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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우리들의 '쌍문동 시절'에 바치는 오마주

글 | 하주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2016-01-1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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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19.6%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종영한 <응답하라 1988>

시청률 19.6%.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최종회가 남긴 대기록이다. 일명 '응팔'은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래왔듯 방영기간 내내 많은 화제를 남겼다. ‘이런 기세라면 <응답하라 임진왜란>까지 제작되겠다’, ‘남편이 정환이에서 택이로 갑자기 바뀐 게 아니냐’, ‘언제까지 남편만 찾을 거냐’는 등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열띤 시청평이 이어졌다.

이쯤 되면 재미없어질 때가 됐다 싶었다. 이번엔 안보고 넘기리라 하다가 결국엔 못 견디고 본방 사수 행렬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그 때 본 대목이 정봉이 아버지가 입원을 하는 장면이다. 
 
  운동이라곤 안하던 사람이 달밤에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운동이랍시고 하다가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런데 글쎄, 그 다음 장면에서 이웃들이 수술실 앞에 나란히 앉아서 기다리는 거다. 보고 있으려니 문득 기시감이 가만히 흘러왔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이었다. 초등학교 몇 학년 때였을까, 3학년이나 4학년쯤이었을 거다. 단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위층 사는 가족이 변을 당했다. 그 집 큰 아들은 나와 동갑, 같은 반이기도 했던 소꿉 친구였다. 지방 출장을 다녀오던 그 집 가장의 자가용이 전복 사고를 당했다.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에서 달려든 트럭을 피하려다 일어난 일이었다고 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그날 밤 동네 사는 고만고만한 꼬마들은 모두 한 집에 모여서 자야했다. 어른들은 모두 병원으로 몰려갔다. 의식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몰리지 않을까 밥도 못먹고 서둘러 떠나는 어른도 있었다.
 
그날 밤, 어느 집 거실에선가 아이들 틈에 껴 자고 있을 때였다. 한순간 잠이 깼다. ‘아이들 돌봄조’로 남아있던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애써 낮추며 통화하는 소리였다. 웅얼웅얼 뭐라 하는 말끝에 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아 뭔가 잘못됐구나’
 
돌아보면 그 순간이 죽음의 실체를 처음으로 느낀 때였다. 아빠 없는 아이가 될 친구의 모습이 자동으로 그려졌다. 빈소에서도 이웃들은 함께였다. ‘주희야, 이런 곳 어색하지?’ 소복을 입고 벌겋게 부은 눈을 해서 나를 붙들고 묻던 아주머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의 행동은 한순간이라도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조의며, 사고 얘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나온 일종의 회피 행동이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아니요 괜찮은데요.라고 답했었다. ‘네, 어색해요’라거나 ‘이상하다’고 하면 아주머니가 더 슬퍼질 것 같아서였다.
 
상을 치른 후에도 ‘보상을 잘 받아야 할텐데’, ‘아저씨가 생전에 국가 자격증을 여러 개 따놓은 덕에 보상 금액이 올라가서 다행이다’는 등의 대화들이 오랫동안 동네에 떠다녔다. 그 가족은 남편의 기억이 있는 곳에서 살 수 없다며 결국 동네를 떠났다. 몇 년 후 우리집도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다. 그렇게 나의 ‘쌍문동 시절’은 막을 내렸다.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립고 슬퍼진다. 하루키식으로 표현하면 ‘다만 한 줄기 바람도 불어오지 않는 밤에 내리는 눈처럼 그냥 마음에 조용히 쌓여가는 그런 애달픈’ 슬픔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응팔이 40대는 물론, 30대 이상의 시청자들에게 골고루 인기를 얻은 것은 아마 약간은 진부한 남편 찾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얼마쯤은 품고 있을 그리운 쌍문동 시절을 따사롭게 보여줬기 때문이리라. 어린 세대는 어떨까. 과연 우리 아이들은 덕선이네와 정환이네, 택이네 이야기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건져낼 수 있을까. 가족 외의 사람들과 깊은 유대를 쌓아가며 웃고 우는 경험을 해낼 수 있을까. 우리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등록일 : 2016-01-19 09:50   |  수정일 : 2016-02-2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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