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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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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란고원의 분단된 시리아인 마을

철책 건너편으로 소리치면 나타나는 부모 형제

글 |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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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란고원의 시리아 마을

 
 갈릴리 호수 옆 티베리우스(Tiberus)시는 골란고원에 투입되는 이스라엘군 병력·장비의 발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의정부·춘천·양구·속초와 흡사한 전방지역 도시이다. 또한 이 도시는 수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기독교 성지 순례 차 많이 들리는 곳이다. 그러나 건너편 골란고원은 교통 불편과 시리아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인하여 방문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하루 정도의 일정을 더해 골란고원을 답사한다면 중동역사에 대해 좀 더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 도시의 버스정류소에는 항상 수백 명의 이스라엘 장병들이 북적거린다. 황갈색 계통의 남루한 전투복 차림의 병사들이 다양한 종류(주로 기관단총)의 화기로 무장하고 있다. 아마 골란고원 근무자들인 모양이다. 허리춤에는 빠짐없이 30발의 실탄이 삽입된 탄창을 2개씩 매달고 있다. 또한 약 100여명의 병사들이 무장한 상태에서 터미널 구석에 아무렇게도 들어 누워 있었다. 터미널 공터에 군인들로 꽉 차있다. 아마 전방지역 투입 대기 병력인 모양이다. 큼직한 배낭과 실탄이 장전된 수많은 화기들이 주변에 어지럽게 방치되어 있다. 다소 무질서하고 야전군기라고는 찾기 힘든 모습. 한국군이라면 가지런히 배낭과 총기를 정리해 두고 틀림없이 경계병을 배치해 두었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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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우스 버스터미널의 이스라엘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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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장군인들

 
  슬쩍 카메라를 들었지만 살벌한 분위기로 인해 차마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괜한 시비에 휘말려 그동안 수집했던 사진자료를 몽땅 압수당할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에서는 보안에 예민한 대상을 촬영하거나 주요 시설물(공항·항만 둥) 주변에서 기웃거리다가 곤욕을 치루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보다 과감하게 그 무리 속에 뛰어들어 자연스럽게 주저앉아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하다가도 도저히 그럴 여건도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카메라를 돌려 승강장에서 막 버스를 타려는 군인들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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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지역으로 이동하는 장갑차

 
  깨끗하게 포장된 시골길을 따라 자동차는 미끄러지듯 달린다. 골란고원은 비교적 단조로우나 조용하고 평화스러워 보였다. 간간이 허무러진 건물들과 공터들이 보였다. 나아만(Naaman)에 의하면 과거 시리아군 주둔지였다고 한다. 편편한 공터나 구릉지 어느 곳에도 이스라엘군 병영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안내자 나아만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왜 결혼하지 않았는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그러나 상대가 올드 미스다 보니 사생활에 대해 묻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러시아에서 오래 살았지만 그녀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은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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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란고원의 시리아군 병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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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스파이 계략에 의해 심어진 병영 위장숲

 
  역시 그녀도 온 종일 같이 보내게 된 필자가 이스라엘 전쟁사에 대해 너무나 궁금해 한다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겨울철 골란 고원을 찾는 여행객은 거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자신은 대부분 예루살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어제는 자신의 오빠가 근처 키브츠에 거주하여 잠시 들리러 왔다가 마침 나를 만났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오빠 피니(Pini)의 전쟁 이야기를 슬슬 풀어 놓았다.
 
  그녀의 오빠는 1953년생이다. 현재 그는 지하수에서 뽑아 올린 물을 공급하는 배관과 모터를 취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이런 사업 관계로 한국의 지리산 근처 지하수 개발공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수차례 방한 경험도 있었다. 나아만은 오빠를 통해 코리아의 이야기를 간간이 전해 듣고서는 한국의 아름다운 지리산과 남해안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기사 손바닥만한 국토 넓이(우리나라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친 정도)에 그나마 절반이 사막인 이스라엘과 사계절이 뚜렷하고 산, 강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진 금수강산 한국의 자연조건은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사실 골란고원도 제주도의 중산간 지형과 비슷하지만 너무나 밋밋하고 삭막한 분위기다.
 
 또한 나아만의 오빠는 1973년 10월 전쟁 당시 바로 이곳 골란고원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는 기갑부대 전투병으로 시나이반도와 이 고원의 치열한 전장에서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오빠의 말로는 그 당시 전투에서 부딪힌 시리아군은 거의 전투의지가 없는 오합지졸이었지만 이스라엘군은 전투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국가존립이 어렵다는 것을 전 장병이 깨닫고 있었다고 한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청장년 대부분은 현역 혹은 동원예비군으로 전장에 투입되었다. 심지어 동원연령이 지난 어떤 노인은 운전병으로 참전하기를 희망하였다. 군당국은 “당신이 운전할 차량이 없어 참전이 불가하다”라고 하니 스스로 렌트카를 빌려와 억지로 참전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하였다.
 
