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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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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 독일군 장교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석사학위 소위와 장군참모제도

19세기 초, 나폴레옹에 의해 독일은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이에 당시의 프로이센은 강군 육성으로 프랑스에 대한 복수와 조국통일을 실현하고자는 열망이 끓어 올랐다. 이런 국민적 여망과 군사개혁가들의 열정으로 가장 먼저 『정예 장교단을 통한 강한 군대만들기』에 국가역량을 집중했다.

결국 한 군대의 강하고 약함은 군 간부들의 질적 우수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불변의 진리다. 따라서 독일은 당시 젊은 청년들 중 가장 우수한 계층을 장교단으로 최우선적으로 영입하도록 각종 군사제도를 개혁했다. 또한 이미 장교로 선발된 인원들 중에서도 『Elite 중의 Elite』를 또다시 선발하여 군 지휘관 도우미 역할을 하는 『장군참모(Generalstab)』라는 독특한 제도를 만들었다.

글 |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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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중인 독일연방군 장교후보생

▶최강의 군대 정예 장교단이 만든다.
 
함부르크(Humburg) 외곽 숲속안의 고색창연한 옛 건물과 현대 시설이 어우러진 『독일 연방군 지휘참모대학』. 한국군 위탁교육생 J소령과 함께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한국 합동군사대학교와 비교시 시설규모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인들답게 튼튼하고 실용적으로 모든 시설이 건축되어 있다. 수백 년 전에 지어진 고색창연한 학교본부, 현대식 교실, 독신장교 숙소, 대형 식당, 수영장, 울창한 수목이 우거진 주변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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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군 지휘참모대학 전경
 
학교본부 건물 안 복도 벽면에는 수백 년 전 프러시아군을 유럽 최강의 군대로 만들기 위해 고심했던 독일 유명 군사사상가, 군사개혁가들의 초상화가 즐비했다. 특히 독일은 지정학적 위치가 유럽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또한 자연적 경계선이 별로 없는 지형 특성으로 최근 수백 년 동안 숱한 전쟁을 경험해야만 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에 의해 독일은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이에 당시의 프로이센은 강군 육성으로 프랑스에 대한 복수와 조국통일을 실현하고자는 열망이 끓어 올랐다. 이런 국민적 여망과 군사개혁가들의 열정으로 가장 먼저 『정예 장교단을 통한 강한 군대만들기』에 국가역량을 집중했다.
 
결국 한 군대의 강하고 약함은 군 간부들의 질적 우수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불변의 진리다. 따라서 독일은 당시 젊은 청년들 중 가장 우수한 계층을 장교단으로 최우선적으로 영입하도록 각종 군사제도를 개혁했다. 또한 이미 장교로 선발된 인원들 중에서도 『Elite 중의 Elite』를 또다시 선발하여 군 지휘관 도우미 역할을 하는 『장군참모(Generalstab)』라는 독특한 제도를 만들었다.
 
이런 독특한 인재선발 시스템을 독일군이 도입한지 200여 년이 지났다. 이 장군참모제도는 몰트케(Moltke)와 쉴리펜(Schlieffen) 등과 같은 유명 장군들에 의해 더욱 체계적인 제도로 발전되었다. 지난 20세기, 독일은 이 제도를 바탕으로 강력한 군대를 육성하여 세계를 상대로 두 번이나 전쟁을 일으켰다. 즉 조기 인재선발과 소수정예주의 원칙에 따라 선발된 Elite장교들은 집중적으로 강도 높은 지휘참모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각급 야전부대에 배치되어 여단급 이상 지휘관에 대해 책임지고 부대운용을 자문하고 또한 훌륭한 전투부대 지휘관으로서 역량을 발휘하였다.
 
