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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진기자의 별별 이슈 따라잡기

여당 '전략공천'의 역사...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6년

⊙ 1990년대 초반까지 여당 공천은 표면상 ‘당청협의’, 사실상 청와대 주도
⊙ 공천심사위원장은 대통령 또는 당대표의 메신저 역할?
⊙ 16대 전까지 외부 인사 없는 공천심사위원회가 밀실공천, 계파공천… 때때로 표적공천 등
사실상 전략공천
⊙ ‘전략공천’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1996년 15대 총선부터… 18대에 당헌·당규에 전략공천 명시
⊙ 전략공천은 신인 발굴 및 필승전략으로 효과적이지만 계파갈등 우려도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2015-12-04 14:54

1996년 15대 총선 직후 열린 신한국당 고위당직자회의에서 김윤환 대표 등 당직자들이 선거 관련 청와대에 보고할 내용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20대 총선(2016년 4월 11일)을 앞두고 공천 룰(Rule)에 대해 논란이 뜨겁다. 전략공천, 오픈프라이머리, 우선추천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숙의(熟議) 선거인단 등 일반인에겐 다소 낯선 단어들이 횡행하는 가운데 이 논란의 중심은 총선 공천권을 누가 강력하게 행사할 것이냐다.
 
  정당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공천이다. 정당이 공천권을 갖는 것이 정당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미국 시카고학파의 창시자인 정치학자 해럴드 라스웰은 “정당은 선거에서 후보자를 내세우는 집단”이라고 정의했고, 이탈리아의 저명한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정당은 선거에 후보자를 내세우고 선거를 통해 후보자를 앉힐 수 있는 모든 정치집단”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작금의 여권 상황은 이 같은 정의와 사뭇 다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일반인 여론조사를 통해 공천하고, 당 지도부가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청와대와 대통령을 호위하는 여당 내 이른바 ‘친박’ 세력은 “총선 승리를 위해 전략공천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천권을 놓고 이처럼 여당과 청와대가 극렬하게 대립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전략공천이 문제가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월간조선》은 새누리당 전략공천의 역사를 전·현직 정치권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분석했다.
 
 
  청와대가 공천 진두지휘
 
  한국의 정당이 현재의 구조를 갖게 된 시초는 1963년 김종필 전 총리가 민주공화당을 만들면서부터다. 김종필 전 총리는 ‘공천권은 당 총재에게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당헌(黨憲)을 만들었고, 당 지도부를 조직하고 사무처 당직자 공채를 시작하는 등 현재의 여당 구조를 만들었다.
 
  지금도 공천의 실무 과정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 사무처가 공천신청서를 소정의 당비와 함께 접수하고, 당 지도부를 포함해 다수의 인사로 구성한 공천심사위원회가 서류심사와 면접을 하며 공천심사위원들의 투표로 최종 결정을 내린다. 전략 지역 최종 결정과 비례대표 순번 결정도 공천심사위원회의 일이다. 물론 청와대나 계파 보스 등의 영향력 행사가 있을 수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1965년 공화당 사무처 공채 1기로 당 생활을 시작해 1981년부터 5선(11·12·13·15·16대)에 걸쳐 국회의원을 지냈고 한나라당 원내총무를 역임한 정창화 전 의원은 “80년대만 해도 청와대와 당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81년 11대 국회에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입성 후 12대부터는 경북 의성에서 출마해 지역구 의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당 정책위의장 겸 공천심사위원을 맡은 바 있다.
 
  그는 80년대 공천 과정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15대 총선까지는 공천 과정에 청와대의 입김이 강력했음을 인정했다.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이 당 총재로서 공천권을 가졌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대통령의 공천권이 막강했던 것이다. 심지어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공천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을 정도였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자. 《동아일보》는 〈청와대, 與 공천 진두지휘(1996.1.9)〉 제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었다.
 
  〈물론 신한국당의 공천작업은 당에서 실사 등 실무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이 신한국당의 총재인 만큼 여당의 공천작업에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공천작업은 주로 물갈이 대상 선정과 영입인사 접촉이다. (중략) 이원종 정무수석비서관은 여론조사 등을 토대로 매일 강삼재 사무총장 등 신한국당 고위관계자들과 의견을 조율, 바로 대통령에 보고한다. 특히 유력인사 영입과 관련해서는 김 대통령이 대상인사를 직접 만나는 등 최일선에서 공천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공들여 영입한 사람이 이회창(李會昌) 전 국무총리다.
 
