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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송경태의 희망제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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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블리자드 만나 얻은 교훈

글 |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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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마라톤대회에서 고글과 방풍재킷으로 무장한 선수들이 눈밭을 달리고 있다. / 이무웅씨 제공
몇 년 전 남극 마라톤대회에 참가했을 때, 부산MBC의 박태규 기자가 취재를 위해 나와 동행했었다. 박 기자와 나는 춥고 긴 레이스를 나란히 달리고 있었는데, 문득 박 기자가 걱정스런 말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형님, 서쪽하늘에 시꺼먼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어요. 기분이 이상한데요.”
“뭐라고? 먹구름이 몰려온다고?”
“예, 형님.”
“흠, 비가 곧 내리겠구먼.”
 
잠시 후 내가 다시 물었다.
“박 기자, 지금도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어?”
“예, 형님.”
“눈보라가 거센 걸 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을 것 같네.”
 
긴장된 어조로 유 팀장이 다급하게 덧붙였다.
“송 선생님,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드디어 거센 폭풍과 눈보라가 우리를 덮쳤다. 몸을 가눌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바람 한 점, 눈 한 송이 피할 수 없는 만년설로 뒤덮인 허허 벌판에서 우리는 긴장과 공포 속에서도 평정심을 찾기 위해 온갖 묘약을 짜내고 있었다.
“체크포인트까지 강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눈 속에 파묻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가 있어요.”
“몸도 가눌 수 없는데 어떻게 전진하나?”
“살기 위해서는 가야해요.”
 
거북이걸음을 할 때마다 머리위에 쌓인 눈덩이들이 앞으로 툭툭 떨어졌다.
“송 선생님, 스키고글에 눈이 쌓여 앞을 볼 수가 없어요. 어디가 어딘지 알아야 갈 텐데 큰일이에요.”
 
“유 팀장, 내가 앞장설까? 난 앞을 볼 수가 없으니 스키고글에 눈이 잔뜩 쌓여도 치울 필요가 없잖아요.”
“하하하.”
나의 유머가 잠시나마 긴장과 초조와 공포감을 잊게 해줄 수 있었다.
 
“모두 조디악을 타세요. 오늘 경기는 중단합니다.”
주최 측에서 다급하게 한마디 하자 좀비 같았던 선수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울려댔다.
“휴우 살았다.”
 
우리는 서둘러 1.700톤 탐험선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도 잠시 뿐 요동치는 선실에서 우리는 또다시 고통 속을 헤매야 했다.
“속이 울렁거려 죽겠어요.”
“저는 잠자다 침대에서 세 번 떨어졌어요.”
 
룸메이트 유 팀장과 나는 흔들리는 선실 안에서 괴로움을 토로했다. 나는 속이 거북하여 3층 간판 위로 나가려는데 어찌나 배가 요동치던지 서 있기 조차 힘들었다. 꼭 서울대공원의 바이킹을 타는 느낌이었다.
 
유 팀장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송 선생님, 창문으로 바라보니 눈보라와 함께 파도가 3층 간판 위까지 험하게 치고 있어요. 힘들더라도 선실에서 쉬는 게 안전할 것 같아요.”
 
나는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방심한 사이에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선실 바닥은 제 위치를 잃은 물건들이 어지럽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제기랄, 바닥이 엉망이군. 꼭 피난민촌 같은데.”
배가 요동칠 때마다 선실바닥에 펼쳐놓은 장비들이 이리 저리 쏠려가곤 했다.
 
나는 잠도 한숨 이루지 못하고 선실화장실에 틀어 박혀 내장 속을 비우는 사투를 벌여야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세상을 금방이라도 집어 삼킬 태세였던 성난 파도는 어느새 고요해져 있었다.
“휴우, 살았다.”
“형님, 전 공중부양 하느라 참 힘들었어요.”
박 기자도 한숨을 내쉬었다.
“박 기자도 멀미했어?”
“그럼요. 선수들의 98% 이상이 배 멀미로 고통 받았대요. 탐험선 주방장도 멀미를 했다니 말 다했죠, 뭐.”
 
우리의 삶도 행복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불리자드처럼 혹독한 시련이 찾아온다. 그 혹독한 시련을 피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준비된 자, 극복하려는 자에게는 큰 문제될 게 없다. 왜냐하면 인생의 불리자드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는 인식 자체는 면역주사처럼 마음을 단단하게 무장시켜 주기 때문이다.
 
“형님, 불리자드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3미터 높이의 폭설이 쌓였어요. 한 번 신나게 달려보지 않으실래요?”
“좋지. 오늘은 내가 스타트를 끊겠네.”
“형님, 화이팅!”
 
외국선수 모두는 나의 스타트를 위해 멋진 박수와 파이팅을 외쳤다.
“미스터 케이티, 화이팅!”
 
등록일 : 2015-01-23 01:25   |  수정일 : 2015-01-2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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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

달리는 희망제조기, 사회복지학 박사 송경태
장애인 세계최초 세계 4대 극한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
국가유공자, 시인, 수필가, 대한민국 신지식인, 우석대 겸임교수

저서 : 신의 숨결 사하라 2011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시집 삼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 2008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수필집 나는 희망을 꿈꾸지 않는다 2009
희망은 빛보다 눈부시다 2009, 희망제작소

그랜드캐년 울트라 271Km, Kbs-1tv 인간극장 5 부작 ‘그랜드캐년의 두 남자’ 방영, (2012 년 10월 22일-26일)
남극마라톤, Mbc-tv 신년특집 다큐, ‘빛을 향해 달리다’ 방영 2009 년 1월 10일)
사하라사막, Kbs-1tv 토요스페셜 ‘암흑속의 레이스 250Km ’ 방영 2005년 11월 5일)
아타카마사막, Sbs-tv 휴먼다큐, ‘아들의 눈으로 사막을 달리다’ 방영 2008년 5월 10일)
송경태 원작, ‘오! 아타카마’연재만화 주소 : blog.naver.com/janghanbur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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