또한 독일군은 우수한 장교단 육성 이후에는 『임무형 전술(Auftragstaktic)』개념을 만들어 독일 고유의 전투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이런 독일군의 전투방식은 현재 세계 각국의 지휘통솔 교육에도 수시로 거론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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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참모대학 독신장교 숙소
 
장군참모 자격 장교는 우선 진급
전문 직업군인은 완벽한 생활보장
 
보다 구체적인 독일군 장교선발 및 교육체계는 다음과 같다. 장교후보생 은 국방부 장교선발본부에서 과학적 방법으로 대상자들의 능력과 적성을 파악하여 선발한다. 군 간부의 획득을 국방부에서 통합 관리함으로써 홍보활동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한국군의 경우에는 각 군별로 참모총장 책임 하 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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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군사훈련 중인 독일군 장교후보생
 
또한 장교후보생으로 선발된 인원은 군사교육과 학위과정을 분리 교육한다. 우선적으로 군사교육은 최우선으로 하여 병신분에서 시작한다. 즉 병사 신분에서 출발하여 이론과 야전실습을 병행하고 부사관 신분을 거쳐 1년 이상 군사교육에 집중시킨다. 최소 분대장 수준의 교육을 수료한 이후 장교후보생들은 연방군대학에 입교하여 학사-석사학위 교육을 받는다. 물론 방학기간을 최소화하면서 약 3년 반에 걸친 대학생활을 경험하며 석사과정을 마친다.
 
그 이후 또다시 장교학교(드레스덴에 위치)에 입교하여 약 4개월의 군사교육과 각 병과학교에서 1년간 추가적인 전문과정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석사학위를 가진 독일연방군 소위가 탄생한다. 결론적으로 장교후보생으로 선발된 이후 약 6년간의 교육을 통해 정식으로 장교로 임관 된다(한국군 장교 역시 일반학과와 군사학 교육과정이 최소 3-5년 정도가 되나 질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독일군 초급장교들의 임관 연령은 대부분 25,6세에 달해 병사들보다는 훨씬 많다. 이처럼 독일은 전통적으로 정예 장교단 육성을 위해 엄청난 예산을 투자하여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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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후보생들에게 다양하고 실전적인 훈련이 실시된다
 
독일군 장교들의 경우에는 단기복무자를 제외하고는 30세 전후에 또다시 전원 참모장교 기본교육과정(SOL: Stabsoffizierlebrgang)을 거치면서 최우수자 15% 내외가 장군참모교육(LGAN: Lehrgang Generalastabgang) 대상으로 선발되어 2년간 추가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그 인원은 육군 40명, 해군 10명, 공군 15명 수준이며 장군참모자격(IG: Im General stabsdienst, 별도 견장을 부착 신분을 표시)을 취득하면 대부분 대령 이상의 진급을 보장받는다. 물론 이 과정에 선발되지 못한 일반 장교들도 틈틈이 다양한 과정의 보수교육은 계속된다.
 
혹자는 이런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일부 선발된 장군참모자격 장교들과 일반 장교들과의 위화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독일군은 이런 점에서 별 문제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대략 군 생활 10년간의 공개된 고과평정 결과, 본인이 납득할 만한 객관적인 각종 자료, 자신의 인생 가치관 등이 상급자와 충분한 토의를 거쳐 장군참모 교육대상이 선발된다. 결국 약 85%의 독일군 직업장교들은 완벽하게 보장된 “안정된 생활”을, 약15%의 장교들은 힘든 군 생활을 통한 “진급과 명예”를 추구하게 된다. 물론 일반 장교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대령 진출을 하기도 하며 일부는 장군까지 진급하기도 한다.
 
이렇게 선발된 장군참모교육 입교자들은 함부르크에 있는 연방군 지휘참모대학에서 세계 각국의 최우수 외국군장교들과 2년간에 걸쳐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1957년 창설된 이 학교는 UN회원국, EU, NATO 등에서 온 많은 장교들이 독일군과 함께 기거한다. 따라서 흔히 이곳을 “작은 U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대학은 UN기구, 일반 기업, 행정기관과도 다양한 교류를 한다. 미래 군사지도자들이 편협된 사고를 갖지 않도록 일반 사회와의 심포지움, 공동 학술연구 등을 통해 국민속의 군대임을 장교 들이 잊지 않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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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참모대학 일부 교실 전경
 
