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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조화유의 영어 그리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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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왜 그렇게 유대인을 증오했을까?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항가리, 오스트리아...동유럽 10일간 여행기

글 | 조화유 재미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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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12일부터 21일까지 열흘 동안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엔 전에 이미 가본 적이 있는 서부유럽은 재외하고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오스트리아만 둘러보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폴란드의 아우쉬비츠(Auschwitz) 유대인 수용소와 지하 소금광산,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황홀한 야경, 빈(비엔나)의 음악 성인들의 무덤이었다.
 
이들 다섯 나라를 10일 동안 전세 버스를 타고 여행하면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 하나를 우선 소개하고자 한다. 놀라운 사실이란 다름이 아니라 유럽에서는 버스 운전사들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독일 남부 대도시 뮌헨에 집결한 44명의 남녀 여행자들은 여행사가 그곳에서 전세 낸 대형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운전기사들이 2시간을 운전한 뒤에는 반드시 35분 휴식을 취했다. 운전자의 과로로 인한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이 법을 단 1분이라도 어기면 운전자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데, 운전 상황이 상세히 기록되는 기계가 버스에 장착되어 속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 2/35 규정이 엄격하게 시행되므로 졸음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애서는 올해만도 대형 버스가 소형차들을 들이받은 사고가 두건이나 발생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사고원인은 둘 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이었다. 한국도 유럽식 2/35 운전규칙을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 아우쉬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내가 느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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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쉬비츠 유대인 수용소 정문. 아직도 Arbeit macht frei (노동이 자유를 만든다)는 표어가 그대로 붙어있다.


2차 세계대전(1939-45)을 일으킨 나치 독일 독재자 히틀러가 유대인 멸종을 시도하다 실패한 얘기는 TV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이미 많이 보았지만, 가장 악명 높은 아우쉬비츠 수용소에서 학살되기 전 유대인들이 사용한 안경, 신발, 식기, 심지어 그들의 머리텉까지 실물로 보니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유대인들은 불쌍하고 히틀러는 악독했다는 생각을 굳힌게 아니라 왜 히틀러가 그렇게 지독하게 유대인 멸종을 획책했을까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Holocaust(홀러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영화를 보아왔다.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히틀러와 나치스는 나쁘고 유대인은 불쌍하다는 생각만 했지, “유대인이 독일인의 미움을 살만한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닌가?”라고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유대인 학살 이유를 다룬 영화를 본 일이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본 영화는 전부 히틀러는 나쁘고 유대인은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도록 영화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런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들은 대개 유대인 돈줄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Why did Hitler hate Jews so much? (히틀러는 왜 그렇게 유대인을 증오했는가?)라는 검색어로 Google에 들어가 보니 엄청나게 많은 글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독일의 역사학자 랄프 게오르게 로이트(Ralf-George Reuth)가 6년 전에 쓴 책이었다. 이 책의 독일어 타이틀을 영어로 번역한 것은 Jewish Hatred; Cliché and Reality인데 우리말로는 “유대인 증오: 통설과 실체”쯤 될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히틀러가 유대인을 증오한 진짜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영국 Daily Mail 신문이 소개했다.
 
지금까지는 청소년 시절의 히틀러가 빈(Wien-지금의 오스트리아 수도)에서 살 때 여러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유대인을 증오하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히틀러 모친이 유대인 의사의 실수로 죽었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심지어 그 의사가 유방암 환자인 히틀러 모친을 성폭행까지 했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히틀러가 빈(비엔나)에서 미술학교에 다닐 때 짝사랑한 독일 여자가 나중에 돈 많은 유대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보고 격분, 유대인을 증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부자가 되면 독일 여성과 결혼하여 아리안(독일 민족)의 피를 흐려놓기 때문에 히틀러가 유대인 멸종을 기획했다는 설도 있다.
 
