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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번역 불가능한 우리말로 본 한국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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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불가능한 우리말로 본 한국 · 한국인]
‘신나는’ 노래 못 부르는 신입사원은 왜 아웃 ?

(2) 신(신명), 흥(흥겨움)

글 |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출판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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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신이 났구먼.”
기분 좋은 일이 생겨 흥분한 상대에게 한국인은 곧잘 이런 표현을 쓴다. 다른 사람은 아랑곳없이 저 혼자 날뛰는 모습을 비아냥댈 때에도 같은 표현을 쓴다. “좋아 죽는군”, “살판났군”의 의미다.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설명하면서 ‘신’, ‘신명’을 빼놓는다는 것은 팥고물 빠진 붕어빵처럼 그 존재의 본질을 생략하는 결정적 결함이다. 50대 이상 중 ․ 노년층은 ‘신’ 대신 흔히 ‘흥(興)’을 많이 사용한다. 내키지 않는 일을 앞두고 한국인들은 “흥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한영사전을 찾아보면 ‘신’을 ‘joy, delight, excitement’ 정도로 옮기고 있지만 우리말 ‘신’에 똑떨어지지 못한다.

한국인들이 ‘신’이 난다고 말할 때 거기에는 최소한 4가지 요소가 들어 있어야 한다. ▲흥미(interest) ▲열정(enthusiasm) ▲즐거움(joy, pleasure) ▲자발성(spontaneity). 관심이 없는 대상에 신이 날 수 없고, 하기 싫은 일에 흥이 돋을 리 없으며, 비록 흥미도 있고 하고자 하는 열의가 있다 해도 즐겁지 않다면 그건 ‘신나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외부로부터의 강제에 의해 신이 나는 경우는 아예 있을 수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때를 떠올려 보자.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똑 같은 색깔의 옷을 챙겨 입은 거대한 군중이 도심 광장과 도로를 자발적으로 가득 메운 사례는 역사상 전무후무했다. 단지 모이기만 했나. ‘대~한민국 짜자작 짝짝’, ‘오~ 필승 코리아’, 수십만 군중이 입을 모아 노래하고 박수를 쳐댔으니, 이는 ‘월드컵 열기’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신명을 낼 자세가 돼 있는 한국인들만이 연출해 낼 수 있는 장관이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그 희한한 광경을 보기 위해 서울시청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플라자 호텔 방이 동났겠는가.

신곡이 나오자마자 유튜브 100만 조회 수를 단 며칠 만에 넘겨버리는 K팝 열풍 또한 한국인 특유의 ‘신(신명)’을 빼놓고는 이해될 수 없다. 수년째 식지 않고 있는 한류 열기의 주역은 단연 걸 그룹, 보이 그룹들이고, 그 노래의 99%는 댄스곡이다. 인트로(intro) 부분이 흐르자마자 절로 머리와 어깨를 흔들게 만드는 ‘신나는’ 노래들인 것이다. 

문 닫은 지 오래인 책방, 전통의 당구장, 상당 기간 특수를 누린 DVD방, 청소년들의 해방구 PC방 등 ‘유수한’ 문화-여가 관련 업종들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현재에도 노래방만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젊은 애들은 제대로 따라 하기도 벅찬 힙합과 랩을, ‘중늙은이’들은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냐?”고 목이 터져라 밤이면 밤마다 불러 젖힌다.

왜? 도무지 신나는 일이 없으니까. 마이크 붙잡고 정신이 혼미할 만큼 노래라도 신나게 불러야 내일 또 출근할 수 있으니까. 한국인들에게 신나지 않는 인생이란, 사실상 죽은 인생이니까.

노래 얘기가 나온 김에. 업계에서는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팔리는 음반은 해가 아무리 바뀌어도, 놀랍게도, 매년 한 종류다.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빠짐없이 진열된 뽕짝(트로트) 메들리, 댄스곡 메들리!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김수희 ‘남행열차’] 보이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윤수일 ‘아파트’]를 한국인들은 도저히 잊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시속 110킬로미터로 달리는 관광버스 안 그 좁은 통로에서 앞집 철수 어머님도, 뒷집 영희 아버님도 두 팔로 번갈아 하늘을 찌르며 “머물지 못해 떠나가 버린 너를 못 잊어,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른다“고 돌리고 돌리며, 으싸라 으싸, 줄기차게 흔들어대는 것이다.