또한 이 학교는 여유 있는 2년간의 교육기간으로 단순한 전술교육 차원을 떠나 세계정세, 과학, 사회, 경제, 정치 등 폭넓은 분야까지 다룬다. 아울러 세계 각국의 전사적지 답사(이 과정을 참모여행이라고 칭함)를 통하여 ‘인류역사가 전쟁의 역사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장학습을 강화한다. 이 학교의 부대캠프 명칭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독일 군사사상가의 이름을 따『클라우제비츠 캠프(Clausewitz Camp)』라고 불린다. 흔히 한국의 주요 군사교육기관 위치를 『화랑대, 충성대, 상무대···』등으로 부르듯이.
 
현역은 작전과 훈련에 전념
전투근무지원은 민간인력이 담당
 
최근 모병제로 전환한 독일군 병력은 약 17만 명. 그러나 출퇴근이 보장되는 직업군인제로의 뒷받침을 위해 5만 5천여 명의 민간 인력이 전투근무지원분야에서 일하고 있다(현재 한국군은 현역 65만명, 민간지원 인력 약 3만명 수준). 물론 독일 정부는 과거 징병제에서는 많은 병사들이 이 분야의 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국방예산은 그만큼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병제 전환 이후 현역 군인들은 최대한 전투업무에 집중토록하고 나머지 지원분야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민간회사가 업무를 대행한다(미군의 경우에도 현역 병력이 약 145만, 민간 지원인력이 70만 명 수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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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병영 제설작업도 민간인력이 담당
 
그러나 유럽 안보환경은 근본적으로 한반도 상황과는 너무나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북한 100만 대군이 첨예하고 대치하고 있다. 더구나 북한은 핵무기를 포함한 생화학무기 등으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유럽 각국은 집단안보체제 구성과 핵무기(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에 의한 실질적인 전쟁억제로 재래식 전력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유럽 군대의 목적은 PKO 활동과 테러예방 등에 주안을 두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군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여건속에서 군간부 육성과 징집 병력관리를 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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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훈련 중인 장교후보생들
 
따라서 독일군 간부 양성제도를 그대로 한국군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독일이 정예 군간부 육성을 위해 국가적으로 얼마나 투자를 하고 관심을 갖는지는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인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생존과 강군육성에 관심이 있다면 세계 평균수준의 국방비는 과감하게 투자해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 국방비의 GDP 부담률은 1980년대 4%, 1990년대 3%, 2000년대 2.5% 수준으로 계속 축소되고 있는 추세이다(세계 각국의 평균수준은 3.5%). 결국 제한되는 우리의 국방예산으로는 과감한 무기체계 개선이나 획기적인 간부 정예화는 불가하다.
 
혹자는 한국군은 전력증강 예산낭비 방지나 고급간부 인력축소 등으로 자구책을 강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군 내부도 불요불급한 예산절감이 필요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한국 국방비가 북한의 30배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북한 군사력을 제압하지 못하는 것은 국방 당국자의 무능 때문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와 북한 경제시스템, 사회수준의 차이를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북한의 토지는 전부 국가소유이다. 그리고 북한군 대좌(대령) 급여가 한국군 병장 봉급보다 낮은 수준이다. 수년 전 북한 옹진반도 부근의 대규모 상륙정 발진항구가 불과 6개월 만에 완공된 적이 있다. 이때 투입된 인력은 거의 무임금의 북한건설부대와 주민들로 추정되었다. 반면 약 1조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건설과정을 보자. 최초 해군기지 건설계획은 1990년 초에 시작되었다. 무려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꼭 필요한 해군기지 한 곳 완공하지 못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의 실정이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정치가도 국가 생존을 위한 군사기지 건설반대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한 국방예산 낭비는 눈덩이처럼 불어 나기만 했다.
 
