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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번역 불가능한 우리말로 본 한국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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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은 과연 새로운 시작일까요?

영화 'The Graduate' (1)

글 | 신용관 기획출판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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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영어 교사 중에 꽤 잘난 척을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사람 잘난 거야 가만히 있어도 절로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 분은 유독 ‘자기 PR’이 심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이유 모를 열등감의 발로가 아니었나 싶네요. 하루는 우리들에게 ‘졸업’이 영어로 뭐냐고 질문했지요. graduate이 '졸업하다'는 동사이니 당연히 몇몇 학생이 ‘graduation’이라 대답했지요. 교사는 기다렸다는 듯 ‘commencement’가 답이며, “이 단어의 본뜻은 ‘시작’이다. 졸업은 곧 새로운 출발을 뜻하기에 그렇다”라고 멋들어지게 썰을 풀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commencement는 ‘졸업식’ 또는 ‘학위수여식’을 뜻합니다. 몇 년 전 화제를 일으켰던 고(故) 스티브 잡스의 미국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이 바로 ‘a commencement address’이지요. ‘졸업’은 graduation이 맞습니다.

오늘은 추억의 명작 <졸업>(1967)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원제가 ‘The Graduate’이니 사실은 ‘졸업자’ 또는 ‘대졸자’이지요. 대학 졸업자여야 다닐 수 있는 대학원 과정이 a graduate course, 대학원생은 a graduate student이지 않습니까. 예일대 졸업생은 a Yale graduate으로 표현하지요. 그러니 영화 제목을 직역하자면 ‘그 대학졸업생’인 셈이네요. 전혀 운치가 없지요? 그래서 ‘졸업’이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스틴 호프만의 첫 주연작이자 출세작인 <졸업>은 미국 영화사에 남아 있는 작품입니다. 1950년대 후반에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1960년대 초에 절정을 이룬 새로운 영화 운동 ‘누벨바그(Nouvelle Vague)’는 세계 여러 나라의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운동의 영향으로 미국과 유럽 영화는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 작가주의 영화로 나아갈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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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에서 ‘뉴시네마(new cinema)’라 부르는 새로운 경향의 영화는 그 출발점을 영국 감독 토니 리처드슨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1958)로 봅니다. 존 오즈번의 동명의 희곡(Look Back in Anger)을 영화화한 작품이지요. 전후 ‘성난 젊은이들(angry young man)’이란 표현을 낳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뉴시네마는 반(反) 할리우드 상업주의를 행동목표로 삼고 일어섰습니다. 아서 펜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1967),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 데니스 호퍼 감독의 <이지라이더(Easy Rider) 등이 대표작이지요.

평자에 따라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출세작 <더티 해리(Dirty Harry)>(감독 돈 시겔, 1971), 진 해크만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긴 <프렌치 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감독 윌리엄 프리드킨, 1971) 등의 상업적 영화에까지 그 영향이 파급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이런 영화들의 특징은 현실적 감각의 표현, 현장 중심의 촬영, 반체제적 주제 등이지만 기성세대의 속물근성과 위선적 삶을 가벼운 터치로 꼬집는 데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영화 <졸업>은 감독 마이크 니콜스(Mike Nichols)에겐 아카데미 감독상을 쥐어주었고,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최우수작품, 각본, 남우주연(더스틴 호프만), 여우주연(앤 밴크로프트), 여우조연(캐서린 로스), 촬영 등 오스카 6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무척 센세이셔널합니다. 미국 동부 명문대 졸업자가 부모 친구인 중년의 부인과 지속적인 육체관계를 맺고 이후엔 그 딸을 사랑하게 되는 내용이니까요. 개봉 당시 이 영화는 미국에서도 상당히 대담하고 발칙한 영화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이른바 섹스 혁명이 막 시작되고 있었지만 이전까지 할리우드 주류 영화가 중산층의 성을 그토록 적나라하게 묘사한 적도, 그렇게 기이한 삼각관계를 다룬 적도 없었으니까요.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땐 모녀지간이 이모와 조카의 관계로 번역됐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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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젊은이의 이름이 벤저민(Benjamin)인 것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성서에서 베냐민이라 부르는 벤저민은 야곱이 무척 사랑했던 막내아들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고대 이스라엘 12부족의 하나인 베냐민 족을 일컫지요. 이 이름의 어원은 ‘오른 편의 아들(son of the right side)’이라고 하네요. 전통적으로 오른손은 힘과 미덕(strength and virtue)을 상징하지요.

이 이름의 대표적 인물은 당연히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입니다. Benjamin이란 단어가 미국 슬랭으로 '100달러짜리 지폐'를 뜻하기도 하는 까닭이지요. 공교롭게도 현직 이스라엘 총리 이름도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 포인트는 짧으면서 산뜻한 대사와 음악일 것입니다. 일례로 로빈슨 부인이 벤저민을 유혹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그녀는 자기 집을 둘러보고 있는 아들뻘의 청년 앞에 갑자기 옷을 벗은 채 나타나 아예 방문을 잠가버리지요.

