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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는 반역적 교과서를 비호하는 의원들

검인정 교과서들, 김일성이 소련군 장교로서 스탈린의 괴뢰였다는 결정적 사실을 일제히 은폐!

글 |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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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3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규탄대회에 참석해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하고 있다. 문대표 뒷줄에 (오른쪽부터) 정청래 최고위원, 주승용 최고위원, 이종걸 원내대표, 이석현 국회 부의장, 오영식 최고위원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이덕훈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의원 33명은 지난 19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함께 제출했다. 더민주 이찬열 의원이 대표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국정 교과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교육부장관이 검·인정한 교과서만 사용하도록 했다. 국정교과서의 존립 기반을 없앤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 의원은 '국정 교과서는 교육의 정치 중립성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법안에 서명한 33명 중 더민주는 26명, 국민의당은 7명이다.>(조선닷컴)

李承晩이 미군장교로서 귀국, 건국을 주도하였다면 어떻게 썼을까? 북한정권 수립의 괴뢰적 속성과 대한민국 건국의 자주성을 거꾸로 가르치기 위한 역사 變造(변조)

 
1. 2014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사용되는 천재교육 한국사 교과서는 대한민국 건국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런 연표를 만들었다(308페이지). 
*1948. 4. 제주 4·3 사건
*1948. 5. 5·10 총선거
*1948. 8.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 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1948. 10. 여수 순천 10·19 사건 
 
교과서는 대한민국에는 ‘정부수립’, 북한에는 ‘국가수립’이라고 표현, 헌법상의 反국가단체를 優位(우위)에 놓았다. 제주와 여수 순천에서 일어난 사건의 본질은 좌익 무장반란인데 이를 감추기 위하여 ‘사건’이라고만 적었다. 본문에선 4·3 사건을 일으킨 남로당 세력을 ‘무장봉기 세력’이라고 미화하고(미래엔 교과서는 여순 14연대 반란도 ‘무장봉기’라고 표현), 반란 진압에 나선 軍警(군경)을 ‘토벌대’라고 卑下(비하)하였다.
 
공산당을 正義(정의), 대한민국을 不義(불의)로 가르치는 용어 선택이다. 연표는 1946년 2월에 이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출범, 토지개혁 등 정부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 사실을 누락, 한국이 먼저 정부를 수립, 분단의 책임이 있다는 식의 誤解(오해)를 부른다.

2. 좌편향 교과서는 미국과 이승만을 主敵(주적)으로 삼아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 존재목적이므로 내용이 다 똑같다. 검인정의 장점이란 다양성은 말살되고 교실은 90% 이상이 반역적 민중史觀(사관)에 점령당하였다.
 
이들 교과서는 대한민국 건국 과정을 설명하면서 美군정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반공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세운 李承晩(이승만)의 역할을 축소, 왜곡, 비판하였다. 건국에 반대하다가 김일성에게 이용당한 김구·김규식의 남북협상은 호의적으로 다뤘다.

3. 반면, 북한정권의 수립과정 설명에는 비판이 없다. 좌편향 교과서들은 김일성을 감싸고 소련의 역할을 미화하며 실패한 토지개혁을 북한 식 선전대로 좋게 소개하였다. 소련군의 강간 약탈 행각, 산업시설 수탈, 신의주 반공학생 의거 流血(유혈)진압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박헌영의 남로당이 신탁통치 반대에서 찬성으로 돈 것은 소련의 지령 때문이란 점도 묵살되었다.
 
교과서는 소련군이 간접통치를 통하여 북한인들에게 자율권을 많이 주었고, <선거로 구성된 최고인민회의가 제정한 헌법에 따라 김일성이 수상으로 선출되었다>(천재 311페이지)고만 적어 북한정권의 출범이 민주적인 것처럼 거짓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북한의 모든 선거는 반대가 불가능한 원천적 부정선거임을 설명하지 않았다.

4. <1945년 9월19일 김일성 일행을 태운 (소련 군함) 푸카초프 호가 원산항에 도착하였다. 김일성은 소련군 대위 복장을 하고 있었고 마중 나온 사람들에게 악수를 하면서 “김성주입니다”라고 인사하였다. 그의 왼쪽 가슴에는 赤旗(적기)훈장이 달려 있었다.>(孫世一, 《이승만과 김구》, 제6권)

5. 그러나 천재교육, 금성출판사 등 거의 모든 검인정 교과서들은 김일성이 소련군 장교였다는 결정적 사실을 숨겼다. 김일성을 꼭두각시로 선택한 이는 스탈린이었고, 소련군이 그를 철저하게 조종, 공산정권을 세우게 되었다는 점은 완벽하게 은폐되었다. 이승만이 미군 장교가 되어 귀국하였더라도 교과서는 이 사실을 쓰지 않았을까?

6. 좌편향 교과서들은 스탈린이 1946년에 박헌영과 김일성을 모스크바로 불러 직접 면접을 본 뒤 김일성을 지도자로 선택하고, 헌법과 국호까지 만들어 내려 보냈다는 점도 다루지 않았다. 1945년 9월20일 스탈린이 소련 군정당국에 암호지령문을 보내 북한에 親蘇(친소) 단독 정권을 세울 것을 지시, 분단을 기정사실화한 점도 묵살하였다(교학사 교과서만 기술).

7. 韓民族(한민족)의 가장 큰 재앙은 소련군 88여단 소속 대위 김일성이 소련군에 업혀 북한에 들어와 소련의 이익을 위하여 복무하게 되면서 시작된 것이다.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출발점이 되는 사실이다. 검인정 교과서들은 이를 숨겨 북한정권의 傀儡的(괴뢰적) 속성을 덮고, 이승만이 공산주의자뿐 아니라 미국과도 맞서가면서 성공시킨 ‘자유민주 국민국가 건설’의 자주성을 왜곡, 학생들에게 조국을 敵對視(적대시)하도록 가르치는 의식화 교재로 전락하였다.

8. 교과서 집필의 대원칙인 헌법, 사실, 공정성은 완벽하게 무시되었다. 역사서도 아니고, 교과서도 아니다. 좌경 선동문건 같다. 더 놀라운 사실은 ‘김일성 소련군 장교 사실 은폐’에는 남북한 교과서가 똑같다는 점이다. 반역과 날조의 역사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심이 정당화된다. 교과서 개혁에 남북의 좌익들이 다 같이 반대하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등록일 : 2016-06-22 13:58   |  수정일 : 2016-06-2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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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月刊朝鮮>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 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月刊朝鮮>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주)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석유사정 훤히 압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들자》 《朴正熙 傳記》(全13권)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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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2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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