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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번역 불가능한 우리말로 본 한국 ·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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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관의 pop으로 배우는 phrasal verbs]
크리스마스에 다시 보는 'Love Actually'

글 | 신용관 기획출판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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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찾아왔습니다. 성탄절을 전후해 딱히 선물을 받아본 추억도, 주어본 기억도 없는 저 같은 촌놈에게 크리스마스란 그저 구세군 종소리와 거리마다 반짝거리는 트리 전구 불빛 정도의 인상으로 각인돼 있을 뿐이지요.

아, 하나 더 있군요. 어린 시절 성탄절이면 빠짐없이 틀어주던 흑백 영화 <크리스마스 캐롤>. 수전노 스크루지 영감의 악덕에 덩달아 분개하며 “그래 착하게 살아야해” 다짐하던 한 ‘소년’의 순진한 모습도 더불어 남아 있네요.

(원작자 찰스 디킨스는 이 소설 집필 당시 다섯 번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고 많은 빚으로 가계가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이 소설에 대해 “울다 웃다, 다시 울었고, 모두가 잠자리에 들었을 한밤중에 캄캄한 런던 거리를 이삼십 킬로미터쯤 걸어 다닐 정도로 흥분한 상태로 글을 써나갔다”고 밝힌 바 있지요. 작가의 경제적 고난, 영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결합되어, 세계적인 소설이 탄생한 셈입니다.)

요즘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공중파 TV에서 빠짐없이 틀어주는 영화의 목록이 제법 다양하지요. 대표적인 것이 <나홀로 집에>(Home Alone, 1990) <폴라 익스프레스)(The Polar Express, 2004) <크리스마스의 악몽>(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 1993)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 1993) 쯤 되겠네요.

성인을 위한 크리스마스 시즌 무비 가운데 대표주자는 바로 <러브 액추얼리>(Love Actually, 2003)일 것입니다. 오늘은 이 ‘위대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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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이 영화는 시간적 배경이 크리스마스이면서 아예 포스터 자체를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 분위기를 냈지요. <사진1>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당대 스타급 영국 배우들이 총출동했다는 점입니다. 포스터에 나와 있는 순서대로 보자면, 매력적인 미혼 영국 총리 역의 휴 그랜트, 뒤늦게 생긴 아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새 아빠 리암 니슨, 아내와 동생의 외도를 목격하는 소설가 콜린 퍼스, 오랜 짝사랑에 번민하는 회사원 로라 리니, 바람 피우는 남편 때문에 고통 받는 에마 톰슨, 비서와 바람 난 출판사 편집장 알란 릭맨, 남편과 제일 친한 친구의 사랑 고백을 받는 새 신부 키라 나이틀리, 총리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마틴 맥커친, 한물 간 록스타 빌 나이, 카메오 아닌 카메오 ‘미스터 빈’ 로완 앳킨슨 등입니다.

기라성 같은 배우를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감독 리처드 커티스의 힘이지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Four Weddings and a Funeral, 1994) <노팅 힐>(Notting Hill, 1999) <브리짓 존스의 일기>(Bridget Jones's Diary, 2001) 등 영국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새 장을 연 영화들의 각본을 쓴 재간꾼이지요.

저는 불행히도(?) 이 영화를 잠시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DVD로 봤습니다. 한글 자막 없이 봐서 그 내용을 100% 이해했다고 말하긴 힘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등장인물과 그들이 엮어내는 그 복잡한 이야기를 135분 안에 그렇게 깔끔하게 담아냈다는 점에 경탄을 금치 못했지요.

우선 제목 ‘Love Actually’에 가장 가까운 우리말은 무엇일까요? 영화 앞부분에 힌트가 있지요. 영국 런던 히드로 국제공항 풍경을 비추며 나레이터가 흐릅니다. “Love actually is all around” (사랑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니 ‘Love Actually’에 가장 가까운 우리말은 ‘사랑이란 실은’ 또는 ‘사랑은 말이지’ 쯤 되겠네요. 영국에선 어떤지 모르겠지만, 미국 젊은이들은 “Actually~"로 시작하는 문장을 자주 사용하지요. 이 제목 참 멋집니다. 우리도 몇 년 전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가 있었지요. 문법적으로 불완전하나, 담고자 한 의미를 완벽하게 전달하고 있는 좋은 제목들이지요.

