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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시진핑에 놀아난 한국 신문들...음수사원(飮水思源) 대상이 장개석인 이유는?

중국공산당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적이 없다. 한국인은 중국공산당이 판 우물의 물이 아닌 독(毒)을 마신 셈이다. 그러니 중국에 감사할 일이 없다. 원망하면서 복수를 다짐하여야 할 것이다.

글 |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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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20개국 (G20)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9월 5일 오전(현지시간) 항저우 서호 국빈관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6일자 동아일보 인터넷판은 <“음수사원(飮水思源)” 시진핑의 뼈있는 말>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지난 5일자 한겨레 신문(인터넷판)은 이렇게 썼다.

 <시진핑 주석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중국 국민이 김구 선생을 보호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 장군이 1996년 항저우 인근 하이옌을 찾아 ‘음수사원 한중우의(飮水思源 韓中友誼)’라는 글자를 남겼다”고 소개했다. 음수사원은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나왔는지 근원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시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항일 역사를 강조하고 ‘중국의 은혜’를 언급한 것이다. 이는 최근 한국과 일본 정부가 ‘미래’를 강조하며 관계 개선에 나서고, 사드 배치를 매개로 한-미-일 3국 공조가 강화되는 움직임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언론은 시진핑의 역사 왜곡을 이처럼 비판 없이 보도하였을 뿐 아니라 근사한 해석까지 붙여 의미 부여를 하였다. 역사 조작의 앵무새 역할을 자임한 셈이다. 1919년 상해에서 발족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군을 피해 10곳을 옮겨다니면서 마지막엔 중경에서 해방을 맞았다. 1932~35년 사이에는 항주(杭州)에 청사를 두었다. 
  
 당시 중국은 장졔스(蔣介石)이 지도하던 중화민국이었다. 1930년대 초반,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여 괴뢰 만주국을 세운 뒤 30년대 중반, 중국으로 전쟁을 확대하였다. 장개석이 일본을 상대로 힘겨운 대결을 하는 사이 모택동은 공산반란을 일으켜 장개석 군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장개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보호하였다. 시진핑은 양심이 있는지 차마 중국 공산당이 임시정부를 도왔다는 말을 하지 않고 중국 국민들이 보호하였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사실 왜곡이다. 장개석의 중화민국이 임정을 지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물을 마실 때는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한다'는 말에서 한국인이 감사해야 할 사람은 시진핑도, 모택동도 아닌 장개석이다. 시진핑은 작년 가을 전승절(戰勝節) 행사를 하였다. 중국이 일본에 이긴 날을 기념한 것이데, 일본의 항복을 받은 이도 모택동이나 공산당이 아니라 장개석이었다. 중화민국의 법통을 잇고 있는 대만에서 전승절을 기념하였어야 했다. 中日 전쟁 승리에 별로 기여한 바가 없는 중국공산당 정부가 전승절 행사를 열고 여기에 가서는 안 될 박근혜 대통령까지 참석, 역사왜곡을 뒷받침하였다. 
  
 장개석의 중화민국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도왔다. 장개석은, 뒤에 나오는 유어만-김구 대화록이 증언하듯이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도 김구를 설득, 이승만과 손을 잡도록 하려고 애를 썼다. 김일성이 남침하자 미국에 대하여 한국으로 군대를 보내 돕겠다고 제의하였던 이도 장개석이다. 
  
 모택동의 중국공산당은 조선인의 공산혁명 활동을 지원하였을 뿐이다.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 소속의 빨치산 부대장이었다. 해방 뒤 모택동은 중국 공산당 팔로군(八路軍) 소속의 조선인들을 북한으로 들여보내 남침 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수만 명의 중공군 출신 조선인들이 인민군이 되어 남침의 주력이 되었다. 인천상륙작전 뒤 유엔군이 북진하자 수십만의 중공군을 불법 개입시켜 북진통일을 막고 이산가족의 비극을 부른 게 중국공산당이다. 
  
