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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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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유대인 학살박물관과 일본

아베 수상은 독일의 역사반성을 배워야 한다!

답사 중 얻는 단순한 결론 하나.

“어떤 국가든 만약 어쩔 수 없이 전쟁에 휘말리게 되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일단은 이겨 놓고 잘잘못을 따지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제2차세계대전이 당시 히틀러의 야망대로 『천년의 제3제국』을 이루었다면 과연 독일인들이 이처럼 유대인 학살 문제를 철저하게 회개할 수 있었을까?“

글 |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아베 수상은 독일의 역사반성을 배워야한다!
베를린 유대인 학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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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하고 또 참회하는 독일인들!
 
베를린의 어느 한국인 민박집. 이런 민박집은 한국음식이 제공되고 실질적인 여행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어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베를린에는 꽤 많은 한인 민박집들이 있다고 한다. 마침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한국계 독일청년을 만났다. 한국어는 약간 어눌하다. 개인의 가족사를 묻는 것이 실례가 될 것 같아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 청년은 독일군 현역병사로 9개월 복무한 경험이 있있다. 전차부대에 근무하였으며 한국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독일 젊은이들은 현역 복무보다 사회봉사요원 근무를 대체로 선호한다. 그러나 구 동독 출신 청년들은 대부분 현역 입영을 희망한단다. 과거 공산 체제의 군인 우대정책 영향인 것 같았다. 현역 복무자들은 제반 의식주를 국가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사회 봉사요원보다 월급이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2010년 기준 현역은 월 400 유로, 사회봉사요원은 월 800 유로 수준). 물론 지금 독일의 병역제도는 모병제다.
 
이 청년 역시 과거 독일이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켜 전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는 역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전쟁박물관에 가고 싶다고 하니 주저 없이 유태인 학살 박물관베를린 지하땅굴방문을 권유한다. 어렸을 적부터 역사 반성교육 과정 차원에서 관련 박물관을 수차례 방문한 경험도 있었다.
 
 민박집 여주인까지 대화에 끼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열띤 미니 역사세미나가 개최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전범 국가로서 철저하게 잘못된 역사 과오의 내용을 후손들에게 교육시키고 있다. 심지어 전쟁이 끝난 후 법적으로 히틀러라는 성씨 자체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아울러 전후 70 여년이 지나 유대인 학살피해자 보상 법적 시효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누락자가 있는 지 재차 파악하여 독일 정부차원에서 그들에게 추가 보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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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중심부의 유대인학살박물관 (좌우 건물)
 
이에 비헤 일본은 독일과 똑같은 전범 국가이지만 자신들의 역사까지 왜곡 하며 과거의 잘못을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이런 사례를 독일과 비교해 가며 동석했던 한국인들은 일본의 파렴치성에 대해 다 같이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류 역사는 강자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약소국은 그저 강국의 눈치만 보아야 한다. 단지 힘없는 나라들은 마음속으로만 억울한 분노를 삭이는 것이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베를린 중심부에
선조들의 죄상을 적나라하게 제시
 
 베를린 지하철 6호선 코치스트라세(Kochstrasse) 역 부근에는 유대인 학살 박물관(J̤udisches Museum Berlin)이 있다. 그 박물관은 2개의 큰 건물로 분리되어 있다. 1관은 2,000여 년의 독일 유대인 역사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기념관이며 제2관은 전쟁 중 학살된 600만 유대인의 추모공간이다. 왜 히틀러는 그렇게도 광적으로 유대인들의 학살에 매진했을까? 또한 당시 독일인들은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등을 학살하는 일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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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스실 입구과 학살자 해골을 형상화한 전시물
 
