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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조화유의 영어 그리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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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유 단편소설- 그들의 웃음소리

글 | 조화유 재미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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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라치 김치환은 러브호텔 Pink Castle(핑크 캐슬)의 후문이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그는 조수석 발치에 있던 가방을 들어 올려 그 속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망원 렌즈를 카메라에 달면서도 호텔 후문 쪽을 계속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이 년놈들이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김치환은 혼자 중얼거리며 팔뚝시계를 보았다. 3시 20분이다. 지난 주 토요일 두 남녀는 오후 3시와 3시 10분에 각각 차를 몰고 나타나 호텔로 들어갔었다. 보나마나 그들은 대낮 불륜의 스릴을 만끽했을 것이다. 그들은 1시간 쯤 후 약 10분 간격을 두고 따로따로 각자의 차를 몰고 호텔을 떠났었다. 김치환의 경험으로 보면, 한번 만난 불륜 커플은 최소한 세번 이상은 1주일 간격으로 거의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다시 만난다. 그러므로 지난주 토요일에 만났던 그 커플도 오늘 다시 3시 전후로 이 호텔에 나타날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3시 24분 먼저 여자가 지난 주와 똑같은 고급 외제차를 몰고 나타났다. 그녀의 차는 호텔 후문의 비닐 커튼을 서서히 밀고 들어갔다. 김치환은 그녀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연속촬영 모드로 샤터를 눌렀다. 차의 번호판도 물론 찍었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지난 주 찍은 사진을 자세히 보니 여자는 30대 초반 정도의 미모다. 피부가 희고 목에 검은 점이 하나 있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려 쌍꺼풀 수술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오똑한 코는 칼을 댄 흔적이 역력했다. 어쨌든 이 사진을 여자의 남편이 본다면 누구인지 금방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6분 후 남자가 나타났다. 국산 고급 승용차다. 역시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그의 머리는 반백이나 얼굴은 혈색이 좋고 몸은 약간 비만형이다. 나이는 50대 중반 정도. 그의 차가 비닐 커튼을 밀고 천천히 호텔 옥내 주차장 안으로 들어갈 때 김치환은 역시 카메라 샤터를 눌렀다.
 
사진 촬영을 끝낸 김치환은 양복 상의를 벗어 뒷 좌석에 던져놓고 운전석 등받이를 뒤로 재꼈다. 그리고 몸을 느긋이 기댔다. 방금 연달아 들어간 두 남녀가 호텔에서 나오려면 1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오늘은 여자를 미행하기로 그는 마음먹었다. 그는 노트북을 꺼내 컴퓨터 게임을 좀 즐기다가 싫증이 나자 웹 서핑을 시작했다. 한 포털 싸이트 시작 화면으로 들어서니 영화 "굿바이 골막동"에 대한 시비가 한창인 토론방 안내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그것을 클릭해보니까 시끌벅쩍했다. 어떤 네티즌이 "'굿바이 골막동'이 반미의식화 영화?"라는 글을 올렸고 편집자가 그걸 노출시켜주자 네티즌들이 벌떼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벌써 6만여명이 조회를 했고, 댓글도 수도 없이 올라왔다. 주제 글에 동조하는 쪽과 반박하는 쪽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한 네티즌이 "이 영화에서 미군은 구원군이 아니라 침략군으로 묘사되었다고 야단인데여, 영화는 영화로만 봐주면 안되나여? 영화를 보고 반미의식화 음모가 있다느니 하는 건 웃기는 보수꼴통들의 억지네여"라고 글을 올리자 금새 다른 네티즌이 "야, 짜샤, 실명을 거론하며 네 애비를 성폭행범으로 묘사한 영화를 네 애비의 사업상 라이벌이 만들었다 치자. 그래도 넌 영화는 영화로만 봐주자고 할거냐, 이 멍청한 새꺄! 미군이 그때 우릴 도와주지 않았으면 넌 태어나지도 못했거나 혹시 태어났더라도 지금쯤 넌 강냉이죽으로 끼니를 떼우면서도 그것이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장군의 은덕이라고 씨부리고 있을꺼다, 짜샤!"라고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네티즌은 " 이 영화에 나오는 북한 인민군은 길을 잃은 패잔병들이지만, 대한민국 국군은 탈영병들이다. 그리고 국군 장교는 시골 노인의 얼굴을 구둣발로 짓밟아 피투성이로 만드는 야수같은 인간으로 나온다. 뿐만 아니라 미군은 대한민국을 구해주러 온 은인이 아니라 침략자로 그려져있다. 미국이 그때 대한민국을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자유로운 나라에서 이런 영화를 찍을수 있었겠나?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어떻게 얻어진 것인지도 모르고 젊은 세대의 막연한 반미정서에 편승해서 돈벌이나 해보겠다는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든것 같다. 아무리 영화가 허구라지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특히 젊은이들은, 영화 속 이야기가 모두 진실인것처럼 착각하기가 쉽다. 예술이라는 미명 아래 이런 반미적 영화를 만든자들은 배은망덕한 자들이다!"라고 흥분했다.
 