 
  정치신인 등용문이 된 15대 총선
 
김영삼 대통령은 15대 총선에서 공천권을 휘둘렀지만 이후 본인이 발탁한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로부터 탈당 요구를 받게 된다.
  실제로 전략공천이라는 단어가 언론에 등장한 것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다. 또 여야가 ‘전략공천’을 당헌·당규에 명시한 것은 2004년 17대 총선 직전이다. 그러나 국내 정치학자들은 전략공천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시초로 15대 공천을 꼽는다.
 
  1992년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여당 민자당은 1996년 2월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꿔 재창당하고 1996년 총선체제에 돌입했다. 이때 김영삼 대통령은 수도권 유권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던 이회창 전 국무총리와 박찬종(朴燦鍾) 변호사를 영입하고 이른바 운동권 출신인 김문수, 이재오, 심재철, 이성헌, 김영춘 등을 영입했다. 당은 정치신인인 이들을 수도권 지역구에 공천한다.
 
  신한국당은 서울 47개 지역구에서 24곳을 승리하는 등 선전했지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신한국당은 무소속 및 야당 의원들을 여당으로 끌어들여 곧 과반수 달성에 성공했다. 이회창 전 총리가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했고 김무성 대표와 홍준표 경남도지사,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이때 처음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등 현재 정가에서 활약 중인 정치인 상당수가 15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인물들이다.
 
  15대 공천 당시 공천심사위원회 실무를 담당했던 당 사무처 고위관계자의 얘기다.
 
  “15대는 과반수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다양한 인재를 영입하고 당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는 크게 성공한 총선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의 영입작전은 물론 당에서도 전문가와 청년 정치인 영입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지금 활동 중인 유명 정치인들이 당시 국회에 대거 입성했는데 그런 공천개혁이 아니었다면 정치권에 들어오기 쉽지 않았을 사람들이죠. 15대 총선을 계기로 원래 정치인이 아닌 전문직 출신이나 젊은 사람들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또 공천심사위원장이었던 강삼재 사무총장이 청와대와 민첩하게 공천작업 내용을 조율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더 효과적이고 빠른 공천을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당시 전략공천이 당의 전략공천이 아닌 청와대의 전략공천으로, 강삼재 공천심사위원장이 위원장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청와대 ‘메신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김현철씨의 공천 개입을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민자당의 색깔을 지우고 계파갈등에 좌우되지 않는 정당을 만들기 위해 물갈이와 인재 영입으로 전략공천을 해야 한다는 것은 원래 김현철씨의 아이디어였어요. 퇴임 후를 위해 민정계가 권력을 잡고 있는 계파구도를 깨려고 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결국 계파를 깬다는 것은 정당정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 아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16대에 최초로 공천심사위원에 외부 인사 영입했지만
 
  한나라당은 1997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고 야당이 된 한나라당은 총선 승리를 위해 사활을 걸게 된다. 이회창 총재는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더 이상 공천에 관여할 자당(自黨) 대통령이 없는 기회를 맞아 새로운 공천 방식을 시도한다.
 
  당시 공천심사위원이었던 정창화 전 의원의 얘기다. “16대(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정당 사상 처음으로 공천심사위원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계파를 초월해 인물 위주로 공천하고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이회창 총재의 뜻이 있었던 것이죠. 공천권은 정당의 고유권한이라는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이회창 총재의 뜻이 워낙 강력했습니다.”
 
  이때 한나라당은 홍성우 변호사를 공동공천심사위원장으로, 이연숙 전 정무2장관을 공천심사위원으로 영입하고 당3역(하순봉 사무총장, 이부영 원내총무, 정창화 정책위의장), 양정규 부총재를 포함해 6인으로 공천심사위원회를 꾸린다.
 