물론 이런 개인 감정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경제적, 정치적 이유였다. 히틀러는 유대인 때문에 1차 세계대전(1914-18) 후 독일 경제가 붕괴했고 또 유대인들이 러시아 공산혁명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1차 세계대전에 하사관으로 참전한 히틀러는 패전 독일 경제를 재건하는데 유대인들이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해를 끼쳤다고 보았다. 종전 직후인 1919년 당시 독일의 민간은행의 약 절반이 유대인 소유였으며 증권시장도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독일 신문의 약 절반이 유대인 소유였으며 백화점의 80%도 유대인 소유였다. 한마디로 독일 경제와 언론은 유대인이 좌지우지했다고 볼수있다. 그래서 독일의 패전을 유대인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팽배했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주식시장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자본주의를 싫어했다.
 
히틀러는 또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도 유대인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다고 보았다. 공산주의 이론 창시자 카알 마르크스(Karl Marx), 러시아혁명 지도자 레닌과 트로츠키가 모두 유대인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의 정치적 초기 기반지였던 독일 뮌헨에서 1919년 공산주의 정권이 잠깐 등장한 일이 있었는데 이 때 부터 히틀러는 공산주의자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로이트는 나치시대 인물 연구에 권위자로 알려진 역사가인데, 선전과 선동의 귀재라는 요셉 괴벨스 선전상의 전기도 썼다. 유대계 독일 소설가 토마스 만(노벨상수상자)도 러시아 혁명 주도 세력은 유대인이었다고 쓴 기록이 있다고 로이트는 말했다.
 
2. 조상 덕에 먹고사는 동유럽 사람들
 
Budapest는 유럽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강 다뉴브(Danube)의 양쪽 강변에 새워진 두 도시 Buda와 Pest를 통합한 역사 깊은 대도시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두 나라 오스트리아(원국명은 외스터라익히)와 헝가리(원국명은 웅가른)가 한 때 Austria-Hungary Empire를 이루고 있을 때 이 제국의 수도 빈(비에나)과 더불어 2대 도시로 번창했던 곳이다. 강변도시 부다페스트는 내륙 도시 빈보다 더 아름답고 규모도 더 컸다.
 
해가 지자 부다페스트는 그 아름다운 야경으로 여행자들을 감동시켰다. 요한 스트라우스를 비롯, 여러 음악가들에게 작곡 영감을 안겨준 다뉴브 강, 그리고 강변에 세워진 웅장한 고전적 고층 건물들은 해가 지자 일제히 야광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유람선을 타고 가며 그 아름다운 건물들과 다리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서울의 한강변 아파트들과 비교했다. 아름다운 강변을 고작 직사각형의 아파트로 다 채워버린 한강이 너무나 초라하게 생각되었다. 우리 조상들이 당파 싸움이나 하고 있을 때 이들 동유럽국가들은 후손들이 먹고살 위대한 유산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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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강변에 세워진 헝가리 국회의사당

프라하, 부다페스트 등 동유럽 유명 관광지는 한국, 중국, 일본 관광객이 80%쯤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말하면 동유럽은 극동 아시아인들이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프라하는 부다페스트보다 볼게 적었지만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우리 관광객들은 체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건물 앞까지 갈수 있었는데 미국 대통령이나 러시아 대통령이 방문할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관광객들이 접근할수 있다고 한다. 헝가리 대통령 집무실은 관광객이 바로 문 앞까지 갈수 있었는데, 작은 단독 건물에 외각 경호원은 단 2명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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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공화국 대통령궁 앞에서 필자 부부


3. 입이 딱 벌어지게 한 지하 소금광산
 
우리 여행 스케줄에는 폴란드의 지하 소금광산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나는 관심이 없었다. 지하 동굴이라면 내가 이미 들어가 본 미국 버지니아주의 Luray Caverns(을루레이 캐번즈)보다 더 유명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에겐 claustrophobia(클라스트러훠비어/협소공포증)가 있기 때문에 지하 150m나 내려가는 광산, 그것도 소금광산 속에 들어가는 게 겁이 났다. 그래서 이것은 포기하려고 했더니 집 사람이 자꾸 들어가 보자고 졸라서 남자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 따라 내려가 보았다. 한 사람이 겨우 내려갈 수 있는 좁은 계단을 따라 수직으로 150m나 걸어 내려갔는데 만일 지진이나 갑자기 나면 어떡하나 겁이 덜컹 났다.
 