욕설 섞어가며 공방전을 벌이는 글들이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김치환은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생각난 듯이 시계를 본다. 아까 들어간 불륜 커플이 나올 때가 되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노트북을 접어 차 뒷자리에 놓고 호텔 후문 쪽을 바라보았다.
 
한 5분쯤 지나자 차 한 대가 비닐 커튼을 재끼고 천천히 나왔다. 그는 또 카메라 샤터를 눌렀다. 한 시간 전 들어갔던 바로 그 50대 중반의 비만형 사내가 흡족한 모습으로 차를 몰고 천천히 호텔을 떠나고 있었다. 한 10분 후 또 다른 차 앞 대가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건 그가 기다리던 여자의 차가 아니었다. 차안에는 두 남녀가 함께 타고 있었다, 그 차가 나가자 곧 이어 그가 기다리던 여자의 차가 나타났다. 그는 또 카메라 샤터를 눌렀다. 그리고 그는 그 여자의 차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여자의 고급 외제차는 일부러 서울 시내를 빙빙 도는 것 같이 돌아다니더니 강남 T동 고급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흥, 강남 아니 한국 최고의 아파트 중의 하나라는 이곳에 사는 걸 보니 남편이 돈 꽤나 버는 모양이군. 잘 하면 큰 것 한 건 하겠다.' 김치환은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자동문이 열리자 여자의 차는 지하 주차장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김치환은 아파트 앞에 적당히 주차를 한 뒤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으나 자동문이 닫혀 버려 주차장으로 따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가 초조하게 서성대고 있을 때 마침 다른 차가 와서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번엔 자동문이 닫히기 전에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는 엘리베이터 타는 데로 가서 여자를 기다렸다. 마침 방금 들어간 다른 차의 운전자인 듯한 노신사가 엘리베이터를 타러 걸어왔다. 김치환은 노신사에게 미소를 지으며 아는 체 목례를 했다. 잘 생긴 청년 실업가 같은 모습과 고급 양복으로 빼입은 김치환을 노신사가 외부 침입자로 의심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노신사는 고개만 약간 까딱했을 뿐 말이 없었다.
 
이어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여전히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김치환은 그녀에게도 목례를 건넸다. 여자도 엉거주춤 고개를 약간 까딱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가 먼저 17층 바튼을 눌렀다. 김치환은 가만히 있었다. 노신사는 11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먼저 노신사가 내렸다. 이제 김치환과 여자만 남았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른 뒤 엘리베이터가 멎고 문이 열렸다 그는 "먼저 내리십시요"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여자는 그 때야 "감사합니다" 한마디 던지고는 먼저 나갔다. 그는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여자가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일부러 거리를 좀 두고 천천히 걸었다. 여자가 어느 방문 앞에서 전자 키 카드를 밀어넣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 방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그 쪽으로 걸어가 방 번호를 확인했다. 1705호였다.
 
김치환은 역삼동 모텔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 모텔 맨 꼭대기 층에서 방 하나를 월세로 빌려 주거지로 쓰고 있다. 그리고 돈 많은 여자들이 바람피우는 현장 사진을 찍어 여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냈다. 말하자면 범죄성 파차라치였다. 그의 잘 생긴 외모에 반한 일부 바람난 유부녀들은 그에게 자진해서 돈도 바치고 몸도 바쳤다. 아니, 몸을 바친 건 오히려 김치환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말이 될 것이다.
 
그는 T동 여자가 차를 타고 러브호텔 "핑크 캐슬"에서 나오는 장면을 찍은 사진 두 장을 두꺼운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주소를 쓰고 아까 확인한 그 아파트 번호를 써넣었다. 이름을 몰라 그냥 사모님이라고만 썼다. 사진과 함께 넣은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아름다운 사모님, 저는 사진 작가입니다. 사모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몰래 몇 장 찍었습니다. 혼자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워 복사본을 보내드립니다. 그러나 사진의 원본은 항상 보관할 것입니다. 혹시 원본까지 필요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저의 이메일 주소는
paparazi@cyber.com입니다."
 
빠른 우편으로 월요일에 부친 이 봉투는 화요일 T아파트 그 여자에게 배달되었다. 여자는 봉투를 뜯어보고 피익 웃었다.
 
'짜아식, 내가 바람난 유부녀인줄 아는 모양이로군. 임마, 잘못 짚었어...'
 
