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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꿈 많은 80대 차윤의 글로벌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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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이런 사람도 있었나?

글 | 차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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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귀한 책 한 권이 나와있다. 책 제목은 ‘꿈꾸는 땅 끝’이다. 책 제목이 말해주듯 땅끝에서도 꿈꾸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자기만 꿈꾸는 게 아니라 꿈꿀 수 없는 사람들까지도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땅끝’이란 말이 내게는 두 가지 뜻으로 다가온다. 하나는 땅에서 사는 인간의 가장 밑바닥(Bottom) 또는 벼랑 끝을 말하고 있는 것 같고 또 하나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의 ‘땅끝’을 뜻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즉 사명을 말한다. 어느 경우던 간에 이 책은 ‘이 땅의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꾸며 사는 사람/사람들’의 이야기로 들려진다. 보통사람은 이 책에 나오는 여건 속에서는 꿈을 꿀 수 없다. 그런데 저자 조명숙은 계속 꿈을 꾼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물음에 “사랑하면 꿈 꿀 수 있다.”고 대답한다. 조명숙 선생을 아는 사람들이 그를 향해 “하늘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 책 내용 줄거리 1993년 일반 교사의 꿈을 품고 재학 중이던 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 3학년 학생시절, 잘못 걸려온 위급한 전화를 받고 산업재해를 당한 파키스탄 노동자의 통역을 돕다가 본격적인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 간사의 길에 나섰다. 산재를 당하고 몸과 마음에 상처를 안고 본국으로 돌아간 그들에게 보상의 길이 있음을 알리고자 7개월간 홀로 필리핀에 상주하기도 했다. 상담소 일을 하던 중, 중국에서 만난 탈북 동포들의 비극적 현실을 전해들은 후 외국인 노동자 사역을 내려놓고 탈북 동포들을 돕는 일로 사역의 방향을 전환한다. 동역자들과 더불어 목숨을 건 베트남 국경도강을 시도, 우여곡절 끝에 십 수명의 탈북 가족을 남으로 인도 했으며, 그때 겪은 고난의 그림자 때문에 심리적, 정신적 부채감에 시달린다. 그 후 한국땅에서 새터민 청소년을 섬기려는 꿈을 품고 두레자연고등학교 교사로써 현장 경험을 쌓았다가 6평 남짓 공간의 ‘자유터 학교’를 열었고 2005년부터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명학교’를 섬기고 있다. 그를 통해 알게 되는 새터민들의 삶은 가슴 저미고 아릿하지만 ‘친구를 위한 사랑과 주님의 힘을 의지한 믿음의 도전’으로 주님의 꿈을 좆아 감사하며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 • 참된 교육자 — 나는 내 어린 시절의 고난으로 인해 학생들의 얼굴을 보고 고난의 흔적과 그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 아무에게도 사랑 받고 있지 않다고 믿는 아이들과 계속적으로 주는 사랑을 시험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사랑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사랑할 뿐이다. 나는 자신이 살아보지도 않은 삶을 학생들에게 살라고 할 수 없다. — “저는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피곤하다가도 학교 아이들을 보면 피곤이 풀리고 집에서 아프다가도 학교에 오면 나아요. 자유터와 여명학교는 저의 쉼터이고 저의 문화활동이며 저의 사역지이고 제 인생의 십일조 입니다.” — “북한에서는 배고파 못살겠고, 중국에서는 잡혀갈까 봐 무서워 못살겠고, 남한에서는 몰라서 못살겠다”는 학생들의 고백을 듣고 안타까움과 사랑으로 만들어진 학교이다. 북한의 인민들에게는 식량을 원조하는 것이 긴급구호이고, 중국의 북한 동포들에게는 신변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긴급구호이며, 남한의 사람들에게는 알게 하는 것이 긴급구호이다. — 목숨을 걸고 중국을 누비며 찾고 찾았던 아이들인데, 나는 할 수 없었지만 주께서 직접 여기까지 보내주신 이 소중한 아이들을 게을리 돌볼 수는 없다. — “사역자는 위기에서는 목숨을 걸고 일하며, 일상에서는 인생을 걸고 일한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와준 고마운 아이들에게 오늘도 나의 인생을 걸련다.” — “내가 정말 우리 학생들을 이해하고 있는가? 라고 반문하며 낙심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낙심이 이기나 사랑이 이기나 한번 해보자. 죽기 살기로 사랑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다시 학생들 앞에서 서곤 한다.” — 말썽꾸러기들에게 큰 벌을 줄 때가 있는데, 내가 “너 임마, 혼나볼래?”