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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라이브의 런던 이야기

헨리 8세의 이혼과 영국 국교회의 기원

헨리 8세는 왜 로마교황과 결별했나?

글 | 미셸라이브 회계사/작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4-11-20 오후 4:06:00

첫번째 부인 - 아들을 못나 버림받은 아라곤의 캐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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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력이 강했던 스페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헨리의 아버지는 헨리의 형수였던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을 다시 헨리와 결혼시켰습니다.

아라곤의 캐서린은 보통 왕비가 아니었습니다. 스페인 북부 사람들의 특성인 하얀 피부, 파란 눈과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를 셰익스피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라 표현했고,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는 ‘전성기에 그녀를 따라갈 여자가 없다’고 칭찬했으며, 전남편 아서는 ‘아리따운 신부의 얼굴을 보는 것이 매우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캐서린은 헨리가 전쟁으로 프랑스에 있을 때 섭정의 역할을 맡아, 만삭의 몸으로 갑옷을 입고 군사들과 함께 말을 타고 북쪽으로 달려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멋진 여자였습니다. 또 르네상스 문화의 장려자로서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 같은 학자들과 지적, 문화적 수준을 같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벌써 여자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많이 했던 캐서린은 그녀의 적이었던 토머스 크롬웰마저 ‘여자가 아니었으면 모든 역사의 영웅들을 부끄럽게 했을 사람이다’라고 감탄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남편 헨리가 그녀를 소중히 여기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헨리와 다섯 살 연상 캐서린의 결혼생활은 열정적이지는 않았지만 순조롭고 잔잔하게 이어졌는데, 캐서린의 불행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녀와 헨리 사이의 자식들 중 살아남은 아이는 딸 메리밖에 없었습니다. 프랑스와는 달리 영국에는 딸이 왕관을 물려받을 수 없다는 규정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12세기에 마틸다가 여왕이 되려 했을 때 벌어진 혼란을 되풀이되지 않고 자신이 죽은 후에 순조롭게 튜더 왕조가 지속되기를 바랐던 헨리는 결혼생활 20년이 지나도록 아들이 생기지 않자 이 결혼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헨리의 눈에 들어온 여자가 있었습니다.
  
왕의대단한이혼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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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눈에 띈 여자는 캐서린의 궁녀였던, 인맥좋고 부유한 런던 상인의 딸 앤 볼린(Anne Boleyn)이었습니다. 노래와 춤에 뛰어나고 루트를 비롯한 많은 악기를 다룰 줄 알며,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는 등 당시 여자로서는 드물게 교육을 많이 받았던 앤은 헨리와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프랑스에서 가지고 온 세련되고 우아한 옷들이 잘 어울리고, 활발하고 섹시한 에너지를 지닌 앤은 곧 왕실에서 주목받는 여자가 되었고, 그녀를 사모하는 남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왕에 맞서 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남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클래식한 미인은 아니지만, 지적이고 재치 있고 자신감 넘치며 짙은색의 긴 머리와 까만 눈동자를 가진 앤 볼린의 무엇인가가 헨리를 사로잡았습니다. 앤 볼린의 언니 메리 볼린은 헨리의 첩이었지만, 앤은 ‘왕비가 되기 전에는 전하의 품에 안길 수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더욱더 몸이 단 헨리에게 앤 외의 다른 여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의 형제의 아내를 취하면 더러운 일이라’ - 똑같은 성경구절도 보기 나름

