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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꿈 많은 80대 차윤의 글로벌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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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중 국적

글 | 차윤
필자의 다른 기사

최연홍


최연홍 교수(시인, 영문학자, 언론인, 정치학자, 환경학자,’문필대사’)가 미국 워싱턴에 거주하면서
최근에 돌아가는 한국사정을 보다 못해 단장의 심정으로 쓴 이 글을 읽고, 공감하는 바가 큼으로 본 칼럼을 통하여 소개합니다.






2중 국적

 

김종훈씨가 박근혜 정부의 미래 과학 기술부의 수장으로 가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에 찬 물을 퍼붓는 일부 정치인의 언행이 아직 한국을 아직 세계화 안된 닫혀진 나라로 보이게 한다. 한국의 민족주의 감정이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부모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가 중고등학교를 최소임금을 받으며 공부한 입지전적인 한국인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2 중국적을 취할 수 없게 만들어 그가 미국국적을 버리고 한국국적을 재취득하게 했다니 아직 한국의 민족주의는 아프리카의 부족 국가적 민족주의에 사로 잡혀 있는가.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나라에서 살다가 간다. 그러나 그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세상은 변했고,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자기 집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다국적기업이란 말이 이제 일상용어가 되어있다. 웬만한 기업이면 다국적기업이다. 한국의 삼성, 현대, LG 가 한국의 대표적 다국적 기업이다. 중소기업도 다국적화 되어가고 있다. 세계화가 국경의 의미를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2중국적의 허용이 논의되고 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28년을 미국에서 살다가 병든 어머니와 몇 년을 함께 하기 위하여 미국국적을 버리고 한국국적으로 돌아갔다. 서울시립대가 다른 선택을 주지 않았다. 그것이 국가공무원법이라고 말했다. 1999년 필자는 그 것을 받아드렸고, 지금 필자는 그에 따른 고통을 받고 있다. 이 글은 2중국적을 허용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씌어지고 있다. 필자와 같은 희생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정부가 2중국적을 허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는 1968년 유학생으로 미국에 와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갈 수 없어 (반체제문필인)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살다가 1996년 초빙교수로 서울시립대 대학원으로 갔다. 1999년 전임교수가 되었을 때 필자는 미국국적을 버리고 한국국적을 회복하는 조건을 충족해야만 했다. 서울의 미국대사관에서는 필자의 정직한 진술에강요에 의한 미국국적포기는 받아드릴 수 없다는 판결을 통고해왔다. 그래서 필자는소설적이유를 만들어 다시 써서 미 대사관에 제출했고, 그 결과 미국국적을어렵게상실했고, 한국국적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2006년 은퇴할 때까지 서울시립대에서 가르칠 수 있었다. 2004 3월 어머니는 유명을 달리했다.

 

필자는 2006년 미국으로 돌아와 미국국적을 갖고 있는 아내의 소청으로 필자의 영주권을 신청했다. 미국 연방수사국의 신원조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의 고통이 만만치 않다.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이 이방인의 신원조회를 오래 끌고 가며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다. 20여 년 세월을 미국의 모범시민으로 살았었지만 지금 미국정부는 필자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듯하다.

 

영주권을 얻을 때까지 필자는 28년 부어 놓았던 사회보장혜택을 받을 수 없고, 병이 나도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미국국적을 갖고 있으면 아프리카 밀림 속에 있어도 사회보장혜택이 주어지지만 미국국적을 포기한 필자의 죄값이 이렇게 크다고 말한다. 어머니와 7년을 함께 살기 위하여 필자는 죄값을 달게 지불하고 있다. 그때 서울시립대가 필자에게 미국국적을 포기하지 않게 배려했더라면 치르지 않아도 될 죄값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교수가 되기 위하여 미국국적을 버리고 났더니 외국학자들이 한국의 국립대학교수로 채용되는 소식을 일간지에서 읽으며 한국의 불공정거래를 탓했지만 그때 상황에서 필자는 선택이 없었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당시의 한국 법은, 지금도 전근대적인 민족주의 문화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에도 권력과 가까운 사람들은 정부공사의 고위직에 있으면서 미국국적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법의 한계 안에서 산 필자의 소시민적인 무력함을 탓할 수 밖에.

 

이민1세는 어쩔 수 없이 조국과 선택한 나라를 방황하며 살수밖에 없다. 조국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청년시절을 보내고, 2년의 군복무를 끝내고 외국에 고학생으로 나와 조국의 부모 생계비를 다달이 보냈던 아들이 조국에 가서 일할 수 있었던 기회는 오직 미국국적포기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외국으로 나와 영주권을 기다리는처량한 신세가 되어 영주권을 다시 받을 때까지 외국여행도 불가능한영어의 몸이 되었으니 한국정부는 필자와 같은 이들에게 선처를 내리기를 기대한다. 미국국적박탈이 한국에 돌아가 일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아니었으면 한다.

 

군복무를 피하기 위해, 한국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 외국국적을 취득하는 이들에게 선처를 베풀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수많은 선의의 사람들이 불필요한 손해를 보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재외동포의 2중국적 논의에 한국인이 깊이 사려해야 할 사실은 이민1세들은 조국을 떠나서 살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과 시인은 모국어를 떠나서 살수 없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이해와 동정이다. 이민 2, 3세들은 이미 그들이 태어난 나라에 귀속하게 된다. 지나친 민족주의적 감정이입은 변화하는 세상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조국은 김종훈씨의 귀국을 환영하기 바란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러 귀국하는 그에게 몰상식한 부족주의적 편가르기를 더 이상 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의 인재를 찾아서 오대양 육대주를 찾아 나서기 바란다. 김종훈씨 같은 인재를 찾아서라면.

 


<필자소개>

최연홍씨는 연세대, 인디아나 대학에서 행정학, 정치학 공부, 정치학 박사를 획득했음. 위스칸신, 버지니아, 미시시피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국방장관실 환경정책 보좌관으로 일하다가 귀국, 서울시립대에서 지난 1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음. 그는 은퇴 다시 미국에 와서 살고 있으며 지금은 시인으로, 문필가로 한평생 계획으로 있다. 그는 ROTC 1 육군 소위로 2 국민의 의무를 한바 있음.

등록일 : 2013-02-2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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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차윤 ㈜CPR 회장

차윤 ㈜ CPR 회장

● 해군사관학교 / 플로리다 대학/ 위싱턴(시애틀) 대학 졸업
● 해군사관학교 / 해군 대학 / 메릴랜드 대학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 통일원 / 홍보협회 / 문화공보부 / 해외공보관 (이집트, 일본) 근무
● 해외개발공사 / ㈜연합광고 / 미국영화수출협회 / ㈜ CPR 회장 (현재)

국제 정치, 지정학, 국제감각 등 분야에 걸쳐 약 50편의 학술 또는 비학술 논문을 국내외 미디어에 게재하였으며, 최근에는 「조선 Pub」에 약 200회에 걸쳐 온라인 칼럼을 게재한 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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