원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흥겨움이 고조되면 엉덩이를 들썩이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휴대폰 판매원 폴 포츠와 영국 시골 출신의 47세 뚱보 수전 보일을 ‘현대판 신데렐라’로 배출하며 세계 각국에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을 일으킨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를 보면 빠른 음악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나 춤추는 관객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미국 흑인 케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관객 대부분이 아예 춤추기 위해 모이기라도 한 듯 몸을 흔들어 댄다.

그러나 한국에서 1980년 11월 이후 35년째 방영되고 있는 최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에서처럼 흥에 겹다 못해 객석 앞쪽으로 나와 온몸을 격렬하게 비틀어대는 모습은 오로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다. 더구나 그 대부분은 노래의 빠르기와 멜로디에 구애 받지 않고 추어대는 춤이다.

가히 가무(歌舞)를 사랑하는 민족임에 틀림없는데, 필자에게 가장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바로 초등학교 운동회의 한 장면이다. 여자 애들과 젊은 엄마들이 몸에 찰싹 달라붙는 검은 옷을 갖춰 입고 걸 그룹의 댄스 뮤직에 맞춰 다리를 쩍쩍 벌리고 엉덩이를 실룩대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 모습 말이다. 타고난 ‘몸치’거나 천성적으로 춤을 싫어하는 엄마는 이제 학부모 노릇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닌지.

신, 신명, 흥, 신바람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자연스러움(naturalness)’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듯 “읍내의 큰길마다 여러 마을에서 몰려든 농악대와 사람들로 출렁거렸고, 읍내 안통의 사람들까지 그 신바람에 휩쓸려 들어 덩실덩실 춤을 추고…” 해야 신명인 것이다.

채 발육도 안 된 말라깽이 여자 아이들과 이미 나잇살이 붙어 동작이 둔해진 아줌마들이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짱짱한 걸 그룹 춤 동작을 흉내 낸다는 게 과연 자연스럽고, ‘신나는’ 일인지 의문이다.

하지만 한국인 특유의 이러한 신(명), 흥(겨움) 정서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단기간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됐음이 분명하다. “그래, 신나게 해보자”, “하면 된다”는 ‘삶의 자세(way of life)’는 합리성으로 무장한 서구적 이성 ―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Je pense, donc je suis)는 명제로 대표되는 ―이나, 다분히 현실 초월적인 동양적 사고 ― 대승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힌두교의 윤회(輪廻)와 해탈(解脫), 이슬람의 “절대적 유일신 알라(Allah)를 따르라. 천상 낙원(‘잔나', al-Jannah)이 열리리니” ―와 다른 지극히 감성적(emotional)이고, 현세적(worldly, earthly)인 태도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속성은 실패와 좌절의 순간에도 영향을 끼친다. 견디기 힘든 절망의 시기에 서양인들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식의 소극적 ․ 수용적 자세를 견지한다면, 한국인들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적극적 ․ 능동적 구호를 외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살이에서 신나는 일은 많지도 않을뿐더러, 그리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 법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쉽게 끓고 쉽게 식는 경향이 강하다. 오죽하면 ‘냄비 근성’이란 말까지 있겠는가. 하긴 흥분의 정도가 지나치게 높거나 특별한 이유도 없이 계속 유지된다면, 우리가 조증(躁症) 또는 조병(躁病)이라 부르는 질환의 상태에 빠지게 되는 셈이니 ‘쉽게 식는’ 현상을 부정적으로 볼 일 만도 아니다.

그러나 한국인 특유의 ‘신(신명)/ 흥’의 기저(基底)가 유발하는 부작용은 반드시 짚어 보아야 한다.
우선,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패션업계에서 사용하는 뜻 그대로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에 맞지 않게 ‘신나려’ 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각종 단체의 행사, 각종 지역의 ‘축제’에 춤과 노래가 절대 빠지지 않는 점이 그렇다.

2014년 10월 분당에서 발생한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가 대표적이다. 유명 걸 그룹 포미닛의 공연을 보기 위해 주차장과 연결된 환풍구 덮개 위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16명이 사망한 사건인데, 해당 행사 이름은 ‘제1회 판교 테크노밸리 축제’였다.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표방하며 조성한 지역의 행사에 굳이 걸 그룹이 어째서 등장해야 하는 건가.