근본적으로 문존무비(文尊武卑) 사상에 깊게 젖어 있는 한국사회!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강군육성을 위한 과감한 국방비 투자확대 주장이 과연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는 단연코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교육” 등이다. 이미 “자주국방, 강군육성, 상무정신” 은 국민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이다.
 
더더욱 한심한 것은 정략적으로 부르짖었던 “국방개혁 2020, 병영생활 혁신” 등은 예산(약 600조 내외)의 뒷받침 없이 그저 구호성 행사만으로 반복해서 끝나고 있다. 오히려 무리한 군복무 단축과 병력감축을 위한 각종 부대해체,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병영사고 등은 정말 한국군 전력이 증강되고 있는지 많은 국민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미래 통일한국을 위해 정예 강군 육성이 필요함을 우리 국민들이 진정으로 느낀다면 독일군 간부정예화 과정에 대해 한번쯤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화급하게 프랑크푸르트 공항역에
잘못내리며 여행자료를 몽땅 분실하다
 
독일의 군사교육기관을 탐방한 후 드레스덴역에서 고속열차(ICH)를 타고 룩셈부르크를 향해 출발했다. 열차내의 좌석은 여유가 있다. 동행한 P군은 이곳 저곳 좌석을 옮겨 다니며 창밖의 경치를 즐긴다. 마침 맞은 편 좌석에 앉은 노신사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 사람은 의외로 한국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낯선 여행객에게도 친절했다. 대체로 독일인들은 “독일 병정!”이라는 이미지로 인하여 무뚝뚝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노신사는 한국의 경제 발전과 역동적인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가 한국 기업과 거래하고 있다고 했다.
 
창밖에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광활한 평원이 펼쳐진다. 드레스덴에서 프랑크푸르트 까지 쉬임없이 달리는 이 기차로도 약 5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소 지루한 느낌이 있어 2층 형태의 객실 안을 오르락 내리락 하기도 하고 잠깐씩 눈을 붙이기도 했다. 대략 프랑크푸르트역이 가까워 진다는 것을 느끼며 P군과 함께 룩셈부르크에서의 일정에 대해 의논했다. 탁자 위에 여행정보 자료들을 펼쳐 놓고 숙소, 전쟁기념관을 포함한 주요 명소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두 사람 모두 잠깐 잠이 들었다.
 
이 때 갑자기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라는 안내 방송이 튀어 나왔다. 졸다가 화달짝 놀라서 깬 장닭처럼 두 사람은 벌떡 일어났다. 다소 떨어진 곳의 배낭을 챙기기 위하여 자리를 옮겼고 곧 이어 정차하는 열차에서 황급히 내렸다. 얼떨떨한 기분에 두사람 모두 눈을 비비며 역사 표지판과 시계를 보니 다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우선 도착 예정시간인 17:50분 보다 약 5분정도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고 역내의 표지판도 “Frankflut Airport"라고 쓰여 있었다.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졌다. 분명 안내 방송은 ”프랑크푸르트···“라고 방송을 한 것 같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으려 했으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기차는 요란한 호각 소리와 함께 움직일 준비를 한다. 다시 열차 탑승구로 달려가 문 앞에 매달려 있는 역무원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Excuse me! Is here Frankflut station?" 콧수염을 길게 기른 전형적인 독일병정 스타일의 역무원은 눈만 껌벅껌벅 거릴 뿐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다음 역에서 바로 룩셈부르크행 기차로 바꾸어 타야하는 우리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역무원에게 애원하다시피 되물었다.
 
냉혹한 역무원! 맞다, 아니다 대답도 없이 기차 문을 꽝 닫고 안으로 사라지고 열차는 떠나 버렸다. 닭 쫒던 개 모양으로 우리들은 멍하니 플랫홈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뿔싸!”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기차의 탁자 위에 각종 여행정보 자료를 몽땅 두고 내렸던 것이다. 특히 다음 목적지에서의 숙소 전화번호와 그 동안 기록한 여행 메모지의 분실은 우리들을 난감하게 했다. 이곳은 프랑크푸르트역 직전의 “프랑크프르트 공항역” 이었다. 즉 서울역에서 내려야 할 것을 영등포역에서 내린 셈이다.
 