 한국인은 중국공산당이 판 우물의 물이 아닌 독(毒)을 마신 셈이다. 그러니 중국에 감사할 일이 없다. 원망하면서 복수를 다짐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전후(前後) 사정을 국민들에게 설명해주어야 할 언론이 시진핑의 말장난에 놀아나 그가 무슨 심오한 메시지를 던진 것처럼 심리전(心理戰)을 대행하여준다. 
  
 참고로 요사이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선 장개석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고 있다.
 장개석이 근대국가의 기틀을 만들었고, 항일(抗日)투쟁의 진정한 영웅이며, 모택동보다 더 도덕적이고, 후계자(장경국)를 잘 길렀으며, 대만을 발전시켜 중국이 지향해야 할 모델을 세웠다는 점을 든다. 진정으로 음수사원(飮水思源)해야 할 대상은 장개석이다. 시진핑에 속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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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개석의 以徳報怨(이덕보원)
  
  中日전쟁을 지도하였던 蔣介石(장개석)은 1945년 8월15일 戰勝(전승) 연설에서 수백 만 명의 중국인을 죽인(중국 측 軍民 사상자는 1000만 명으로 추계) 일본인들에 대한 보복을 금지시켰다.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 중국 동포는 '舊惡(구악)을 기억에서 지우고 사람들에게 善을 행한다'는 것이 우리 민족 전통의 고귀한 덕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일관되게 일본국민을 敵으로 삼지 않았고, 다만 橫暴非道(횡포비도)한 武力을 행사한 軍閥(군벌)만을 敵으로 생각한다고 明言하여 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동맹국과 함께 敵軍을 타도하였습니다. 그들이 투항의 조건을 전부 충실하게 실행하도록 엄격하게 독려하여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우리는 보복하여선 안 됩니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모욕을 가해선 안 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과 죄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이 나치스적 군벌에 의하여 우롱을 당하고 선동당한 점에 대하여 우리는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대할 뿐입니다. 만약 과거 敵이 행한 폭행에 대하여 똑같은 폭행으로 대하고, 그들의 우월감에 대하여 노예적 굴욕을 가한다고 한다면 원한은 또다른 원한을 부르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수행해온 인의(仁義)의 전쟁이 목적한 바가 아닙니다. 이 점을 우리 국민 동포 일동은 오늘에 즈음하여 특별히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蔣介石의 이런 태도를, 「以徳報怨(이덕보원)」, 德으로 원수를 갚았다고 한다. 蔣介石은 일본에 대한 피해 보상 요구도 하지 않았다. 1972년 일본과 國交를 열 때 毛澤東도 보상 요구를 하지 않았다.
   장개석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 독립을 약속하도록 하고, 임시정부를 보호하여 공산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도록 한 점에 대하여는 한국인들이 크게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다.    
   
등록일 : 2016-09-08 09:37   |  수정일 : 2016-09-1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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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月刊朝鮮>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 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月刊朝鮮>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주)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석유사정 훤히 압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들자》 《朴正熙 傳記》(全13권)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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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 2016-09-09 )  답글보이기 찬성 : 15 반대 : 8
역설적으로 대만인들이 한국을 싫어할만 하겠네요.. 장개석이 그렇게도 도와줬는데 자기들 생각에는 헌신짝 버리듯이 단교했다고 생각하겠죠. 모택동 공산당이 뒤통수만 처놓고 진짜 자기들이 도와준거 처럼 코스프레 하는거는 역겹네요. 정말 조갑제 선생님의 이 글을 젊은이들에게 똑바로 알려줘야 합니다.
김용태  ( 2016-09-09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3
외눈박이...한국이 고려, 조선이라는 나라를 이어왔듯이...중국도 항일투쟁과정에서 국공이 합작했으니 장개석의 중국이 따로있고 모택동의 중국이 따로있었나?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이 역사이거늘 명나라가 조선을 원조했던것을 중국이 한국을 지원했던것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곽성철  ( 2016-09-08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1
요즘 기자들은 젊어선지 중국근대사를 너무모르는것같다, 분명 중국공산당이 중국을 지배하기전에 장개석의 국민당정부가있었단 사실을, 한겨례야 친북,친중좌파신문이니 그렇다쳐도 보수신문들은 그걸 지적했었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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