구약성경 레위기 20장 21절에 ‘누구든지 그의 형제의 아내를 취하면 더러운 일이라, 그들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실 이 구절 때문에 헨리는 형의 부인이었던 캐서린과 결혼하는 데 교황의 특별허가가 필요했습니다. 캐서린과 형의 결혼이 ‘완성(consummate)’ 되지 않았다는, 즉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교황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아들을 낳지 못하는 캐서린을 떠나 앤 볼린에게 가려면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해야 됐습니다. (당시는 이혼보다 결혼 자체를 무효로 해야 했습니다.) 이것 역시 교황의 허락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헨리는 똑같은 성경구절을 근거로 캐서린과의 결혼이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성경구절을 어기고 한 결혼은 저주받아 아들이 생기지 않는 것이고(레위기에 자식이 없으리라고 했지, 아들이 없으리라고 하지 않았지만), 따라서 처음부터 잘못 내려진 특별허가는 번복되어 이 결혼은 무효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교황이 협조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이때 로마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찰스 5세에게 포위되어 있었고, 교황은 찰스 5세의 죄수나 다름없는 신세였는데, 하필이면 캐서린이 찰스 5세의 이모였습니다. 이 이혼을 허락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던 교황은 ‘한 번 내린 특별허가는 번복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고, 헨리가 추기경 토머스 울시(Thomas Wolsey)를 로마로 보내 여러 말로 교황을 설득하게 해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백발이 희끗할때에 나를 버리지 않으셨으리라’ 토머스 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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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울시는 입스위치(Ipswich)라는 영국의 시골에서 정육점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 옥스퍼드 대학을 나왔습니다. 능력 있는 서민들을 관직에 앉히려 했던 헨리 7세의 정책에 힘입어 왕실에 입성했습니다. 그 후 승승장구해 헨리 8세 때가 되서는 추기경, 대주교와 대법관을 겸한 사람이 된 울시는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겼던 헨리 대신 나랏일을 주무르다시피 했기에 ‘또 하나의 왕(alter rex)’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직위가 오르고 권세가 커지면서 허영과 사치에 맛을 들여 햄튼 코트에서 호화롭게 살며 한번 행차할 때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뒤를 따르게 했던 울시는 많은 악폐를 저질렀고, 재정관리를 소홀히 했으며, 부정한 아들까지 낳아 사방에 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록 왕의 이혼을 성사시키지 못한 것이 그의 파멸을 불렀습니다.
앤 볼린의 미움을 사 결국 관직에서 밀려난 울시는 교황과 짜고 앤을 추방하려다가 발각되어 런던으로 끌려가는 중에 병사했습니다. 죽기 전 그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왕만큼 열심히 섬겼으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백발이 희끗희끗할 때에 나를 버리지 않으셨으리라.(If I had served my God as diligently as I did my king, He would not have given me over in my grey hairs)"
 이 말은 오늘날까지 유명합니다. 원래 이런 사람들이 더 억울해 하는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왕의 이혼문제를 비꼬아 ‘왕의 대단한 문제(the King’s great matter)’ 라고 불렀습니다. 왕실의 결혼이 대부분 정치적인 이유로 이루어지던 때에 헨리는 감정을 가지면 안되는 사람이 감정에만 의해 행동하는 전적인 예였습니다.
 
 
로마와 단절해서라도 이혼하고야 말리라 - 종교개혁
 
‘교황이 아닌 왕께서 영국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면 어떨까요? 토머스 크롬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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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시가 죽고 권력을 잡은 토머스 크롬웰(Thomas Cromwell)과 헨리가 머리를 맞대고 있습니다. 울시처럼 런던 펏니(Putney) 지역의 대장장이의 아들이라는 하찮은 신분으로 태어난 토머스 크롬웰은 상인과 법률가로서 자리를 잡았고, 하원의 멤버로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헨리: 앤이 자꾸 언제 이혼할 거냐고 재촉하는데, 무슨 수가 없겠느냐.
 
크롬웰: 폐하, 논리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폐하께서 이혼하시는데 교황의 허락이 필요한 것이죠?
 
헨리: 당연한 것을 묻느냐. 교황이 모든 가톨릭교 국가들의 우두머리니 그런 아니냐.
 
크롬웰: 그럼 교황이 우두머리가 아니고, 상황에 교황이 관련되어 있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요?
 
헨리: 무슨 말을 하려는 게냐.
 
크롬웰: 이제부터 교황이 아닌 폐하께서 영국 교회의 수장이 되시면 어떠시겠습니까. 그러면 영국의 대주교가 허락하는 이혼이 가능해집니다.
 
헨리: 와우…
 
크롬웰: 의회에서 법을 통과시켜 폐하가 수장이 되시고,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역죄로 처벌하는 겁니다.
   
    헨리: 천재구나. 지금 당장 시행하도록 하자.
 
 
Bye Bye 로마교황 Hello 영국 국교회

이렇게 해서 통과된 1534년〈수장령(The Act of Supremacy)〉에 의해 로마 교황이 아닌 영국의 왕이 영국 국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은〈반역법(The Act of Treasons)〉에 의해 처벌받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이혼에 반대했던 토머스 모어, 로체스터의 주교 존 피셔(John Fisher), 헨리의 퇴위를 예언했던 수녀 엘리자베스 바튼(Elizabeth Barton)과 런던 차터하우스 수도원의 많은 수도사와 수녀들이 이 법들에 의해 교수척장분지형되거나 기둥에 묶여 화형 당하거나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잔인하고 가차 없는 처벌에 사람들은 더 이상 감히 반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남은 귀족들은 왕에게 잘 보여 출세하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서민들의 대부분은 종교개혁을 별 저항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사실 교회의 우두머리가 교황에서 국왕으로 바뀐 것뿐이지, 계속해 미사가 행해지고 라틴어로 기도가 드려졌으며, 가톨릭교의 각종 성사도 별 다른 점 없이 지켜져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안 그래도 타락한 로마 교회와 수도원들이 싫었기에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 이후 헌금이 로마교황에게 가지 않고 국왕에게 납부되기 시작했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성서 내용에 대한 결정권을 비롯해 주교 임명 등에 대한 교황의 권한들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헨리 8세는 또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지 참배 장소였던 캔터베리 성당의 토머스 베켓 경단을 부수고(왕에 대항해 교황의 편을 들다가 왕의 군사들에게 죽음을 당한 후 성자가 된 토머스 베켓의 전설은 헨리 8세가 듣기에 좀 불편한 이야기였습니다), 베켓이 그려진 모든 그림들에서 그의 얼굴을 긁어내었으며, 그의 동상들을 파괴하도록 했습니다.
 