그럼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이며 뭐하는 여자일까? 그리고 토요일 오후 3시 '핑크 캐슬'에서 그녀가 만난 50대 비만형 남자는 누구일까?
 
그 날 그들이 한시간 같이 있었던 호텔 방으로 되돌아가 보자.
 
"똑똑"
 
노크 소리에 여자는 방문으로 걸어간다.
 
"누구세요?"
 
"라사장이요."
 
여자가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라사장이라는 혈색 좋은 비만형 남자가 들어온다. 미남도 추남도 아닌 평범한 얼굴이다."어서 오세요, 교수님" 여자가 좀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남자는 자기를 사장이라고 했는데, 여자는 그를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그렇다 남자는 교수다. 서울에 있는 한국대 학교 정치학과 교수 라광태(羅光泰). 가끔 대담한 돌출발언을 해서 언론에 오르내리는 인물이다. 그는 자기 성 "나"를 굳이 "라"라고 쓴다.
 
"오래 기다렸소?" 라교수가 묻자 여자는,"아니에요. 저도 조금 전에 왔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바로 커다란 구치 핸드백에서 흰 봉투를 하나 꺼내 라교수 앞에 내민다.
 
"회장님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9월15일 인천상륙 작전 55주년을 계기로 남조선 반미단체들이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을 파괴 또는 철거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를지원해주라는 지시입니다. 우선 교수님께서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 분위기를 좀 띄워주셔야 하겠습니다. 그 인터넷 신문에는 여러 명의 독자들이 내는 후원금으로 위장하여 돈을 분산시켜 입금시키겠습니다. 그리고 이 봉투에 든 현금은 당분간 교수님이 쓰실 사업자금입니다."
여자가 말하는 회장님은 평양의 조선로동당 3호 청사에 자리잡은 북한 정권 대남공작책이다.
 
"알았소." 라교수는 봉투를 양복 안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제가 먼저 샤워하겠습니다."
 
여자는 스스럼없이 옷을 벗고 목욕실로 들어간다. 이 여자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미용사 9명을 고용하고 기업형 미용실을 경영하는 북한 고정간첩 고형순. 그녀는 DJ 정권이 들어서던 해 고첩에 포섭되어 자기 자신 고첩이 된 남한 출신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2년제 실업전문대학에서 헤어디자인을 전공하고 미용실에 근무하다가 한 대기업체 사원과 결혼했으나 흔히들 말하는 성격 차이 때문에 곧 이혼하고 아직까지 싱글이다. 올해 서른 세살, 미용실 사장답게 최신 헤어스타일이 예쁜 얼굴을 잘 받쳐주고 있고, 거기에 날씬한 체격까지 갖춘 미인이다. 당 3호 청사는 고형순에게 미용실 개업 자금을 대주었고, 그녀의 미모를 미끼로 라광태 교수를 포섭하는데 성공했다.
 
몇일 후, 라교수는 인터넷 신문 NewsYouWrite(뉴스 유 라이트/당신이 쓰는 뉴스)에 한편의 글을 기고했다. 6.25전쟁은 김일성이 한반도 통일을 위해 단독으로 벌인 내전이다. 전쟁을 먼저 시작한 것은 김일성이지만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미국이다. 미국이 극동군사령관 맥아더를 시켜 1945년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북위 38도선에 경계선을 그어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점령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가 분단되었다. 전쟁이 나자 맥아더는 당시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이 전쟁에 즉각 개입할 것을 건의해서 미군이 참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김일성의 통일내전은 많은 희생자만 내고 실패로 끝났다. 그러므로 제국주의 미국은 우리 민족의 원수이고, 맥아더는 침략군의 괴수이다. 따라서 맥아더 동상은 마땅히 철거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글 요지였다. 다른 언론 매체들, 특히 보수성향 신문들은 라광태 교수의 이 돌출발언을 일제히 "망언"이라고 규탄하는 사설이나 기고문들을 실었고 보수단체들은 라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라광태 교수의 글에 고무된 과격 좌익 단체들은 9.15 인천상륙 기념일을 몇 일 앞두고 인천 자유공원에서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고 시도했으나 이를 저지하려는 우익단체들, 그리고 좌우익 시위자들을 동시에 제지하려는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일으켰다.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맥아더 장군을 매도하는 노래를 만들어 확성기로 틀어대고 인터넷에도 올렸다. 박환장이란 가수가 불렀다는 "살인자 맥아더"라는 타이틀의 노래 가사에는 이런 대목이 들어있다.
 
