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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라이브의 런던 이야기

‘요크’ 가와 ‘랑카스터’가 사이의 장미전쟁 I

글 | 미셸라이브 회계사/작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7-22 오전 9:51:00

 
영국의 로미오와 줄리엣 집안,
요크가와 랑카스터가 사이의 '장미전쟁 (War of the Roses)' I
 
어린 나이에 왕이 리차드 2세의 절정기는 그가 14살이였던 1381, 농민 봉기 (Peasants’Revolt) 일어났을때, 성난 농민들을 향해 ‘여러분은 당신의 왕을 것입니까? 나외에는 당신들에게 대장이 없습니다, 나를 따르십시오!  라며 용감함을 보였던 순간이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카리스마는 다시 발휘되지 않았습니다.
 
‘백년 전쟁’, ‘흑사병(black death)’과 ‘농민 봉기’ 등의 사건을 거치며 영국에서는 인권이 중요시되고 국민들도 영국인으로서의 자존감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귀족들도 점차 프랑스인에서 영국인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런던의 길드장인들이 세력을 떨치고 있었던 변화하는 시기에, 보르도 (Bordeaux) 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냈던 리차드 2세는 시대의 흐름과 자신의 역량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아직도 ‘왕은 신과 같은 존재라, 누구에게도 보고할 필요가 없으며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는다’ 진부하고 프랑스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의회없이 독재 정치를 펴나가려 했고, 이것이 그의 파멸을 불렀습니다.
리차드와 귀족과 상인들과의 사이는 점점 험악해져갔고, 결국 리차드는 본인이 어렸을때 섭정으로서 나라를 대신 다스렸었던 삼촌, 곤트의 (John of Gaunt) 아들, 볼링브로크 성에서 태어난 헨리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보르도의 리차드 (Richard ofBordeaux) 볼링브로크의 헨리 (Henry of Bolingbroke) 소년시절부터 라이벌 사이였습니다.
 
평생가는 소년들의 라이벌 의식 '보르도의 리차드' '볼링브로크의 헨리'
 
에드워드 3세를 할아버지로 두었던 리차드와 헨리는 나이는 1살 밖에 차이나지 않았지만 (리차드 1367년생, 헨리 1366년생), 성격과 자란 환경이 전혀 달랐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 (블랙 프린스) 여의고 혼자 자란 ‘보르도의 리차드’는 마상창시합 (jousting /자우스팅/ 갑옷을 입고 말을 두명의 기사가 창을 들고 서로에게 달려가며 상대방의 창을 부수거나 상대방의 갑옷에 자신의 창을 꽂아 자신의 창을 부수어 점수를 얻었던 중세의 스포츠) 같은 남자다운 취미가 없었습니다. 잘 생기기는 했지만, 용맹한 영웅의 이미지보다는 자타가 공인했던 예쁜 엄마를 닮은 꽃미남 타입으로 게이가 아닐까 하는 오해까지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중세기에 요구되었던 남자답고 카리스마 있는 왕의 틀에 부적합한 남자였습니다. 10살 때 대관식의 예식이 힘들어 실신하여 등에 업혀 왕실로 돌아가게 것을 평생 수치스럽게 여기었던 리차드 본인도 이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자격지심을 가지고 살았던 불쌍한 남자입니다.
 
반면, ‘곤트의 아들, ‘볼링브로크의 헨리’는 타락했을지라도 다음으로 권력있었던 늠름한 아버지를 숭배하며 자랐고, 항상 비슷한 나이의 또래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며, 야심차고 세계사에 관심이 많았고, 마상 창시합에도 뛰어나, 리차드보다 대중의 영웅 이미지에 부합되는 젊은이로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이에는 항상 경쟁의식이 자리잡고 있었고, 헨리에게 밀려나 요크셔 지방의 폰테프랙트 성에 갇힌 리차드는 수치심에 살아갈 의지를 잃고 스스로 굶어 목숨을 끊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첫번째 아내, 보헤미아의 (Anne of Bohemia) 흑사병으 죽었을 때 광란에 가까운 슬픔을 보였었던 리차드는 그렇게 32년의 짧은 생을 마치고 그녀 곁에 묻혔습니다.
 
흠… 그런데,
 
왕은 능력 순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선거로 뽑는 것도 아니고, 대를 물려 내려가게 되어있는 것인데, 멀쩡히 살아있는 왕을 이렇게 몰아내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나요?
 
헨리 4 (r. 1399-1413) ‘볼링브로크의 헨리’는 위험한 전례를 만들었습니다. 리차드의 죽음은 비극의 시작이였고, 장미 전쟁 (War of the Roses) 시초가 되었습니다.
 