저는 이 영화를 통틀어 도입 부분을 가장 좋아합니다. 모녀, 친구, 부부, 동료 등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망 당사자들이 해후하고 포옹하고 키스하는 그 장면 말이지요. 45세가 넘어가며 몸에서 에스트로겐이 과도하게 분비되는 탓인지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틀어보면서도 어김없이 콧잔등이 짠해지더군요.

그렇습니다. 공항이란 그런 곳이지요. 영악하게도 이를 잘 간파한 알랭 드 보통은 아예 히드로 공항에 머물며 《공항에서 일주일을: 히드로 다이어리》(A Week at the Airport, 2009)라는 책까지 냈지요. 책에 이런 구절들이 있지요.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의 현대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깔끔하게 포착할 수 있는 어떤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가야할 곳은 공항밖에 없을 것이다. 온갖 소란과 교차 속에서 아름답고 흥미롭게 펼쳐지는 공항 풍경은 현대 문명의 상상력의 중심에 자리한다.”

“비행기를 타는 것은 우리 자신의 해체를 앞둔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가장 잘 보내느냐의 문제를 제기하곤 한다. 어떤 생각을 하며 다시 땅에 떨어지고 싶은가?”

첫 공항 장면은 이 영화가 하나의 특별한 사랑이 아니라 세상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다양한 사랑의 풍경을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의중을 정확히 담고 있는 것이지요. 크리스마스 5주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도입부의 그 나레이션은 총리 역을 맡은 휴 그랜트의 목소리였는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When the planes hit the Twin Towers, as far as I know, none of the phone calls from the people on board were messages of hate or revenge - they were all messages of love.

9 ․ 11 테러 희생자들이 보낸 모든 문자는 사랑한다는 메시지였다는 설명으로, 이 영화가 9 ․ 11 테러 2년 뒤에 개봉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아주 뭉클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성 관객들이 가장 좋아했던 장면은 바로 다음 신일 겁니다. <사진2> 가장 친한 친구의 부인이 된 짝사랑 여성을 찾아가 말 한마디 없이 진심을 고백하는 장면 말입니다. 스케치북에 써내린 대사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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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With any luck, by next year   / 내년에 운이 따른다면
(쭉쭉빵빵 여자들 사진을 붙여놓고는)
I'll be going out with one of these girls.   / 이 여자들 중 하나와 놀러나갈 겁니다.
But for now, let me say   / 하지만 지금은 말하고 싶어요.
Without hope or agenda   / 아무런 희망이나 조건 없이
Just because it's Christmas   / 크리스마스니까
And at Christmas you tell the truth  /  그리고 크리스마스엔 진심을 말해야 하니까
To me, you are perfect   / 내게 당신은 완벽해요
And my wasted heart will love you  / 그리고 내 헛된 가슴은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미라 사진을 보여주며)
Until you look like this.   / 당신이 이렇게 될 때까지.
Merry Christmas.   / 메리 크리스마스.

남자 입장에서야 ‘별 시답잖은 짓을 다 하는군’ 싶지만, 그건 남자들 생각일 뿐입니다. 동서고금, 교육 수준, 재산의 다과(多寡)를 막론하고, 이런 로맨틱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다할 여성은 세상에 없지요. 남자들, 머리 많이 써야 데이트 한번 따낼 수 있습니다.

영화 오프닝을 장식하고 있는 한물 간 록스타 빌 나이의 감초 연기도 볼만했습니다. <사진3> 마약 중독에서 막 빠져나온 그는 방송 중에 이렇게 떠들지요.

“Hiya kids. Here is an important message from your Uncle Bill. Don't buy drugs. Become a pop star, and they give you them for free!”

