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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라이브의 런던 이야기

처녀왕 엘리자베스. 정말 처녀였을까요?

영국을 ‘황금의 시기’로 이끈 외로운 처녀여왕, 엘리자베스 1세 (3)

글 | 미셸라이브 회계사/작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5-04-03 01:58

22살 연하남, 프랑스의 알랑송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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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알랑송 공작, source: Wikipedia]
또 한 명의 유력한 후보는 프랑스 앙리 2세의 막내아들 알랑송 공작, 프랜시스 (Francis, Duke of Alencon) 였습니다. 후에 앙주의 공작까지 된 알랑송 공작은 엘리자베스보다 스물두 살이나 연하였기에 처음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더들리와 할 것도 아니고 어차피 정치적인 이유로 하는 결혼, 스페인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프랑스를 영국 편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이긴 했지만 영국이 신교인 것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으며, 알랑송 공작 본인도 신교 사상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어 종교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으니 엘리자베스는 이 결혼 문제를 두고 10년 넘게 협상하면서 정치적인 효과를 노렸습니다.

한때는 그를 그녀의 ‘개구리’라고 부르며, 반지를 주고 키스를 하는 등 엘리자베스는 나이가 아들 뻘인 알랑송 공작과 정말 결혼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왕실은 윌리엄 세실을 포함한 찬성파와 더들리를 포함한 반대파로 나뉘고,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 변호사가 나와 오른손을 자르며 결혼에 반대하는 전단지를 돌리질 않나, 유명한 시인 필립 시드니 경까지 엘리자베스에게 알랑송과 결혼하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의 편지를 보내왔으니, 이 결혼도 결국엔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더들리는 최근에 재혼했고, 이제 40대 말인 자신에게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았던 엘리자베스는 “아직도 여왕의 마음은 더들리에게 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공격적인 발언에 “너희들은 내가 여왕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강국 프랑스의 왕자보다 내가 키운 신하 중 한명을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반박하며 복받쳐 올라 흐느껴 울기도 했습니다. It’s not easy being a queen, 즉 여왕이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구혼은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되었던 1558년부터 1584년까지 26년간 계속되었고, 열두 명의 청혼자가 있었으며, 여왕이 되기 전에도 이미 열한 명의 후보가 있었습니다. 나이 50이 되어 더 이상 아이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자신이 싱글인 것을 외교의 무기로 삼았던 엘리자베스. 거울을 보며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한숨지었을 그녀. 상속자의 결여는 훗날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반란의 위험이 있다하여 후계자를 임명하지도 않은 그녀를 신하들과 국민들은 무책임하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퀴즈!) 왜 엘리자베스는 이 많은 사람들 중 아무와도 결혼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1 결혼을 너무 자주 했던 아버지에게 질렸고, 엄마를 포함한 아버지와 결혼했던 여자들의 운명을 보며 여덟 살 때부터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것, 진심이었다.

2 어렸을 때 토머스 시모어에게 성추행 당했던 것이 평생 악몽으로 남아서.

3 자신이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몸임을 알았기에.

4 더들리가 아니면 하고 싶지 않다.

5 사람들이 너무 하라고 하니 오기가 생겨서 더 하기 싫다. 어차피 신하들 모두가 찬성하는 사람도 없지 않은가? 국민들이 오른손을 자르질 않나, 반대하는 시를 써서 보내질 않나, 난리다. 어쩌란 말이냐.

6 너무 복잡하고 중대한 문제라 결정하기 힘들어서. (엘리자베스는 내리기 힘든 결정을 기피하는 우유부단한 경향이 있어 신하들을 지치게 하기도 했습니다.)

7 한 명의 부인이기보다 만인의 연인인 것도 괜찮다고 생각되어서. (엘리자베스는 화려하고 재치 있는 남자들을 왕실의 조신으로 뽑고, 그들의 아부와 관심을 받으며 자신이 그들의 ‘사랑하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임을 즐겼습니다.)

8 ‘I’m married to England. 나는 영국과 결혼했고, 모든 국민들이 다 나의 남편이다’라고 말하고 보니, 그 낭만적인 느낌이 맘에 들어서. 어차피 결혼 못할 것 같은데, 특별했던 여왕이 되자.
 

그런데 처녀여왕 엘리자베스. 정말 처녀였을까요?
더들리의 방을 밤낮으로 드나들었고 토머스 시모어의 아이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었는데, 처녀여왕이라는 것은 남자들의 세상에서 여성스러움을 감추려 하지 않고 오히려 외교의 수단으로 삼으며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던 그녀가 무기로 쓴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처녀여왕이라 불리면서 엘리자베스는 로마 신화의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 (Astraea) 와 순결의 여신 아르테미스 (Artemis) 에 비유되었고, 엘리자베스의 처녀성은 영국의 우월함과 자부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우리 군주들은 세상이 다 보는 무대 위에 서 있다”며 엘리자베스는 여왕으로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불편함을 표현했습니다. 여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세상이 지켜보고 있는 여왕으로 태어나고 싶은지, 아니면 자유롭게 사랑하고 행동할 수 있는 보통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은지….
 
 
그 여자가 사는 법 - 나이 들고 싶지 않은 여왕의 화려한 패션 센스

엘리자베스는 나랏돈을 조심스럽게 쓰고 전쟁 같은 큰돈이 필요한 일에도 세금을 걷기보다 왕실의 토지를 팔아서 해결하는 사려 깊은 여왕이었지만, 옷차림만큼은 어느 군주보다 화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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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엘리자베스 1세 무지개  초상화 (Rainbow Portrait), source: Wikipedia]
옷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주는 신분의 상징이므로, 엘리자베스는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여왕이 옷을 제일 잘 입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시녀들의 역할은 여왕을 빛나게 해주는 것이지 본인들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며 화려한 옷 입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시녀들은 옅은 색의 얌전한 옷만 입었지만, 그녀의 수많은 초상화들이 보여주듯 엘리자베스는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등의 보석과 자수로 장식된 화려한 옷을 입었습니다.

더들리가 선물한 팔찌시계를 자주 차고 거들에까지 미니 기도문을 달았으며, 매일 아침 옷 입고 단장하는 데만 두 시간씩 걸렸던 엘리자베스의 여신처럼 보이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복장들은 그녀의 때로는 거친 말투와 함께 (엄마를 닮아 욕을 잘했다고 합니다) 검소와 단정함을 중요시했던 청교도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허영심 많은 엘리자베스는 나이 드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습니다. 흰머리가 나고 머리숱이 적어지자 빨간 가발을 쓰고, 결점을 감추고 젊어보이기 위해 항상 하얗게 진한 화장을 했고, 미화되어 그려졌던 초상화들은 후에는 스텐실을 사용해 실제보다 훨씬 더 젊게 그려지면서 점점 현실성을 잃어갔습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미셸라이브 회계사/작가

살사추는 회계사의 런던 이야기 – 소설처럼 읽는 런던의 역사, 생생하게 사진으로 가보는 명소, 런던에 사는 그녀의 삶. 미셸과 함께 런던과의 데이트를 시작하세요.

등록일 : 2015-04-03 01:58   |  수정일 : 2015-04-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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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lee  ( 2015-04-04 )  답글보이기 찬성 : 19 반대 : 18
애고..인생은 슬프네요..퀴즈의 답은 4번 아닐까요? 물어 보셔서 얘기하는 건데요..평범한 여자로 태어나 살다보니 이다음 생엔 여왕으로 태어나고 싶어요...아 근데 정말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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