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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미셸라이브의 런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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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타워’ 에서 사라진 두 왕자의 미스테리

‘요크’가와 ‘랑카스터’가 사이의 장미전쟁 II

글 | 미셸라이브 회계사/작가
필자의 다른 기사

영국의 로미오와 줄리엣 집안,
요크가와 랑카스터가 사이의 '장미전쟁 (War of the Roses)' II
 
요크가의 장미 vs. 랑카스터가의 붉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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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가의 장미와 랑카스터가의 붉은 장미]
요크가는 흰 장미, 랑카스터가는 붉은 장미가 상징해 ‘장미 전쟁’이라 불렸던 것이지, 낭만적인 면모는 조금도 없었던 장미전쟁은 대포 등 당시로서는 최신무기까지 동원되는 매우 격렬하고 잔인한 전쟁이었습니다.   
 
헨리 6세와 요크가의 리차드집안 외에도 다른 많은 귀족집안들이 합세해 규모가 커졌던 장미전쟁은 귀족들이 수시로 편을 바꾸어 매우 복잡했고, 전쟁 중 왕이 여섯번 바뀌고, 세명의 왕이 살해당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귀족들의 수가 반으로 줄어 있었습니다. 형제들의 싸움이 전쟁이 계속되면서 대가 바뀌어 친척들의 싸움이 되어, 장미 전쟁은 친척들의 전쟁 (The Cousins’ War) 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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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카스터가와 요크가의 장미전쟁 차트]
 
 
1 라운드 ‘그런 당신과 함께하는 식탁과 침대로부터 저는 이혼하겠습니다.
 
포로로 잡힌 헨리 6세가 아들, 에드워드 왕자 대신 ‘요크가의 리차드’를 상속자로 임명했을때, 왕비 ‘앙주의 마가렛’의 심정은 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Henry VI) 에서 이렇게 표현되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었으면 창에 찔려 공중으로 던져기기 전까지 허락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명예보다 목숨이 중요한 당신이군요. 이제 그런 당신과 함께 하는 식탁과 침대로부터 저는 이혼하겠습니다. 
 
 전투 중에 헨리에게 다시 정신분열증이 찾아왔고, 전보다 증상이 심해진 헨리는 이제 전투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웃고, 노래하며 난리였습니다..." 어머니, 저를 낳으셨나요!"
 
2 라운드 ‘소년이 왕이 되서 좋은 적이 없었다.
 
정신나간 남편 대신 아들의 왕권을 지켜야했던 ‘앙주의 마가렛’은 포기하지 않고 전쟁을 계속했고, 1460 웨이크필드 전투 (Battle of Wakefield) 에서 ‘요크 가의 리차드’ 전사했습니다. 그러나 리차드의 아들인 에드워드가 1461 타우튼 전투 (Battle of Towton) 에서 승리해 헨리 6세를 가두고 왕의 자리에 올라 에드워드 4 (r. 146170 & 147183) 되었습니다.
 
한편, 이때 영국 중부의 노쓰앰튼셔 (Northamptonshire) 에서는 로맨스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랑카스터 가의 편에 서서 싸우던 남편이 전사한 후, 반대 편이였다는 이유로 땅까지 압수당하고 어린 아들과 홀로 남은 젊고 아름다운 과부 엘리자베스 우드빌 (Elizabeth Woodville). 그녀가 땅을 되찾을 있는 방법은 왕에게 항소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어린 아들과 함께 참나무 아래서 왕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면서, 내심 왕이 자신한테 반하기를 바랬습니다).
엘리자베스의 소원대로, 에드워드는 아름다운 엘리자베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둘은 만난지 몇 주만에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외국의 공주와 결혼해서 세력을 굳혀야 했던 에드워드의 이런 무책임한 행동은 에드워드가 왕이 되는데 공헌을 워릭 백작, 리차드 네빌 (Richard Neville, Earl of Warwick) 반감을 샀습니다.
 
