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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라이브의 런던 이야기

종교개혁과 영국의 얼짱왕 헨리 8세

이혼해야겠다니까! – 헨리 8세의 종교개혁과 여섯 명의 부인들(1)

글 | 미셸라이브 회계사/작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4-11-03 11:50

(등장인물: 얼짱 왕, 타락한 성자, 교묘한 정치가, 야심찬 왕비, 섹시한 십대 소녀 등 16세기 왕실의 여러 사람들.)
 
그 어느 드라마보다 재미있고,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보다 짜릿한 정치스릴러와 러브 스토리가 펼쳐지는 튜더 왕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유치한 연애 이야기뿐이 아닙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 왕이 ‘반지가 끼워지기 전에는 왕이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한 여자를 위해 로마의 교황과 인연을 끊고 영국교를 세운 일은 ‘1066 노르만족의 영국정복’ 만큼 중요한 영국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미전쟁’에서 죽은 리차드 3세의 머리에서 떨어진 왕관을 집어쓴 헨리 7세와 그의 뒤를 이은 튜더 왕가의 군주들은 절대 왕정제의 파워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파워가 있다고 행복한 것도, 안정적인 것도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왕위를 계승해나갈 아들이 잘 안 생겼던 이 집안은 걱정이 많은 집안이었습니다. 왕위계승문제를 위해 웃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
 
헨리 7세의 뒤를 이은 헨리 8(r. 1509~1547) 의 영국 종교개혁English Reformation 은 사실 종교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 무엇과 관련된 일이었냐고요?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은 한가지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한 남자의 대를 이을 아들에 대한 욕구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정욕, 한 여자의 야망, 타락한 신하들과 성직자들의 교묘함이 얽힌 종교개혁을 이해하려면, 그때의 사회배경을 먼저 봐야 합니다. 
 중세 사람들이 지옥에 대한 비정상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종교에 집착했던 것과 하늘같았던 로마교황의 권력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 당시는 사람들이 돈만 주면 천당에 갈 수 있다고 믿던 때였습니다.
 
‘돈만 주면 천당에 갈 수 있습니다’ - 가톨릭교의 천국행 티켓, 면죄부
 
가톨릭교는 고대시대의 작은 시작에서, 정치적, 재정적 권력을 쥐며 로마에 본부를 둔 국제적인 종교단체로 커나갔고, 이탈리아의 큰 영토를 맡아 다스렸습니다. 마치 왕같이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가기도 했던 로마교황은 부정한 자식들을 낳아 그들을 중요한 관직에 임명시키는 등 거짓말과 사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교황이 임명하고 해고할 수 있었던 주교와 추기경들이 각 나라의 다른 고위직에도 올랐습니다. 왕들은 교황의 비위를 거스려, 맘에 안 드는 사람이 주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또 왕들도 천국에 가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때문에 왕들도 교황 및 로마가톨릭과 단절되어 지옥에 가는 것을 의미했던 ‘파문’을 내릴 수 있는 교황에게 벌벌 떨며 살았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타락한 교황 아래의 주교들과 성직자들도 별 다를 바 없었습니다. 겸손/빈곤/순결/모범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이들 대부분이 권력과 부에 눈이 멀어, 거둬드린 헌금을 모아놓을 수 있는 헛간을 따로 지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횡포가 싫어도 천국에 가려면 별다른 수가 없었던 서민들은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513, 로마교황 레오 10세는 ‘내 명색이 교황인데, 바티칸 궁전(로마교황청)이 이게 뭐냐’며 바티칸 궁전의 성베드로 대성당을 훌륭하고 럭셔리하게 개조하기 시작했고, 이 엄청난 공사에 필요한 자금을 대기위해 면죄부(indulgence)라는 것이 발행되었습니다.
 
가톨릭교에 의하면,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기에, 세례를 받고, 미사와 성찬식을 드리며, 고해성사등 의 의식을 행하고, 선한 일을 하면서 평생을 죄를 씻으며 살아야 합니다. 죽으면 바로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고, 연옥(purgatory)이라는 죄를 정제하는 곳에 가서 남아있는 죄를 불태운 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 서서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를 결정 받았고, 따라 연옥에서 머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은 최대한 살아있을 때 죄를 씻으려고 했습니다.
 