헨리는 에드워드 3세의 세째 아들의 네째 아들로서 왕위에 대한 권한도 약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번 일어난 일은 일어날 있고, 남에게 한 일은 결국 자기에게 돌아오는 듯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남은 여생을 왕위를 지키려는 노력만 하다가 갔습니다.
 
서쪽에서는 웨일즈의 독립운동이, 북쪽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습격이, 남쪽 해안에서는 프랑스의 기습이, 영국 내부에서는 귀족 집안들의 싸움이 연달아 일어났고, 요크의 대주교를 반역자로 처형했다가 신을 공경하지 않는 괴물취급 받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개인적으로는 머리에 이가 생기고, 습진으로 괴로운 인생을 보냈던 헨리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그럼 십자군 원정을 떠날 때까지는 안전하겠구나’ 하는 생각만을 위로삼아 지냈습니다. 멀리 이스라엘까지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어느날 웨스트민스터 사원 (WestminsterAbbey) ‘참회왕 에드워드의 신전’ 에서 기도하다가 쓰러진 헨리는 예루살렘실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Was it really worth it? 왕관을 헨리,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없고, 비교하기 시작하면 남이 가진 모두 나도 가지고 싶지만, 권력에는 책임이 따라오고,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데는 위험이 따르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국의 로미오와 줄리엣 집안 요크가와 랑카스터가
 
베로나에 ‘캐퓰렛’과 ‘몬타규’가가 있다면, 영국에는 ‘요크’와 ‘랑카스터’가가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3 집안의 자손들이 문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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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3 집안 차트]
 
자식없이 죽은 리차드 2세의 뒤를 둘째 아들 ‘클라렌스’ 집안이 이었어야 정상이였지만, 집안은 별로 야망도 힘도 없었고, 다섯째 아들 ‘글로스터’ 집안 역시 왕위다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따라, 남은 애들은 세째와 네째 ‘랑카스터’ ‘요크’ 집안이였고, 장미 전쟁은 집안의 왕위를 두고 벌어진 싸움이였습니다.
 
아버지가 쟁취한 위태롭고 부자연스러운 왕위에 올랐지만, 헨리 4세의 아들 헨리 5 (r. 1413-22) 남달랐습니다. 수도승같은 머리 스타일, 마른 얼굴, , 다문 입술, 굳은 표정의 초상화가 말해주듯 그는 유머감각 없고, 인정사정 없으며, 가혹하고 가차없는 사람이였지만, 전투능력이 뛰어났고, 중세기가 원했던 왕의 자질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헨리 5세는 국민들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휴전중이였던 프랑스와의 ‘백년 전쟁’을 재기했고, 승리에 승리를 거두어 프랑스의 샤를 6세의 상속자로 임명받고 그의 딸과 결혼하기까지 , 한때 서유럽에서 가장 힘있는 왕이 되었습니다.
 
36세의 나이로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유럽의 역사가 달라졌을텐데, 헨리 5세의 뒤를 이은 헨리 6세는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아들이였습니다.
 
무서운 마누라 '앙주의 마가렛' 때문에 소심해진 헨리 6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죽고, 8개월때부터 엄마 무릎에 앉아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아기 , 헨리 6 (r. 1422-61 & 1470-71) 어린 나이에 아버지 헨리 5세가 획득한 프랑스의 왕관도 쓰게 되었습니다. 왕이 운명의 사람이였으면 thank you very much 기쁘게 받아드렸을 일들이였지만, 모든 것이 약한 남자 헨리 6세에게는 너무 부담이였습니다.
 
자식 겉낳지 속낳냐고, 헨리 6세는 전투적이고 도전적이였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와는 정반대로, 측은함을 불러일으키는 외모에 종교적이며 겁이 많고 마음도 약한 사람이였습니다. 캠브리지 대학의 이튼 칼리지 (Eton College) 킹스 칼리지 (Kings College) 설립한 공로가 있지만, 헨리 6세는 중세기가 원했던 카리스마있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매력적이고 총명했지만, 가혹하고 완고하며 남자보다 배짱이 커서, ‘이 여자 안에 호랑이가 살고 있다’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던 프랑스 여인, 앙주의 마가렛 (Margaret of Anjou) 결혼하면서 기가 죽어 지내게 되었습니다.
 