남의 나라 인천 바다 바라보며 무슨 생각 그리 하시나
망원경을 손에 들고 어딜 그리 바라보고 계속 계시나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진다 되 뇌이며 암기하시나
고향에선 천대받고 내가 여기 왜 서있나 묻고 계시나, 맥아더!
노근리의 양민들을 쏴 죽이라 명령했던 그자 맥아더
신천의 양민들을 기름으로 태워 죽인 그자 맥아더
핵폭탄을 터트려서 이 민족을 다 죽이려했던 맥아더
이게 무슨 은인이냐 끌어내려, 살인자의 동상 맥아더
맥아더 맥아더 맥아더 동상을 끌어내려
이제 더 이제 더 저 거짓 우상을 섬기지 마라!
맥아더 맥아더 맥아더 동상을 끌어내려
학살의 동상을 세우지 마라, 끌어내려!
 
"서울을 탈취하라 그곳에는 아가씨도 부인도 있다
3일 동안 서울은 제군의 것으로 될 것이다."
 
이 노래 가사는 북한 선전물에서 따온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그 주장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노래 맨 끝에 맥아더가 한 말처럼 꾸며 붙인 "서울은 제군의 것으로 될 것이다"가 북한식 말투이기 때문이다. 남한식 말투는 "제군의 것으로 될 것이다"가 아니라 "제군의 것이 될 것이다"가 맞다.
 
9월15일 미국 국회 하원 국제위원회는 마침 유엔총회 참석 차 뉴우욕에 와있던 한국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일부 한국인들의 배은망덕한 행동에 큰 실망감을 표시하고 맥아더 장군 동상을 훼손시키려면 차라리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입장이 난처해진 한국 정부는 동상 훼손이나 철거는 없을 것이라는 회답을 즉시 보냈다.
 
한편 라광태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한국대학교에서는 일부 학생들이 라교수 추방추진위원회를 조직했고 라교수를 지지하는 학생들과 교내에서 충돌했다.
 
이 대학 윤리학 교수로 40여년 교편을 잡고있다가 몇년 전 정년 퇴직한 노종호 교수는 "38선이 우리를 구해주었다"는 제목으로 2백자 원고지 10매에 또박또박 손으로 쓴 기고문을 들고 세칭 보수진영 신문사 하나를 찾아갔다.
 
그는 옛 제자인 편집부국장 한 명의 이름을 들먹여 편집국으로 들어가는데는 성공했으나 그 제자는 자리를 피하고 무슨 부장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노교수가 준 원고 첫장의 제목만 읽고는 '윤리학 교수룰 지냈다는 노인이 갑자기 웬 38선 타령?'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38선이 우리를 구해주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미국이 38선을 그어 한반도가 분단되고 그 때문에 6.25가 터진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얘기 아닙니까?"라고 말한다. 노교수는 "미국이 38선을 그은 건 사실이지만, 그 38선이 우리 민족 3분의 2에게는 불행이 아니라 축복이었다구요. 내 글을 읽어보면 왜 그런지 알게 됩니다. 일단 원고를 읽어보세요"라고 설득한다. 부장은 "원고는 읽어보겠습니다만, 큰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찮아도 우릴 보고 보수꼴통 신문이라고 야단인데, 38선이 우리를 구했다는 글을 내보내면 우릴 친미 사대주의 언론으로 몰아붙일 겁니다"라고 하면서 난감해 한다. 그는 노교수가 편집국을 나가자마자 그의 원고를 쓰레기통에 집어던진다.
 
이틀 후, 한 TV방송사가 "맥아더 동상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주제를 내걸고 좌우익 토론회를 생방송으로 개최했다. 노종호 교수는 간신히 방청권을 얻어 생방송 스튜디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토론에서 우익 대표들은 좌익 대표들에게 "맥아더 장군이 1950년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한것은 잘된 일인가, 잘못된 일인가 말해보라"고 욱발질렀다. 좌익 대표들은 이 질문에는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고, "6.25전쟁은 우리의 집안 싸움인데, 미제국주의자들이 쓸데없이 끼어들어 확전되었다. 그리고 맥아더는 미제국주의의 집행관이므로 그의 동상은 마땅히 철거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한 우익 토론자가 좌익 토론자들을 향해 "그렇다면 당신들은 6.25전쟁에서 김일성이 승리하지 못한 것을 원통하게 생각한단 말이냐?"고 다그치자 좌익은 역시 확답은 피하고 "문제는 그게 아니다. 한반도가 애초에 분단된 것은 미국이 1945년에 한반도에 38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동군사령관이었던 맥아더가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패망과 동시에 일반명령 제1호를 발표하면서 38선에 의한 남북 분단을 선언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분단의 책임이 있는 맥아더 동상은 없애야한다"고 동문서답만 계속했다. 동문서답식 토론이 지루하게 계속되자 토론의 사회자는 이번엔 방청석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노교수를 포함한 서 너명이 손을 들었다. 사회자는 다행히 노교수을 지명하고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라고 주문했다. 노교수는,
 
