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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하주희 기자의 살며, 생각하며, 배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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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뷸런스에 실려가며 뼈저리게 느낀 것 한 가지는?

나의 앰뷸런스 탑승기

글 | 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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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유난히도 앰뷸런스와 조우할 일이 잦았다.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당신은 지난 10년간 얼마나 자주 앰뷸런스를 타거나 불러봤나요?’라는 둥의 질문을 던져본 건 아니다. 그냥 평균적인 사고방식에 기반해서 나의 경우는 좀 자주였던 것 같다고 추측해보는 거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길을 가는데 앞에서 사람이 갑자기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거나, 청소년 하나가 집단구타를 당하는 걸 봤다거나(아 이건 경찰서에 연락한 경우구나) 하는 식이다.
 
월간조선에 입사한 직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인쇄소에 가서 갓 인쇄된 그 달의 월간조선을 몇 권 광화문 사무실로 옮겨오는 길이었다. 차로 마포대교를 건널 때였다. 낮시간 소통은 원활했다. 마치 틀린그림찾기 같았다. 생각 없이 지켜보던 창문 너머 풍경 속에서 순간적으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 난간에 기대있던 중년 남자 한 명이 사라진 거였다. ‘방금 그게 뭐였지?’라는 질문과 투신이라는 대답이 거의 동시에 떠올랐다. 바로 119를 누르고 대략적인 위치를 설명했다. 마포대교 남단 쪽 원효대교 방향 난간 등등... 그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시간이 약간 흐른 후 소방서에 문의했다. 수난구조대와 기타 관련 기관 여러 군데에 조회를 해봐야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가 무사하길 바랄 뿐이다.
 
가장 최근에는 사거리에서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정면 충돌을 목격하기도 했다. 언어로 옮기기 힘든 괴상한 충돌음 후의 정적이란.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그 기묘했던 정적만 생각난다. 오토바이와 함께 붕 떴다 떨어진 어려보이는 남자아이가 온몸을 떠는 걸 보면서 119에 재촉전화를 몇 번 했는지 모르겠다. 세월호 사고 직후여서 그랬을까, 길가에 있던 목격자들은 질려버렸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런 사고라면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들이었다.
 
다행히 이런 식으로 앰뷸런스를 불러만 봤지 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금요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앰뷸런스를 탔다. 물론 환자로서였다. 약간 창피해서 자세한 경위는 밝히고 싶지 않지만, 왠지 숨기면 더한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니 간략히 쓰자면, 그것은 일상의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재난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구체적으로 쓰자면, 아침에 머리를 감다가 허리에 강한 통증, 적확히는 요추 염좌가 왔다. 일상어로 표현하자면 허리를 삐끗했다. 이래서 내가 경위를 쓰지 않으려고 한 거다. 너무나도 사소하게 들리지 않는가. 통증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침대로 겨우 기어가 누웠다. ‘누워있으면 나아질거야, , 누워있으면 많은 통증이 사라지지...’ 스스로 세뇌를 하며 한시간인가 누워있었지만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려고만 하면 통증이 되살아났다. 나중엔 퇴행현상까지 나타났다. ‘나는 못일어나는 게 아니다. 다만 누워서 쉬고 있는 것이다정신승리식의 자기 세뇌까지 하는 것이었다.
 
손가락은 너무도 멀쩡했던지라 부서 단체채팅방에 상황을 알렸더니 ‘119에 연락해 병원으로 가라는 조언이 빗발쳤다. 그러나 멀쩡한 손꾸락은 119만은 누르지 못하는 것이었다. 말그대로 긴급전화인데 내가 전화해 내 입으로 나를 좀 병원으로 옮겨주시오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 아닐까 온갖 자기 검열이 작동했다. 그 때까지는 아픈 원인을 몰랐으니까 한편으론 겁도 났다. ‘이럴 때를 위해 세금을 내는거야!’ 후배의 힐난에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구조대에 주소를 댔다. 대문 비밀번호까지 알려줘야 했다.
 
정확히 5분 뒤 상태를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받은 본인이 환잔데 너무나 멀쩡한 목소리였기에 피차 약간 민망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침대를 벗어나 거실로 나왔다. 3분후 아파트 문이 열리고 구조대원 두 분이 들어왔다. 아구구구, 예의상 아픈 척이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마치 애프터서비스에 들고가니 멀쩡해진 전자제품처럼 어쩐지 통증이 가시는 것도 같았다. 어떡한담. 다행히 허리를 펴고 일어서려는순간 통증이 다시 돌아왔다.
 