성자들의 동상이나 유물을 붙잡고 기도드리면 점수가 올라갔고, 성지순례는 그 이상이었으며, 십자군 원정에서 전사라도 하면 연옥을 지나치지 않고 바로 천국에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쉬운 방법이 생겼습니다. ‘면죄부’는 원래 기도나 선행을 통해 죄사함을 받는 것을 의미했지만, 바티칸의 재건축 공사가 시작된 후부터는 무슨 티켓처럼 대량 생산되어 소위 용서하는 자(pardoner)라 불렸던 사람들에 의해 돈을 받고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면죄부를 사면 연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16세기에는 십자군 원정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천국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면죄부밖에 없었고, 이미 죽어 연옥에 있는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위해서도 면죄부를 살 수 있었습니다. ‘용서하는 자’들이 말했습니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영혼이 연옥에서 나와 진주의 천국문으로 들어간다!
 
내는 액수에 따라 용서받을 수 있는 죄의 정도와 기간이 달라졌던 ‘천국행 티켓’, 오늘날의 ‘건축헌금’과 비교될 수 있는 면죄부는 성직자의 자리도 돈을 주고 살 수 있었던 것과 함께 당시 가톨릭교의 타락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대로 보고있을 수만은 없다’ - 마르틴 루터의 프로테스탄트 신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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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신앙, 오직 성서’ - 구원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15세기에 옥스퍼드의 존 위클리프 목사와 ‘롤라드’라 불렸던 그의 추종자들이 영어성경을 출간하고 가톨릭교의 타락을 비판했지만, 그들의 노력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세상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와 도시화가 일어나고, 교육이 보편화되어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의 눈이 떠지기 시작했고, 에라스무스(Erasmus)와 토마스 모어(Thomas More) 같은 이름 있는 르네상스 학자들이 교회의 타락을 비판했습니다. 가톨릭교 내부에서도 개혁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이런 사회적인 배경에서 1517년 독일에서 등장한 사람입니다. ‘나도 가톨릭교의 수도승이지만, 이건 너무한다, 천국은 돈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면죄부는 사기다!’라고 외쳤던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의 교리, 구조와 관습을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 (theses) 를 써서 독일, 비텐베르크의 교회문에 못박았고, 루터의 사상은 기존의 가톨릭교에 ‘프로테스트(protest) (항의) 한다고 해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라 불렸습니다.
 
봉건주의의 쇠퇴와 민족주의의 시작, 산업의 발달, 신대륙의 발견, 르네상스와 함께 중세기에서 근대기로 넘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프로테스탄트’ 신교도는 ‘오직 신앙’, ‘오직 성서’를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오직 신앙(sola fide) :  구원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선행을 한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며, 교황과 성직자가 당신을 천국에 보내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개개인의 신앙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다. 엄중한 계층제의 성직자제도는 잘못된 것이고, 믿는 사람 모두가 성직자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교황이나 목사가 무슨 특별한 힘이 있어, 성찬식 때 쓰이는 포도주와 빵이 그들이 ‘이것이 나의 몸이고 피다’라고 말할 때 정말로 예수님의 피와 살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다. 무슨 애들 동화도 아니고, ‘연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성서(sola scriptura) : 여러 의식과 절차들보다 성경을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성지순례를 가거나 성자의 동상을 붙잡고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 성경에 모든 것이 다 나와 있으며, 따라서 성경은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는 영어로 번역되어 각 교회에 비치되어야 한다. 또 성경에 성직자들은 결혼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지 않다.
 
‘재미없게 살면 천국 간다’ - 장 칼뱅의 청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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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출신 변호사였지만,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성직자로 일하고 있었던 장 칼뱅(John Calvin)도 루터와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칼뱅이 말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천국 갈 사람과 그렇지 못할 사람으로 나누어지는데, 봐서 본인이 자신에게 매우 엄격하고, 항상 기도하고, 매일 성경을 읽으며, 대체로 재미있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면, 천국 갈 운명인 것이고, 만약 노름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있으면 지옥에 갈 운명인 것이다. 교황의 권력이 너무 크고, 예식들이 너무 화려하다. 각 집회가 그들의 목사를 직접 임명해야하며, 목사들은 화려한 예복 대신에 검정색 가운을 입고 설교해야 한다. 장식품, 촛대, 동상, 스테인 글라스들은 사악한 것들이니 모두 부수고, 엄숙한 느낌을 주기위해 벽들을 희게 회칠하며, 제단을 없애고 탁자 하나 놓고 그 위에 빵과 포도주를 두자. , 칼뱅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왕은 타도하거나 죽일 의무가 있다."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이때 제네바에서는 세례식 때 하품을 하거나, 예배 중 졸면 구속이었고, 악기를 연주하면 추방, 도박이나 음주는 중죄였습니다.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스위스의 국민성이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요. 이런 극도의 경건주의는 칼뱅의 사후에 영국의 ‘청교도’로 이어졌습니다.
 