그런데 일단 들어가 보니 모두가 바위같이 딴딴한 소금이었다. 동굴 벽도, 길도 모두 소금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아파트 5층 정도 높이의 거대한 동굴들이 땅속에 있었다. 흙은 하나도 없고 전부 소금이라는 것이다. 굵은 통나무들로 그 동굴들이 무너지지 않게 받쳐놓았는데 그 건축기술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안에는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과 음료수 매점도 있었다. 나는 그 소금동굴 속에서 일하다 죽은 사람들이 많았겠구나 생각했다. 이 소금광산은 옛날 유럽 일대의 소금 공급원으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지금은 소금 생산은 하지 않고 관광수입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게 더 수지맞는 일이기 때문이란다. 150m를 수직으로 어떻게 올라가나 걱정을 했더니 오를 때는 작은 승강기가 있어서 몇분만에 지상으로 올라갔다. 땅위에 올라오니, 아,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4. 음악 천재들의 무덤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볼거리는 음악의 도시 빈에 있는 천재적 음악인들의 무덤이었다. 35세 젊은 나이에 죽은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를 비롯하여 베토벤,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등 음악의 거인들이 거의 같은 장소에 옹기종기 묻혀있고 그 위에 아름답게 조각된 비석들이 서 있었다. 말로만 듣던 거장들의 뼈가 바로 이 땅 아래 묻혀 있구나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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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비엔나)의 예술인 묘지에 있는 베토벤 묘비


5. 중국여행자들은 짜다?
 
10월20일 우리는 동유럽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빈의 유명한 식당 Heuriger Grinzing 에서 했다. 1000년 전통을 자랑하는 Hengl Wine을 제공한다는 이 식당에서 아코디언 주자 등 2명의 악사는 우리 일행 44명이 둘러앉은 식탁들을 돌면서 한국 노래까지 연주해서 우리들은 다 같이 합창을 했다. 와인이 들어간 직후라 남녀 모두들 신이 나보였다. 몇 명이 악사들에게 팁을 주었다. 나도 10불짜리 미화 한 장을 건넸더니 악사는 돈을 펴서 액면 가격을 확인한 후 만족한 표정을 짓고 연주를 계속했다. 악사들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앉아있는 식탁 앞에서도 음악을 연주했으나 팁이 하나도 없자 곧 우리 한국인들 쪽으로 되돌아왔다. 역시 Money talks.였다. 이 식당은 음식도 좋았다. 유명한 와인을 마시며 동유럽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는 우리 일행은 모두 기분이 좋았다. 이곳엔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도 다녀갔다는데 그 증거사진이 문 앞에 걸려있었다.
 
6. 흑인과 뚱보 보기 드문 동유럽
 
이번 여행 중 또 놀란 건 동유럽에선 흑인과 아랍계 인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10일 동안 둘러본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항가리 오스트리아에서 흑인이라곤 딱 두 명을 거리에서 보았는데, 한명은 부다페스트 거리에서, 다른 한명은 빈(비엔나)의 명동거리라는 곳에서 보았을 뿐이다. 프랑스에선 흔히 볼수있는 아랍계 인종도 동유럽에선 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동유럽 도시들 거리에서 뚱뚱한 사람도 보기 힘들었다. 미국 거리에선 흔히 볼수 있는 흑인과 비만인 들이 동유럽에선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번 여행 중 동유럽 거리에서 본 청소년들은 모두 날씬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여학생들은 아주 예뻤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현재 부인과 전 부인 둘이 모두 동유럽 출신인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7. 영어가 국제어가 된 이유를 알겠더라
 
이번 여행 중 알게 된 것 또 하나는 유럽 어디서나 ‘화장실“은 영어 water closet의 약자 WC로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영어가 왜 국제언어가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번 여행지에서는 독일어, 폴란드어, 체코어, 슬로바키아어 헝가리어 등 그 좁은 땅에 언어가 다 달랐다. 그리고 그 곳의 신문들을 보니 단어 길이가 영어보다 훨씬 더 길고 발음하기가 어렵게 생겼다. 예컨대 “도착예정시각”은 영어로 estimated arrival time인데 독일어는 Voraussichtliche Ankunftszeit로 28자나 되어 20자인 영어보다 훨씬 더 길고 우리가 발음하기도 더 어렵다.
 
