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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꿈 많은 80대 차윤의 글로벌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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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서번트∙리더십’ 이필섭 예비역 대장

글 | 차윤 ㈜CPR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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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서번트∙리더십’

 
요즘 문고에 가보면 ‘베스트 셀러’ 섹션에 ‘리더십(Leadership)’에 관한 책들이 눈에 유난히 많이 띈다. ‘문제는 리더십에 달렸다’는 인식과 ‘나도 리더가 되겠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최근에 젊은 학생들을 접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들이 자주 쓰는 말 가운데, ‘리더(Leader)’라는 말을 ‘글로벌’을 꼭 붙여 ‘글로벌 리더’라고 쓰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리더’가 아니면 참다운 리더가 될 수 없다”는 새로운 인식이 생겨난 것 같다.

맞는 말이다. 과거에는 리더라고 하면 한국적 상황아래서 한국인의 마음만 사면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오늘날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면서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서는 되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이루어 놓은 것조차도 실효성이 없어진다. 때로는 성취해 놓은 것이 무효화 되곤 하는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다시 말하자면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에 맞지 않는 리더십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우리 사회에서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글로벌 리더가 갖추어야 할 자질 즉, 글로벌 스탠다드란 무엇인가?
 
그것은 투명성, 공정성, 효율성, 책임성, 포용성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투명성’이다.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현재 얼마나 뒤쳐지고 있는지를 국민 모두가 지난 몇 년간 정부인사, 국회청문회 및 미디어에 비치는 빈번한 사고, 비리 등을 통해 지겹도록 듣고, 보고, 가슴 아파해왔다.

여기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되풀이 하려는 것이 필자의 의도는 아니다. 이러한 황량한 조건하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한국을 빛내고 있는 한국의 글로벌 리더를 소개함으로 이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거의 절망상태에 있는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참고로 이 글은 인터뷰 기사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생각들을 본인 몰래 주어 엮은 글이다.)
 
세계기독군인연합회(AMCF: Association of Military Christian Fellowships)라는 명칭의 범세계적인 조직이 있다. 세계 각국의 기독군인들이 모여 “All One in Christ Jesus”라는 모토아래 연합한 기구이다. 1851년 영국에서 OCU(기독장교회)라는 명칭으로 시작되었으나 1980년에 명칭을 AMCF로 개칭하였다.
 
한국은 이미 1956년에 OCU를 결성하여 AMCF 회원국으로 가입했으며, 국력의 신장과 AMCF내에서 위상이 급속히 격상되면서 2004년에는 제12차 AMCF 세계 대회를 한국 서울에서 개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앞서 2002년에 AMCF 회장단은 당시 동아시아지역 부회장이었던 이필섭 예비역 대장을 만장일치로 AMCF 5대 회장으로 추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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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이필섭 회장 취임
 
한국이 회장국이 된다는 것은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AMCF 창설이래 70여년 동안 회장직은 줄 곧 구미국가에서 맡아왔었다. 한국은 기독교 역사도 짧을 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방대한 글로벌 기구를 아시아인에게 맡긴다는 것은 생각도, 기대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관련 인사들의 공통견해였다. 더구나 회장의 임기가 10년이다 보니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AMCF 제4대 회장 로렌스 뉴경(Sir Laurence New)으로부터 회장직을 인수 받을 당시의 AMCF 회원국가는 78개국에 불과했다. AMCF의 효시인 영국 OCU가 설립되고, AMCF가 설립된 후 약 150년간 정치적, 종교적 갈등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많은 노력과 희생을 무릎 쓰고 이룩했다는 점은 그래도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이필섭 회장은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떠한 일에 직면하더라도 항상 성경 말씀을 참고하여 아이디어와 지혜를 얻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회장직을 맡고 나서 그는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성경읽기와 기도에 힘썼고,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영감과 힘을 얻어 세계 각국에 MCF 설립 및 활성화를 목표 삼아, 아래와 같은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하여 실천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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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범아프리카 대회 (지역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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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AMCF 회장단 전략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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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AMCF 전략회의 (기념사진)

첫째로, 종전의 7개 지역(북미, 남미, 중남유럽, 서아프리카, 남아프리카,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만 개최했었던 지역대회를 14개 지역 대회로 확대하여 2004년에는 서울 세계대회를 필두로 2008년에는 범아프리카 대회를 케냐에서 개최하고, 2009년에는 범유럽 대회를 영국에서 개최하였다. 서울 대회는 AMCF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세계 대회(9. 14 ~ 18)였으며 134개국에서 3,218명이 참가하였다. 이 중 외국참가자는 당시 MCF 미설립 국가 중 49개국을 포함하여 133개 국가에서 618명의 대표들이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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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AMCF 회장단 전략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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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서울 세계대회 개회식
 