가톨릭교와 신교도는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교황과 목사 말만 들어야 하는지, 성경을 읽는다면 무슨 언어로 읽어야 하는지, 성찬식 때 포도주와 빵이 “정말로” 예수님의 피와 살로 변하는지, 성직자들은 무슨 옷을 입어야 하고, 그들이 결혼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다투었습니다. 현대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대체 왜 그러나 싶지만, 이 때는 정치의 중심에 종교가 있었던 때이고, 사람들이 지금과는 다른 사회적인 배경과 도덕성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 생각하면 죽고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었던 때였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톨릭교 ‘신앙의 옹호자’, 헨리 8
 
때마침 발달하고 있었던 인쇄 기술에 힘입어 신교도 사상과 영어 성경은 유럽대륙에서 빠르게 보급되며 인기를 얻었고, 영국에서는 특히 케임브리지의 화이트 호스(White Horse)라는 그룹에 의해 환영받았습니다(‘화이트 호스’는 이들이 모이던 술집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교도라는 것이 영 탐탁치 않았던 헨리 8세는 루터의 사상을 이단(heresy)이라며 비난했고, 가톨릭교의 7성사를 옹호하는 책까지 써서 교황에게 신앙의 옹호자(Fidei Defensor)(영어로 Defender of the Faith) 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영국의 동전들에는 ‘Fidei Defensor’ 의 약자인 ‘FD’ 가 새겨져 있습니다.
 
*
 
신교도의 등장은 가톨릭교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교황의 권리도 도전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지만, 영국의 종교개혁은 이보다는 헨리 8세의 개인적인 문제와 더 연관이 깊었습니다. 신교도를 이단이라며 반대하고 가톨릭교를 옹호했던 헨리 8세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로마 교황과 결별하고, 파문까지 당했던 것은 역사상 가장 아이러니한 사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얼짱 몸짱 왕, 헨리 8
 
둘째 아들이라 원래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지만, 형이 갑자기 죽고, 1509 17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된 헨리 8세는 여자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외모와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는 얼짱, 몸짱의 헨리는 사냥, 승마, 레슬링, 양궁, 테니스, 마상 창시합 등의 스포츠에 탁월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와 그의 친한 친구들이 활개 치던 왕실은 ‘남자다움’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특히, 사냥과 마상 창시합은 외교관들에게 헨리의 기량과 용맹함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마상 창시합 토너먼트에 진주와 보석으로 장식된 벨벳 옷 위에 황금 갑옷을 걸치고, 금장식을 단 말을 타고 나타났던 헨리의 사치성과 쇼맨십은 알아줘야 했습니다. 지적으로도 뛰어났던 헨리는 르네상스 문화를 장려했으며, 라틴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고, 수학, 천문학, 신학에도 일가견이 있었을 뿐 아니라 춤도 잘 추고, 음악에도 재능이 있어, 루트와 풍금을 연주하고, 작곡을 즐겨했으며, 자신의 밴드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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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얼굴 뜯어먹고 사나요. 얼짱, 몸짱인 남자가 인정도 많고 사려 깊으며 매사에 현명한 결정을 내릴 사람일 확률은 매우 적습니다. 헨리 8세는 신하들의 헤픈 아첨과 칭찬에 약했고(: 잘생긴 헨리(Henry the hansome), 늠름한 헨리(Henry the gallant), 똑똑한 헨리(Henry the clever), 수퍼스타 헨리(Henry the superstar)), 귀가 얇아 신하들의 말에 쉽게 흔들렸습니다.
 나랏일은 신하들에게 맡기고, 낮에는 스포츠, 밤에는 잔치와 술과 노래와 춤으로 바빴던 헨리는 많은 업적을 이루지 못했고, 헨리가 임기에 올랐을 때 12개였던 궁전이 그가 죽었을 때는 60여개로 늘어있었을 정도로 궁전에 욕심이 많아  궁전 짓고 고치는데에 많은 돈을 썼습니다. 
유럽대륙의 일들에 쓸데없는 참견하여 헛된 전쟁들로 선왕이 물려준 재정을 탕진해, 선왕 때에는 별 필요가 없었던 의회에 손을 벌렸야 했고, 화폐의 가치를 낮추기도 하고, 수도원들을 해산해 교회의 재산을 왕실로 돌리는 등 여러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헨리가 숨을 거두었을때 나라는 빚더미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니, 괜히 남자 얼굴 뜯어먹고 사는 것 아니라는 게 아닙니다.
 