원래 헨리 6세 편이였던 워릭 백작은, 랑카스터 가의 소머셋 공작과의 영토싸움 후, 요크 가로 편을 바꾸었던 것인데, 에드워드를 왕으로 만들어주었기에 왕을 만드는 사람 (the Kingmaker) 이라 불리는 영향력이 사람이였습니다 (본인은 왕위계승자가 아니지만현왕의 자리와 계승자의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킹메이커’, 왕을 만드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에드워드가 상의도 없이 엘리자베스와 결혼식을 올린 것을 배신으로 여긴 워릭 백작은 왕비가 평민 엘리자베스 집안의 부와 영향력이 커지자 점점 위협을 느꼈고, 결국 에드워드를 배신하고또다시 편을 바꾸어 ‘앙주의 마가렛’  손잡고 헨리 6세가 다시 왕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1471년의 바넷 전투 (Battle of Barnet) 튜크스베리 전투 (Battle of Tewkesbury) 에서 랑카스터 가가 지고, 이때 워릭과 헨리 6세의 아들, 에드워드 왕자도 전사하여, 에드워드 4세는 다시 왕권을 회복할 있었습니다.
다시 런던 타워 (Tower of London) 감금된 헨리 6세는 우울함과 상념에 빠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에드워드의 명령에 살해되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앙주의 마가렛’은 그녀의 아버지가 에드워드 4세가 요구하는 몸값을 치르고 다시 프랑스로 데려갔지만, 그곳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다시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4 아래 12년간 비교적 안정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낚시를 나갔다가 찬바람을 쐰 후 폐렴에 걸려 갑작스럽게 죽고, 그의 12살난 아들, 에드워드가 뒤를 잇게 되었습니다 (에드워드 5 r. Apr-Jun 1483).
 
어린 에드워드가 대관식을 치르기 위해 런던으로 가는 길에 삼촌 리차드가 보호자로 따라 나섰습니다. 런던에 도착하여 시장과 지도자들을 만난 어린 왕은 ‘런던 타워’ 안내되었고, 조금 후에 그곳에서 3 아래의 동생도 만나게 되었는데, 이후로 소년들은 다시 없게 되었습니다.
삼촌 리차드는 ‘에드워드 4세의 결혼은 합법적이지 않아서, 어차피 왕자들은 사생아로서 왕이 자격이 없고, 그게 아니더라도 소년이 왕이 되서 좋은 적이 없었다’ , 에드워드 집안의 다른 사람들도 감금하거나 사형시켰습니다.
 그 후 그는 ", 그럼 나밖에 안남았네? 없지…" 라며 마지못한 듯 왕관을 쓰고, 리차드 3 (r. 1483-5) 되었습니다.
 
소년들의 행방은 리퍼 (Jack the Ripper) 누구인가? 케네디 (Kennedy) 누가 암살했나? 프린세스 다이아나 (Princess Diana) 살해되었던 것인가? 등의 질문들과 함께 역사에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3라운드 ‘튜도 왕조’의 시작
 
요크 가의 에드워드 4세와 에드워드 5세를 거쳐 리차드 3세가 왕이 되었는데도, 계속 포기하지 않고 뒤에서 노력했던 끈질긴 랑카스터 인들 중에, 마가렛 뷰포트 (Margaret Beaufort) 부인과 그의 아들, 헨리 튜도 (Henry Tudor) 있었습니다.
 
헨리 튜도는 헨리 6세의 아주 친척입니다. (에드워드 3세의 세째 아들 ‘곤트의 존’의 세번째 부인의 고종 손녀와 ‘곤트의 존’의 손자, 헨리 5세의 부인의 두번째 결혼으로 인한 아들 사이의 아들)
그의 앞에는 왕관을 사람들이 몇씩이나 줄서있었지만, 마가렛 뷰포트 부인은 자신의 아들, 헨리가 영국의 왕이 되는 것이 신의 뜻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전 남편의 동생, 자스퍼 튜도 (Jasper Tudor) 함께 끊임없이 기도하고, 작전을 세우며 때를 보아왔습니다.
 
