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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의 살며, 생각하며, 배우며

모바일 시대의 신(新) 보부상, '구대업자'를 아시나요?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2015-08-3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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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대행을 해주는 일명 '구대업자'들은 패밀리세일 등 높은 할인율에 재고를 처리하는 곳을 순회한다.

  27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리베라호텔 3. 한 여성의류브랜드의 패밀리세일이 열렸다. 패밀리세일(family sale)은 이월상품 등을 한데 모아놓고 할인 가격에 파는 행사를 말한다. 원래는 패밀리’, 즉 업체에서 선정한 단골 고객이나 임직원의 가족 등 제한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행사를 뜻했다. 지금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행사로 그 의미가 변했다.
패밀리세일 현장 곳곳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다. 혼자 다니는 사람도 있고, 두세 명이 조를 이룬 팀도 있다. 옷들을 차례로 촬영해 인터넷 카페에 올리고, 직원에게 재고를 묻는 등 바쁘게 움직인다. 이들은 바로 구매대행을 해주는 사람들이다. ‘구대업자라고도 불린다. 쉽게 말해 물건을 대신 사다주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각자 속해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는 구대카페로 일컬어진다.
 
50만원짜리를 5만원에 구매대행해줘
 
사실 물건을 사다 파는 집단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조선시대의 보부상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구대업자들도 그 역할은 비슷하다. 대신 사다주는 물건의 성격은 조금 다르다. 이들은 수시로 열리는 패밀리세일이나 정리세일 현장을 순회한다. 정가와 비교해 가격이 많이 할인된 제품만을 주로 골라 구매대행을 해준다. 정가 50여만원 짜리 코트를 5만원에 사다주는 식이다. 직장이나 육아에 매어 있는 직장여성과 주부가 주 구매층이다. 그러다보니 거래의 대상이 되는 물품은 주로 여성복과 육아용품, 화장품 등이다. 물건을 직접 보고 사는 게 아니다보니 백화점 등에 입점해있고, 품질이 잘 알려진 브랜드 제품이 거래된다.
 
구매대행을 해주는 대가로 오가는 수수료는 통상 물품 가격의 10%. 수수료의 최하 금액은 5천원이다. , 5만 원 이하의 물품에 대한 수수료는 가격과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5천원, 5만 원 이상의 물품은 판매가에 10%를 더해서 주는 식이다. 구하기 힘든 희귀한 물품인 경우엔 10% 이상의 수수료가 붙기도 한다. 여기에 택배비가 추가된다.
 
구대를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널리 쓰이는 용어도 있다. ‘확정’, ‘패스’, ‘합배’, ‘입주’, ‘바잉등이다. 구매대행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모르면 잘 이해할 수 없는 용어다.
예를 들어, 재고 떨이 중인 여성복을 구대한다고 가정해보자. 구대업자가 현장으로 출동한다. 실시간으로 물건의 사진을 찍어 가격과 사이즈, 재고수량 등을 적어 카페에 게시글로 올린다. 원하는 제품이 올라오면 회원들은 원하는 사이즈, 수량을 적어 댓글을 단다. 이걸 줄을 선다고 표현한다. 보통 80~90% 할인가로 가격이 내려간 제품들은 수량이 몇 점 안된다. 당연히 경쟁이 치열하다. 게시글이 올라오자마자 1분 안에 댓글이 수십 개씩 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줄을 서면, 구대업자들은 댓글을 단 시간 순서대로 확정댓글을 재고 수량만큼 달아준다. 확정을 받았지만 구매의사가 없어진 경우에는 패스라고 다시 댓글을 단다. 구매 의사가 있다고 확답하면 구대업자는 그럼 바잉하겠다고 댓글을 달아준다. 그러면 즉시 입금을 하고 주문서를 보내야 한다. 이를 입주라고 표현한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구매대행을 해주기 때문에 보통 30분 안으로 입금해야 한다. 구대업자들은 주로 은행 이체로 대금을 받은 다음 물건을 구매해 보내준다. 일부 업자들은 카드 결제도 받아준다. 한 구대업자에게 여러 물품을 한꺼번에 구입한 경우엔 합배’, 합배송을 요청한다. 서로 택배비를 아낄 수 있다.
 
구매대행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2013년부터다. 2년 남짓한 기간 사이에 빠른 속도로 자리 잡았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 카페에는 수십여 개의 구대카페가 개설되어 있다. 요즘도 그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한 대형 구대카페는 회원수 7만 명 이상에 하루방문자가 6만 명 가까이 된다. 이 카페에서 한군데에서만 하루에 오고가는 거래금액이 어림잡아 수천만 원. 한 달이면 수억 원이다.
 