그 이유는 라퐁텐의 이런 우화에서 독일인들의 심리를 알 수 있을 듯 하다.
동물나라에 오랜 가뭄이 들자 회의가 열렸다. 이 가뭄의 이유는 여러 동물들이 잘못을 저질렀으니, 각자 자신의 죄를 참회하기로 하였다. 제일 먼저 맹수의 왕인 사자부터 자신이 저지른 커다란 잘못을 고백했다. 그 뒤로 힘이 센 동물 순서대로 참회했다. 모두 그럴 수 있다며 서로를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 당나귀가 너무 배가 고파 다른 동물의 건초를 훔쳐 먹었다고 하자, 동물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동물나라 흉년의 원인이 당나귀 때문이라고 외쳐 댔다. 그리고 당나귀는 그들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 우화에서 히틀러 시대의 독일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독일 사회는 피폐했고 국민들의 욕구 불만은 폭발 직전 이었다. 이때 히틀러를 비롯한 독일 상류층이 유대인 때문에 독일 경제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하자, 대다수 중하층민은 유대인을 학살하는 행동 대원이 되었다. 그 당시 많은 독일 사람들은 유대인이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상업에 기생하면서 돈을 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어떤 나라에서도 오래 살지 못하고 계속 쫓겨나서, 생산적인 일을 맡을 처지가 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배척당하고 끝내 히틀러에 의해 수백만 명이 학살당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박물관의 홀로코스트 타워(Holocaust Tower)에 들어서면 숙연한 분위기에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24m 높이의 석탑 사이로 빛줄기만 내리고 인공조명은 물론 난방이 되지 않아 을씬스러운 느낌을 준다. 49개의 사각기둥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기둥 사이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인간의 사악한 본성과 대중의 우매함을 관람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더구나 통로 옆에 전쟁과 폭력으로 희생된 이름 모를 유대인들의 얼굴 형상이 만여 개의 금속으로 만들어져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통로의 끝 부분에는 개스실을 형상화 해 두었다. 전쟁 당시 개스실 입구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했던 유대인들의 고통을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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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수용소의 형상과 당시 수감자의 처참한 사진

 이 박물관이 도시의 중심부에 건립될 당시 일부 베를린 시민들은 반대했다고 한다. 독일정부가 전력을 다해 과거사를 속죄하고 피해보상을 해 왔는데 또다시 이런 추모시설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진정성 어린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차원에서 이 추모 시설은 만들었다고 한다.
 
독일과 일본의 역사인식은 하늘과 땅 차이
 
전사적지 답사를 하다가 가끔씩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독일인과 일본인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들과 함께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역사인식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낀다. 교양있는 독일인 대부분이 히틀러와 선조들의 전쟁 책임을 100% 인정한다. 또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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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이런 선조들의 잘못이 담긴 역사자료를 만천하에 공개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인들! 원래부터 이들은 사악한 본성을 가졌는지 아니면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왜곡된 역사교육을 받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일본 여행객들 중 주변 아시아 민족에게 저지른 자신들의 선조 과오에 대해 속 시원히 반성하는 사람을 단 한사람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전쟁사를 수십 년 동안 연구했다는 일본 대학교수 조차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예들 들면 그는 193712, 중일전쟁 당시 남경 대학살을 이렇게 주장했다.
 
남경시민 사망자는 국제사회가 주장하는 30만 명이 아니라 12,000여 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일본군이 시민들 속에 섞여있는 중국군 패잔병과의 혼전 중에 일어난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당시 잘 훈련된 일본군들은 최대한 남경시민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사실은 자신이 직접 수많은 남경전투 참전군인 면접조사에서 확인한 사실이다.”
 
지나가는 소가 듣고도 웃을 일이다. 명색이 전쟁사 교육의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 런던 King's College 교환교수로 있는 일본인의 역사인식이 이지경이니 무슨 말을 하리요. 또한 일부 박물관에서 만난 일본 학생들은 아시아지역의 과거사에 대해 대부분 무관심하다. 따라서 왜 한국중국 그리고 태평양 전쟁 참전국들이 일본의 과거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였다.
 
더구나 일본 최고의 명문대학에서 교육받은 아베 수상의 최근 일본군 위안부 망언을 지켜보면 과연 정치적 목적에서 저런 말을 할까? 아니면 진심으로 그의 역사인식을 표출하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추정컨데 이미 아베 수상이 어렸을 때 교육과정에서 철저하게 왜곡된 일본 역사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따라서 수시로 일제침략 및 위안부 망언 등 한국인들의 염장지르는 소리를 자기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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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반성하고 미래에는 잘못을 범하지말자는 멧세지를 박물관은 전한다

그러나 답사 중 얻은 단순한 결론 하나. 어떤 국가든 만약 어쩔 수 없이 전쟁에 휘말리게 되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일단은 이겨 놓고 잘잘못을 따지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제2차세계대전이 당시 히틀러의 야망대로 천년의 제3제국을 이루었다면 과연 독일인들이 이처럼 유대인 학살 문제를 철저하게 회개할 수 있었을까?“
 
등록일 : 2014-10-08 오전 9:19:00   |  수정일 : 2014-10-0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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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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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무라호쿠토  ( 2014-10-09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7
살인 죄를 범한 사람의 반성 태도와, 절도범의 반성 태도는 요구 수준이 달라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에서는, 살인범도 절도범도 똑같이 사형이 됩니까?
      답글보이기  신종태  ( 2014-10-09 )  찬성 : 2 반대 : 8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않습니다
      답글보이기  이마무라호쿠토  ( 2014-10-10 )  찬성 : 10 반대 : 17
독일이 한 범죄와 일본이 한 범죄는 수준이 다르다고 하는 비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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