“안녕 얘들아. 빌 아저씨가 중요한 메시지 하나 전해주마. 마약을 사지 말거라. 팝스타가 되면 공짜로 생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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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 뒤에도 오랫동안 자신을 돌봐준 매니저 조(그레고르 피셔)를 잊지 않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매니저의 방문을 두드리는 장면은 ‘남자들의 우정’이라는 코드를 간결하면서도 인상 깊게 드러낸 장면이었지요.

이 영화를 본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미혼 총리 역을 맡은 미남 배우 휴 그랜트가 흰 셔츠 차림으로 총리 공관에서 혼자 춤추는 장면을 잊지 못할 겁니다. 그 그랜트가 마음에 두고 있는 총리실 소속 여직원과 그녀의 전 남자친구에 대해 나누는 대화도 인상적이지요. <사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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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Natalie: He says no one's gonna fancy a girl with thighs the size of big tree trunks. Not a nice guy, actually, in the end.
나탈리: 아무도 허벅지가 나무통만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그가 그랬어요. 별로 좋은 사람이 아녔던 거죠.

Prime Minister: Ah! You know, um, being Prime Minister, I could just have him murdered.
총리: 아! 총리로서 그를 죽여 없앨 수도 있어요.

Natalie: Thank you, sir. I'll think about it.
나탈리: 고맙습니다, 총리님. 생각해 보죠.

Prime Minister: Do. The SAS are absolutely charming. Ruthless trained killers are just a phone call away.
총리: 고려해 봐요. 영국 공수특전단은 진짜 대단하지요. 전화 한 통이면 잘 훈련된 극악무도한 살인청부업자를 구한다니까.

<러브 액츄얼리>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음악입니다. 리처드 커티스의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음악은 수십 명의 캐릭터와 그 수만큼의 러브 스토리를 설명하는 내러티브의 기능을 수행하지요. 결혼식장에서 흘러나오는 비틀스의 ‘All You Need Is Love’, 대니얼 아내의 장례식 장면에서 나오는 베이 시티 롤러즈의 ‘Bye Bye Baby’, 총리의 들뜬 마음을 표현하는 포인터 시스터즈의 ‘Jump (For My Love)’ 등이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타고 흐르고 있지요.
 
 

미국에서 구입한 DVD로 이 영화를 본 저로서는 나중에서야 국내 개봉 영화에서는 한 커플 에피소드가 통째로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3류 포르노 배우들 얘기였는데, 짧게 짧게 나왔지만 아주 신선하고 예쁜 이야기였지요. <사진5> 얼마 전 영국에서 온 출판사 편집자들과 점심을 먹으며 그 얘길 해줬더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을 짓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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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그런데 이번에 10년 전엔 삭제되었던 그 커플 분량을 넣어 새로 편집한 <러브 액츄얼리: 크리스마스 에디션>이 개봉된다고 합니다. 15세 관람이었던 지난번과 달리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지요.

포르노 영화에서 남녀 성행위 장면을 흉내 내는 게 임무인 이들은 우연히 촬영장에서 만난 직후 서로에게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둘 다 아주 수줍고 내성적인 타입이지요. 어느 날 남자가 여자에게 말합니다. “It is nice to have someone [who] can just chat to.” 대사가 필요 없는 역할로 밥을 벌어먹는 그들로선 가장 절절한 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크리스마스에 “말 건넬 누군가”를 곁에 두고 있으신 지요?
메리 크리스마스!
등록일 : 2013-12-24 17:08   |  수정일 : 2015-06-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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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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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정  ( 2014-01-20 )  답글보이기 찬성 : 21 반대 : 18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죠^^
이병진  ( 2014-01-02 )  답글보이기 찬성 : 12 반대 : 21
요즘 영화는 베베 꼬아 놓은게 많은데, 옛날 아날로그적인 감성 영화들이 그립습니다.
루비  ( 2013-12-30 )  답글보이기 찬성 : 10 반대 : 8
예전에 많이 영화를 봤던것 같은데요...크리스마스 시즌엔 더욱더 따뜻해지는 느낌...
만득이  ( 2013-12-26 )  답글보이기 찬성 : 9 반대 : 8
러브액츄얼리는 딱 임팩트 있게 다가오는 장면은 없는데 보고나면 왠지 가슴이 훈훈해지는 영화. 뭔가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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