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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의 살며, 생각하며, 배우며

지중해의 평화 로도스섬 기행...이곳에 6.25 직후 한국인들이 살았다 !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을 떠올렸다

글 | 하주희 주간조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2015-10-23 10:37

▲ 로도스 남부 린도스는 도시국가였던 시절의 유적과 함께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다.
여객선은 아침 9시에 출발했다. 멀어지는 터키 페티예 항구를 돌아보면서도 어쩐지 국경을 넘고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빽빽하게 손님을 태운 여객선은 1시간40분 후면 그리스 로도스에 도착한다. 9월 6일, 청명한 아침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지명을 생전 처음 들어본 날, 그곳으로 가는 표를 끊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라고 말하면 이 땅의 배낭여행객들을 모독하는 걸까. 게으름을 피우다 출발일이 코앞에 닥쳐야 후다닥 일정을 짜는 나 같은 사람한테나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출국을 일주일쯤 앞두고 네이버의 유럽 여행 전문 카페인 ‘유랑’에 접속해 터키 여행기를 황급히 뒤져봤다. 터키 출장 일정이 약간 바뀌어 후반기 일정을 홀로 보내게 된 터다. 몇 개의 여행기를 읽다 보니 생소한 지명이 눈에 띄었다. ‘로도스(Rhodos)’.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자들은 터키를 여행하다, 배를 타고 그리스 산토리니로 건너가기 위해 로도스에 들르는 듯했다. ‘배 시간을 기다리며 몇 시간 남짓 있었는데 의외로 좋았던 곳’이란 짤막한 평이 주된 감상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해 인터넷을 헤맸다. 로도스에 거주하는 한국인 교민이 쓴 글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그는 로도스의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그리스인과 결혼해 정착한 경우였다. 주그리스 한국대사관에서 로도스 ‘유일 한국인’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했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고 한다
. 길을 가다 한글로 ‘태권도’라 쓰여 있는 전단지를 발견하고, 혹시 사범이 한국인일까 먼 거리를 달려가 보기도 했단다.(물론 사범은 그리스인이었다.)
   
   
▲ 린도스에는 유적지 일대를 중심으로 약 200여마리의 당나귀 택시가 운행 중이다.

   한국전쟁 직후 로도스에 살았던 한국인
   
   그런 그에게 그리스인 친척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1950년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로도스로 이민 온 한국인을 만난 적이 있다는 것. 진짜 한국인이었을까, 지금도 생존하고 있을까. 이야기를 들은 후, 중국인 거주 지역에 가서 수소문을 해봤다고 한다. ‘이’라는 성을 가진 한국인이었다는 건 알아냈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이 로도스 교민의 글을 읽으며 남중국해를 지나다 실종된,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을 떠올렸다. 가끔 내가 속한 사회에서 탈퇴하고 싶어질 때면, 문득문득 공상을 했다. 이명준은 ‘광장’을 찾았을까. 항구에 도착하니 과연 오래된 성벽이 늘어서 있다. 도시국가 시절의 유산이다. 성벽 안을 들어서니 북적북적 관광객들이 보인다. 여행기에서 얻은 정보는 이제 바닥났다. 급하게 예약한 숙소는 성벽 안의 구도심이 아닌 신시가지에 위치해 있다. 구도심은 관광객용 거리이고, 현지인들은 주로 신시가지에서 거주한다. 로도스섬 전체 면적은 제주도의 4분의 3가량, 로도스 시내 자체는 그리 크지 않다. 걸어서 한 시간이면 시내 전체를 대략적으로 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혼자 조용히 보내는 히키코모리 여행’이었기에 부러 신시가지를 택했다. 초장부터 호텔 위치가 헛갈려 수십 명의 그리스인들에게 가식적인 미소를 건네며 지도를 들이밀어야 했던 약간의 시련이 있었지만 말이다. 변명을 해보자면,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는데, 길거리에 지나치게 그리스어밖에 없었다.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나 건물 이름이 죄다 그리스어였다. 그리스어 알파벳이라도 알아뒀으면 좋으련만, 뜻은커녕 발음조차 읽어낼 수 없었다. 큰 건물을 한참 들여다보다, 답답해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안고 들어가 아무나 붙잡고 ‘여기는 뭐하는 곳입니까’ 물어봤을 정도다. 상대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초등학교’라고 대답해줬다. 변명을 더 해보자면 딱 관공서처럼 생긴 건물이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아담한 호텔에 체크인을 한 후, 길을 나섰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수신음이 계속 울린다. 그리스행을 비난하거나 우려하는 메시지들이었다. 유형은 대략 세 가지. 1. 그리스 국가 부도 사태로 인해 혼란이 일어났다는데 거길 왜 갔냐. 2. 난민이 몰려간다던데 빨리 돌아와라. 3. 국가 부도가 난 곳에 난민까지 몰려간다니 조기 귀국하시오.
   