"경기도 안산시에 사는 노종호입니다. 몇년 전까지 대학에서 윤리학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은퇴한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1945년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기 위해 미국이 38선을 그었고 그 결과 한반도가 분단되었다고들 하는데, 그 사실 자체는 맞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38선을 그은 데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지금까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4년 동안의 태평양, 대서양 전쟁에서 주역을 담당한 미국은 1945년 2월 얄타회담 당시 상당히 지쳐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소련도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 대신 미국은 제정(帝政) 러시아가 러·일전쟁을 전후해서 일본에 빼앗겼던 사할린 남부와과 쿠릴열도를 소련이 되찾게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자 소련은 6개월 이내로 대일전(對日戰)에 참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노교수는 70대 노인답지 않은 힘있는 목소리로 계속했다.
 
"석달 후 유럽에서 히틀러가 먼저 항복했습니다. 미국, 영국과 함께 독일과 싸우느라고 기진맥진한 소련은 한시름 놓게된 거지요. 미국은 소련에게 빨리 일본에 선전포고를 해서 이번엔 미국을 좀 도와달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래도 소련은 질질끌다가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터지고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니까 그제야 안심하고 8월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2월에 약속한 6개월 시한의 마지막 날에 가서야 얌체같이 대일전에 뛰어든 것입니다. 다음날 나가사끼에 또 원자탄이 터지고 일본은 8월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이때 이미 소련 극동군은 자기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만주와 우리 한반도에 빠른 속도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미국은 당황했습니다. 그때 미군은 한반도에서 1000 킬로미터나 멀리 떨어진 오끼나와에 있었습니다. 소련군과 같은 시기에 미군을 한반도에 들여보내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다 점령해버릴 것이고, 그러면 소련은 한반도를 자기네 위성국으로 만들게 뻔했습니다. 그때 소련은 나치 독일과의 전쟁 중에 점령한 동유럽 각국을 이미 자기네 위성국으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의 소련 워성국화도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미국은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8월15일 일본이 항복하던 바로 그 날 미국은 소련에게 한반도를 다 점령하지 말고 북위 38도선까지만 내려와서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라고 권고했고 소련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38선이 그어졌고, 소련은 일본과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참전한지 겨우 1주일만에 북한이라는 큰 전리품을 얻은 셈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미국이 38선을 그은 덕분에 우리 남한만은 공산주의 마수 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사실이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나온 어느 역사책에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지 미국과 소련이 자기들 멋대로 38선을 그어 한반도를 분할 점령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분단의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고만 쓰여 있을 뿐입니다.
 
“내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날 보고 지독한 친미 사대주의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누가 뭐래도 미국은 우리 민족의 3분의 2를 공산주의 독재로부터 구해준 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1945년에 일본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준 것도 미국이고, 38선을 그어 남한만이라고 소련의 위성국이 되는 것을 막아준 것도 미국이고, 1950년 김일성이 소련, 중국과 사전에 모의한 후 6.25전쟁을 일으켰을 때도 즉각 참전하여 남한의 적화를 다시 한번 막아주어 지금 여러분이 이렇게 자유로운 사회에서 이런 토론을 할수있게 해준 것도 미국입니다.
 
"물론 미국이 다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이 잘 못한 것들은 미국이 우리를 공산주의 마수로부터 구해준 사실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큰 그림은 보지 못하고 작은 것만 가지고 미국을 비난하고,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통일이 안 된다고 하고, 어떤 대학 교수는 우리가 미국 신(新)식민주의의 "자발적 노예"라고 까지 했습니다. 미국의 노예가 어떻게 세계 11위 경제강국이 되고 주체사상으로 똘똘뭉친 북한은 세계의 거지가 되었단 말입니까?
 
그 교수는 또 해방 직후 조선인의 77%가 공산주의·사회주의를 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근거 자료를 보지 못해 진짜 그런 조사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설사 그 여론조사 결과대로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공산주의·사회주의 연립정권을 세워주었다고 칩시다. 또 다행히 김일성이 아닌 다른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지도자가 되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후 이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폴란드, 항가리, 체코, 동독 같은 동유럽 공산국가가 겪었던 것과 똑같이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압제로부터 해방되려고 피비린내 나는 저항을 계속하면서 반세기를 살다가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이제 겨우 자유 민주주의를 향해 걸음마를 배우고 있을 것 아닙니까? 다행히도 그때 남한만이라도 공산주의를 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공산주의 북한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풍족하게 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자꾸 60년 전 공산주의·사회주의로 통일 안된 것을 원통해 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공산주의가 그렇게 좋으면 월북하면 될 거 아닙니까? 요즘 이북으로 넘어가기가 얼마나 쉽습니까? 금강산 구경하다 주저앉으면 되잖아요?"
 