  당시 원내총무 이부영(李富榮) 전 의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2000년 연초에 미국 방문 일정이 있었는데 이회창 총재가 몇 번이나 전화해 빨리 귀국해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16대에서 제1당을 지켜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니 공천 과정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회창 총재의 의도를 반영해 홍성우 변호사를 영입하고 윤여준 전 여의도연구소장을 참여토록 했습니다. 김윤환(金潤煥), 이기택(李基澤)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파란을 불러일으켰지요. 그 결과 16대 총선은 한나라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개혁공천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나 한나라당의 16대 공천 역시 외부 인사와 함께하는 공천개혁이라기보다는 제왕적 총재의 공천권 행사 현상이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권주자인 이회창 총재에게 반기를 들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월간조선》 2000년 3월호는 당시의 한나라당 공천 상황에 대해 〈李총재 직계인 윤여준(尹汝雋)·금종래(琴鍾來)·정태윤(鄭泰允) 라인이 핵심〉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기사 내용의 일부다.
 
  〈李총재는 명실상부한 당의 공천권자이다. 내로라하는 당내 중진들도 공천기간 동안 李총재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李총재는 공천의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겼다. 야당 총재로서 처음 하는 공천권 행사를 성공리에 해내기 위해 일반 당무를 사무총장에게 맡겨놓고 호텔을 전전하며 사람들을 만났다.〉
 
 
  17대, 경선제 도입하고 중진의원 숙청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하에서 김문수 의원이 공천심사위원장을 맡는다. 당시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빠져 있던 한나라당은 공천개혁을 선언했고, 경선제도를 도입했다. 박 비대위원장 지휘하에 혁신공천과 전략공천을 필두로 중진의원을 이른바 ‘숙청’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최병렬 대표, 서청원 전 대표, 박종웅 의원 등 중진의원들이 대거 탈락했다. 또 혁신공천을 계기로 전국구 의원으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 새로운 인물이 대거 입성하기도 했다.
 
  김문수 전 공심위원장의 측근으로 당시 공심위 업무를 도왔던 한 인사는 “그전까지만 해도 출마 희망자들이 공천헌금이나 특별당비 명목으로 금전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17대 당시에는 비대위원장과 공심위원장이 함께 청렴하고 공정한 공천을 하겠다는 의지가 지나칠 정도로 막강해서 그때 공천헌금이 상당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 년간 여당 생활을 해오면서 당이 공천개혁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수년에 걸친 야당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개혁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당직자는 “20여 년간 당에 몸담으면서 공천 과정을 계속 봐왔지만 17대가 그나마 사천(私薦) 논란이 가장 덜하고 진정한 개혁을 위해 노력했던 공천이었다”며 “공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위치인 박근혜 비대위원장, 김문수 공심위원장, 이회창 전 총재 모두 지나친 욕심을 내지 않고 적절한 선에서 타협함으로써 큰 무리없는 공천을 마칠 수 있었고 나경원 의원 등 새로운 인물들이 입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정권 되찾은 18대, 또다시 공천권은 대통령의 손으로
 
청와대와 여당이 총선 룰을 놓고 대립하는 가운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미국 방문에 나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18대 총선에서는 안강민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다. 한나라당은 〈전략 지역 및 인재영입 지역을 선정할 수 있다〉고 당헌·당규에 전략공천 규정을 추가했다. 별도로 정한 전략 지역이나 인재영입 지역에 한해 경선이나 여론조사 등을 실시하지 않고 전략적 판단에 의해 공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략공천을 명시하고 법조인 출신을 기용한 것은 언뜻 중립적인 선택으로 보이지만 결과는 달랐다. 친박계 중진의원인 김무성 대표가 낙천하는 등 친박 학살 논란이 그치지 않았던 것. 한나라당이 친이-친박으로 나뉘어 다투고 있던 상황에 정권을 잡은 이명박 대통령 측, 즉 친이가 공천권을 장악했음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이방호 사무총장은 ‘친박 학살의 주역’으로 불렸는데, 이 사무총장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공심위에 참여했다는 것은 정치권 인사들 모두가 인정하는 자명한 사실이다.
 
  이 당시 공심위 실무를 맡았던 한 당내 인사는 “정권을 되찾은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실시된 총선이라 출마 희망자들이 백방으로 모여들어 아수라장도 그런 아수라장이 없었다”며 “그땐 어디를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하는 일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친이계 마음대로 했던 공천”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계파를 떠나 ‘역대 최악의 공천’이라고 평가되는 공천이기도 하다.
 
