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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하주희 기자의 살며, 생각하며, 배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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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투르크의 古都-'푸른 부르사', 이즈니크 도기 공방

터키 실크로드 기행1-부르사와 이즈니크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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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로 가는 비행기 안, 자못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11시간이 넘는 긴 비행시간에 지친 참이었다. 기내 영화를 뒤적거리다, 잉그리드 버그만(Bergman)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발견했다. 잉그리드 버그만 하면 출세작 <카사블랑카(Casablanca)>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글쎄, 그런데 그 <카사블랑카>쪽대본으로 급히 제작한 졸작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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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사블랑카>의 한장면. 왼쪽부터 라즐로(폴 헨레이드), 일자(잉그리드 버그만), 릭(험프리 보가트)

이 미친 세상에서 우리 세 사람이 함께 행복할 수는 없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둘 다 의역의 힘을 빈 한국판 명대사이긴 하다) 등의 명대사가 현장에서 급히 휘갈기다시피 한 대본에서 탄생했다니, 글 쓰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카사블랑카>에는 라즐로라는 인물이 나온다. 일자(잉그리드 버그만)의 남편이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다. 바로 쿠덴호프 칼레르기(Coudenhove-Kalergi). 오스트리아의 백작이었던 그는 우애(fraternity)’를 통해 유럽 대륙에 평화를 가져오자고 주장했다. 바로 범유럽주의. 유럽 통합이라는 패러다임이 그에 의해 제시됐다. 생전엔 유토피아 수준의 꿈같은 얘기로 취급받았던 그의 이상은 사후에 현실로 이뤄졌다. 그가 유럽 통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다.
 
매년 한차례 열리는 실크로드 시장포럼  
 
터키 부르사(Bursa)에서 열리는 실크로드 시장포럼(SRMF)’ 총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다. 1년에 한차례, 실크로드가 지나는 도시들의 시장이 모여 교류를 하는 행사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았다. 주최 측은 세계시민기구(WCO, World Citizens Organization)라는 단체다. 지난해엔 중국의 우루무치가 주관해 열고, 올해는 터키의 부르사가 주관하는 식으로 각 도시들이 돌아가며 포럼을 연다.
 
  WCO는 순수 민간차원의 시민단체다. 곽영훈 사람과환경그룹 회장이 1987년에 설립했다. 1987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중요한 해다. 6월 항쟁의 열기가 식자마자, KAL기 폭발 사건이 일어났다. 곽 회장은 이듬해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하계 올림픽이 과연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을지 해외에서 일었던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단체를 만들었다고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유학파인 탓에 해외 사정에 상대적으로 밝았던 덕이었을 터다. 곽 회장은 미국 MIT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도시설계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을 수료했고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엔 한국의 주요 랜드마크(land mark)를 설계했다. 방이동 올림픽공원이 대표적인 그의 작품이다. 대학로 정비와 영종도 배후도시도 그가 맡아 설계했다.
WCO의 첫 임무는 서울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곽 회장의 설명이다.
민간 차원에서 세계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운동을 벌였어요. 윤보선·함석헌·이태영·서영훈·한경직·구상·문태갑씨 등 뜻이 맞는 인사들과 함께 했습니다. SAO(Seoul Assembly Olympeace)라는 걸 만들어 세계 각국의 정치인·학자·과학자·운동선수들에게 올림픽 참가를 독려하는 편지를 보냈어요. 이때부터 WCO의 활동이 시작된 셈이지요.”
 
평온한 마르마라해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92일 저녁 8, 공항은 대낮처럼 붐비었다. 목적지인 부르사까지는 차로 약 2시간 거리. 중간에 페리도 탄다. 차에 탄 채로 탑승하는 페리는 마르마라(Marmara)해를 오간다. 양철 쟁반을 든 남자들이 보였다. 쟁반 위에는 프레첼(pretzel)처럼 생긴 빵이 잔뜩 얹혀 있다. 승객을 쫓아 페리 안에까지 들어왔다가 배가 출발하기 전에 나간다. 시미트(simit)를 파는 길거리 상인이다. 시미트는 터키의 주식 중 하나란다. 처음 먹었을 땐 질긴 식감 외에는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 몇 번 먹으니 담백한 맛과 표면에 가득 뿌려진 깨의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나중엔 이따금 그 맛이 생각나 몇 번이나 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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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사행 페리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차량 행렬