2004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12차 세계 대회를 기점으로 이필섭 회장은 한국의 MSO(세계군선교협력위원회)로 하여금 MCF 미설립국가의 MCF 설립과 MCF활동이 미약한 국가의 활성화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였다. 이후 MSO의 선교사역 중 가장 중요한 사역인 MEO 프로그램과 English Camp 및 제자훈련 프로그램이 MSO 멤버들에 의하여 매년 진행하게 되었는데, MSO 단독으로 추진하기에는 너무 벅찬 관계로 미국의 ACCTS와 영국의 MMI로부터 강사요원을 지원받아 소위 CATT(Combined Assist Training Team)개념을 적용하여 연합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현재 MSO를 지원하는 국내교회들과 미국, 영국, 호주 등에 있는 해외 한인교회들로부터 재정적, 인적 지원을 받아 실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AMCF 활동을 적극지원하기 위해 3PSO(3대 주지원 기관)인 미국의 ACCTS, 영국의 MMI, 한국의 MSO가 서로 협력하는 연합교육훈련 체제를 확립하여 다양한 교육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발전시키도록 하였다. 이로 인하여 AMCF의 목표인 MCF설립과 활성화를 촉진시킴으로써 MCF 없는 나라에 MCF를 설립하도록 하고, 미약한 MCF 국가를 더욱 활성화 시키면서 AMCF 조직을 발전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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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세계대회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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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세계대회 (참가국 국기)

이필섭 회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MCF 미설립 국가를 위한 24시간 기도체제를 설정하여 모든 MCF 회원국가들의 표준 시간대별로 ‘정오 기도 벨트’를 지정했으며, 매년 9월 둘째 토요일을 ‘세계 기도의 날’로 제정하여 이른바 ‘Pray & Plan의 생활화’를 선포하는 등 영적인 활동까지 혼신을 다하여 일했다.
 
그는 10년간의 임기 중(2002. 9. 15 ~ 2012. 9. 18) 총 53회에 걸쳐 80여 개국을 방문(지구 35회전)하였으며, 주협력기관들과 20회 회의 및 24회의 지역 대회에 참석, 연 평균 50여 회의 AMCF 비전 설명과 간증 설교를 맡아 하는 등 열정과 강인한 의지로 오늘날의 AMCF로 발전시켰다. 결과적으로, 이필섭 회장의 취임 당시 78개국이였던 MCF 국가 수가 임기를 마치고 스리랑카의 ‘위라수리아’ 장군(Gen.(Ret), Srilal Weerasooriya)에게 회장직을 인계할 때는 무려 149개국으로 증가한 가히 기적적인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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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신임회장 안수

사실 그가 이룩한 10년간의 업적을 모두 소개하자면 책 한 두 권으로도 담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다양하고, 획기적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혹, 이 방대한 범세계적인 일들을 해낸 이필섭 회장의 열정과 능력에 경탄을 하면서도 ‘그건 종교적 활동에 속한 것이니 그럴 수 있겠지’ 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평생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돈을 버는 일도 아닌 봉사활동을 1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렇게 열심히, 그렇게 충성스럽게,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고 섬기면서, 그렇게 많은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며 존경을 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더구나 그가 행한 활동은 대부분이 국제 활동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하고,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도 어려운데 모든 대상이 외국인이다. 그것도 무려 149개국에 달한다. 어떻게, 무엇으로 이들을 AMCF라는 거대한 울타리 속에 한 가족이 되도록 만들었는지 너무도 궁금해서 필자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물어봤다. 이필섭이란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이필섭 회장은 첫째로, 신앙인이다.
 
세상만사가 모두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음을 확신하며 무슨 일이던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려고 노력한다. 주변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가 불평을 하거나 걱정을 하거나 실망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항상 긍정적이고 항상 낙관적이다.
 
그는 겸손과 지혜를 갖춘 사람이다.
 
그는 본인이 말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말하는 사람이 누가됐든 상관 없이 집중하지만 조심스럽게 모두 경청한다. 또한 이해하고자 들으며 배우는 자세로 경청한다. 큰일이던 사소한 일이던 반드시 동료들 또는 산하직원들과 먼저 상담을 하되,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보다는 그들의 의견을 10분 받아드린다. 그런 후에 본인의 생각과 공통점을 찾아 합의점을 도출한 후 결정을 내리곤 한다.
 