노교수의 발언이 길어지자 사회자가 그의 말을 끊으려고 마이크를 입에 대고 "노선생님, 거기까지만!"하고 제지했다. 그러나 노교수는 "한 마디만 더 하고 끝내겠습니다"고 하고는 말을 계속했다.
 
"여기 계신 소위 진보단체 대표들은 미군만 철수하면 곧 통일이라도 될 것같이 말하고 있는데, 미군이 철수한 뒤 통일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미군이 철수하면 김정일이 그 좋은 독재 권력 포기하고 당장 남북한 총선거 실시해서 통일하자고 나오기라도 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남한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포기하고 김정일 체제 밑으로 들어가자는 얘기입니까? 그 것도 아니면 연방제를 하자는 겁니까? 북쪽은 사실상 세습 절대군주제이고, 남쪽은 5년에 한번씩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민주체제인데, 연방제 해서 서로 내정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하면 김정일 독재체제만 영구 보장해주는 결과밖에 안되지 않습니까?
 
통일을 방해하는 것은 주한 미군이 아니라 북한의 독재정권입니다. 북한이 독재 포기하고, 민주주의 시장경제 받아드리면 남한은 물론, 미국 일본 등 온 세계가 다 도와줄 것이고, 같은 민주체제니까 남북통일도 쉬워질텐데, 그걸 안하고 김정일이 계속 권력을 틀어쥐고 민주화도 하지 않으니까 애꿎은 북한 동포들만 고생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당신네 소위 진보단체들은 김정일 정권보고 왜 민주화하라는 말 한번 하지 못하는 겁니까? DJ 정권 이후의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보고 민주화하라는 말 한번 하지 못하고 무조건 갖다 바칠 생각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조건 없이 자꾸 갖다 바치기만 하는 것은 '김정일 당신은 핵무기나 열심히 만들어라. 그 뒷돈은 우리가 대주고, 당신네 굶주리는 인민도 우리가 먹여 살리겠다'고 하는 거나 뭐가 다릅니까? 더 하고싶은 말이 많지만 이만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교수는 마치 대학에서 강의를 하듯 논리 정연한 열변을 토해냈다. 장내는 숙연해졌다. 사회자는 "원래는 방청석에서 두 분의 의견을 들으려고 했는데 시간 관계로 이것으로 줄이고 다음 주제 토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영화 "굿바이 골막동"은 극장가를 휩쓸었다. 개봉 2개월 만에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1000만번째 관객이 서울의 한 극장에 들어오는 날, 그 행운의 관객에게 그 영화사는 자사가 앞으로 만들 모든 영화의 무료 관람권을 주었다. 그리고 그 날밤 한 특급 호텔 볼룸에서는 1000만 관객 동원 축하 파티가 벌어졌다. 한국대 라광태 교수는 영화사의 초청을 받고 그 자리에 나타나 무대 위에 올라가 간단한 축사를 했다.
 
"제가 '뉴스 유 라이트'에 기고한 글에서도 말했지만. 우리 민족의 원수는 미국입니다. 미제국주의 하수인 미군을 이 땅에서 하루 속히 몰아내야 우리 나라를 통일할 수가 있습니다. 이번에 '굿바이 골막동'이 이러한 강력한 멧세지를 우리 모두의 가슴에 확실하게 심어주었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하신 이만금 감독님은 아주 훌륭한 일을 한 것입니다. 자, 우리 이감독님에게 큰 박수 한번 보냅시다, 여러분! "
 
무대 위 의자에 앉아 있던 이만금 감독이 일어나 머리 숙여 인사를 하자 영화팬들은 열려한 박수를 보냈다. 축사를 끝낸 라광태 교수는 무대 위에 마련된 귀빈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다음엔 이감독이 무대 중앙으로 나아가 간단한 인사말을 시작했다.
 
"우리 영화가 반미적이니 친북이니 하는 비판이 있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입니다. 부디 '굿바이 골막동'을 영화로만 봐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영화를 만드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을 줄줄이 꿰고 나서 "자, 여러분은 저보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을 더 만나고싶어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주연 배우들을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요!"라고 소리쳤다. 갑자기 조명이 어두워지고 스팟라이트가 무대위로 올라가는 주연 남녀를 집중 조명했다. 볼룸 안을 가득 메운 팬들이 박수도 치고 휘파람도 불어대 볼룸 안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때 라교수가 갑자기 졸도하듯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조명이 어두워 처음엔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곧 조명이 다시 밝아지자 단상에 앉아있던 귀빈들이 먼저 무대 바닥에 쓰러진 라교수를 보고 놀랐다. 행사는 잠시 중단되었다. 경호회사에서 파견된 듯한 건장한 청년 하나가 라교수를 등에 업고 무대 뒤 커튼을 제치고 사라졌다. 그리고 사회자는
"여러분, 라광태 교수님께서 잠시 졸도하신 것 같아 병원응급실로 모셨습니다. 자, 축하 행사를 계속하겠습니다!"
 