  공천 후폭풍도 심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낙천한 친박계 인사들에게 “꼭 살아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낙천자들은 친박연대라는 전무후무한 당명으로 출마해 여의도로 귀환한 바 있다.
 
 
  19대, 대통령 레임덕하에 친박계의 복수 시작
 
  4년 후 상황은 뒤집힌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은 같은 해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현직 대통령의 레임덕이 심각한 시기였다. 당연한 수순처럼 새누리당 내에서 친박계의 복수가 시작됐다. 정홍원 전 총리가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은 가운데 진수희·권택기 의원 등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의 측근들과 안상수, 전여옥 의원 등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새누리당은 전체 지역구 246곳 중 47곳(19%)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해 발표했다. 권역별로는 서울의 강남-서초-송파 라인,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 당선보장 지역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여당에 유리한 지역인데, 친이계 핵심인 진수희(성동갑), 권택기(광진갑) 의원의 지역구가 당선보장 지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포함돼 ‘친박의 복수’라는 말이 떠돌았다. 친박에서 이탈한 김무성 의원도 지역구(부산 남을)가 전략 지역으로 선정돼 지역구에서 물러나야 했다.
 
  또 청와대가 추천한 비례대표 후보들을 당이 거부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청와대는 당시 대통령 측근인 교수 출신 A씨와 청와대 여성 참모인 B씨의 명단을 당에 보냈는데, 당시 당 지도부가 “어떻게 이런 대통령 최측근들을 명단이라고 보낼 수가 있느냐”고 대로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A씨와 B씨는 비례대표 명단에서 탈락했다. 레임덕 현상이 심각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당시 외부 공천심사위원 중 한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얘기다. “외부 공심위원 대부분이 사실상 정치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자료를 봐도 스스로 판단하기가 힘들어 주변 사람들을 만나 대략의 얘기를 좀 듣고 싶었는데 외부 접촉도 금지하더군요. 그런데 공심위 일을 하면서 회의석상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듣다 보니 외부 위원들 사이에서도 레임덕 얘기가 나오고 차기 대권주자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대통령이 인기가 없다 보니 그쪽 편을 들어줄 사람도 없었던 것 같고요. 당 실무진에서 만든 다양한 자료와 데이터를 토대로 전략공천 지역을 선정한다는데 외부 위원들이 반대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전략 지역을 선정하고 난 후 공천대상을 낙점하는 것 역시 외부 위원들이 크게 관여하지 못했어요.” 사실상 당 지도부가 청와대 의중과 크게 상관없이 공천을 했다는 것이다.
 
 
  전략공천의 明暗
 
전략공천의 대표적인 예로 울산의 정몽준 의원을 야당 텃밭이었던 서울 동작에 공천한 사례가 꼽힌다.
  여론조사나 경선과 관련 없이 당 지도부의 의중대로 공천을 하게 되는 전략공천은 정치신인 발굴과 역량 있는 정치인 보호 및 총선 필승 전략이라는 밝은 면 외에도 자기 사람 심기라는 어두운 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 우수한 인재를 영입한다는 명분은 좋지만, 전략공천을 위해 영입된 사람은 그 영입 주체에게 나름대로의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이회창 총재가 공천권을 휘두를 당시 당 기획조정국에 근무했던 당직자의 얘기다. “2년 후 대권을 앞두고 있는 이회창 총재는 영입과 전략공천으로 당 주도세력을 교체하려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당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어렵다는 걸 알았던 거죠. 15대 총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전략공천과 16대 이회창 총재의 전략공천은 명분은 다르지만 속내는 같은 게 아닐까요. 계파갈등을 타파한다는 전략공천은 또 다른 계파를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곤 합니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당 총재(대표)는 전략공천을 통해 공천권을 휘두르고 사후를 도모했습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총재이든 야당 총재이든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김무성 대표의 시도는 여당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신선하게 다가오는 건 사실입니다.”
 