그는 탁월한 끈기와 인내력의 소유자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그의 끈기와 인내력은 가히 보통사람의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는다고들 전한다. MSO의 기록에 따르면, 그가 AMCF 회장직을 맡아 있는 동안에 무려 888,000마일의 여정을 왕래하였는데, 이렇게 빈번한 여행 중에 때로는 공항에서 8시간 기다려야 했던 때도 있었고, 목적지까지 도착하는데 40시간 이상 소요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장기 여행으로 인해 허리병이 생기게 되자, 동료들은 ‘비즈니스 클래스’로 여행하시라고 간곡한 권유도 많이 했지만, 이 회장은 그렇게 긴 비행 여행을 하면서 단 한번도 ‘이코노미 클래스’ 외에 다른 등급으로 여행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허리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지팡이에 의지하여 다닐 때에도 모두들 안타까워하며 ‘비즈니스 클래스’로 여행하도록 강권하였으나 그는 늘 사양하곤 했다. 그의 사양의 변은 항상 이러했다. “그 돈이 어떻게 모아진 돈인데, 조금만 참으면 되는 것을.. 그럴 수 없다”고 답을 할 뿐이었다.
 
또한 그는 주변에서 그를 돕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지극했다. 그가 ‘기도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자 그를 찾아와 기도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매번 약속을 지켜왔다. 이 회장과 함께 일해본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그에게는 친절한 말, 배려하는 말, 격려하는 말, 고맙다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이 따로 없다”고 말한다. 어떠한 지도자가 이러한 리더쉽으로 자기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대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그는 군에서 수십만 대군을 호령하던 4성 장군이 아니었던가.
 
사실, 앞서 기술한 제5대 AMCF 회장으로서 이룩한 이필섭 회장의 놀라운 위업이 가능했던 것은 이 회장의 이러한 인격과 ‘섬기는 리더십’에 적극 협력하는 MSO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MSO는 AMCF의 제반 활동을 지원하고 유관기관들과 협력하여 세계 기독군인들을 복음화하는 사명을 가지고, 세계 각국에 MCF 설립 및 양성을 목표로 2002년 6월 1일에 발족되었다. MCF가 설립되지 않았거나 설립은 되었어도 아직 미약한 나라로부터 기독군인 지도자들을 한국에 초청하여 한국의 군선교 현장을 참관토록 하였고, 6. 25 구국성회와 신병세례식 참관, 안보현장 견학, 크리스찬 리더쉽을 함양하는 ‘제자훈련’, 한국 문화 탐방, 민박, 예배 참석, 친교 등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집행함으로써 세계 AMCF 조직을 확대 및 강화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기에 이르렀다. 놀라운 것은 이 MSO의 책임지고 있는 분이 과거 국방장관을 지낸 바 있는 이준 예비역 대장으로, 말 없이 이필섭 회장을 도우며 ‘서번트∙리더쉽’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필섭 회장을 10년동안 가까이 모셨던 어느 예비역 장교는 “그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어도 아깝지 않은 훌륭한 지도자”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10년간 이필섭 회장 곁에서 모든 국제관계를 도왔던 김사묵 선생을 지난 겨울 미국 남가주에 있는 뮤렛다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도시에서 만날 수가 있었다. 이 회장과 함께 일해온 소감을 묻는 필자에게 김사묵 선생은 다음과 같이 영어로 대답해 주었다.
 
“I give thanks and praise to God for showing me a man I can respect from my heart, and giving Korea such a man of integrity, faith, wisdom, love, and perseverance - a man of God.”
등록일 : 2015-05-18 13:46   |  수정일 : 2015-05-1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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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차윤 ㈜CPR 회장

차윤 ㈜ CPR 회장

● 해군사관학교 / 플로리다 대학/ 위싱턴(시애틀) 대학 졸업
● 해군사관학교 / 해군 대학 / 메릴랜드 대학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 통일원 / 홍보협회 / 문화공보부 / 해외공보관 (이집트, 일본) 근무
● 해외개발공사 / ㈜연합광고 / 미국영화수출협회 / ㈜ CPR 회장 (현재)

국제 정치, 지정학, 국제감각 등 분야에 걸쳐 약 50편의 학술 또는 비학술 논문을 국내외 미디어에 게재하였으며, 최근에는 「조선 Pub」에 약 200회에 걸쳐 온라인 칼럼을 게재한 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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