자아(ego)가 강하고, 자존심이 세며, 이기적인 데다가, 왕의 절대적인 권력을 믿고, 냉혹하고 잔인한 면모가 있어 충성했던 신하들과 사랑했던 부인들의 목까지 서슴없이 잘랐던 헨리는 ‘나쁜 남자’ 로서 B형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렇게 멋있었다니...
나름 기대했던 저는 국립 초상화 전시장(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그의 초상화를 보고, 실망을 넘어서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 시대에는 이게 잘생긴 것이었을까요?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현대 우리의 눈으로는 푸줏간 아저씨처럼 보이는 그의 초상화를 한참 들여다보며 매력을 찾으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결국 포기하고 집에 왔습니다.
 
젊은 헨리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제외하고는
 
*
 
다음편에서는 아들을 못나 버림받은 헨리의 첫번째 부인 아라곤의 캐서린을 만나보겠습니다.
 
[사진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Martin_Luther#mediaviewer/File:Lucas_Cranach_d.%C3%84._-_Martin_Luther,_1528_(Veste_Coburg).jpg
http://en.wikipedia.org/wiki/John_Calvin#mediaviewer/File:John_Calvin_-_Young.jpg
http://en.wikipedia.org/wiki/Henry_VIII_of_England#mediaviewer/File:Workshop_of_Hans_Holbein_the_Younger_-_Portrait_of_Henry_VIII_-_Google_Art_Project.jpg]
 
칼럼니스트 사진

미셸라이브 회계사/작가

살사추는 회계사의 런던 이야기 – 소설처럼 읽는 런던의 역사, 생생하게 사진으로 가보는 명소, 런던에 사는 그녀의 삶. 미셸과 함께 런던과의 데이트를 시작하세요.

등록일 : 2014-11-03 11:50   |  수정일 : 2014-11-0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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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홍  ( 2014-11-03 )  답글보이기 찬성 : 23 반대 : 14
매우 오랬만에 나오셨네요, 자주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홍순조  ( 2014-11-03 )  답글보이기 찬성 : 13 반대 : 21
무슨 이런 말도 않되는 글을 조선일보에 싣는 이유가 뭐요???? 글쓴이가 일부러 가톨릭을 까기 위해 만들었든가 아니면 아무런 역사적 종교적 지식도 었는 무식자이거나 둘중 하나 같은데...도대체 이런 이상한 글을 기사라고 싣는 조선일보의 속셈을 모르겠소. 내용이 틀린데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수정할 수 었을 정도인데.. 52202;52202;..계속 이런 걸 기사라고 싣는다면 조선일보 불매운동 벌이겠오!!!!
조현오  ( 2014-11-04 )  답글보이기 찬성 : 9 반대 : 23
대중이 보는 매체에 글을 실으려면 그냥 자극적 내용으로 덧칠해서 시선을 끄는데만 신경쓰지 말고 최소한 역사공부를 좀 해서 모르는 독자들을 오도하지는 말도록 해주었으면 하고 진정 바랍니다. 영국의 모든 elite 계급에게 물어 보세요. 그들이 교육을 통해 배운 Henry 8 세가 어떤 사람으로 영국사람들 머리에 각되어있고 그리 역사 해석을 배웠는지를...오늘의 대영제국을 만드는 초석을 다졌고 교황에 거부함으로서 서구 역사의 방향을 바꾼자예요. 그게 그냥 여자하나 때문에 자신의 목숨과 국가 운명을 걸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정치가는 이유가 필요한 것입니다. 무슨 일을 저지르기 위해.... 허허실실 ... 정치가 얼마나 무서운지 목숨건 게임인걸 모르는 너무나 순진한 comments..젊은 학생들 오도할까 봐 걱정됩니다. Henry 8 세 이전에 영국은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였어요. 아고....
박상희  ( 2014-11-11 )  답글보이기 찬성 : 21 반대 : 14
오랜만입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얼마전에 천일의 앤이라는 디비디를 본적 있는데, 앤불린 얘기였죠. 그 사건을 어떤이는 인류 천년역사(서기 1000∼2000년)에 최대스캔들이라고 했다는데 앞으로 그 얘기가 펼쳐지겠네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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