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시리즈 | 송경태의 희망제조기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만년설 크레바스에 빠졌을 때 문득 든 생각

글 |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
필자의 다른 기사

▲ ‘남극 마라톤 대회’에서 고글과 방풍재킷으로 무장한 선수들이 눈밭을 달리고 있다. / 이무웅씨 제공
“송 선생님, 조심하세요, 눈 속에 파묻힌 함정에 빠지면 황천길이예요.”
“어이쿠, 무서워라. 다리가 후들거려 더 이상 못가겠어요.”

남극마라톤대회의 만년설로 뒤덮인 레이스를 긴장과 초조와 공포 속에서 달리면서 안내도우미 유지성 팀장과 나눈 대화다. 이곳은 다른 사막마라톤과는 달리 생명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공포가 있다.

“유 팀장, 유 팀장,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갑자기 발밑이 쑥 빠지면서 순간 당황한 나는 사람 살려달라며 소리를 질렀다.

앞서 가던 유 팀장이 되돌아왔다.
“괜찮으세요? 보니까 크레바스에 빠질 때 무릎이 꺾였네요. 위험한 함정은 아니에요.”

“아아, 그래요? 저는 엄청 놀랐어요. 작은 함정이라 천만다행이에요. 남극에는 2000 미터가 넘는 함정도 있대요.”

“발이 쑥 꺼져도 우리 너무 놀라지 말자고요. 우리가 어디 함정에 한두 번 빠져봤어요? 앞으로는 또 얼마나 더 빠져야할지, 나 원 참.”

허벅지까지 빠지는 설원을 헤치고 달리다 보면 발밑에 전해 오는 촉감이 참 다양하다. 뾰쪽한 송곳이 금방이라도 신발을 뚫어버릴 기세인가 하면, 사랑하는 연인의 젖가슴마냥 포근하고 푹신한 곳도 있고, 찔러도 한 치도 들어가지 않을 차돌같이 단단한 빙하도 있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천리 길 절벽, 즉 악마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함정도 부지기수다.

우리들은 상어의 이빨처럼 날카롭고 뾰쪽한 빙하돌기는 이빨을 꽉 물고 아픔을 감내하며 달리고, 애인 젖가슴 같이 푹신한 곳은 안기듯이 마음 놓고 달리고, 대리석처럼 단단한 빙판은 족관절, 슬관절, 고관절에 전해오는 단단한 통증을 인내하며 달린다.

그러나 눈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함정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말 그대로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송 선생님, 혹시 함정이 있을 수 있으니 잘 보고 오세요.”
“눈 속에 파묻힌 함정을 무슨 수로 찾아요?”
“송장으로 귀국할 수는 없잖아요. 아무튼 조심해야 해요.”

“제기랄, 유격훈련장도 아니고 왜 우리를 골탕 먹이는 거야.”
“송 선생님, 기분에 함정이 있을 것 같아요. 조심히 오세요.”
“함정을 못 찾는 것은 눈 뜬 유 팀장이나 장님인 나나 똑같구먼. 하하하.”

나는 우리 인생도 만년설에 파묻힌 함정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삶이란 크고 작은 함정들이 숨겨져 있어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오리무중의 설원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저앉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간 끝없이 쏟아지는 우울과 권태의 눈발 속에 온몸이 푹 파묻힌 무덤 같은 인생이 되는 것이다.

안개에 가려진 불확실한 길, 눈 속에 파묻힌 함정일지라도 두려워 말고 전진해야 한다.

만년설에 파묻힌 크레바스 같은 인생, 안개 속에 가려진 우리네 삶이지만 개척해야 할 운명이 아닌가.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송 선생님, 괜찮으세요?”
“으응, 넘어질 때 발목이 꺾였을 뿐 괜찮아요.”
“천만 다행이에요.”

“우리 인생이, 우리 삶이 이런 것 아니겠어요? 하하하.”
 
등록일 : 2015-01-28 05:57   |  수정일 : 2015-01-28 10:34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니스트 사진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

달리는 희망제조기, 사회복지학 박사 송경태
장애인 세계최초 세계 4대 극한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
국가유공자, 시인, 수필가, 대한민국 신지식인, 우석대 겸임교수

저서 : 신의 숨결 사하라 2011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시집 삼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 2008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수필집 나는 희망을 꿈꾸지 않는다 2009
희망은 빛보다 눈부시다 2009, 희망제작소

그랜드캐년 울트라 271Km, Kbs-1tv 인간극장 5 부작 ‘그랜드캐년의 두 남자’ 방영, (2012 년 10월 22일-26일)
남극마라톤, Mbc-tv 신년특집 다큐, ‘빛을 향해 달리다’ 방영 2009 년 1월 10일)
사하라사막, Kbs-1tv 토요스페셜 ‘암흑속의 레이스 250Km ’ 방영 2005년 11월 5일)
아타카마사막, Sbs-tv 휴먼다큐, ‘아들의 눈으로 사막을 달리다’ 방영 2008년 5월 10일)
송경태 원작, ‘오! 아타카마’연재만화 주소 : blog.naver.com/janghanburoo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자유지성광장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