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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제의 가고싶은 가고시마

일본 최초 신혼여행객 료마부부가 찾았던 곳

기리시마(霧島)올레길과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글 | 조현제 남큐슈전문여행사 스토리투어 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5-21 오전 8:06:00

지난 3월2일에는 12번째 큐슈올레길 개장식이 열렸다. 제주올레길과 협약을 맺고 개설한 큐슈올레길이 어느새 12개에 이르런 것이다. 가고시마현에는 2012년 이브스키 올레길에 이어 2013년 2월에 기리시마 올레길이 새로 문을 열어 이제 가고시마현에서도 2개의 올레길을 걸으며 남큐슈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제주 올레길 관계자, 언론사, 그리고 여행사 관계자들과 함께 기리시마 올레길 개장식에 참석한 뒤 그 길을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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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시마 올레길의 시작점인 묘켄온천 (妙見温泉 ) 마을   사진: 가고시마 관광연맹>
 
기리시마 올레길은 기리시마시(霧島市)의 거의 중심부를 흐르는 아모리강변(天降)의 신카와계곡에 위치한 묘켄온천에서 출발하여 나라시대(서기 710~794년) 부터 있었다고 하는 와케온천(和気温泉), 이누카이폭포(犬飼滝), 와케신사(和気神社), 그리고 시오히타시온천(塩浸温泉) 료마공원에 이르는 11km의 코스이다. 코스는 100대 명산의 이름에 걸맞는 기리시마 연산의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서 산길과 숲길이 어우러져 자연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기면서 걷게끔 구성되어 있다.
 
코스의 중간 부분부터는 1866년에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데라다야사건(寺田屋事件)에서 다친 몸을 치료할 겸 그의 아내 오료(お龍)와 함께 신혼여행을 와서 걸었다는 ‘료마의 산책로’도 포함되어 있다. 코스의 종점은 사카모토료마와 오료가 온천을 즐겼다는 시오히타시온천 료마공원이다. 기리시마 올레길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역시 사카모토 료마와 관련한 부분이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중의 한 명인지라 수 많은 책과 드라마에 등장했으며 2010년에는 NHK대하드라마¡±료마전¡±에서 다시 한번 다루어져서 새롭게 조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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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료마는 에도막부를 넘어뜨리는 계기를 만든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당시의 막부는 외국의 요구를 거절할 힘도 없고 지방의 여러 번(藩)들을 다스릴 힘도 없었다.
이 때, 이와 같은 막부로서는 일본을 지켜낼 수 없으니, 천황을 중심으로 통일된 국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료마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료마는 막부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먼저 막부와 대항할 만한 강력한 힘을 가진 사쯔마번과 쵸슈번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그들의 동맹을 성공시킨다. 사쯔마번과 쵸슈번은 무력에 의해 막부를 쓰러뜨리려고 했지만, 료마는 내전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평화적으로 막부를 쓰러뜨리는 방법인 대정봉환( 大政奉還 : 1867년 10월 14일 에도 바쿠후[江戶幕府]의 쇼군[將軍]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가 통치권을 조정에 반납한 일)을 도사번에 제안한다. 이 안은 도사번으로부터 도쿠가와 막부에 건의되어 받아들여 지게 되며 그 결과 형식상으로는 막부가 소멸되었다.
 
료마가 이와 같은 큰 일을 이루어 낸 데에는 다른 사람과 다른 몇 가지 장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는데, 먼저 입장이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좋은 점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때에도 성공시킬 수 있는 행동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새로운 시대의 명확한 비젼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훌륭한 인맥을 폭넓게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료마가 후대의 사람들에게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은데 시바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에서 흥미를 북돋우기 위해서 실제 사실과는 다르게 서술하거나 지나치게 흥미위주의 사건들만 부각시켰다는 이야기 등이다. 어쨌거나 사쯔마번과 쵸슈번의 동맹을 이끌어 내어 메이지유신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는 일본인 사이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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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히타시온천 료마공원   사진: 기리시마시>
 
에도시대에는 번을 벗어날 때는 번의 허가가 필요해서 검문소를 통과할 때는 허가증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탈번(脱藩)이란 무허가로 번을 벗어나는 것으로서 지금으로 비유하면 여권없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에 해당한다. 1862년,28세의 나이로 탈번한 료마는 에도로 가서 개국론자인 가츠가이슈(勝海舟)를 암살하고자 했으나, 군비부족상태에서 외국세력을 물리치려고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며 서양에 대항할 만한 군비를 갖추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가츠에게 오히려 설득되어 그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나가사키에서 카메야마(亀山)라는 상사를 만들어 해운업, 항해술 연수등을 수행하다가 사츠마번과 쵸슈번의 동맹을 성공시킨다.
 