캐서린과의 결혼은 ‘무효’, 볼린과의 결혼은 ‘합법’!

새로운 법들에 의해 영국의 대주교가 허락하는 한 헨리는 이혼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하던 대주교 윌리엄 워햄(William Warham)도 다행히(?) 죽었습니다. 앤 볼린 집안의 가정신부이자 크롬웰과도 친구 사이였던 화이트 호스 출신 토머스 크랜머(Thomas Cranmer)가 워햄의 뒤를 이어 대주교가 되면서 이혼은 수월하게 진행되어, 캐서린과의 결혼은 무효(null and void)가 되었습니다. 앤이 임신하는 바람에 서둘러 올렸던 앤과의 결혼은 합법(good and valid)이 되었습니다.
 당시 영어 성경에는 보좌에 앉아 있는 헨리의 양 옆에 종교개혁의 ‘종교’적인 면모를 담당한 크랜머와 ‘정치’적인 면모를 담당한 크롬웰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로마 교황은 헨리와 크랜머에게 파문을 내렸지만, 이제 누가 그런 것에 신경쓰나요.

헨리와 앤이 결혼식을 올린 지 3개월 만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왕실의 의사들과 점성가들이 아들일 것을 예언했기에 상속자 탄생을 위한 축하예식의 모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나왔습니다. 앤은 헨리의 실망한 표정을 보고 미안하다며 흐느껴 울었고, 낭패감과 당혹감에 빠진 헨리는 뭐라 할지 몰라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로마와 단절하고, 교황에게 파문당하고, 아무런 죄 없는 첫 부인도 매정하게 버리고, 저명한 학자들까지 처형했는데… 그 모든 일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또 하나의 딸을 위해서였단 말입니까?

이 딸이 후에 영국을 ‘황금의 시기’로 이끌고 대영제국의 기반을 마련하며, 영국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될 것을 그때 헨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미셸라이브 회계사/작가

살사추는 회계사의 런던 이야기 – 소설처럼 읽는 런던의 역사, 생생하게 사진으로 가보는 명소, 런던에 사는 그녀의 삶. 미셸과 함께 런던과의 데이트를 시작하세요.

등록일 : 2014-11-20 오후 4:06:00   |  수정일 : 2014-11-20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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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득  ( 2014-11-20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11
잘 읽고 갑니다. 앞으로 더욱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진미성  ( 2014-11-20 )  답글보이기 찬성 : 17 반대 : 0
세계사 시간에 졸기만했는데 이렇게 이야기 식으로 보니 너무 좋아요 요즘 경청하고 있는 기독론과도 연결이 되니 각 개인이 접할 수 있는 디지털시대에 교육혁명이 대단하지요 감사합니다
김이홍  ( 2014-11-20 )  답글보이기 찬성 : 13 반대 : 4
귀하의 글을 읽기 위해 매일 조선Pub 을 들여다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용재  ( 2014-11-21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6
영화 천일의 앤을 보시면 더욱 실감이 난답니다.
강훈채  ( 2014-11-21 )  답글보이기 찬성 : 14 반대 : 1
알기 쉽고 재미나게 쓰신 글, 단숨에 읽었습니다.
이향  ( 2014-11-21 )  답글보이기 찬성 : 10 반대 : 7
이것 다음에 앤 볼린이 어떻게 쫓겨나며, 캔더린의 딸인 메리가 어떻게 여왕직을 물려 받았다가 그 다음 다시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되는지도 재미있게 써 주세요. 비 피린내가 많이 나지요...
      답글보이기  미셸라이브  ( 2014-11-24 )  찬성 : 2 반대 : 17
감사합니다. 네∼ :)
      답글보이기  미셸라이브  ( 2014-11-24 )  찬성 : 2 반대 : 3
감사합니다. 유익하고 재미있게 쓰려고 했는데,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답글보이기  미셸라이브  ( 2014-11-24 )  찬성 : 0 반대 : 8
와, 감사합니다. 다음 편 보냈어요. 기대해주세요 :)
      답글보이기  미셸라이브  ( 2014-11-24 )  찬성 : 0 반대 : 7
저도 봤어요∼ The other boleyn girl도요.
      답글보이기  미셸라이브  ( 2014-11-24 )  찬성 : 0 반대 : 4
감사합니다, 몇번씩 손본 보람이 있네요 :)
      답글보이기  미셸라이브  ( 2014-11-24 )  찬성 : 1 반대 : 7
넵 말씀하신것들 다 쓰겠습니다 :) 영국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나면서도 흥미로운 시기중 하나이지요.. 감사합니다.
김진태  ( 2014-11-25 )  답글보이기 찬성 : 27 반대 : 6
너무 재밋게 잘 읽었습니다.
천일의 앤을 읽어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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