헨리 앞의 왕위계승자들이 하나 둘씩 죽고, 리차드 3세가 어린 왕을 타도하고 왕관을 썼을 때, 이제 본인의 때가 왔음을 헨리는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돌아와, 1485 보스워쓰 필드 전투 (Battle of Bosworth Field) 에서 리차드를 죽이고, 그의 머리에서 떨어진 왕관을 집어썼습니다. 이로서 30년을 끈 ‘장미 전쟁’은 끝나고, 최후의 승리는 랑카스터 가에게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헨리
7 (r. 1485-1509) 헨리 튜도는 원수집안 요크 가의 에드워드 4세의 , 요크가의 엘리자베스 (Elizabeth of York) 결혼함으로서 더이상 집안 사이에 분쟁이 없게 했습니다. 또 랑카스터의 붉은 장미가 요크의 흰장미를 감싸고 있는 새로운 튜도 왕조 (Tudor dynasty) 문장이 만들어지면서, 117 역사의 튜도 시대의 막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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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와 붉은 장미가 합쳐진 튜도 왕조의 문장]
 
 
런던 타워에서 사라진 왕자의 미스테리
 
종적을 감춘 소년들은 어떻게 것일까요? 1674 ‘런던 타워’ 수리공사중, 세인트 존스 예배당 (St Johns Chapel) 계단 아래에서 12살과 9살로 추정되는 어린 아이들의 해골과 뼈가 발견되었습니다. 뼈들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Westminster Abbey) 으로 옮겨져 묻혔지만, ‘이 뼈들이 왕자의 것이다, 아니다’ 대한 논쟁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리차드 3세를 죽인 헨리 튜도로 시작되었던 ‘튜도 왕조’는 리차드가 시킨 사람이 잠자는 아이들을 베게로 질식사시켜 계단 밑에 묻었으며, 헨리 7세가 나타나 사악한 리차드로부터 영국을 구해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선전을 펼쳤습니다. 튜도 왕조 때 태어난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Richard III) 에서 리차드는 곱추 등을 가진 사악한 살인자로 그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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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타워에서 종적을 감춘 슬픈 운명의 왕자]

한편, 리차드 3세를 용감한 군인이자, 의회를 잘 다스릴 줄도 알았던 능력있는 왕으로 보는 사람들은 다른 주장을 합니다. (리차드 3세는 클럽, ‘리처드 3세 협회(Richard III Society) 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리차드는 어깨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높았을 뿐이지 곱추는 아니였습니다. 또 소년들도 타워에서 요크지방에 있는 미들햄 성으로 옮겨진 , 1485 리차드 3세와 헨리 7세의 ‘보스워쓰 필드’ 전투 때까지 살아있었고, 따라서 소년들은 리차드 3세가 죽인 것이 아니고 헨리 7세가 죽인 것이라고 합니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요?... I guess we will never know.
 
'장미 전쟁' 향기
 
길고 잔인했던 것만큼 ‘장미전쟁’의 향기는 짙었습니다.
 
소리 떵떵 치는 왕의 시대가 돌아왔다!
 
장미전쟁으로 수가 현저히 줄은 귀족들의 힘이 자연스레 약해지면서, ‘마그나 카르타’와 ‘백년 전쟁’을 거치며 약해졌던 왕권이 상대적으로 다시 강해졌습니다. 이에 힘입어 ‘튜도 왕조’ 때는  중심의 중앙집권정치가 행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약하고 배짱없었던 리차드 2 (소년 때 왕이되어 농민 봉기때 잠시 반짝했지만 결국 사촌형에게 왕관을 빼앗긴 ) 헨리 6 (무서운 마누라와 결혼하여 기죽어 살다가 결국 돌아버린 ) 같은 왕들은 무시받아 귀족들이 세력을 뻗칠 있었지만, 헨리 7세와 특히 그의 뒤를 이은 헨리 8세같이 카리스마 있고 기센 왕들 앞에서는 다들 찍소리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중산층 계급 젠트리 탄생
 
장미전쟁 ‘백년전쟁’, ‘흑사병’과 ‘농민 봉기’가 초래했던 봉건주의 몰락을 가속화시켰습니다. 장미전쟁의 전투들은 영국 전역에서 벌어졌지만, 귀족들 간의 싸움에 개입하지 않았던 평민들은 마치 아무 일 없다는 있었습니다. 장인들과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의학, 신학, 법률에 종사하는 전문인들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교육받은 이들은 깨어있었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싶어했으며, 남에게 명령받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기업가 정신을 지니고 있었던 이들에게는 봉건적인 특성인 주인을 향한영주를 향한왕을 향한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충성이라는 윤리가 먹혀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귀족과 농민사이의 젠트리 (gentry, 신사 계급)라는 중산층을 형성했습니다. 흔히 우리가 매너가 좋은 사람을 말할 때 쓰는 젠틀맨 (gentleman) 이란 단어는 집안이 좋거나 교육받은 ‘젠트리’ 계급의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였습니다.
 