심지어 가족 ․ 친지들이 오랜만에 모여 식사와 담소를 나눠야 할 돌잔치, 칠순 잔치에도 생면부지의 개그맨(지망생), (3류)가수를 불러 분위기를 띄우는 게 일반화되어 있는 곳이 한국이다. 잔치의 주인공인 한 살배기와 칠십 노인의 입장에선 이해도 안 되고, 즐겁지도 않는 개그와 노래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납득이 가지 않는 게 바로 대학 축제에 유명 가수, 걸 그룹, 개그맨들이 수천만원의 출연료를 받고 등장하는 현상이다.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흥을 돋우기’ 위해서다.

과문한지 몰라도 하버드 예일 옥스퍼드 도쿄대 베이징대, 그 어디에서도 이른바 ‘지성의 전당’이라는 곳의 교내 페스티벌에 수억씩 거액을 들여가며 유명 가수 등 엔터테이너를 초대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또 다른 부작용은 ‘신’과 ‘흥’에 대한 과한 선호가 ‘우리는 신나야 한다’는 강박관념(obsession)의 형태로 심심찮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유지하려면 노래방에서 부를 곡 두어 개는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부서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며, 회식은 소속원의 건강 ․ 심리 상태와 상관없이 진행되며, 2차는 필수 코스이고, 노래방에서는 무조건 신나야 하기 때문이다.

장안의 화제였던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김혜수가 보여준 ‘신들린’ 탬버린을 상기하시라. 목에 매라고 만든 넥타이를 머리에 두르는 놀라운 응용력을 발휘하는 곳도 한국이다. 특히 신입사원은 비트 빠른 댄스곡이나 흥겨운 가사의 신곡을 반드시 꿰고 있어야 한다.

직장 생활에 의지가 없다면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나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Streets of Philadelphia’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면 틀림없이 뜻대로 된다. 야유회나 체육대회에서 목이 터져라 파이팅을 외치지 않고 동료와 노닥거리고 있다간 여지없이 인사발령 대상이다.

가정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여름휴가를 맞아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거두절미 즐거워야 한다. 최소한 즐거운 척이라도 해야 하지, 카메라 앞에서 우거지상을 짓거나 식탁에서 깨지락거리다간 가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이러자고 여기까지 왔어? 엉?”

아이들 기분은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하는 게 자연스런 일이고 땡볕에 돌아다니자면 어른과 달리 애들은 쉽게 지치는 게 인체의 법칙인데도 ‘신나야 할 휴가’라는 지상 과제 앞에서 모든 것이 무시된다.

‘여행의 시작’이라는 행복감에 젖은 가장은 자신이 세운 계획이 방해받게 되면 이를 참지 못하고 느닷없이 화를 내며 난폭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애들에게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와이프에게 삿대질하며 짜증내려 거기까지 간 건 아니지 않은가? 휴가와 여행이 반드시 ‘신나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신남’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집착은 신나지 않은 나(너, 우리)와 현실(사회)에 대한 필요 이상의 절망과 비난으로 이어질 확률이 크다. 본래 인생은 고해(苦海)이며, ‘troubled water'[사이먼 앤 가펑클]일진대, 흥겨운 일이 있으면 얼마나 있고 즐거운 기분이 가면 얼마나 가겠는가. 다시 말해, 신나지 않은 상태가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온(平穩)한 것임에도, 이를 풀이 꺾여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상태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조증’의 일반적 진행 과정과 거의 유사하다. 비정상적으로 기분이 들떠 병적일 정도로 행복감에 심취해 있는 조증 상태의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조증이 정신의학적으로 우울증이 같이 반복되는 조울병(躁鬱病)의 일종이듯, ‘신/흥’에 대한 경도는 과도한 우울감(증)을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살 만하다는 나라는 다 들어가 있는 OECD 회원국 34개국 가운데 한국이 자살률 최고인 현실이 과도한 입시경쟁과 높은 실업률, 비정상적 주택 가격 등 경제 ․ 사회적 요인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등록일 : 2015-06-12 오후 5:20:00   |  수정일 : 2015-06-1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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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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