   
▲ 로도스 타운 구시가지에는 성요한 기사단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완만한 오르막의 ‘기사의 거리’ 끝에 다다르면 그랜드 마스터(기사단장)의 궁전에 닿는다.

   평온한 로도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리스에서 돌아올 때까지 은행 앞에 줄을 서 있는 그리스인들이나 바다에서 헤엄쳐 나오는 난민들은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다. 로도스섬은 그리스 본토와 섬 지역을 통틀어 내수경제가 가장 잘 돌아가는 지역 축에 든다.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는 로도스와 크레타가 그리스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물론 관광객으로서 한정된 곳만 본 탓일 테지만, 부도의 상흔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박물관이나 유적지 등 공공시설의 입장료가 지난해 대비 오른 걸 알아챈 정도다. 오른 정도가 좀 미묘했는데, 당황스러울 정도지만 구태여 항의까지 하고 싶지는 않을 만큼 올린다. 예를 들면 15유로였던 것이 몇 달 만에 20유로가 되는 정도. 게다가 유적지 안내데스크에서 지도를 돈 받고 판다. 유적지 입장료도 받으면서 말이다. 로도스섬의 주요 관광지인 린도스에서 직접 겪은 일이다. ‘그리스 정부의 살라미 전술’이라고 이름 지어 봤다. 난민 사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일부 언론은 로도스도 난민 때문에 아수라장이 된 것처럼 보도했지만, (적어도) 관광객이 가는 지역은 완벽한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청을 찾아나섰다. 관공서인 줄 알고 초등학교로 뛰어들어 가는 등의 약간의 사고를 겪었지만 어쨌든 찾아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남자 직원을 포함 약 네댓 명의 시청 공무원에게 차례로 인계되며, 곧 이사갈 것처럼 서류뭉치가 쌓여 있는 복도와 복도보다 약간 나은 상태의 인테리어를 갖춘 네 군데의 사무실을 거쳐 간신히 영어를 하는 직원과 전화로 연결됐다. ‘혹시 한국전쟁 후 로도스로 이민 온 한국인이 있는지’ 물었다. ‘이름을 아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당황하며 이름은 모른다고 하자, ‘이름을 모르는데 어떻게 찾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혹시 로도스의 현대사나 향토사를 연구하는 학자나, 단체가 있는지’ 묻자, ‘로도스엔 대학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본의 아니게 시청 곳곳을 떠도는 동안 머리가 약간 아파온 게 어떤 냄새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를테면 ‘무능의 냄새’ 말이다.
   
▲ 구시가지의 상점들.

   어쨌든 고맙다고 웅얼대며 시청을 나섰다. 통신사 대리점을 찾아나섰다. 휴대전화의 유심칩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이 바꿔 놓은 수천 가지 중 하나가 바로 배낭여행을 하는 방법이다. 현지 로밍 외에도, 그 나라 통신사에서 유심칩을 구입해 자신의 휴대전화에 끼워 놓으면 어디서든 저렴하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트립어드바이저’ 같은 앱은 게으른 여행자가 자신 있게 국경을 건널 수 있게 해준다. 두껍고 무거운 ‘론리플래닛’의 시대는 아쉽지만 저물었다. 스마트폰은 필수품이 됐다. 관광객들은 인종이나 국적을 넘어서 ‘아이폰을 쓰는 사람인가, 갤럭시를 쓰는 사람인가’로 서로를 인식할 정도다. 기자는 아이폰6를 쓰고 있다. 꽤 여러 번 옆에 있던 사람이 다짜고짜 ‘식스(six)?’라고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소매치기가 노리는 것도 스마트폰이다. 기자는 외국에서 뭔가 도난당하면, 현지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한다.(사실 도난인지 분실인지 구별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덜렁거리는 성격 탓에 자주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경찰서에서 폴리스리포트를 받는 동안 그 나라의 공공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일별할 수 있어서다.(핑계일까.) 이번 여행에서도 몇 가지 물건의 부재를 발견해 경찰서에 들렀다. 아예 분실신고용 부스가 따로 있다. 그 앞에 서니 ‘휴대전화 잃어버렸냐’는 질문이 날아온다. 모든 게 느리다. 30분 넘게 기다려 리포트를 발급받았다. 경찰서 분실신고과는 평일 오후 2시까지만 ‘영업’한단다.
   
