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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꿈 많은 80대 차윤의 글로벌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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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해군에는 이런 장교도 있다.

글 | 차윤 ㈜CPR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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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함대에서 지휘함 역할을 하는 광개토대왕함./ 국방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삼가 이 몸을 바치나이다."
 
 1945 11 11, 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하신 손원일 제독을 비롯한 선배들의 조국을 위한 위국헌신의 마음을 담은 표어이다.
 
 그 후 현재까지 많은 해군/해병대 장병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희생으로 오늘의 대한민국 해군의 모습이 있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최근 방산비리에 대한 보도를 대하면서 해군에 몸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개탄을 금치 못한다. 특별히 몇 사람의 잘못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도 동서남해와 격오지에서 국방의 의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많은 장병들의 심정이 어떠할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한민국 해군을 믿으며 또 사랑한다. 왜냐면 우리 해군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고귀한 인격과 순국정신을 이어받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삼가 이 몸을 바치나이다."를 생활신조로 충성을 다하는 선후배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해군사관학교 교수로서 생도들을 가르치다가 전역한 후배장교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는 조덕현 예비역 대령이다. 그는 이 편지를 5년 전에 썼던 것이라고 했다. 이 편지를 나는 조덕현 교수가 언젠가 다른 곳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 조심스럽게 공개하리라 생각했는데 이제 그 시점이 된 것 같아서 여기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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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윤 선배님께,
 
바다가 마냥 좋아서 1982 1 27일에 옥포만에 첫 발을 내디딘 후, 저는 지금까지 해군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제가 받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과분하게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생도시절, 2학년 때 동기생회장, 3학년 때 7함대 실습, 42, 43기 특별훈련 조교, 연대장생도, 1대대장생도, 4학년 때는 기독생도회장을 지낸 후 임관하였습니다. 구축함 통신관을 하면서 항해과 장교도 보람이 있지만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이라 판단하고 교수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후 고려대학교에서 학부, 석사를 마치고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학위, 해사 교환교수 근무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강의시간에 생도들에게생도 여러분은 어떤 삶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성공한 삶은 나이가 65세 정도 되어 지나 온 삶을 돌아보았을 때내가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더라도 지금까지 온 길을 걸어올 수 있겠다.”라는 마음이 든다면 그 사람의 삶이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저는 생도들에게저는 여러분처럼 생도시절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지금까지 온 길을 다시 걸어올 수 있습니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진심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사람이 둘 이상 모여 사는 곳에는 이상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하는 문제라고 믿고 있습니다.
 
  한번은 학교에 같이 근무하는 후배장교가 저에게선배님은 환경에 굴하지 않고 초지일관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부럽습니다.”라고 얘길 했습니다. 그때 저는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동기가 순수하기 때문일세. 내가 만약 어떤 계산을 하고 그렇게 했다면 주위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내가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집어 치워라고 생각했을텐데, 동기가 순수하기 때문에 내일 전역하더라도 오늘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선배님께서도 기억하시겠지만 교육병과가 두 차례 발전을 위해 홍역을 치렀습니다. 첫 번째는 1997년 교육병과가 해체되었던 때였으며, 두 번째는 2007년 대령과 중령을 외부 근무로 보낸 일이었습니다. 저는 병과가 해체되었을 때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저의 전공이 역사이기 때문에 병과해체에 대한 저의 책임이 누구보다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내가 앞으로 교수로서 생활하면서 소위 계급장을 달고 근무하면서 전역하라고 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고 지금도 그 다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선배님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해사에는 동기생 이민효 교수가 있습니다. 이 교수는 생도시절 특별훈련 조교와 연대장 근무를 섰으며 교수로서 생도들을 가르치면서 학교의 보직을 누구보다 많이 한 장교입니다. 저는 학부 위탁교육을 마치고 이 교수와 같이 학교에 부임하면서 이 교수는 저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 누가 마지막까지 올라가든 서로 도와야 할 동역자로 생각했고 지금까지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교수는 학교에 선후배, 동료 교수들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교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교수와 함께 학교에서 교수로서 같이 생도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도대 생활교육과장 보직을 맡고 있었을 때 소령에서 중령 진급심사에 들어간 해에 1개나 나올지 2개가 나올지 불분명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생도대장이셨던 최수용 제독님께두 개가 나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한 개가 나온다면 이번에는 이민효 교수가 먼저 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국외에서 학위를 하다보니 학교 보직을 별로 맡을 기회가 없었는데, 이 교수는 학교 보직을 두루 거친 저보다 더 유능한 장교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건의했습니다.
 