볼룸 안은 다시 파티 분위기를 회복하고 주연 남녀 배우가 열광하는 팬들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라광태 교수에게 이런 일이 생긴 줄도 모르는 고형순은 밤 10시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녀는 미용실에서 퇴근하기 전 누구엔가에 쎌폰(휴대전화)으로 전화를 걸어 "오빠, 오늘 저녁이나 같이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 '오빠'와 만나 프랑스식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에게 자신을 협박하는 파파라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돈과 사진 필름을 교환하자고 꾀어 파파라치를 불러낼 터이니 '오빠'가 그 자를 알아서 처리해달라고 부탁해두었다. 그 '오빠'는 그녀의 미용실과 계약한 조폭 운영의 경호회사 사장이였다.
 
그녀는 목욕을 하고 거실로 나와 대형 벽걸이 TV를 켰다. 마침 "돌"이라는 호(號)를 가진 자칭 천재 김석두가 김일성의 별 볼일 없는 항일투쟁 경력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특집 프로를 진행하고 있었다.
 
'짜아식 눈치는 빨라가지고....세상이 왼쪽으로 좀 기운다 싶으니까 아주 드러내놓고 꼴깝을 떠는구만...쯧쯧 노추(老醜)야, 노추.' 고형순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 프로가 끝나자 밤 11시 뉴스가 시작되었다.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KBC 아나운서가 흥분해서 뉴스를 전했다.
 
"오늘 저녁 Fantasy(홴터시) 호텔에서 벌어진 영화 '굿바이 골막동' 1000만 관객 동원 축하 행사에 축사를 하러 나온 한국대학교 라광태 교수가 괴한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절명했습니다. 범인은 이 영화에 주연한 배우들이 무대 위로 올라갈 때의 소란한 틈을 이용, 무대 뒤에 처진 커튼 사이로 라교수를 저격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볼룸 바닥에서는 "이 나라 젊은 세대를 사상적으로 무장해제시켜 나라를 송두리째 김정일한테 넘겨주려는 놈들의 최후는 이렇다!"라고 쓴 쪽지 한 장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일단 과격 극우 보수단체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 탄피 한개를 수거,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냈습니다....." 고형순은 라광태 교수의 피살에 경악했다.
다음 날 아침 신문들도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인터넷 신문 NewsYouWrite는 "라광태 교수는 범인이 쏜 단 한발의 총알을 급소에 맞고 즉사했다. 아무도 총소리를 듣지 못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범인은 소음권총을 사용한 것이 분명해 보이고, 급소를 정확하게 겨냥한 것으로 보아 과거 군 특수부대에서 복무하다 전역한 자의 소행이 아닌가 보고 탐문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함으로써 이 사건을 역시 극우세력의 소행으로 보고 있었다.
 
KBC TV 아침 뉴스는 라광태 교수의 피살에 격분한 "진보" 시민단체들이 다시 인천 자유공원에 집결, 굵은 선박용 밧줄로 맥아더 동상을 쓰러뜨리려 하고 있으며 경찰은 이들을 최루탄으로 제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시각 평양의 조선노동당 3호 청사 귀빈실.
 
국방위원장이 짙은 색안경을 끼고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나자 대남(對南)사업 담당 당(黨)비서와 대남공작총책은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국방위원장이 먼저 푹신한 안락의자에 앉으며 "자, 앉으라우!" 하니까 대남담당 비서와 대남공작총책이 뒤따라 앉는다.
 
"동무들 수고 많았어! 라광태는 남조선 혁명을 위해서 좋은 일 한거이야."
 
"기렇습네다. 지도자 동지! 그 자는 용도 폐기될 때가 되었습니다. 더 살려두었더라면 오히려 보수 반동 세력의 재결집과 강화를 초래할뻔 했습니다. 그 자는 남조선 젊은 아이들에게 반미사상을 불어넣은 공로가 크지만, 보수반동 세력을 재결집시키는 역기능도 했다는 말씀입네다. 라광태가 보수반동들한테 살해된 것처럼 죽어주었으므로 이자(이제) 남조선 젊은 아이들이 보수반동 놈들한테 더욱 강렬한 적개심을 품고 얼마 남지 않은 민족 반역 세력들을 모조리 깨부수게 될 것입네다. 라광태는 그렇게 죽음으로써 우리 혁명 과업을 위해 마지막 헌신을 한 셈입네다, 지도자 동지!"
 