  역사의 교훈으로 볼 때 차기 대권주자인 김무성 대표는 전략공천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할 형편이다. 특히 이미 레임덕의 조짐이 보이는 박근혜 대통령과 충돌할 때는 더욱 그렇다. 정치학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선거의 여왕’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차기 대통령’으로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미 대통령이 된 지금은 사실상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남영 세종대 정책과학대학 교수는 “미국의 레임덕은 3~6개월에 불과한데 한국의 레임덕은 1년, 길게는 2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다”며 “레임덕이 시작되면 차기 대권주자는 현재 권력과 차별화되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는 전략공천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과 끝까지 정면충돌하지 않고 내년 총선을 치르려는 분위기다. 단지 본인이 전략공천을 하지 않을 테니 청와대도 하지 말라는 입장을 보일 뿐이다. 이준우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실 보좌역은 “본인이 전략공천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하지 말자는 것이고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민주적 공천을 하자는 것이 전부인데 뜻이 왜곡돼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전략공천과 표적공천

 
 
전략공천 지역 선정이란 지나칠 정도로 자당에 우세한 지역 또는 경쟁자가 너무 많거나 없는 지역을 선정, 경선이나 여론조사를 통하지 않고 당 지도부가 판단한 적임자를 공천하는 것이다. 반드시 원내로 유입해야 할 인물을 유리한 지역(강남 또는 영남 지역)에 공천해 당선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전략공천이 표적공천과 유사한 뜻이기도 했다. 15대 당시 신한국당은 경기 부천소사에 박지원 대변인을 겨냥해 노동운동가 출신 김문수를 공천했다. 새정치국민회의의 경우 강남을의 무소속 홍사덕 의원을 영입하기 위해 일부러 경쟁력이 부족한 인물을 공천하는 전략적인 공천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2008년에는 한나라당이 정동영 의원을 ‘잡기’ 위해 울산이 지역구였던 정몽준 의원을 서울 동작을에 공천했다. 이처럼 특정 인물을 낙선시키기 위해 유력 인물 또는 그 인물과 정반대의 경쟁력이 있는 인물을 공천하는 것을 표적공천이라 한다.
 
  출마자들의 동상이몽
 
  김무성 대표는 논란 끝에 전략공천 불가 방침은 여전하지만 당헌·당규에 명시된 ‘우선추천지역’에 대한 우선공천은 받아들일 뜻을 보였다. 전략공천은 절대 없다고 큰소리치던 김무성 대표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사람들로서는 난감한 일이다. 취재 중 만난 두 여성 전직 의원의 상반된 의견이 기억에 남았다.
 
  예전 친박이었으나 현재 친유승민계로 불리는 A 전직 의원은 “설마 완전한 오픈프라이머리가 시행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김무성 대표 측근인 B 전직 의원은 “오픈프라이머리 말고 무슨 대안이 있느냐”고 필자에게 물었다. 전략공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A 전 의원은 “전략공천이 필요한 곳이 분명 있지만 선의의 피해자를 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고, B 전 의원은 “전략공천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했다. 공천을 바라는 출마 희망자들은 아직도 확정되지 않은 공천 룰 때문에 확실한 공천 및 선거 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혼란이 국민에겐 득인지 실인지 아리송할 뿐이다.⊙
 
새누리당 당헌·당규 중 전략공천 관련 내용

 
 
제103조(우선추천지역의 선정 등) ① 각종 공직선거(지역구)에 있어 우선추천지역을 선정할 수 있다.
 
  ② ‘우선추천지역’이라 함은 다음 각호의 사유로 선정된 지역을 말한다.
      1. 여성·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의 추천이 특별히 필요하다고 판단한 지역
      2. 공모에 신청한 후보자가 없거나, 여론조사 결과 등을 참작하여 추천 신청자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한 지역
 
  ③ 우선추천지역의 선정은 국회의원, 시·도지사 및 자치구·시·군의 장 선거의 경우는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가 하고, 시·도의회 및 자치구·시·군의회의원 선거의 경우는 시·도당 공천관리위원회가 하되, 최고위원회의의 의결을 통해 확정한다. 단, 광역단체장은 국민참여선거인단대회를 원칙으로 하되, 취약지역에 대해서는 이를 실시하지 아니할 수 있다.
 
  ④ 우선추천지역의 선정과 관련한 기타 필요한 사항은 당규로 정한다.
칼럼니스트 사진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등록일 : 2015-12-04 14:54   |  수정일 : 2015-12-0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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