   
▲ 린도스 해변이 보이는 곳에 세워진 아테나 신전. 복원 중이다.

   서양과 동양의 경계, 로도스
   
   트립어드바이저 앱을 켜고, 추천 식당을 찾아갔다. 기로스를 주문하니, 국적을 묻는다. 뜻밖에 남북한 이산가족 얘기를 꺼낸다. 비극이라며 고개를 흔든다. 가족의 유대를 굉장히 중요시한다는 그리스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나귀 택시’와 아름다운 골목길로 유명한 린도스와 아름다운 해변을 들러봤을 뿐인데 4박5일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구시가지에는 ‘그랜드 마스터의 궁전’ ‘기사의 거리’ 등의 유적지가 남아 있다. 형태는 다르지만 주제는 하나다. ‘이슬람과의 불화’. 주인공은 오스만제국의 전설적인 황제 ‘슐레이만 1세’(1494~1566)다. 잇따른 원정 전투 승리로 주변 국가를 제압하고 제국을 전성기로 이끈 술탄이다. 덜덜거리는 페리로도 1시간 반이면 오갈 만큼 터키 본토에서 가까이 있는 로도스섬이 무사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로도스섬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집트 쪽으로 가는 뱃길의 길목에 있다. 20만명이 넘는 대군이 로도스섬으로 몰려왔다. 십자군전쟁 이후 로도스섬에 흘러와 지배하고 있던 성요한 기사단은 필사적으로 방어했지만 결국 항복했다. 전략적 요충지의 운명. 슐레이만은 이들이 무기와 자산을 다 들고 떠날 수 있도록 해줬다. 기사단은 몰타섬으로 이주했다.
   
   사실 이 모든 건 ‘영화관’ 덕에 알았다. ‘헬리오스’라는 이름의 입체영화 상영관에서는 영어로 된 짤막한 영상물을 하루 종일 상영한다. 로도스섬의 역사를 영어 내레이션이 곁들여진 4D영상으로 보여준다. 트립어드바이저 앱에서 로도스 방문코스 1위인 이유가 있었다. 로도스의 그 어떤 공적인 안내책자와 안내소의 가이드보다도 알기 쉽게 로도스의 역사를 알려준다. 재밌는 사실은, 이 영화관이 타지 그리스인이 운영하는 영리 사업장이라는 것이다. 입장료도 꽤 비싸다. 우연히 이곳의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심지어 그는 나의 ‘이명준 찾기’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 자리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수배해주기도 했다. 그에게서 로도스에 버젓이 대학이 있다는 사실도 들었다. 그를 여정 마지막 날에 알게 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식당에 연락해 봤지만 그 사이 바뀌었는지 베트남계 그리스인이 주인인 듯했다.) 갑자기 시청 직원과의 전화 대화가 떠올라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영화관을 나서자 거리 풍경이 어쩐지 다르게 보였다. 동양과 서양이 오랜 기간, 끊임없이 서로에게 손과 칼을 내밀었던 경계의 현장에 나는 서 있다. 시간을 길게 늘여 본다면 그리스로 건너오는 시리아의 난민 사태도, 장구한 동서양 교류사의 연장선상에 있는지 모른다. 세계에 대한 인식마저 한반도에 갇혀 있었을까. 침략이라면 로도스 못지않게 당한 한반도라는 곳이 바로 내가 되돌아갈 곳이다. 한국전쟁 직후 중립국을 택한 76인은 대부분 남미로 재이주하고 일부는 고국으로 귀환했다. 나의 눈길은 이명준이 아닌, 난민들의 신산한 삶을 좇아야 할 터다. 로도스를 떠나기 위해 항구로 향하는 짐가방이 왠지 올 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등록일 : 2015-10-23 10:37   |  수정일 : 2017-11-1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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