이로써 막부에 대항할 만한 세력이 탄생하게 되고 이를 성사시킨 료마는 막부의 위험인물로서 부상하게 된다. 사쯔마와 쵸슈번의 동맹을 성사시킨 이틀 후 교토근처의 데라다야(寺田屋)라는 곳에서 묵고 있던 중 막부측 무사의 습격을 받게 되지만 당시 데라다야에서 일하고 있던 오료(お龍)라는 여종업원의 기지로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자객들이 습격했을 당시 목욕중이던 오료는 직전에 낌새를 알아채고 거의 벗은 몸으로 유카타 하나만을 걸친채 2층으로 뛰어 올라가 료마에게 위험을 알렸다. 자객들에게 료마는 권총으로 대항하며 도망갔지만 손에 깊은 상처를 입고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오료는 곧 바로 사쯔마번의 병사들에게 사실을 알려서 료마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료의 재치에 좋은 감정을 느낀 료마는 오료를 아내로 맞아들이게 된다.
 
기가 세고 자유분방한 성격이라는 것이 오료를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다도 등에도 소양이 있었지만 가사에는 서툴렀고 정치에도 관심을 가졌던 여자였다고 한다. 당시의 남성에게는 별로 탐탁지 않은 타입이었지만 료마에게는 그 점이 매력으로 사랑에 빠진 요소가 되었다. 두 사람 모두 당시의 상식을 벗어 나는 사고의 소유자였던 듯하다.
1866년 3월에 사이고다카모리등의 권유로 데라다야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오료와의 신혼여행을 겸해서 가고시마의 기리시마로 온천여행을 가게 된다.
 
칼에 베인 상처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기리시마의 시오히타시온천에 갔는데 지금도 그 탕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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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마공원 족욕온천 : 료마가 사랑하는 아내 오료와 함께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이 때의 료마와 오료의 온천여행이 일본 최초의 허니문으로 알려져 있으며 료마와 오료는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객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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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히타시온천 료마공원    사진: 기리시마시>
 
료마가 신혼여행을 왔다고 알려진 시오히타시온천 료마공원은 메이지유신의 격동기를 살다간 료마의 흔적을 판넬과 서적 등으로 전시하고 있는 ‘료마자료관’, 데라다야에서 다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용한 시오히타시온천, 아내 오료와 함께 이용했다고 전해지는 족욕온천, 두사람의 신혼여행기념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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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카이폭포: 높이 36m, 폭22m의 호쾌한 모습이 장관이다. 
   사진 : 기리시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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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케신사(和気神社) 사진 : 기리시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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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시마신궁: 사카모토료마와 오료가 다카치호미네 등산후 참배했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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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료마와 오료의 온천방문기념비   사진:기리시마시 료마공원>

기리시마 올레길 묘켄코스는 일본의 근대화의 기초를 구축한 사카모토료마가 아내 오료와 함께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지로 방문한 곳을 더듬는 코스이다.
 온천지 기리시마를 대표하는 묘켄온천을 출발점으로 해서 계곡과 전원지대의 전망에 더해서 이누카이폭포와 같은 힐링포인트를 맛볼수 있다. 종착점인 시오히타시 온천료마 공원에는 온천시설에 더해서 무료의 족욕온천도 있어서 걸으면서 쌓인 피로도 가뿐하게 해소할 수 있다.기리시마시장을 비롯한 지역주민들은 사랑과 치유의 코스 기리시마 올레길을 걸으면 인연이 더욱 깊어지고 치유를 받을 수 있다며 걷기를 권한다. 참담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요즈음이라면 그 곳이 어디가 되었던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잠시라도 머물다 오고 싶다.
칼럼니스트 사진

조현제 남큐슈전문여행사 스토리투어 대표

일본 남큐슈 최대의 여행 레저그룹인 이와사키 그룹 서울사무소장을 맡아 오랬동안 일했다. 지금은 남큐슈 전문여행사 스토리투어 대표로 '여행을 통한 일본 제대로 알기'에 힘을 쏟고있다.

등록일 : 2014-05-21 오전 8:06:00   |  수정일 : 2014-05-2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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