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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김기호 교수의 안보, 군사, 북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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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적자생존’”

글 | 김기호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예비역 육군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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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는 軍과 당 간부들./ 노동신문

“닭알(달걀)에도 사상을 재우면(주입하면) 바위를 깰 수 있다.”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주에 “명언 중의 명언”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소개한 김정은의 말이다. 지금 북한주민들은 모두가 ‘김정은의 명언’을 암송하고 있다. 특히 간부들은 ‘김정은의 명언’이 수록된 명언집을 성경책처럼 항시 휴대하면서 외우고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명언” 제하의 이 책자는 휴대하기 좋도록 핸드북 형태(15cm×10cm)로 되어있다.
 
  북한은 김정은을 우상화•신격화 할 목적으로 지난 해 이 명언집을 출간하였다. 이 책자에는  북한의 엘리트들이 따라야 할 행동지침이 수록되어 있으며, 김정은의 생각과 통치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있다. 93쪽 분량에 사상과 이론, 정치와 군대 등 9개 분야 433개의 발언이 담겨있다. ‘종파’나 ‘분파행위’ 심지어 요즘은 접하기 힘든 ‘충신’이나 ‘간신’같은 표현도 등장한다. “변절자에겐 철추(철퇴)를 내릴 것”이란 살벌한 말도 있다. 장성택과 현영철을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32세의 난폭한 독재자 김정은은 지난 4년간 약 100여명의 핵심간부들을 처형 또는 숙청했다. 회의석상에서 건성박수를 치거나 졸기만 해도 처형당하기가 일수다. 그래서 북한 간부들은 김정은의 서슬퍼런 ‘공포정치’ 치하에서 ‘적자생존(適者生存)’ 하려고 김정은의 명언을 암송하고 있다. 지금 북한에서는 지역별로 계층별로 ‘명언학습’이 진행되고 있으며 관영매체로 세뇌시키고 있다.
 
  그런데 더 진풍경은 김정은의 명언집에 수록된 말만 명언이 아니다. 김정은의 지시사항 등 모든 말이 곧 명언이다. 김정은을 수행하는 모든 간부는 모두가 숨죽이고 김정은의 말을 받아 적는다. 그러다 보니 “적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평양판 ‘적자생존’이라는 자조적인 단어가 생겨났다. 김정은의 컨디션에 따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북한 간부들에겐 김정은의 ‘말씀은 곧 생명’인 것이다. 이를 단순한 말로 여기거나 토를 달 경우에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김일성과 김정일에게도 구호성 명언이 있었다. 김일성 통치시기에는 주로 경제건설과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천 삽 뜨고 허리 펴기 운동’이나 ‘새벽별 보기 운동’이 대표적이다. 김정일 통치시기에는 고난의 행군기간 아사자가 속출하자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부드러운 명언도 등장했다. 그러나 김정은 명언집에는 직설적이며 살벌한 단어와 강력한 문장이 많다. 또한 핸드북 형태로 항시 휴대토록 하게 하는 것도 특이하다. 과거엔 <김일성 저작선집>이나 <김정일 선집>처럼 여러 연설 •서한을 모은 책을 활용했다.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부족한 김정은이 인위적으로 강력한 군주 및 사이비 교주가 되려는 몸부림으로 보여 진다.
 
  북한과 같은 수령유일지배체제의 특이한 통치체제에서는 독재자의 말은 명언이며 통치철학이다. 이를 위해 노동당에 전담 파트를 두고 명언을 창작하며 수시로 명언 공모전이 열린다. 노동당의 선전선동부와 총정치국의 선전국에서 온갖 구호와 김정은의 명언을 창작해 낸다.  명언은 “조국의 부름 앞에 한 몸을 내대라(내밀어 가까이 대라, 내던져라)”와 같이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데 초점이 모아져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심간부들의 행동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서  적는 체하는 것이지 알 수 없다. 아마도 겁에 질려서 숨죽이고 받아 적는 체 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티머 쿠란(Timur Kuran)은 이러한 현상을 ‘선호위장(Preference Falsification)이론’으로 설명하였다. ‘적자생존’하려고 속으로는 진심을 가지고 있으나 겉으로는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Private Truths, Public Lies’)
 
  녹색 표지의 김정은 명언집을 보니 카다피의 그린북(Green Book)이 생각난다. 자신의 통치철학을 그린북에 담아 42년간 철권독재를 하였지만 결국에는 성난 시민들에게 짓밟히고 말았다. 머지않아 김정은의 ‘명언(名言)’이 ‘망언(妄言)’이 되어 ‘적자생존’이 ‘엎자 생존’으로 바뀔 날이 올 것이다. 필자는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독재정권이 70년 이상 생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등록일 : 2016-02-04 16:56   |  수정일 : 2016-02-0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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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호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예비역 육군 대령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외교안보학과 초빙교수
홍익대 안보학 초빙교수

육군사관학교 졸업.
합참, 유엔사/연합사, 야전연대장 근무 후 육군 대령으로 전역.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역임
30여년 군 형장경험과 학문적 연구가 조화된 정론으로 안보와 군사, 북한 문제를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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