한 분은 간단히 상태를 확인했다. 다른 한 분은 친절히 그러나 역시 약간 창피하게 온방을 헤집고 다니며 양말과 겉옷을 찾아서 가져다 주셨다. 통증보다 민망함을 더 느끼며 휠체어로 변신한 이동용 침상에 올라앉았다.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여의도성모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앰뷸런스 안에 타보다니! 그것도 이렇게 멀쩡한 정신으로 말이야!
 
이상한 감격이 스멀스멀 사라져가자, 비로소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낡은 혈압계며 다소 오래되어 보이는 기기들. 얼마나 많은 생명이 이 자리에서 생의 고비를 기어올랐을까. 그런데 순간 몸이 꽤 많이 흔들렸다. 급정거 때문이었다. 상황을 짐작해 보건데 사이렌을 울리며 빠르게 가다가 비켜주지 않는 차들에 막힌 탓인 듯 했다.
 
요즘엔 차들이 앰뷸런스에 양보를 많이 하나요?” 묻자, 노국환 구조대원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양보는요 뭘... 저희도 사고날까봐 속도를 많이 못 낼 지경이예요. 실제로 사고도 많이 납니다. 조심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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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뷸런스를 보면 사진을 찍는 버릇이 생겼다. 지난 11월 7일 도쿄에서 목격한 장면. 사거리 전방향의 차들이 약속한듯이 멈춰서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사람들도 가만히 서있긴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문득 캐나다에서 목격한 장면이 생각났다. (그 곳에서도 여지없이 앰뷸런스와 조우했다.) 캐나다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운전을 하며 어딜 가고 있었는데 저 멀리 어딘가에서 아련하게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먼 곳에서 조금씩 다가오는 그 소리는 바로 사이렌 소리.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도로 위의 모든 차가 일시에 멈추는 것이었다. 왕복 6차선 정도였던 것 같다. ‘하고 소리가 났다고 착각할만큼 너나할 것 없이 모든 차가 동시에 멈추는 풍경이 마치 매스게임같았다. 덩달아 나도 차를 멈춰세웠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운전대를 잡고 눈치를 봤다. 갑자기 차 사이를 요리조리 오가며 앰뷸런스가 재빠르게 지나갔다. 그제야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마치 생명 사랑 퍼포먼스에라도 참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알고보니 캐나다에서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본인이 아무래도 진로 장애가 될 것 같은지 앰뷸런스가 오기 전에 재빨리 차를 움직여 도로 중앙 화단으로 차를 움직여 바퀴를 걸쳐놓는 차도 봤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일본 출장길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봤다.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약속한 듯이 모든 차가 멈췄다.
 
한국은 어떨까. 특별히 동족을 비하하고 싶어 이상한 예를 고른 건 아니지만 앰뷸런스 뒤에 바싹 붙어 밀리는 도로를 빠져나가는 차도 봤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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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1일 서울 종로 르메이에르 건물 앞 풍경. 사이렌을 울리며 재촉하는데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과 아랑곳않고 움직이는 자동차.

 
앰뷸런스를 직접 타보니 왜 양보가 중요한 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골든 타임의 문제도 있지만 가는 과정에서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었다. 양보를 안하니 급정거가 잦아지고 그 때마다 통증이 더해지는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이롱 환자도 이런데 촌각을 다투는 위중한 환자라면 더할 터다. 동승한 구조대원의 안전도 마찬가지다. 응급조치를 하는 도중에 차가 급정거하면 위험하다. 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혈압을 재던 구조대원의 몸이 강하게 흔들리는 걸 기자가 직접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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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뷸런스 내부 사진은 찍지 못했다. 통증이 심해서 셔터를....이라기보다는 찍을 생각도 못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야 한 장 찍었다. 임무 완수 후 떠나기 직전의 구조대원의 모습.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119에 전화를 하고 약 30분의 시간이 흘렀다. 응급실은 생각보다는 한산했다. 천식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할머님과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중년 남성 근처의 침상으로 배정됐다. 구조대원은 인적사항 등록까지 도와준 후 황급히 사라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보호자(?)였던 사람이어서일까. 순간 외로워졌다. 나의 이 불편하고 괴상스런 하루가 그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겠지. 어느새 침대위 발치에 놓여있는 가방과 외투를 확인했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무 것도 아닌 환자16쯤이 되어 의사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등록일 : 2015-12-07 08:46   |  수정일 : 2016-02-2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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