모피 세일할 땐 한번에 수천만원씩 구매
 
모피 등의 고가품의 패밀리세일이 열리면 거래금액은 단번에 수직상승한다. 실제로 지난 3월 진도모피의 패밀리세일이 열렸을 때, 한 구대카페에는 이번 세일기간동안 우리 카페에서 구입한 금액만 수천만 원이다. 회원들이 자랑스럽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실제로 거래가 활발한 카페의 구대업자들은 업계에서 우대를 받는다. 물건을 더 싼 가격으로 독점적으로 공급받는 식이다. 예를 들면 일반 개인 소비자들이 아울렛 등 매장을 직접 찾아가면 80%의 할인을 받는데, 특정 구대업자는 90%의 할인율로 구입할 수 있다.
 
업체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인 판단이다. 구대업자들을 통해 재고를 소진하는 편이 여러 모로 유익하다. 제품을 개개인에게 설명하고 파는 수고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환불 요청을 받을 가능성도 없다. 구대카페에서 구매하는 물건은 실물을 받아본 후 마음에 안 들어도 환불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업체 자체적으로 인터넷 쇼핑몰이나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속칭 땡처리를 하면 브랜드 이미지가 낮아질 위험이 있다. 기자가 패밀리세일 현장을 찾아갔을 때, 마침 구대업자가 업체 직원과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재고현황과 물건의 품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의 대화는 소위 갑과 을의 대화처럼 들렸다. 물론 구대업자가 갑이다.
 
모든 업체가 구대업자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명품이라 불리는 일부 고가 브랜드는 패밀리세일 현장에 구대업자가 나타나지 못하도록 자체적으로 규칙을 정하기도 한다. 사진을 못 찍게 하거나 휴대전화 소지 자체를 금지하는 식이다. 그런다고 순순히 물러날 구대업자들이 아니다. 물건의 종류와 가격을 외운 다음 행사장 밖에서 카페에 게시글을 올리기도 한다.
기자는 직접 구매대행 카페를 통해 몇 가지 물건을 구입해봤다. 브랜드 물건을 땡처리로 파는 곳은 주로 후미진 곳에 있다. 집에서 편히 앉아 정상가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물건을 주문했다. 의류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구대업자는, 기자의 키와 사이즈를 (댓글로) 보더니, 옷이 맞을지 안 맞을지 판단해줬다. 그 다음날 정성스럽게 포장된 물건이 도착했다. 실물이 사진과 다를 위험을 안고 한 거래였지만 다행히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새로운 소비행태로 자리잡은 구매대행
 
구매대행이 젊은 여성들 사이의 주된 쇼핑 행태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구조적인 요인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한국의 저렴한 택배비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낮은 모바일 데이터 사용비용이다. 택배비는 평균 3천 원 선이다. 택배사와 계약을 맺은 구대업자들은 택배비 조로 구매자들에게 2,500원을 받는다. 왕복 버스비도 안 되는 금액이다.
 
심리적 요인으로는 높아진 소비 수준과,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 사이의 균열을 들 수 있다. 비싸거나 좋은 품질의 물건을 구입하고 싶지만, 백화점에서 높은 가격에 살 수는 없으니 싼 가격에 사다주는 구매대행을 이용한다는 말이다. 수입품을 현지에서 직접 주문해 집에서 배송 받는 직구가 대중화되면서 소비자들은 현지 가격과 국내 판매 가격 사이의 차이를 알아버렸다. 소비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이 웬만해서는 백화점에서 정가를 다 내고 의류 등을 구입하지 않는 이유다.
 
구매대행이 빠른 시간 안에 확산되며 겪는 시행착오도 있다. 구대업자들 사이에는 구매대행업자는 재고 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돈다고 한다. 사겠다고 해서 구입했는데, 돈을 보내주지 않으면 구입품은 그대로 재고가 된다. 최종 세일가로 파는 땡처리물품은 보통 한번 사면 환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몇 대를 빌려 재고를 보관하는 업자도 있다고 한다. 구대 카페들마다 재고 때문에 집이 창고가 됐다, 이제 입금안하면 바잉하지 않겠다는 업자의 공지사항이 올라오는 이유다.
 
업계의 시행착오는 비교적 빠르게 해소되는 양상이다. 구대업자와 주요 구매자들은 20~40대의 젊은 여성이 대부분이다. 이들 사이에서는 문제점에 대한 의사소통과 시정이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되기 때문인 듯하다.
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새로운 소비 행태, 구매대행. 관련 업계의 거품을 제거해주는 순기능을 할 지, 단순히 사이버 땡처리장로 자리 잡을 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등록일 : 2015-08-31 17:03   |  수정일 : 2015-09-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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