배 위에서 보는 마르마라해는 평온해 보였다. 마르마라해와 흑해를 잇는 게 보스포러스(Bosporus)해협이다. 낯선 곳을 갈 때 책을 몇 권 가져가곤 한다. 이번에 챙긴 책은 여행가이자 사진가인 후지와라 산야의 <동양기행>이다. 그의 동양의 시작점이 바로 보스포러스였다. 후지와라의 보스포러스는 춥고 어둡고 축축하다. 세월이 흘렀기 때문일까. 계절의 차이일까. 늦여름 부르사로 가는 페리 안의 풍경은 화기애애하다거나 웃음이 넘친다거나 하진 않지만, 안락하고 평화로웠다. 탑승객들의 표정도 뽀송하니 밝았다. 컴퓨터그래픽인가 싶을 정도로 달은 선명하고 컸다. 누군가 고즈넉한 분위기에 맞춰 노래를 시작한데도 흔쾌히 들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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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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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안의 매점 풍경

부르사는 터키에서 4번째로 번성한 도시다. 인구는 약 180만 명. 오스만 튀르크의 첫 번째 수도였다. 제국이 커지며 28년간 지키던 수도 자리를 내줘야 했다. 유서 깊은 도시답게 곳곳에 유적지가 제법 있다. 도심에 공원과 정원이 많아 푸른 부르사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포럼의 공식 일정은 94일에 시작한다. 전날인 93, 근방에 있는 작은 도시 이즈니크로 향했다. 우선 아야소피아 사원을 둘러봤다. 원래는 기독교 교회였는데 박물관 겸 현재는 이슬람 사원으로 쓰인다. 이슬람 세력권에 편입된 후 성상 벽화나 십자가상이 있었던 곳 등이 훼손되었다. 포를 뜨듯 벽 표면을 들어내는 식이다. 들어내기 힘든 부분은 표면을 쪼아놨다.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 교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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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니크에 있는 아야소피아 자미. 자미(camii)는 모스크(사원)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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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당한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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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 부분도 빼놓지 않고 훼손했다.

터키 영토 중 유럽 가까이 위치한 곳에는 그런 유적지가 여러 군데 있다. 전 주인의 흔적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운 집요함이 약간 질릴 정도라는 생각은 들지만, 묘하게도 나쁘다거나 옳지 못하다는 식의 가치 판단은 의식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나와 먼 이들이란 생각 때문일까. 태어나면서부터 짊어져야 하는 원한 혹은 죄책감 그 어느 것과도 상관없이 그저 타인의 시선으로 볼 수 있어서 말이다.
 
그보다는 길거리에서 종교색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터키에서 마주했기 때문이리라. 여성들은 부르카를 쓴 채 눈만 내놓고 다니고, 때 되면 코란 암송이 울려퍼지는 곳에서 목격했다면 느낌이 사뭇 달랐을 터다.
 잘 알려져 있듯 터키는 이슬람권 국가 중 유일하게 종교와 정치를 엄격히 분리한 국가다. 여성들의 복장도 자유롭다. 일부다처제도 법으로 금지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전 대통령의 업적이다. 터키가 이슬람 국가 중 (여러 면에서) 가장 발전한 것은 터키의 국부로 추앙받는 아타튀르크의 공이 크다.
 공과 사 양쪽 측면에서 별다른 흠결이 없어서인지, 아타튀르크는 지금까지도 터키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터키의 거리를 지나다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게 바로 터키 국기나 아타튀르크의 이름이 적힌 깃발이다. 상점이든 일반 주택이든 가리지 않는다. 모든 집에 시도 때도 없이 국기가 걸려 있다면 좀 곤란하겠지만, 그 정도라면 괜찮아보였다. 진영 논리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기릴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는 건 어쨌거나 부러운 일이다.
 
이즈니크의 특산품, 도기
 
전통이라는 게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이즈니크의 공방을 둘러보며 든 감상이다. 이즈니크는 도기를 잘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역사가 꽤 깊다. 미술사학자들은 이즈니크의 도기가 중국 명나라 시기의 청화백자와 페르시아풍 도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한다. 오스만 튀르크 시대의 아름다운 건축물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나 톱카프 궁전도 이즈니크산()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이즈니크에는 지금도 도기 공방 거리가 있다. 그 중 한곳의 공방에 들어가 직접 도기를 만져봤다. 특유의 문양도 아름다웠지만, 무게가 상당히 가볍다는 게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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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에서 이즈니크산 도기 제작과정을 견학했다. 도기의 재료는 석영이다. 석영을 갈아 그 가루를 쑤어 도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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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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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를 만든 다음 채색을 하고 다시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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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특유의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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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 전경. 여성들이 채색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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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도기. 상당히 가벼운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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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근 상점에서 실제로 판매하고 있는 이즈니크 도기



등록일 : 2015-09-24 15:23   |  수정일 : 2015-09-3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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