 이스라엘 여행 중 만난 50대 중반 이상의 어른들은 대부분 전투경험을 가진 참전용사들이었다. 나아만은 직접적인 전쟁경험은 없었지만 그 오빠는 시간만 나면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한다. 두 번 다시 처절한 전쟁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며 과거의 경험에서 애써 탈출하고 싶은 심경이란다. 그는 10월 전쟁 마지막 시기에는 시리아군 포로 관리병으로 근무하다가 집으로 돌아 왔다고 하였다.
 
 나아만의 이야기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허름한 마을이 나타났다. 골란 고원 속의 “시리아 마을”이다. 1967년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은 갈릴리 호수 주변 일부 골란고원을 확보했다. 그리고 1973년 “10월 전쟁(제4차 중동전쟁)” 당시에는 시리아 영내 30Km 까지 진격하며 수도 다마스커스 점령을 목전에 두었다. 결국 휴전협상으로 이스라엘군은 시리아로부터 철수하면서 사실상 골란고원은 영구적으로 이스라엘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 골란고원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온 시리아인 마을 3개소가 이스라엘 통제 하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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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란고원 시리아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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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몬산(흰눈으로 덮힘) 부근의 시리아 마을

 
 그리고 마을 건너편으로는 철책이 세워지고 자연스럽게 시라아쪽 마을에 거주하는 친인척들과의 왕래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심지어 철책 가까이에서 건너편을 향해 소리치면 시리아 영내 마을의 친척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 1973년 10월 전쟁 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쌍방 수천대의 전차가 뒤엉켜 대규모 기갑전을 벌렸던 곳이 바로 이 곳 골란고원이다. 그러면 엄청난 민간인 피해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스럽게도 대규모 전투가 일어나기 전 이 지역 민간인들은 대부분 사전에 피란을 가서 거의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흡사 1945년 한반도 분단으로 시골마을 중앙으로 38선이 지나가 동네가 두 동강 났던 우리나라 분단의 비극이 이곳 골란고원에서도 재현되고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골란고원의 시리아 거주인들에게 원하면 언제든지 이스라엘 국적을 취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리아인들은 자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이들이 가장 불편을 느끼는 것은 자녀 교육문제와 고향방문이다. 이스라엘은 주민들이 바로 철책 건너 시리아로 갈 수 있는 통로가 있지만 직접 시리아로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요르단을 거쳐 시리아로 입국하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시리아 마을은 통상적으로 유대인 정착촌에 비해 초라하고 궁색하다. 마을 주변에 특별한 공장이나 기업체 건물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 들판에서 농사를 짓거나 목축업을 하고 있다. 자동차를 세우고 나아만이 구멍가게에 들어가 간단한 음료수를 사면서 주인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한다. 옆에서 지켜보니 시리아인이 유대인 나아만에게 강한 적개심을 표시하지는 않는 듯 했다. 오히려 한참 대화를 나눈 것을 보니 흡사 옛날부터 아는 친한 친구 사이인 것 같았다.
 
어느덧 자동차는 1973년 10월전쟁의 격전지(눈물의 계곡)에 다달았다. 마침 골란고원의 평화유지군 소속 캐나다군 대위와 이스라엘군 장병들이 시리아 접경지역을 바라보며 열심히 토의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캐나다군 장교는 반갑게 악수를 청한다. 고릴라 덩치의 이스라엘군 장교는 갑자기 나타난 한국인에 대해 다소 경계심을 표한다. 그러나 캐나다군은 자국 군대의 한국전쟁 참전역사와 오늘날의 한국발전상에 대해 잘 안다며 선뜻 명함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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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 장교와 PKO요원 토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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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군장교와 이스라엘군 장교

  
 더구나 베트남전쟁에서도 한국군과 캐나다군이 같이 참전한 혈맹의 국가라는 역사적 사실도 그 장교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이스라엘과 시리아 국경지대에서 상호 휴전협정을 잘 준수하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다행이도 지난 1973년 쌍방 간 휴전협정 이래 대규모의 무력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더구나 시리아는 수년 전에 일어난 내전으로 인하여 과거 잃어버린 자신들의 골란고원을 되찾는다는 것은 현재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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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곳이 시리아 접경지역(10월전쟁 격전지)


 이 지역을 답사하면서 유심히 관찰하면 곳곳에 지뢰지대가 설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전쟁 시 사용했던 지뢰인지 최근 시리아 침공에 대비한 계획된 장애물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저 평화롭게만 보이는 골란고원도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통한의 땅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멀리 보이는 헤르몬산(Mount Hermon)에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이 전쟁으로 차지한 그 점령지에서 스키를 즐긴다는 말도 있었으나 확인할 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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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옆의 지뢰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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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위험지역 표시가 되어있다.

 
등록일 : 2015-01-22 04:57   |  수정일 : 2015-01-2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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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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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은  ( 2015-01-22 )  답글보이기 찬성 : 9 반대 : 14
요즘 젊은이들중에는 10월전쟁때 이스라엘이 패한 것처럼 알고있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수에즈 운하를 넘어 시나이반도안으로 진격하였던 이집트군은 배후를 차단당하여 포위되었고 골란고원을 돌파하려던 시리아는 반격에 튕겨나 수도 다마서커스가 위험하게된 상태에서 휴전이 성립되었다.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는 반환하였으나 골란고원은 돌려주지 않는데 그만큼 전략요충이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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