 영어 외의 유럽 언어들은 대개 단어에 남성, 여성이 있고 또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문자는 글자 위에 점 같은 것이 붙은 게 많고 또 단어도 길어 영어보다 배우기가 훨씬 더 어려워 보였다. 슬라브계 언어들은 영어와 비슷한 단어가 거의 없어 그 뜻을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헝가리의 호텔 방에 놓인 성경책을 보니 “신약”이 그 나라 말로 Nova Zmluva 인데, "노바 주물러봐” 같아 혼자 웃었다.
 
8. 유능한 관광 가이드들의 첫째 조건은?
 
부산 출신 오스트리아 거주 동포 박승현 씨는 부인과 두 자녀를 둔 40대 가장인데 관광 가이드로 부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말끝마다 농담을 해서 우리들을 즐겁게 했다.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의 교육제도를 설명하면서 “빈(Wien)대학들은 학비가 거의 무료이고, 1년 중 5개월은 방학이라 (텅텅)빈 대학이라 부른다”고 해서 우리를 웃겼다.
 
그는 국민소득 5만불 내외인 오스트리아의 사회보장 제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엔 대기업인을 제외하곤 큰 부자도, 아주 가난한 국민도 없다고 했다. 유럽 여러 복지국가들이 대개 다 그렇듯이 오스트리아도 국민이 세금을 많이 내고 혜택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금을 많이 가진 국민은 많지 않다고 했다. 은행에 큰돈을 입금하면 즉각 자금출처 조사가 시작될 정도라는 것이다.
 
주관 여행사를 대표해서 L.A.에서 온 가이드 테리 강씨는 50대 초반 노총각이라는데 버스를 타고 다닐 때 조금도 쉬지 않고 두어 시간을 계속해서 이야기 하는 그 에너지에 놀랐다. 약간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있긴 했지만 유럽 역사에 대한 지식도 풍부했고 유머 감각도 대단했다. 관광 가이드의 첫째 조건은 관광객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유머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 기간 동안 한번도 흐리거나 비가 온 날이 없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온이 계속되어 하느님도 예측하지 못한다는 동유럽 날씨도 우리를 도와주었다. 즐겁고 유익한 열흘을 동유럽에서 보내고 9시간 직행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워싱턴 덜레스공항에 도착, 집에 돌아오니 비로소 피로가 엄습해왔다.
 
2017년 10월21일
 
워싱턴에서
조화유

등록일 : 2017-10-25 09:38   |  수정일 : 2017-10-2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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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조화유 재미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조화유 (曺和裕 / W.Y. JOH)

경남 거창 출생. 부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에서 韓美관계사를 연구한 뒤 미국에 정착했다.

도미 전 응시한 TOEFL에서 어휘 및 작문 부문 세계 최고점수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1970년엔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흉일”이 당선, 문단에 데뷔했다. 1998년 문학작품집 “이것이 정말 내가 쓰고 싶었던 글들이다”를 냈고, 2010년엔 두 번째 작품집 “전쟁과 사랑”을 출간했다. 이 작품집에 실린 단편 “다대포에서 생긴 일”은 한국비평문학회가 “2003년의 문제소설”로 선정하였고, 이 소설을 직접 영어로 다시 쓴 Heaven Knows What Happened at Dadaepo는 amazon.com에서 eBook으로도 나왔다.

미주동포들을 위해 쓴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은 1990년대 조선일보사가 “이것이 미국영어다” 전10권으로 재출간, 국내에서만 100만부 이상 보급되었고, 중국, 대만, 일본에서도 각각 그 나라 글로 번역 출판되었다. 1996~7년에는 “레미제라블” “파리의 노틀담”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씨이저” “왕자와 거지” 등 세계명작을 한영대역 만화로 재구성하여 조선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 워싱턴 교외에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메일 johbook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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