하며 눈물을 쏙 빼게 혼내도 아이들은 예전에 내가 중국으로 탈북한 북한 동포들을 도왔으며 그들과 함께 국경을 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나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혼을 내도 혼나준다. 자신들의 아픔을 이해 못하는 남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마음 문을 열지 않지만, 나를 신뢰하며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 해주니 고마운 일이다. 지난날의 험한 경험이 내게는 귀한 무기가 된 것이다. • 실천하는 사랑 — 학교수업을 들으면서 중환자실 면회시간인 낮 12시와 저녁 6시에 맞춰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아침에 한남동에 가서 수업을 듣고, 12시 면회 시간에 맞춰 구로동 병원으로 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와 수업을 듣고, 6시 면회를 위해 다시 병원으로 갔다. 아르바이트가 있는 날에는 6시 면회 후에 삼성역 부근에 있는 가정집에서 중학생 과외를 했다. 그리고 과외가 끝나는 10시에 다시 병원으로 갔다. 이때는 면회시간도 끝난 터라 노만(과열된 기계가 폭발하여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는 파키스탄 노동자)을 볼 수 없었는데, 사실 그 시간에 다시 병원에 간 것은 노만을 돌보는 파키스탄 친구들을 보려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빵과 물로 끼니를 때우고 있던 그 친구들에게 저녁밥을 사주고, 의정부가는 마지막 전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새벽 1시였다. 하루하루 고단한 일과였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이 있었다. — 새벽 2시 핸드폰이 울린다. “받아, 말아? 오늘은 자야 되는데…….” 자유터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겨우 단잠에 든 순간인지라 나의 고민은 머리에서만 부질없이 메아리 쳤고, 벨 소리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내 손은 “오냐, 그래 무슨 일이니?”라고 말하는 내 입과 천생연분으로 한 몸에 잘 달려있었다. 어버이 날이 있는 가정의 달 5월과 연말연시는 우리 새터민 학생들에게는 괴로움과 그리움에 몸을 떠는 고통의 시간이며 나에게는 고난 주간이다. “선생님, 뭐하십니까?” 첫마디를 어떻게 꺼내야 할 지 고민된 인성이는 이렇게 말문을 연 듯하다. 나는 잠에서 덜 깬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인성이가 미안해 하지 않도록 둘러대며 말했다. “응……책 읽고 있었어.” “선생님, 주무셨습니까? 선생님께는 죄송한데요, 정말 미치겠습니다. 어버이 날은 왜 만들어서 사람 속을 뒤집어 놓습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람들과 저처럼 불효한 자식들, 제가 탈북했기 때문에 고초를 겪으실 부모님께 불효한 자식들은 속이 썩어져라 속상하게시리……” 인성이 아버지는 인성이를 구하다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북한에서 큰형과 고생을 하며 사시며, 인성이는 8년 전에 홀로 탈북한 뒤 줄곧 외톨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옆에서 뒤척이는 남편에게도 미안했고 며칠째 반복되는 일로 인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냉담한 어조로 물었다. “술 마셨니?” “네, 술 좀 했습니다. 그래야 잠시라도 잊을 수 있으니까요.” “잊기는 왜 잊어?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야지. 어머니가 고초를 당하고 사시면서도 너 하나 건강하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계시지 않겠어? 그리고 네가 어머니의 희망이지 않겠냐? 그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지, 술은 왜 마시냐? 그런다고 달라지냐? 눈 똑바로 뜨고 견뎌! 비겁하게 술로 숨지 말고 떳떳하게 견뎌, 임마!” “선생님, 죽을 것 같아요.” “죽기는 임마, 절대 안 죽어. 어떻게 왔는데 여기서 이깐 일로 죽어? 엄살 부리지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뱉은 말을 주워담고 싶어졌다. 새벽에 잠을 깨운 전화로 힘이 든다고 아파서 절규할 곳을 찾아 고민 끝에 전화하는 아이한테 짜증스럽게 퍼부어 댄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미안한 마음에 전화기에 귀를 기울이는데 인성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흑흑.. 힘들어서 못살겠어요. 이젠 막 살래요.” “그래……막이라도 살아라. 죽는다 하지 말고 살아. 어떻게든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단다. 인성아, 기운 내거라, 아가” 대답 없음에 마음이 불안해진 나는, 죄책감까지 밀려와 민망해지고 있었다. “……선생님, 혼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일 일찍 갈게요.” 한바탕 감정이 폭발되고 정화된 후에 인성이는 말을 이었다. “선생님, 그런데 이런 놈 전화는 왜 받아줍니까?” “야, 너는 내가 전화하면 안 받아줄래?” “하하하, 저는 안받습니다.” “웃지마! 너 장가가면 내가 매일 새벽에 전화해 복수할 테니.. 그때도 웃나 보자.” “하하하, 장가가는 날 전화번호 바꿀 겁니다.” 인성이는 크게 웃더니 북한 형제들이 가장 많이 쓰는 저녁인사인 “선생님 좋은 밤 되세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 결혼식 순서에 따라 주례자가 “잘 키워준 양가 부모님께 큰절”이라고 하여 나는 순간 당황하였다. 