적극적인 한국 청년 P군
김치로 독일 역무원을 제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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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행 중 휴식 중인 P군
 
그러나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달려가 프랑크푸르트 본역에 최대한 빨리 가기로 하였다. 거의 20분 정도 걸려 본 역에 도착하니 이미 룩셈부르크행 기차는 사라지고 말았다.
 
하는 수없이 다음 열차를 타려고 창구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기존 열차표를 제시하며 룩셈부르크행 티켓을 요구하니 120유로(약 20만원)를 내고 또다시 열차표를 사야 된다고 한다. 그 여자 역무원은 “On time! On time!"만 부르짖는다. 드레스덴에서 출발한 열차는 정시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으니 제반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단다. 하기사 틀린 말은 아니다. 다시 거금을 주고 기차표를 끊으려니 너무 아까운 기분이 든다.
 
이 때 대한의 청년 P군이 득달같이 나선다. “분명 우리는 공항역에서 역무원에게 본 역인지 공항역인지 물었다. 그 사람의 인상착의는 길게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 콧수염을 찾아 달라. 그로 인해 우리는 늧게 룩셈부르크시티 도착한다면 숙소에도 가지 못할 형편이다.” 그러나 차가운 인상의 여자 역무원은 대답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아무 상관도 없는 이 여자는 “그것은 당신들 사정이요!” 하는 투다.
 
 그러나 이때 갑자기 이 역무원은 코를 싸매고 괴로운 인상으로 우리를 다시 쳐다 보았다. 주위를 살펴보니 P군이 메고 있는 배낭에서 지독한 김치냄새가 났다. 추측컨대 비상시 사용할 반찬으로 가져왔던 “종갓집 김치팩”이 기차 스팀에 부풀어 올라 배낭 안에서 터졌던 것이다. 인상을 찌푸리던 그 역무원은 도저이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다음 기차표 2장을 얼른 끊어 우리들에게 내밀었다. 조금 전의 태도와는 180도 달라져 ‘제발 이 자리에서 빨리 사라져 달라’는 애원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행 중 김치 때문에 기차표를 공짜로 얻는 희안한 경험을 프랑크프르트역에서 하게 되었다.
등록일 : 2014-11-13 오후 3:05:00   |  수정일 : 2014-11-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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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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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용  ( 2014-11-18 )  답글보이기 찬성 : 13 반대 : 12
좋은 글입니다.한가지 잘못내린 역의 프랑크푸르트공항역 이라는 안내 간판을 보고도 바로 열차를 다시 타지않고 차장에게 여기가 프랑크푸르트역 이냐고 묻기만 하니 차장이 속으로 황당했을 겁니다.
강석준  ( 2014-11-14 )  답글보이기 찬성 : 21 반대 : 7
국가를 방위하는 군인들을 대우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우리는 징병제로 목숨을 담보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데도 남녀 평등을 빙자해서 알량한 군 가산점 하나 없는 나라이다. 이러니 어떻게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는 마음이 우러나오겠는가. 군인들 알기를 자기 집 종보다 못하게 여기는 나라에서 ㅉㅉ
곽흥식  ( 2014-11-14 )  답글보이기 찬성 : 31 반대 : 15
보기 드물게 열심히 취재하고 내용도 충실한 기사네요. 잘 읽었습니다.
유춘수  ( 2014-11-13 )  답글보이기 찬성 : 13 반대 : 29
참으로 열정적으로 심층취재한 신종태씨에게 공감하고 이글을 실어 국민의 관심과 군의 분발을 촉구하는 계기를 주신 조선일보에 감사한다
      답글보이기  유춘수  ( 2014-11-13 )  찬성 : 12 반대 : 13
이준호  ( 2014-11-13 )  답글보이기 찬성 : 1 반대 : 6
코블렌츠에 독일군 사령부와 주변을 18년 전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사촌이 독일군에 의무 복무중이어서 부대 주변을 돌아 봤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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