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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미셸라이브의 런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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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왕 엘리자베스의 숨겨놓은 애인은?

엘리자베스 1세 (2)

글 | 미셸라이브 회계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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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로버트 더들리, source: Wikipedia)
엘리자베스의 일편단심, 로버트 더들리

엘리자베스의 마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가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한 가정교사 밑에서 공부하며 죽을 고비들을 같이 넘겼고, 엘리자베스를 여왕으로서가 아니고 한 여자로 사랑했던 남자. 그의 이름은 레스터 백작 로버트 더들리 (Robert Dudley, Earl of Leicester) 였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이상적인 남편감은 되지 못했습니다.(he was far from the ideal husband.) 완벽한 남편감에서 거리가 멀었던 더들리의 문제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유부남이었습니다. 더들리는 17살 때 에이미 롭사트 (Amy Robsart) 라는 여자와 결혼했는데, 둘은 행복하지 않았고, 더들리는 엘리자베스가 청혼을 받아주기만 하면 에이미를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그래도 결혼한 몸은 결혼한 몸입니다.

반역자 집안의 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들리의 아버지가 바로 ‘9일의 여왕’ 스캔들을 일으켰던 노섬벌랜드 공작 존 더들리였습니다. 더들리의 할아버지도 반역자였습니다. 이런 집안 내력을 보면 더들리는 엘리자베스의 남편감으로 가장 적당하지 않은 후보가 됩니다. 하지만 오히려
‘9일의 여왕’ 스캔들 때, 더들리는 런던 타워의 뷰챔프 타워에, 엘리자베스는 멀지 않은 벨 타워에 갇혀 죽을 고비를 함께 넘기면서 이들의 연대는 더 두터워졌습니다.

남들이 더들리가 잘되는 꼴을 못 봤습니다.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되면서 안 그래도 얄미운 더들리에게 재산, 토지, 직위들이 쏟아졌으니 다른 귀족들이 배 아파했습니다. 엘리자베스를 딸처럼 사랑했던 최고 고문• 국무장관•재무장관직을 겸하고 있던 총신 윌리엄 세실 (William Cecil) 도 여왕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질투 나고 또 더들리가 왕이 되면 자신의 위치가 불리해질 것이 불안해, 더들리와의 결혼을 극구 반대했습니다. 영국 내 귀족들 중 한 명과 결혼하면 다른 귀족 집안들이 기분 나쁘다고 더 이상 충성하지 않고, 나아가 반란을 일으킬 위험도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말하기를, 이래도 더들리가 좋은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 나를 이해한다. 내가 여왕이라 나를 좋아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여왕이 되기 전부터, 여왕이 될 가능성이 희박했을 때부터 나를 사랑해왔다.
멋있다. 옷도 잘 입는다.
잘 해준다. 메리 언니가 여왕이었을 때, 본인의 형편도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땅을 팔아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나를 도와주었다. 나는 이 희생과 친절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내가 여왕이 된 후에 더들리가 케닐워스 성에서 열어준 파티는 정말 성대했다. 이 화려한 파티를 위해 무리했던 더들리, 이때 부도날 뻔 했다.

말을 잘 탄다. 승마를 사랑하는 나, 더들리를 왕실의 말 관리관(Master of Horse)으로 임명했는데, 왕실의 주된 교통수단인 말들을 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승마, 마상창시합 등의 행사도 담당하는 이 직위는 말을 잘 타고, 스포츠에 뛰어난 더들리에게 어울리는 역할이다.

춤을 잘 추고 예술을 사랑한다. 더들리와 나는 서로가 좋아하는 댄스 파트너로, 볼타(Volta)라는 곡을 틀고, 다섯 번째 박자에 남자가 여자를 높이 드는 낭만적인 춤을 즐겨 춘다. 더들리도 나처럼 드라마와 음악을 좋아한다. 우리 둘 다 런던 극장의 후원자다.

사랑은 설명할 수 없다. 나도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내가 사랑에 빠진 십대 소녀처럼 행동하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엘리자베스는 더들리의 방을 자신의 침실 옆으로 이전시켜 밤낮으로 드나들었고, 궁녀로 변장해 더들리가 사격 시합하는 것을 몰래 보다가 끝나면 다가가서 깜짝 놀라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못할 일이지요.)

하지 말라니 더 하고 싶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그들은 여느 커플처럼 다투기도 했는데, 엘리자베스는 그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행동과 태도로 더들리가 자신을 대하게 허용했지만, 더들리는 항상 엘리자베스의 위치를 잊지 않고 존중하는 자세로 그녀를 대했다고 합니다. 모두가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더들리의 청혼은 계속되었고, 엘리자베스도 심각하게 고려해보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결혼하지 말아야 할 운명이었을까요?

1560년 9월 8일, 더들리의 부인 에이미가 계단 밑에서 목이 부러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사고사로 판명되었지만 합법적인 결혼을 파기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때 더들리가 엘리자베스와 결혼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에이미가 죽는 것이었고, 의심받을 것이 너무 뻔한 데 더들리가 죽였을까 싶지만, 더들리를 시샘하던 이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습니다.

