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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작성이 죄인가? 미국은 피카소 입국도 금지시켰다!

좌파정권 10년간 문화 예술계에 좌익 사상이 침투, 反國家, 反軍的 영화 등이 많이 나왔다. 그러한 행동에 연루된 예술 문화인들의 명단을 파악, 이들이 국가기관이나 국가예산을 이용하여 국가와 국민들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관련 정보나 명단을 정리하는 일은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公務이다. 이런 행위를 수사 대상으로 삼는 특검은 자신들을 혁명검찰로 생각하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간다. 예술 문화계 인사에 대하여 아무런 이념적 분석 자료조차 없이 反국가적 예술 행위에 국가기관이 이용당하고 국가예산이 들어가는 것을 방치하였다면 이를 직무유기로 수사해야 한다.

글 |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2016-12-29 08:56

▲ 문화계 블랙리스트 누가 들어갔나? / 사진출처=SBS 캡처
1950년 3월 미국 정부는 프랑스 공산당원인 피카소가 '평화 빨치찬 세계 총회'란 단체의 대표 12명을 이끌고 미국에 들어오려는 것을  입국(入國) 금지시켰다. FBI(연방수사국)는 피카소를 안보에 위해(危害)한 공산주의자로 분류, 그가 죽을 때까지 감시 파일을 유지하였다. 평화 빨치산 세계 총회는 소련 공산당 간부 주다노프가 조종하던 공산당의 선전 조직이었다. 한국 특검이라면 이런 FBI를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수사하였을 것이다. FBI는 예술은 국경이 없지만 예술인은 국경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미국은 공산주의자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를 뉴욕에서 보관하였다가 돌려주었다.)
 
피카소는 미국에 가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원폭(原爆) 제조 금지를 설득하고, NATO 창립에 항의하며, 미국의 공산당을 지원하고, 할리우드의 10인을 체포한 데 항의하려고 入國을 신청하였던 것이다.
 
피카소가 美軍이 양민을 학살하는 장면(실제로 이런 학살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을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제목의 그림에 담은 것은 방미(訪美)가 좌절된 이듬해였다. 세계공산주의자들은 이 그림을 反美 선동에 악용하였다. 이 선동 그림은 미국에서 그의 인기를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미술적으로도 악평(惡評)을 받았다.
 
피카소는 1944년에 프랑스 공산당에 들어가 1973년에 죽을 때까지 열성 당원이었다. 수백만 프랑의 기부도 했으며 黨의 선전에 필요한 그림도 그려주었다. 그림 '비둘기'는 세계 공산주의자들의 평화공세에 악용되었다. 소련과 중공의 우표에도 실렸다. 휴전회담 때 판문점에도 등장하였다. 
 
살바도르 달리는 이렇게 말하였다.
 
'피카소는 화가이고 나도 그렇다. 피카소는 스페인 사람이고 나도 그렇다. 피카소는 공산주의자이고, 나는 그렇지 않다!'
 
피카소는 프랑코의 독재를 비판하였지만 그보다 심한 스탈린의 독재엔 침묵하였다. 그는 1950년에 스탈린 평화상을, 1962년엔 레닌상을 받았다. 소련 당국은 그러나 피카소의 그림을 '타락한 것'으로 규정, 전시를 하지 못하게 하였다.
 
미국이 공산당원 피카소를 入國금지시켰다고 해서 미국을 욕하는 이는 없다. 미국 정부는 예술이 반역의 면허증이 아님을 천명한 것이다. 윤이상과 이응노의 반국가적(反國家的) 행위를 음악과 미술의 이름으로 덮으려는 수작은 상식에 反한다.
 
좌파정권 10년간 문화 예술계에 좌익 사상이 침투, 반국가(反國家), 반군적(反軍的) 영화 등이 많이 나왔다. 그러한 행동에 연루된 예술 문화인들의 명단을 파악, 이들이 국가기관이나 국가예산을 이용하여 국가와 국민들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관련 정보나 명단을 정리하는 일은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공무(公務)이다. 이런 행위를 수사 대상으로 삼는 특검은 자신들을 혁명검찰로 생각하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간다. 예술 문화계 인사에 대하여 아무런 이념적 분석 자료조차 없이 反국가적 예술 행위에 국가기관이 이용당하고 국가예산이 들어가는 것을 방치하였다면 이를 직무유기로 수사해야 한다.

좌파가 주동한 작금의 선동적 정국(政局)에 비박계가 이념적 배신으로 동조하고 친박계는 비겁한 침묵으로 도망 간 사이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대한민국, 태극기, 반공, 자유, 한미동맹 같은 말들을 억누르려 하는 반역적 분위기가 안개처럼 퍼진다. 좌익, 공산주의, 통진당, 이석기 같은 명사(名詞)들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런 역모적 분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근본인 반공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데 자칭 보수 언론과 검찰이 가담한다면 한국에 잠재된 판도라 상자 같은 내전적(內戰的) 구도를 건드리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치현상은 남북한 대결 구도의 반영이다. 특검은 매일 아침 되물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안전에 도움이 되는가, 김정은과 종북세력에 도움이 되는가?  
칼럼니스트 사진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月刊朝鮮>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 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月刊朝鮮>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주)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석유사정 훤히 압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들자》 《朴正熙 傳記》(全13권) 등을 출간했다.

등록일 : 2016-12-29 08:56   |  수정일 : 2016-12-2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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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로  ( 2016-12-29 )  답글보이기 찬성 : 19 반대 : 3
좋은글 감사합니다. 격하게 공감합니다. 우리나라였으면 또 촛불들고 일어났을터
이종태  ( 2017-01-23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0
검은리스트인지 붉은 리스트인지 모르겠으나 국가에 해를 끼치는 개인이나 단체에 국가예산을 차등 지원하겠다는것이 불법인가요?이 추운겨울에 물건팔아 낸 세금을 이상한 단체에 지원하지 마세요.국가에 해를 끼치는 개인이나 단체가 왜 국가지원을 요청하나요?
반정부  ( 2017-01-25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5
역적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을 막기위한 거라면, 온 국민이 나서서 리스트를 만들어서 전봇대마다 부쳐노코라도 막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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