세력간의 대립을 뜻하는 말이 ‘장미 전쟁’
 
‘장미 전쟁’ 이후로 힘이 비슷한 세력간의 싸움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표현이 되어 영국의 대표적인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Manchester United)' '리즈 유나이티드 (Leeds United)' 경기가 장미들의 전쟁으로 불리기도 하며,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 이혼 직전의 부부의 모습을 그린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습니다.
 
영국이 정신을 잃은지 오래되어, 스스로 상처를 입히고 있다
England hath long been mad, and scarrd herself
 
 
형제가 맹목적으로 형제의 피를 흘리고
The brother blindly shed the brothers blood;
 
 
아버지가 분별없이 아들을 죽이며
The father rashly slaughterd his own son;
 
 
아들이 아버지를 살육하도록 강요당하니
The son, compelld, been butcher to the sire
 
 
요크와 랑카스터의 분열이
All this divided York and Lancaster...
 
 
셰익스피어의 Richard III 에서.
 
등록일 : 2014-07-30 오후 3:55:00   |  수정일 : 2014-07-3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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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라이브 회계사/작가

살사추는 회계사의 런던 이야기 – 소설처럼 읽는 런던의 역사, 생생하게 사진으로 가보는 명소, 런던에 사는 그녀의 삶. 미셸과 함께 런던과의 데이트를 시작하세요.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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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의  ( 2014-08-08 )  답글보이기 찬성 : 19 반대 : 11
11월에 나올 책 제목과 출판사를 알려주세요.
그 동안 기사로 나온 시리즈를 복사해서 아내에게 이메일로 보내줬는 데 단행본이 나오면 그 것을 사서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답글보이기  미셸라이브  ( 2014-09-01 )  찬성 : 2 반대 : 11
제목이 아직 안정해졌어요 :) 정해지면 알려드릴께요. 조선일보에 올라온 글보다 더 많은 내용이 있고요, 로마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 다루어집니다. 답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다음편도 지금 보냈으니 다음주중에 올라올거에요.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홍민수  ( 2014-08-07 )  답글보이기 찬성 : 13 반대 : 2
장미전쟁이 확실히 정리 되네요.
      답글보이기  미셸라이브  ( 2014-08-08 )  찬성 : 8 반대 : 0
감사합니다. 장미전쟁이 드라마 화이트 퀸의 소재였는데 보셨나요? :)
이창의  ( 2014-08-04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13
한동안 미셀라이브님께서 올린 글을 읽지 못하다 최근 몇편을 한꺼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새로 올리신 글도 반가웠지만 더 반가웠던 것은 투어 가이드 사업을 시작하였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주로 출장 덕분에 여러나라를 방문하였지만 이상하게 영국하고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런던아이에서 내려다 보는 런던의 전경과 스카치 블랜디드 위스키, 아이리쉬 싱글몰트 위스키, 더블린의 기네스 맥주를 맛보려 잉글랜드, 스코들랜드, 아일랜드를 가보고 싶었는 데 미셀라이브 님께서 투어 가이드 사업을 시작하였다니 더 빨리 그곳을 방문하고 싶네요. 그 동안 런던 이야기 시리즈를 읽으면서, 이렇게 런던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한테 런던 가이드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답글보이기  미셸라이브  ( 2014-08-08 )  찬성 : 12 반대 : 0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투어가이드 사업은 시작만 해놓고, 출판 일이 바빠져서 많이 못하고 있는데, 런던 이야기 11월에 책으로 나온후에 본격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언제 이창의님도 제 투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도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투어에도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아직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못가봤는데, 가보고 싶어요.
이경범  ( 2014-07-30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5
옛날 멋모르고 배웠던 세계사 다시 들으니 재미있군.
      답글보이기  미셸라이브  ( 2014-08-08 )  찬성 : 9 반대 : 5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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