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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주의자 박동운 교수의 대한민국 가꾸기

문재인 대통령, 경제를 알까? 모를까?

글 |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2018-12-17 09:18

▲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정례보고 받는 문재인 대통령
나는 최근 ‘나라와 세계를 바꿔 존경받는 7인의 정치가’라는 책 원고를 끝냈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훌륭한 정치가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주어진 여건에서 스스로 노력하여 만들어가는 것일까?’라는 자문(自問)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다. 또 이 책을 쓰게 된 목적은 ‘거꾸로 가는 정책만 고집하여’ 잘 나가는 한국경제를 침몰시켜 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경종이란 바로 훌륭한 정치가들의 통치다.
 
7인의 정치가들을 집권 순으로 쓰면, 리콴유, 박정희, 덩샤오핑, 마거릿 대처, 로날드 레이건, 넬슨 만델라, 그리고 앙겔라 메르켈. 나의 자문에 대한 대답이다: ‘훌륭한 정치가는 스스로 노력하여 만들어가는 것이다.’
 
일찍이 중국을 ‘잠자는 사자’로 표현한 나폴레옹은 중국이 깨어나면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아놀드 토인비도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나폴레옹과 토인비의 예언대로, ‘중국 굴기(崛起)’는 지금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중국 굴기’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서 비롯되었다. 덩샤오핑 이야기다.
 
덩샤오핑은 가방끈이 매우 짧다. 사실상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다. 그는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1920년 16살에 근공검학단(勤工儉學團)의 일원으로 프랑스로 유학을 갔지만 생활고에 시달려 공부는 하지 못하고 1926년 1월 7일에 공산 혁명의 본산(本山) 소련으로 갔다. 소련에서 1년 남짓 머물다가 중국으로 돌아와 혁명군에 가담했다. 그는 1933년에 마오쩌뚱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1차 실각을 당했고, 1969년에 마오쩌뚱의 반대편에 섰다는 이유로 2차 실각을 당했다. 2차 실각 때는 3년 동안 하방(下方)생활을 하면서 홍위병으로부터 심한 핍박을 받았다. 3차 실각은 4인방에 의해 이뤄졌는데 마오쩌뚱의 죽음으로 곧 풀려났다. 그는 지지 세력의 쿠데타로 1978년 12월에 권력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덩샤오핑은 정치적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만들어 갔다.
 
덩샤오핑은 경제적으로도 자신을 철저하게 만들어 갔다. 그는 프랑스로 유학 갔다가 공부는 하지 못하고 6년 남짓 노동하며 프랑스 자본주의를 배웠다. 마오쩌뚱은 1958∼1960년간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을 추진했는데, 실패하여 3,000만∼4,000만여 명이 굶어죽었다. 이를 비판한 덩샤오핑은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실각당했다. 그는 1978년 4인방과 피 말리는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에도 중국을 하루 빨리 변화시키고자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국가 주도의 빠른 자본주의적 경제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을 리콴유에게서 배우기 위해서였다. 리콴유는 덩샤오핑에게 경제개발 전략을 훈수했다. 리콴유는 당시 서구의 다국적기업들이 싱가포르에 진출하여 창조해놓은 부를 덩샤오핑에게 보여줬다. 싱가포르의 발전상을 둘러본 덩샤오핑은 리콴유가 이룩한 성과를 극찬했다. 이를 리콴유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중국은 우리가 과거에 그들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덩샤오핑이 1970년대에 싱가포르를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서구의 다국적기업들이 진출하여 창조해놓은 부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덩샤오핑은 아마도 빗장을 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후 그는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경제특구를 열었고, WTO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개방의 시대로 나아갔습니다.”
 
덩샤오핑은 싱가포르에서 무엇을 보고 배웠을까? 덩샤오핑은 크기에서 중국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이룬 눈부신 경제발전, 그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자유시장경제’, 그리고 ‘서구의 다국적 기업을 통한 해외자본 유치’, 곧 경제개방이라는 것을 배웠다.
 
덩샤오핑은 1978년 12월 18일에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권력투쟁에 종지부를 찍고 권력을 잡았다. 이어 덩샤오핑은 1978년에 농업부문에서 시장경제를 실험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방정책을 도입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수교부터 맺었다. 1978년에는 한 때 전쟁을 벌인 일본과 중일우호조약을 맺었고, 1979년 1월에는 미국으로 날아가 미국과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하여 미국으로부터 관세최혜국(MFN, Most Favored Nation) 지위를 얻어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사상은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으로 표현된다. 이 말은 본래 덩샤오핑의 고향인 쓰촨성의 속담에서 유래한 말인데, ‘흑묘백묘 주노서 취시호묘(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의 줄임말이다. ‘흑묘백묘론’은 마오쩌뚱이 추진한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 3,000만∼4,000만여 명이 굶어죽자 덩샤오핑이 그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제시한 말이다. 이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덩샤오핑이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유명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 말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 인민을 잘 살게만 하면 된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흑묘백묘론’은 덩샤오핑의 통치철학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사상은 남순강화(南巡講話)에서 꽃을 피웠다. ‘남순강화’란 88세의 덩샤오핑이 1992년 2월 춘절을 전후해서 광둥성, 상하이 등 남부지방을 순회하면서 한 연설이다. 다음은 덩샤오핑 연설의 일부.
 
