘백 주부’)이 “칼질 못해도 괜찮아. 채칼 쓰면 돼유”라며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괜찮아유”를 외치는 것이다. “당신, 참 괜찮은 사람이야”는 아마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듣고 싶어 하는 말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괜찮다’는 한국어, 꽤 괜찮은 말이다.
등록일 : 2015-07-10 12:36   |  수정일 : 2015-07-1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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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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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곤  ( 2015-08-09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10
마음속에 있는 평가기준에서 크게 좋지도 않지만 크게 나쁘지도 않다는 그런 정도의 의미.
권홍원  ( 2015-07-14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15
참도 잘도되겠다는 무슨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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