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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이의춘 국장의 인생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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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처가일수록 관운 좋고, 승진 잘된다?

<후흑학>의 가르침… "아내를 보면 쥐처럼 굴라"

글 | 이의춘 데일리안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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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을 두려워하는 정도에 따라 관직이 정비례한다"는 흥미로운 주장이 있습니다.
관직이 높을수록 아내를 두려워하는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지요.
공처가, 경처가일수록 공직이나 직장에서 더 잘 나간다는 것입니다.
 
다소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럼 공처가의 효용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중국 전문가 신동준은 최근 펴낸 <후흑학>에서 엄처시하에서 공처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입신양명한 사례가 많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공처가일수록 조정에 나가서 공을 세우고, 군주의 총애와 은덕을 입은 사람이 많았다는 겁니다. 
 
중국 청제국말기에 이종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후흑학(厚黑學)이란 책을 펴낸 바 있습니다. 이는 면후심흑(面厚心黑)의 줄임말입니다. 두꺼운 얼굴과 숫처럼 검은 속마음을 뜻합니다. 군주나 책사, 관리등이 분열된 국가를 천하통일하고, 뛰어난 업적을 내거나, 입신양명하기위해선 후흑의 달인이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후흑이야말로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이라는 것입니다.
 
누가의 후흑의 달인인가? 월왕 구천, 조조, 유비, 사마의, 모택동, 장개석, 등소평 등이 손꼽히고 있습니다. 구천의 경우 오왕 부차에게 패배한 후 자신은 부차의 신하로 들어가 부차의 침소를 청소하고, 심지어 개밥도 먹어치우는 용기를 발휘합니다. 그의 부인도 부차의 첩으로 제공합니다. 구천은 이같은 와신상담, 즉 두꺼운 얼굴과 숫같은 음흉함을 숨긴채 절치부심해서 마침내 오왕 부차를 죽이고, 오나라를 멸망시킵니다.      
 
면후심흑과 대비되는 사람이 면박심백(面薄心白)의 인물입니다. 월왕 구천에게 패배했던 오왕 부차, 사마의 일가에게 패배해 나라를 빼앗긴 조조의 후손 조상등이 대표적입니다.  
 
난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면후심흑의 내공을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혼란한 나라를 통일하는 혼일사해를 이루고, 입신출세하기위해선 후흑을 깊이 연마해 가장 높은 경지인 불우불흑(不厚不黑)의 단계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게 이종오의 주장입니다. 불우불흑은 낯가죽이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시꺼먼데도 색채가 없는 후이무형(厚而無形), 흑이무색(黑而無色)의 단계를 말합니다. 이는 대성현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후흑학은 단순히 뻔뻔함과 음흉함을 토대로 한 처세술로 비하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종오는 후흑학은 나라를 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후흑이야말로 구국의 전략이라는 겁니다. 모택동이 죽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이 사마광의 <자치통감>이라고 합니다. 그는 역사서인 자치통감을 통해 왕조의 흥망성쇠의 요인과 통치술을 습득했습니다.두꺼운 얼굴과 음흉한 마음을 숨긴채 국민당 장개석과의 국공합작 등의 전술로 마침내 중국을 천하통일하는 위업을 이뤘습니다. 
 
요즘 중국이 미국과 맞짱뜨는 G2로 부상한 후 후흑학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등소평이 칼을 칼집에 감추어두고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하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후계자들에게 유훈으로 남긴 것도 후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야기가 곁길로 흘렀습니다. 다시금 공처가론으로 돌아가죠.
이종오는 공처가야 말로 가정에서 후흑을 체현한 달인들이라고 했습니다. 공처가들이 공직이나 관직에 나가서도 대체로 출세하고, 높은 작위와 작록, 부를 쌓았던 것은 후흑의 요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군주에게 신뢰받고 높은 작위와 관직을 바랄수록 "아내를 보면 쥐처럼 굴고, 적을 보면 호랑이처럼 굴라"고 설파했습니다.

중국 최대 명군으로 칭송받는 당태종이 가장 아끼고 총애하던 신하중에 방현령이란 현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공처가로 하도 아내의 박해를 받아서 주군인 태종에게 자신의 마누라를 제압해달라고 하소연할 정도였습니다.
 
태종은 방현령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의 부인을 불러서 타이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태종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방현령에게 "경의 부인은 보기만 해도 무서우니 그녀의 말을 잘 따르는 게 상책"이라고 했습니다. 황제도 어쩌지 못하는 무서운 여자였습니다. 방현령은 그의 부인에게 벌벌 떠는 공처가였습니다. 하지만 방현령은 당태종 치세에서 높을 벼슬과 작록을 받는 등 부와 명예를 누렸습니다. 

 
수나라 문제도 대표적인 공처가였습니다. 그는 부인인 독고황후가 어느날 화를 내자 산속으로 들어가 이틀이나 숨어지냈다고 합니다. 대신인 양소가 황후를 설득한 후에야 수문제가 겨우 황궁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남북조시절 동진의 권세가였던 재상 왕도도 작은 깃털을 들고 여유있게 대신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가 "마님이 오신다"는 부하의 말을 듣고는 급히 소달구지에 올라타 마중을 나갔다고 합니다. 왕도는 부인앞에서는 어쩔 줄 모르는 경처가였지만, 조정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천자로부터 구석(九錫, 천자가 공로가 있는 신하에게 내리는 아홉가지 물품)을 하사받는 등 은총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공처가, 경처가가 잘 나가는 이유는 뭘가요?
 
현명한 신하가 될려면 집안이 잘 다스려져야 합니다. 현명한 남편은 대체로 자녀 양육과 집안의 대소사는 어부인에게 맡기고 회사와 조정 정부에서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며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뛰어난 성과를 거둔 군주나 보스는 현명한 신하와 직원들의 간언과 충언을 널리 받아들이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아내를 못살게 굴고 박해하고, 무시하는 남편은 독선과 아집에 빠져 신하들의 간언과 충언을 무시하는 무능한 암군(暗君)과 비슷합니다.

공처가 수준에 따라 관직의 높낮이가 달랐다는 이종오의 주장은 새삼 우리같은 직장인들과 관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공처가가 된다고 해서 직장이나 관료사회에서 잘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나가는 리더나 보스 최고경영자, 고위공직자 중에는 애처가를 넘어 공처가가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뚝뚝하고, 마초기질이 있는 사람들일수록 부인에게 꼼짝 못한다고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두려워해야 직장에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고, 관운, 사운도 펴질 것이라는 것이지요. 요즘처럼 구조조정이 심하고, 인사도 잦은 유례없는 상황에서 공처가, 경처가로 살아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등록일 : 2013-10-02 16:52   |  수정일 : 2013-10-0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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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춘 미디어펜 발행인

전 한국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88년부터 한국일보 서울경제신문에서 20여년간 경제, 금융, 산업현장을 누볐습니다. 한국일보 산업부장,경제부장, 논설위원을 끝으로 2008년 퇴사. 인터넷신문 데일리안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미디어펜 발행인을 맡고 있습니다. 시장경제와 자유주의 시각에서 재계현안과 기업지배구조등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서울대 문학석사, 서강대 경제학석사, 경희대 경제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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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 2013-10-17 )  답글보이기 찬성 : 46 반대 : 17
ㅋㅋ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순 없겠죠!
만득이  ( 2013-10-07 )  답글보이기 찬성 : 24 반대 : 12
그런데 왜 일에 욕심 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정에 소홀하는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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