헨리 6세는 운도 없었습니다. 1429 년에 나타난 다르크가 활약하면서, 영국은 결국 ‘백년 전쟁’에 패배하여 칼레만 남기고 프랑스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왕은 기를 없게 되었고, 프랑스에서 세력을 뻗을 꿈을 꾸었던 귀족들은 낭패감에 빠져 서로의 잘못이라 손가락질하며, 자기 외에는 반역자이고 마녀의 자손이라며 소동을 피우고 있었는데, 와중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무너진 속을 안고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왕이 돌아버렸습니다. 외할아버지, ‘미친 샤를 6 (Charles VI theMad)’ 에게 물려받은 정신분열증이 스트레스로 인해 발발한 것이였는데, 돌아버린 왕은 자기가 누군지 (), 어디에 있는지 (궁전), 주위 사람들이 누가 누군지 (무서운 마누라와 그녀의 측근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친척들이 자기의 자리를 넘보고 있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왕은 미쳤고, 왕자는 아직 어렸으니, 요크가의 리차드 (Richard of York) (에드워드 3세의 네째 아들의 손자) 섭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돌았던 것처럼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헨리가 ‘왜 여기에 앉아있냐’ 리차드를 섭정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지만, 이미 권력의 맛을 리차드는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흠… 역사를 보면, 에드워드 2세와 리차드 2세는 능력없다고 타도당했고, 프랑스 왕이 엄연히 살아있는데도 에드워드 3세는 자기가 왕관 써야겠노라고 난리를 쳤는데, 명백히 돌아버린 왕을 그냥 둬야하나요?  
 
족보를 펼쳐놓고 거꾸로도 보고, 돌려보기도 하고, 돋보기로도 봐보고, 바닥에 내려놓고 위에 서서 내려다보기도 하고, 높이 들어서 보기도 하면서, 아빠쪽으로도 올라가보고, 엄마쪽으로도 올라가본 리차드는 엄마쪽으로 치면 본인이 헨리 6세보다 왕이 권한이 사람인 것을 발견했고 (리차드의 아버지가 에드워드 3세의 손자의 과부와 결혼했었습니다…), 이것을 빌미삼아 1455 요크가의 리차드 랑카스터가의 헨리 6세를 타도하려 하면서 ‘장미 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요크가는 장미, 랑카스터가는 붉은 장미가 상징해 ‘장미 전쟁’이라 불렸던 것이지, 낭만적인 면모는 조금도 없었던 장미 전쟁은 대포등의 최신무기까지 동원되어 매우 격렬하고 잔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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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미셸라이브 회계사/작가

살사추는 회계사의 런던 이야기 – 소설처럼 읽는 런던의 역사, 생생하게 사진으로 가보는 명소, 런던에 사는 그녀의 삶. 미셸과 함께 런던과의 데이트를 시작하세요.

등록일 : 2014-07-22 오전 9:51:00   |  수정일 : 2014-07-2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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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보고  ( 2014-07-22 )  답글보이기 찬성 : 38 반대 : 13
안녕하세요재밌게본독자입니다그런데도중에사진몇개가안나오는거같은데첨부하신사진이한개가맞으신지요?
      답글보이기  미셸라이브  ( 2014-07-22 )  찬성 : 7 반대 : 9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본문에 차트/도표 하나있고, 마지막에 장미들 사진 있습니다. 제가 볼때는 다 나오는데요.. 혹시 창을 다시 열어보시면 나올까요?...
hylee  ( 2014-07-22 )  답글보이기 찬성 : 33 반대 : 5
와우..친절하게 도표까지 직접 그려주셔서 쉽게, 가족관계가 이해되네요. 글이 독특하고 맛이있어요^^
eugene  ( 2014-07-23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30
영국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러면 요크가의 누군가와 랑커스터가의 누구가 사랑을 했다는건데.....내용 가운데 그런건 없는것 같네요. 암튼 다음 후속편을 기대하겠습니다.
이동석  ( 2014-07-23 )  답글보이기 찬성 : 31 반대 : 10
랭커스터가는 붉은 장미 요크가는 흰 장미
      답글보이기  미셸라이브  ( 2014-08-08 )  찬성 : 6 반대 : 0
다음 편에는 요크가의 남자와 원래 랑카스터가였던 여자의 사랑얘기가 나오고요, 또 앙숙집안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도 로미오와 줄리엣 집안과 비교했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글보이기  미셸라이브  ( 2014-08-08 )  찬성 : 4 반대 : 15
감사합니다∼ 도표가 도움이 되서 다행이에요. 가족관계가 복잡할 수 있는데 :)
      답글보이기  미셸라이브  ( 2014-08-08 )  찬성 : 6 반대 : 10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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