대남사업 담당 당 비서가 흥분된 어조로 이렇게 말하자 위원장은,
 
"아주 의미있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로구만 기래! 하하하"하고 웃는다.
 
"기렇습네다, 지도자 동지!"
 
"우리 공작원은 무사하겠지?"
 
"염려마시라요, 지도자 동지. 벌써 동해안에서 잠수함을 타고 올라오고 있는 중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네다."
 
"기래? 수고들 해서(했어), 동무들, 건배하자우!
 
"남조선 해방을 위하여!"
 
"조국통일을 위하여!"
 
건배를 하고 나서 대남담당비서가,
 
"지도자 동지, 다음 남조선 대통령 선거 직전에 서울에 정말 내려가실 작정이십네까?"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김정일은,
 
"아, 기거야, 남조선 아이들이 얼마나 우리한테 갖다바치느냐에 달려있는거 아니갓서? 내가 서울이든 제주도든, 북남정상회담에 참석해서 통일이 금새 될 것 같이 분위기를 확 띄워 주어야 철부지 젊은 아이들 표가 남조선 집권 여당 후보한테 몰표로 몰려가서 대통령에 당선될터이니까니 한 20억불 쯤 현금을 요구하고, 너무 많다고 우는 소리 하면 한 5억불 못이기는체 하고 깎아주디, 뭐. 기러면 갸들 아주 고맙다고 할꺼이야. 지난 번 DJ가 노벨평화상 받는 건 내가 아주 헐값에 도와줬디만 이번엔 기렇게 싸겐 안해주갓서. 정권 5년 더 연장 해주는데 15억불이면 너무 싸디 않네? 20억불 다 내라고 버텨볼까, 하하하!"
 
"참 훌륭하신 생각이십네다, 지도자 동지! 남조선 아이들은 이자(이제) 지도자 동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원숭이들입네다! 게다가 남조선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20대, 30대가 대부분 지도자 동지를 흠모하고 있으니까니 남조선 해방에는 이자 땅굴도 미사일도 필요없습네다. 남조선 선거제도를 잘 이용하면 남조선 해방은 이자 식은 죽먹기나 다름없습네다, 지도자 동지!"
 
"아, 기럼! 남조선 신문, 방송, 영화 할거 없이 다들 알아서 척척 기고 있디 않네. 제일 이쁜 건 거 뭐이가, 교직원 노존가 하는 거이야. 갸들은 초등핵교 아이들한테 미국놈들을 증오하라고 가르친다는게야, 기러니까니 이자 우린 거저 손 안대고 코만 풀면 되는 거이야, 하하하!"
 
"기렇다 마다요, 지도자 동지! 하하하!"
3호 청사에서는 웃음소리가 계속되었다. <끝>
 
*이 소설은 2005년 조선닷컴을 통해 발표한 단편소설입니다. 무대는 노무현 정권 때의 이야기지만 지금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이 이야기는 fiction(소설)이므로 등장인물이나 사건이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연상시키더라도 실제인물이나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는 순수한 창작물임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CopyrightⓒW.Y. Joh 2005, 2018
등록일 : 2018-01-21 11:17   |  수정일 : 2018-01-2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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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조화유 재미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조화유 (曺和裕 / W.Y. JOH)

경남 거창 출생. 부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에서 韓美관계사를 연구한 뒤 미국에 정착했다.

도미 전 응시한 TOEFL에서 어휘 및 작문 부문 세계 최고점수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1970년엔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흉일”이 당선, 문단에 데뷔했다. 1998년 문학작품집 “이것이 정말 내가 쓰고 싶었던 글들이다”를 냈고, 2010년엔 두 번째 작품집 “전쟁과 사랑”을 출간했다. 이 작품집에 실린 단편 “다대포에서 생긴 일”은 한국비평문학회가 “2003년의 문제소설”로 선정하였고, 이 소설을 직접 영어로 다시 쓴 Heaven Knows What Happened at Dadaepo는 amazon.com에서 eBook으로도 나왔다.

미주동포들을 위해 쓴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은 1990년대 조선일보사가 “이것이 미국영어다” 전10권으로 재출간, 국내에서만 100만부 이상 보급되었고, 중국, 대만, 일본에서도 각각 그 나라 글로 번역 출판되었다. 1996~7년에는 “레미제라블” “파리의 노틀담”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씨이저” “왕자와 거지” 등 세계명작을 한영대역 만화로 재구성하여 조선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 워싱턴 교외에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메일 johbook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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