Benjamin: Oh God. Oh, let me out. / 오, 이런. 내보내 주세요.
Mrs. Robinson: Don't be nervous. / 긴장하지 마.
Benjamin: Get away from that door. / 문에서 비켜주세요.
Mrs. Robinson: I want to say something first. / 할 말이 있어.
Benjamin: Jesus Christ. / 세상에.
Mrs. Robinson: Benjamin, I want you to know that I'm available to you, and if you won't sleep with me this time…. / 난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 만약 이번에는 네가 나와 자고 싶지 않다면….
Benjamin: Oh, my Christ. / 이럴 수가.
Mrs. Robinson: If you won't sleep with me this time I want you to know that you can call me up anytime you want and we'll make some kind of arrangement. / 만약 지금 네가 나와 같이 자고 싶지 않다면, 언제든 내게 전화해서 약속을 정하면 돼.
Benjamin: Oh…. / 이런….
Mrs. Robinson: Do you understand what I…. / 내 말 이해했지?
Benjamin: Let me out. / 내보내 주세요.
Mrs. Robinson: Benjamin, do you understand what I just said? / 벤저민, 방금 전 내 말을 알아들었지?
Benjamin: Yes! Yes. Let me out! / 예. 알았어요. 나가게 해달라구요!
Mrs. Robinson: I find you very attractive. / 넌 정말 매력적이야.
 
여기쯤에서 이 코너의 본래 목적인 영어 공부 좀 해볼까요?
우선 available에 대해서. available이 사물과 어울리면 ‘구할 수 있는, 이용할 수 있는’의 뜻이지요.
When will the information be made available?
그 정보를 언제 구할(이용할) 수 있을까요?
Further information is available on request. 추가 내용은 요청하시면 알려 드립니다.

available이 사람과 어울리면 ‘시간이 있는, 여유가 있는’의 뜻이지요.
Every available doctor was called to the scene.
활용 가능한 의사들이 모두 현장에 투입되었다.
Will she be available this afternoon? 오늘 오후에 그 분이 시간이 될까요?

그러니 로빈슨 부인의 대사 I'm available to you는 ‘넌 언제든 나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여성이 남성에게 수작 거는 대사 중에 천박스럽지 않은 것으로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싶네요.

get away from은 써있는 그대로 ‘~로부터 떨어지다(떠나가나, 빠져나가다)’의 뜻입니다.
I won't be able to get away from the office before 7.
나는 7시 전에는 사무실에서 못 빠져 나갈 거야.
Don't be afraid to shout, "Get away from me!" or "Leave me alone."
두려워 말고 "저리 가!" 혹은 "날 내버려 둬"라고 소리쳐라.

call 人 upring up과 마찬가지로 ‘~에게 전화를 걸다’입니다.
I know a few people I can call up. 연락해 볼만한 사람을 몇 알고 있어요.

call 物 up은 ‘~을 상기시키다’의 뜻이지요.
The smell of the sea called up memories of her childhood.
바다 냄새에 그녀의 어린 시절 추억들이 떠올랐다.

call 人 up이 전화를 걸다가 되는 것은 전치사 up에 ‘~와 (거리상) 가까워지다’라는 뜻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가 될 것입니다. 피사체에 가까이 접근해 찍은 장면을 뜻하는 close-up, ~을 따라잡다를 뜻하는 catch up (with)의 경우가 그러하지요.
I'll catch you up. 나중에 널 따라갈게.
call 人 up은 전화라는 통신 수단을 통해 상대와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call 物 up이 상기시키다가 되는 건, 의식 밑바닥에 있던 기억이 의식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 다시 말해 up의 본래 의미인 ‘수직 상승’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이 영화엔 재치 넘치는 장면이 아주 많습니다. 가령 첫 정사를 앞두고 긴장한 벤저민의 모습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들이 그렇지요. 로빈슨 부인이 시키는 대로 미리 호텔 방을 잡아둔 벤저민과 로비에서 전화를 건 부인과의 통화 장면.

Mrs. Robinson: Benjamin. / 벤저민.
Benjamin: Yes? / 예.
Mrs. Robinson: Isn't there something you want to tell me? / 나한테 할 말 없어?
Benjamin: Tell you? / 부인한테요?
Mrs. Robinson: Yes. / 응.
Benjamin: Well, I want you to know how much I appreciate this. Really. / 글쎄요. 제가 이 일(첫 정사)에 대해 당신에게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말씀드리고 싶네요. 진심으로.
Mrs. Robinson: The number. / 번호.
Benjamin: What? / 뭐라고요?
Mrs. Robinson: The room number, Benjamin. I think you ought to tell me that. / 호텔 방 번호, 벤저민. 그걸 내게 일러줘야지.
Benjamin: Oh, you're absolutely right. It's 568. / 아, 부인 말이 전적으로 맞네요. 568호예요.
Mrs. Robinson: Thank you. / 고마워.
Benjamin: You're welcome. Well…. I'll see you later, Mrs. Robinson. / 별 말씀을요. 저… 그럼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로빈슨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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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방에서 로빈슨 부인에게 나무 옷걸이를 건네며)
Benjamin: Wood? / 나무로 된 걸로요?
Mrs. Robinson: What? / 뭐라고?
Benjamin: Wood or wire? They have both. / 나무로 된 거요, 철사로 된 거요? 둘 다 있거든요.

상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I want you to know how much I appreciate this.”라는 점잖은 문장이 이런 맥락에 사용되면서 그것이 자아내는 absurdity(터무니없음, 어리석음)가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지요.
 
등록일 : 2014-01-27 11:05   |  수정일 : 2014-01-2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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