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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꿈 많은 80대 차윤의 글로벌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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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외국인의 한국관 (韓國觀)(2)

글 | 차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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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해 신경을 쓰고 살지 않으면 자칫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 있고 이제 고립되면 우리의 살길은 없다……라는 취지로 이 칼럼을 써오던 중 여러 가지 모양의 독자의 반응에 접할 수가 있었다. 국제화를 우리가 나아가야 할 필수적인 과정으로 느끼고 있는 대다수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일부 독자들은 외국인들의 다소 부정적인 한국관에 대해서 소위 ‘민족주의적 자존심’을 내세워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이들 주한 외국인들이 명사(名士)나 전문가의 권위 있는 견해가 아니라고 해서 무시 하거나 문제 삼을 필요조차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 객관적인 견해 받아들여야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다르다. 국내 영문일간지에 한국 또는 한국인관을 피력하는 평범한 외국인 기고가들이야 말로 우리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각별한 관심과 때론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견해를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어떤 동기였건 간에 그 많은 나라 중에서 하필이면 한국을 찾아와서 1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우리들과 함께 쉽지 않은 생활을 몸소 체험한 사람들이란 점과, 한국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깊었으면 비판 받을 것을 각오하고 글로 그들의 느낌을 용기 있게 공표 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그들의 관찰이나 소감이 다소 틀렸다고 하더라도 이를 여유 있게 받아들여 참고 또는 반성의 자료를 삼아야 할 시점에 우리가 와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필자가 장기간에 걸쳐 수집해온 주한 외국인들의 한국관을 살펴보면 다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본국에 돌아가기 싫다는 어느 퇴역군인의 애절한 고백이 있는가 하면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진실한 친구를 만나게 됐다는 미국인 변호사의 따스한 우정 이야기, 부지런하고 친절한 한국의 ‘아주머니’를 통해서 한국인의 ‘정’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한국생활이 무한이 즐겁다는 어느 비즈니스맨의 애틋한 사연, 시골 가는 기차 속에서 어느 할아버지로부터 삶은 계란을 건네 받아 먹으면서 본국에서는 도저히 경험하지 못하는 끈끈한 한국인의 인정을 맛보았다는 어느 유학생의 그림 같은 수기도 있었다. 그 밖에도 한글 예찬론, 가족제도 칭송론, 한국여성 예찬론, 심지어는 한국 음식 최고론 까지 그 내용도 다양하다. - 오래있을수록 친한파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한국체류기간과 대한국인 호감도(対韓國人 好感度)와의 상관관계이다. 물론 정확한 통계는 될 수 없지만, 필자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관이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외국인 대다수의 한국체류기간이 2년 이내로 비교적 짧은 기간인데 비하여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내용의 글들은 대체로 2년 이상 장기간 체류한 외국인들에 의해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5년 이상 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다시 비판적인 성향의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 자못 한국인과 공통의식에서 출발한 우려와 애정이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감지 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한국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까지 내놓는 글들을 대하게 될 때면 그 내용의 타당성이나 효율성 여부를 떠나서 대견스럽고 고맙게 여겨지기도 했다. - ‘그래도 한국이 좋은걸요!’ 코리아 타임즈에 게재된 바 있는 ‘Welcome Back, Korea’ 제하의 윌리암.베렛트 씨의 글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끝맺으려고 한다. “영어학원과의 1년 계약이 마감되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는 이 나라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내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한국에서 다 경험했기 때문이다. 도둑이 들어와서 많지 않은 내 살림 도구와 가전제품을 몽땅 다 가져갔다. 질 나쁜 보건직 공무원의 미움을 사서 억울하게 누명을 써야 했다. 생활환경은 열악했으며, 몇 번이고 금전적으로 배신당하고 그래서 실망하고, 소외 당하고 그리고 외국인 됨이 죄인 양 나는 고독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떠났다. “그런데 본국에 도착해서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한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사귄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벌써 미국 생활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가족, 친구, 고향의 거리, 빌딩, 나의 살던 집, 하다못해 가로수 까지도 예전에 본 그대로 하나도 변함없이 그대로 있지 않는가. 한국 같으면 거의 매일처럼 무언가가 달라져 가고 있겠지 생각하니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일부가 되고 싶어졌다. “결국 나는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이제 깨달았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것 모두가 한국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아와보니 놀랍게도 한국을 떠났던 친구들도 이미 다시 돌아와 있었다. 한국은 내게 진실한 우정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서로 도와주고 존중하며 곤경에 처했을 때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달려와 도와주는 순수한 우정을 이 나라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는 ‘잡초가 자라서 길을 못 찾게 되기 전에 친구 집에 자주 드나들지니라’ 라는 서양의 속담을 인용하면서 “참다운 우정이란 거리를 두지 않고 자주 만나고 접촉하면서 서로의 심성과 영혼이 동화되어가는 것이기에 여기에 인종이나 문화가 장벽이 될 수 없다”고 말을 맺었다.
등록일 : 2007-02-1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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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차윤 ㈜CPR 회장

차윤 ㈜ CPR 회장

● 해군사관학교 / 플로리다 대학/ 위싱턴(시애틀) 대학 졸업
● 해군사관학교 / 해군 대학 / 메릴랜드 대학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 통일원 / 홍보협회 / 문화공보부 / 해외공보관 (이집트, 일본) 근무
● 해외개발공사 / ㈜연합광고 / 미국영화수출협회 / ㈜ CPR 회장 (현재)

국제 정치, 지정학, 국제감각 등 분야에 걸쳐 약 50편의 학술 또는 비학술 논문을 국내외 미디어에 게재하였으며, 최근에는 「조선 Pub」에 약 200회에 걸쳐 온라인 칼럼을 게재한 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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