  올해에도 진급선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만약 저에게너는 국내에서 학위를 마치고 다양한 보직을 경험하면서 대령 진급을 원하느냐? 아니면 박사과정을 포함해서 교환교수까지 7년 동안 미국생활을 경험하면서 중령으로 머물기를 원하느냐?”라고 질문한다면 저는 주저함 없이 후자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학교의 교육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직을 통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에게도 장점이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이민효 교수는 저보다 장점이 더 많은 장교라 생각하기에 대령 진급의 적임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가 진급된다면 저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이 교수를 도와서 생도 교육 발전과 학교 발전을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 자리가 제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발휘하는데 더 좋은 위치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까지 해군으로부터 분에 넘치게 받아왔기 때문에 전역할 때까지 제가 받은 것을 다 내놓고 나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하고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의 위치에서 머무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1982년도에 옥포만에 첫 발은 디딘 후 2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저를 기억하는 선배님들보다는 저와 생도생활을 같이 한 후배들에게 지금까지 살아 온 모습 그대로 남은 해군생활을 마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남은 몇 년의 기간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시간들이 될 것입니다.  
 
  저는 교환교수 시절에 저의 좌우명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배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영어계급 표기가 해군만 다르기 때문에 미국사람들도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장교를 소위(O-1)부터 대장(O-10)까지 별도로 부르고 있습니다. 중령이 가운데(O-5)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그리 길지는 않지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삶(A not very long but impressive life)”이라는 좌우명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저의 삶, 그리고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해군에서의 삶에 지표가 될 모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이름에 대한 삼행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용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장이 되기 위해 해군사관학교를 선택했던 나
   재의 지위와 위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향기를 전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저는 해군장교로서 살아오면서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도 아직 약점이 많고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저의 삶의 일부분을 통해 저를 닮고 싶은 사람을 12명 정도 만들 수만 있다면 나름대로 보람있는 삶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미 해사에서 4명을 만들고 왔습니다. 이제 남은 기간 동안 한국에서 8명을 더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머물러야 할 작지만 큰 이유가 두 가지 더 있습니다. 하나는 이민효 교수 군번(90831)이 저의 군번(90832)보다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많은 책을 소화할 수 있는 연구실이 박물관장실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은 해군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교수로서의 길을 선택하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있는 삶이라고 믿어왔던 저의 인생관, 교육관이자 군인관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윈윈전략(Win-Win Strategy)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40기 두 사람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길은 이 교수가 대령으로 진급하고 저는 지금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후배 두 사람이 윈윈할 수 있도록 선배님의 마음을 모아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것이 저의 진심입니다. 저는 지금까지의 삶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전역할 때까지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저의 위치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아갈 것입니다. 선배님께서도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등록일 : 2015-03-26 01:36   |  수정일 : 2015-03-2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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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차윤 ㈜CPR 회장

차윤 ㈜ CPR 회장

● 해군사관학교 / 플로리다 대학/ 위싱턴(시애틀) 대학 졸업
● 해군사관학교 / 해군 대학 / 메릴랜드 대학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 통일원 / 홍보협회 / 문화공보부 / 해외공보관 (이집트, 일본) 근무
● 해외개발공사 / ㈜연합광고 / 미국영화수출협회 / ㈜ CPR 회장 (현재)

국제 정치, 지정학, 국제감각 등 분야에 걸쳐 약 50편의 학술 또는 비학술 논문을 국내외 미디어에 게재하였으며, 최근에는 「조선 Pub」에 약 200회에 걸쳐 온라인 칼럼을 게재한 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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