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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논리 조갑제 기자의 최신정보파일

趙甲濟(조갑제) 졸병이 군대에서 배운 것

글자 꺼꾸로 빨리 쓰기, 단편소설보다 긴 연애편지 쓰기, 영어·일어 회화, 자기 몫찾기, 그리고 참을성, 약간의 애국심

글 |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8-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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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전투비행단의 '전시 전투기 최대출격훈련'  모습./조선DB

나는 1967년3월1일에 공군에 자원 입대하여 3년4개월간 요격관제 특기병으로 근무한 뒤 건강한 몸으로, 자랑스런 병장으로 제대하였다. 대전에서 부산으로 열차를 타고 歸鄕 길에 올랐을 때 나의 心身은 부산에서 대전으로 갈 때보다 더욱 剛健(강건)하게 되어 있었다. 나의 가슴은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를 다했다는 자부심과 몸 성히 돌아오도록 도와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차 있었다.
  
   나는 사병 161기로 입대한 뒤 대전에서 훈련을 받던중 결핵성 늑막염에 걸려 40일간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163기와 함께 항공병학교를 졸업했다. 입대 기준으로는 161기, 졸업 기준으로는 163기란 正體性의 혼란을 줄곧 겪어야 했다. 나는 동해안의 레이더 사이트에 배치된 다음부터 軍番과 제대연원일을 기준으로 하여 『나는 163기가 아니라 161기이다. 그러니 162기 너희들은 비록 나보다 먼저 훈련소를 졸업하고 이 부대에도 먼저 배치되었으나 나의 부하이다』는 입장을 취했다.
  
   처음에는 말을 서로 놓던 163기가 반발하였고 162기 졸병들은 어이없어 하였으나 주먹다짐도 해가면서 내가 찾아먹어야 할 몫은 찾아 먹게 되었다. 161기 동기생들이 나를 밀어준 덕분에 나의 정체성 회복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이다. 한국 현대사의 한 시대를 주름잡은 육사8기처럼 역시 동기생은 많고 보는 것이었다.
  
   나는 군대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덕을 기자생활 때 보았다. 요격관제병은 관제사가 전투기를 관제할 때 그 옆에서 수동식 컴퓨터로 비행기의 속도, 고도, 방향 등을 계산하여 보좌해주는 助手(조수)이다. 이때 얻은 비행기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나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대한항공 007피격 사건 등 항공사고를 많이 취재할 수 있었다. 우리 부대는 美 공군과 합동근무를 하면서 비행기 識別(식별)업무로 해서 일본 자위대와도 연락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영어 일어 회화를 실습할 수 있었고 지금껏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나의 상관 한 분은 야간 근무를 할 때 하늘이 조용하면 육법전서를 펴놓고 考試 공부를 했다. 그 분은 지금 대구에서 유명한 변호사가 되어 있다. 우리 부대는 절간 같은 山頂의 고독한 사이트內 침묵의 암실에서 근무한 관계로 해서 학구적이었다. 유일한 樂이 있었는데 저녁 먹고 내무반에서 영화상영을 할 때였다.
  
   영어를 좀 한다고 조갑제 졸병은 맨날 미군 부대에 가서 영화 필름을 빌어오는 역할을 맡았다. 1년에 300편 정도는 보았으리라. 영화를 많이 본 이력도 요사이는 대화의 중요 반찬으로 살아 있다. 나는 휴가 갈 때 상관들의 연애 편지 심부름도 많이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부산의 군 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장교를 알게 되었다.
  
   눈이 많이 와서 찾길이 끊어지는 바람에 예정된 4박5일의 휴가가 취소되어 내무반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나는 이 간호장교에게 단편 소설 분량의 편지를 써서 소포로 붙였다. 언제 답장이 오는가 하고 가슴을 졸이고 기다리는데 한 달쯤 지나서 그것이 왔다. 엽서 한 장이었는데 「잘 받았습니다」가 전부 다였다. 답장이 아니라 접수증이었다. 공군졸병과 간호장교 사이의 연애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이때 연습해둔 긴 글 쓰기는 나의 유일한 자산이 되고 있다.
  
   요격관제병이 맨 처음 하는 일은 플라팅(plotting)이란 것이다. 비행기 航跡(항적)을 플라스틱 게시판에 그려넣는 일이다. 플라터(plotter)는 게시판 뒤에서 리시버를 끼고 있다가 레이더 관측병이 불러주는 좌표를 찍으면서 비행기가 날고 있는 자취를 그려넣으니 글자는 거꾸로 써야 한다. 「글자를 거꾸로 빨리 쓰기」가 기네스 북에 오른다면 내 이름은 上位에 가 있을 것이다.
  
   남자들 모임에 나가서 한 30분간 대화를 나누다가 보면 누가 군대에 갔고 누가 가지 않았나 하는 것을 거의 80%의 확률로써 맞출 자신이 있다. 對話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 분위기가 서로 다른 것이다.
  
   군대에 갔다온 사람은 言動이 신중하고 조직에 잘 적응하며 참을성이 많고 뭔가 강인한 느낌을 준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할 때 3년여 기간을 군대에서 보냈다는 것이 한 인간의 모습에 지울 수 없는 자취를 남기는 것이다.
  
   군대는 소비집단이라고 하지만 나의 경험에 따르면 생산집단이다. 인생항로에서 逆境에 처했을 때 군대에서 고생한 것을 想起하면 저절로 투지가 되살아나도록 하는 힘, 그것을 만들어내는, 재학생 70만명의 대학, 즉 軍大야말로 사나이다운 사나이, 여성다운 여성, 한국인다운 한국인을 찍어내는 가장 고귀한 생산현장이 아니겠는가.
칼럼니스트 사진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月刊朝鮮>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 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月刊朝鮮>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주)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석유사정 훤히 압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들자》 《朴正熙 傳記》(全13권) 등을 출간했다.

등록일 : 2014-08-07 10:02   |  수정일 : 2014-08-0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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