에이미는 유방암을 앓고 있었고 유방암 환자는 계단 같은 곳을 오르다 뼈가 갑자기 부러져 중심을 잃고 미끄러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건 요즘 이야기입니다. 의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고, 더들리 본인도 에이미가 살해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럼 더들리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사람들이 에이미를 죽인 것이었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천재적인 직감, 논리적인 전개, 뛰어난 위장술과 과학적인 수사로 어려운 사건도 척척 해결하는 셜록 홈즈가 필요한데, 불행히도 셜록 홈즈는 19세기까지 등장하지 않습니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이제 더들리와 결혼하면 자신도 살인범으로 의심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엘리자베스는 이때 더들리와의 결혼 생각을 접습니다. 더들리의 부인이 죽었기에 더들리와 결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결혼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때가 엘리자베스가 ‘처녀 여왕’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때라고 생각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고, ‘나는 마스터 없이 살겠노라. 내가 죽었을 때, 이 시대를 산 엘리자베스 여왕, 처녀로 살고 처녀로 죽었다고 대리석에 새겨진다면 내가 가장 기쁘겠노라’ 고 말하는 엘리자베스의 마음이 즐겁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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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엘리자베스 1세, source: Wikipedia)
하지만 마약처럼 포기한 후에도 몸속에 한참 남아 있는 것이 사랑이라, 이후 10년이 넘게까지도 더들리는 엘리자베스의 가장 유력한 남편감으로 남아 있었고, 후에 더들리가 네덜란드 등으로의 출장에서 일을 잘 처리하지 못했을 때도 엘리자베스는 사람들이 더들리 흉을 보면 듣기 싫어서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사람 속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눈으로 유명했으니, 더들리의 행동과 구애가 신분 상승만을 위한 계산적인 속임수였다면 그는 30년이 넘게 여왕 곁에 남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며, 그가 했던 일들에서도 여왕을 진심으로 사랑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575년 엘리자베스를 위해 연 케닐워스 성에서의 축제에서 더들리는 42살의 엘리자베스에게 마지막으로 청혼했지만 다시 한번 거절당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이제 자신과 결혼하지 않을 것이 확실해진 후에야 더들리는 앤 볼린의 언니 메리 볼린의 손녀였던 레티스 놀리스 (Lettice Knollys) 와 재혼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이를 매우 질투했으며 레티스를 왕실에서 내쫓아 그녀의 사회생활을 끝내다시피 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평생 샘내며 죽을 때까지 그녀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훗날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시킨 후 얼마 되지 않아 위암을 앓던 더들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슬픔과 절망에 어찌할 줄 모르며 며칠 동안 방에서 나오지 못했던 엘리자베스가 죽을 때까지 15년간 베개 옆에 두고 잤다는, 더들리가 죽기 전에 쓴 편지가 발견되었습니다.

편지에는 엘리자베스의 필체로 ‘그의 마지막 편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의 우아한 여왕님께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알고 싶어 이렇게 용기를 내어 편지를 쓰는
당신의 불쌍한 신하를 용서하십시오. 최근 몸이 아프셨던 것은 이제 괜찮으신지요,
여왕님의 건강과 장수가 제가 기도하는 가장 중요한 바람입니다. 제게는 당신이 그 어느 약보다도 더 효과가 있으며, 여기서 치유되어(더들리는 암을 치유하기 위해 생수가 나오는 벅스턴이란 곳에 가 있었습니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 매일하는 그 기도를
계속하며 당신 발에 키스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라이코트 (Rycote, 엘리자베스가 예전에 죄수로 우드스톡으로 끌려가는 도중 묵었던 곳) 에서부터 오늘 이 목요일 아침까지, 저는 항상 당신의 충실하고 순종적인 하인입니다.
R. 더들리.




왕실의 귀족들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것보다 더들리의 죽음이 더 기쁘다고 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되기 전 힘들었던 어린 시절에, ‘고개를 들고 네가 누구인지 항상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국민들이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며 칭송하는 아름다운 여왕이 될 것이라’며 그녀에게 힘과 위로를 주었던 더들리와 ‘당신이 아니면 다른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던 엘리자베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세상 모두의 반대에 외로이 서야했던 그들. 엘리자베스는 종종 ‘나는 여왕이고 결혼한 것보다, 거지이고 싱글이고 싶다’ 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말에 그녀의 눈물이 묻어 있는 듯합니다.

또 한 명의 유력한 후보는 프랑스 앙리 2세의 막내 아들 알랑송 공작, 프란시스 (Francis, Duke of Alencon) 였습니다. 알랑송 공작은 다음 편에서 만나봐요.

** 미셸의 살아있는 런던 이야기는 3월 말/4월 초에 책으로 발간됩니다. 기대해주세요!**
등록일 : 2015-02-16 09:47   |  수정일 : 2015-02-1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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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라이브 회계사/작가

살사추는 회계사의 런던 이야기 – 소설처럼 읽는 런던의 역사, 생생하게 사진으로 가보는 명소, 런던에 사는 그녀의 삶. 미셸과 함께 런던과의 데이트를 시작하세요.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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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lee  ( 2015-03-01 )  답글보이기 찬성 : 27 반대 : 13
여왕도 여자인지라...가슴 절절한 사랑이 아름답네요.
책나오길 기대하고있어요!
이병곤  ( 2015-02-27 )  답글보이기 찬성 : 10 반대 : 11
왕도 인간인지라 당연 사랑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없는 결혼도 할수는 있어야 합니다. 죽은 왕비를 잊지못하고 평생혼자 지낸 신라왕? 그의 이야기는 연인들의 신금을 울리지만, 정작 그 이후 신라는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김익수  ( 2015-02-22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14
아름다운 사랑인걸 누가 말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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