“개혁개방만이 중국의 유일한 살 길이다. 개혁을 하지 않으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든 물러나야 할 것이다.”
 
“광둥성은 앞으로 20년 내에(주: 1992년에 한 연설로 ‘2012년 이전’을 뜻함) 타이완, 한국,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을 따라 잡아야 한다. 그들 사회의 썩은 분위기는 받아들이지 말고⋯.”
 
“자본주의가 하고 있는 많은 것들은 사회주의도 가져다 쓸 수 있는 것들이다. 가난이 사회주의는 아니다.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 이야기. 문재인 대통령이 대학시절 운동권에 몸담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의 운동권 활동과 관련하여 한 교수가 내게 들려준 당시 에피소드. 그 교수는 어느 날 경찰서로부터 문재인 학생을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고 그가 풀려나게 도왔다.
 
그 교수는 얼마 후 경찰서로부터 똑같은 전화를 받고 또 그를 풀려나게 도왔다. 물론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운동권 학생들은 공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교수들은 염려했다. 그래서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내가 선정한 ‘나라와 세계를 바꿔 존경받는 7인의 정치가들’처럼 ‘통치자로서 노력해서 자신을 가꿨는가?’ 생각해본다. 그의 경제정책을 놓고. 몇 가지 예를 든다.
 
∙문재인 대선 후보는 법인세율을 올리겠다고 벼르더니만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22%에서 25%로 올려버렸다. 2017년 당시 170여 개국 중 사실상 한국만 올렸다.
 
∙ 문 대통령은 공무원·공공부문 인력 81만 명 증원에 4조 원 든다고 했는데, 내가 처음으로 4조 원 아닌 40조 원쯤 든다고 지적했다. 국민을 속이고도 사죄가 없다.
 
∙ 문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직후 공항공사를 찾아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앞길이 창창한 한국의 젊은이들은 지금 ‘고용절벽’ 앞에 서 있다.
 
∙ 문 대통령이 자랑스럽게 설치한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은 진즉 작동을 멈췄다.
 
∙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엄청 올려 ‘일자리 소멸, 자영업자 폐업, 취약계층 분배 악화, 물가 상승 등’을 유발하고도 ‘긍정적 효과 90%’, ‘적게 올려 미안하다’고 말했다.
 
∙ 문 대통령은 ‘실험실 속의 소득주도 성장’에 함몰되었다가 ‘포용경제’도 주창한다.
 
∙ 문 대통령은 야당 시절 광화문 길거리에 앉아 민노총 파업에 박수를 친 빚 때문에, 민노총이 먹이사슬 최상층에 앉아 한국을 노조천국으로 만들어 가도 침묵뿐이다.
 
이처럼 ‘거꾸로 가는 경제정책’ 때문에 한국경제가 이미 침체의 늪으로 떨어져 있어서, 국책 연구기관 KDI조차 내년 성장률을 2.5%로 예상하고, 경제 고통지수도 7년 만에 최고라고 경고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좌파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도 ‘한국경제는 비상사태’라고 경고하지 않았는가!
 
주변 사람들이 이따금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무슨 발표 때나 외국 정상과 회담할 때 왜 손에 A4 용지를 들고 있나요?” 얼마 전 서울-속초 간 KTX 사고 관련 회의 때도 문 대통령의 손에는 어김없이 A4 용지가 들려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과연 경제를 알까? 모를까? 질문의 대답은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최근에 쓴 칼럼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한테 대리운전을 시킨다는 말까지 듣는 ‘전대협 청와대’가 걱정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김순덕 칼럼]괴물은 정권 초 머리카락을 보인다(동아일보, 2018.12.3.) 
 
물론 나도 걱정이다.
칼럼니스트 사진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1941년 광주 출생, 광주제일고‧전남대 문리대 영문학과 졸업. 美 하와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 받음.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나, 미국에서 경제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1979)를 읽고 ‘시장경제’에 빠져들었고, ‘시장경제’ 강의를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교수로 인정받고 있다. 왕성한 집필활동으로 적잖은 논문과 저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대처리즘: 자유시장경제의 위대한 승리』는 마거릿 대처의 삶과 정치를 연구·정리한 중요한 저작물로 인정받고 있다. 그 외에도 ‘자유시장경제가 우리를 잘살게 해준다’는 확신을 갖고, 『좋은 정책이 좋은 나라를 만든다』, 『성경과 함께 떠나는 시장경제 여행』, 『노동시장 개혁은 슈뢰더처럼, 대처처럼』 등 자유시장경제를 널리 알리기 위한 책들을 30여 권 집필했으며, 지금도 어느 작업실에서 다음 책 집필에 혼신을 쏟고 있다.

등록일 : 2018-12-17 09:18   |  수정일 : 2018-12-1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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