나를 보며 절을 하는 신랑신부와 눈이 마주쳤다. “이렇게 좋은 날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마음 아파요” 라고 울먹였던 지연이의 그렁그렁한 눈을 바라보면서, 함께하지 못한 지연이의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지연이의 가엾은 마음에 나도 눈물이 나왔다. 이렇게 우리 자유터의 첫 결혼식은 내게 당황스러움과 안쓰러운 눈물로 기억된다. — 하나님께서 내게 두레자연 고등학교의 ‘중국이동수업’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사랑과 시스템이 부딪히면 결국 사랑이 승리한다”는 경험을 하게 하셨고 그 이후로 제도를 핑계 삼아 스스로의 노력과 사랑을 중단하는 일을 할 수 없도록 하셨다. — “선생님, 선생님들은 왜 이런 일을 하세요? 처음에 저는 선생님들이 안기부 요원인줄 알았어요. 그래서 잡힐 염려도 없을 터이고 잡혀도 알아서 다 풀려 나겠지 이렇게 생각했지요, 그런데 함께 잡히고 고초를 겪고 힘들게 일하시는 것을 보니깐 선생님들도 우리 같은 인민(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다 죽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좋은지 알게 되었지. 그래서 그 사랑이 너무 감격스럽고 좋아서, 너희들에게 그 사랑을 알리고 싶어서 이런 일을 하는 거야. 너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리고 싶어서……” • 진짜 신앙 — 내가 정훈에게 “남한에서 공부 실컷 해서 좋으냐?”라고 물으니 “공부 실컷 해서 좋지만요, 더 좋은 것은 하나님을 마음 놓고 알아가니까 더 좋아요,”라고 해서 나는 더 기뻤다. — “그러니까 예수님이 소망이라는 거야. 인간적으로 보면 북한 사람은 남한사람과 비교해 뒤쳐지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성령으로 하나가 된다면 달라. 그게 가장 근본적인 대안이잖니? 예수님으로 통일되면 북한사람들의 절망과 소외감이 극복 될 거야. — “중국에서 북한 형제들을 도우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하여 오늘 살려주시면 새터민을 가르치는 교사로 통일의 보이지 않는 일꾼이 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서원이 저의 꿈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면 꿈 꿀 수 있고 꿈이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저는 할 수 없지만 제게 꿈꾸게 하신 분이 모든 것을 이룰 것입니다. — 나는 좀 더 준비한 다음에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망설이는 마음도 있었으나, 내 삶을 이끄시는 크고 보이지 않는 손은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시려고 이미 운행하고 계셨다. — 14년 전, 겁 많고 똑똑하지 못하고 몸도 약하고 가난한 어린 여자를 하나님께서 하나님 역사의 도구로 쓰셨고, 나는 나 자신을 의지 할 수 없기에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십자가를 지고 간다며 안타깝고 대단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따랐을 때 주께서는 자리를 바꿔 내가 십자가를 타고 고난을 쉽게 넘도록 해주셨다. 그 경험들은 내 삶의 원동력이자 행복한 사역의 비밀이 되었다. 이만 끝을 내야겠다. 하도 주옥 같은 내용의 글이 이 책 속에 많이 있어서 자꾸 추려내다 보니 책 한 권을 다 베끼게 될 것 같아 그만 쓰려고 한다. 조명숙 선생의 교육관, 희생, 사랑, 신앙 외에도 그의 북한관과 통일론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지면상 하지 못해 아쉽다. 나는 조명숙 선생을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이야 말로 한국의 정치하는 사람들. 교육을 논하는 사람들. 사회 사업하는 사람들, 북한을 논하고 통일을 논하는 사람들, 말만하고 실천 없는 종교지도자들, 돈이 있어도 쓸 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꿈다운 꿈을 꾸고 싶어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되어 꼭 읽도록 권유한다. 이런 위대한 여성이 한국에서 꿈꾸고 일하는 한 이 나라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
등록일 : 2006-12-2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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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차윤 ㈜CPR 회장

차윤 ㈜ CPR 회장

● 해군사관학교 / 플로리다 대학/ 위싱턴(시애틀) 대학 졸업
● 해군사관학교 / 해군 대학 / 메릴랜드 대학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 통일원 / 홍보협회 / 문화공보부 / 해외공보관 (이집트, 일본) 근무
● 해외개발공사 / ㈜연합광고 / 미국영화수출협회 / ㈜ CPR 회장 (현재)

국제 정치, 지정학, 국제감각 등 분야에 걸쳐 약 50편의 학술 또는 비학술 논문을 국내외 미디어에 게재하였으며, 최근에는 「조선 Pub」에 약 200회에 걸쳐 온라인 칼럼을 게재한 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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