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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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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증인...베를린 체크 포인트 박물관!

목숨걸고 탈출한 동독인들의 생생한 사연

동·서독 분단역사를 실감있게 재현한 곳이 바로 베를린 중심부의『Check Point 찰리검문소 박물관(Haus am Checkpoint Charlie)』이다. 현지에서는 통상 “체크포인트 찰리”로 통한다.

이곳은 과거 동·서베를린 통행로상의 미군검문소였다. 한국의 판문점과 비슷한 곳이다.

글 |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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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치하를 탈출한 동독인들의 피눈물 나는 사연
 
베를린 중심부를 걷다보면 시내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성조기나 구 소련기를 들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간간이 보인다. 냉전시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첨예하게 대치했던 현장이 바로 이곳 베를린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통독이 된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1945년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래 독일은 약 45년간 분단국가였다. 그로인해 생긴 처절한 사연들을 박물관이나 사건현장에서 사진, 조형물로 쉅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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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포인트 박물관 입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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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중심부 시가지 미.소군인 복장 기수 모습
 
·서독 분단역사를 실감있게 재현한 곳이 바로 Check Point 찰리검문소 박물관(Haus am Checkpoint Charlie)이다. 현지에서는 통상 체크포인트 찰리로 통한다. 이곳은 과거 동·서베를린 통행로상의 미군검문소였다. 한국의 판문점과 비슷한 곳이다.
 
박물관 전시물은 독일분단과 통일과정 등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공산치하의 동독인들이 기발한 방법으로 서독으로 탈출한 사건들에 대해 각종 전시물과 함께 증언하고 있다. 예를 들면 탈출 수단으로 두 가족이 함께 탄 열기구, 모터를 단 거대한 연, 자동차 엔진룸 개조 심지어 쇼핑백까지도 이용했다. 숨 막히는 공산체제하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동독 주민들의 처절하고 절박했던 심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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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주민들의 탈출 수단
 
이곳을 방문하면 제2차세계대전 이후 지구 곳곳에 소련이 뿌리 놓은 공산주의 악령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절망을 주었는지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1945년 한반도 분단 이래 현재까지 북한 주민들이 공산체제에서 어떤 수난을 받고 있는지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소련 서베를린 봉쇄 대응
필사적인 서방국가의 공수작전
 
1946년 이후 패전국가 독일의 미래에 대한 미국·소련을 포함한 연합국 외무장관 회의가 수차례 열렸다. 흡사 해방정국에서 한반도 미래에 관한 모스크바 3상회의나 서울 미·소 공동위원회 개최와 너무나 유사했다. 그러나 이미 냉전과 동시 이념을 달리하는 소련과의 회담은 합의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1948년 런던 외무부장관 회의가 결렬되자 소련은 서독과 서베를린의 통로를 막았다. 소련 봉쇄정책에 대항해 서방연합군은 매일 60~100톤의 물자를 서베를린으로 공수했다. 생필품 수송은 주로 민간 항공기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연합군은 안전한 운항을 위해 공군기를 동원하여 호위했다. 좁은 공역과 소련군 위협에 조종사들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 당시 서베를린 시민들은 서방 항공기들을 자유의 종(Liberty Bell)"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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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항공기에 대해 열광하는 서베를린 시민들
 
소련의 서베를린 봉쇄작전(The Berlin Blockade)1948624일부터 1949512일 까지 장장 322일 간 계속된다. 자유진영 국가들과 서베를린 주민들을 경제적정치적으로 굴복시키려고 소련은 서베를린의 모든 육로와 해로를 봉쇄했다. 그러나 서베를린 시민들은 결코 소련의 야만적인 행동에 굴복하지 않았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은 엄청난 항공기를 동원했다. 1분 간격으로 2대의 항공기가 서베를린 공항에 착륙했다. 이 작전기간 중 70명의 항공승무원과 8명의 지상근무요원이 목숨을 잃었다. 결국 소련은 봉쇄작전을 시작한지 322일 만에 서방국가에 무릎을 꿇었다.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는
베를린의 냉전시대 박물관
 
1953617, 동독 701개의 도시와 마을에서 공산정권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시위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부과되는 과중한 생산목표반대와 정치범 석방을 요구했다. 또한 그들은 공산정권 교체, 자유선거, 독일통일을 주장했다. 소련은 이 저항운동에 비상계엄 선포로 대처했다. 그리고 탱크와 경찰력으로 무자비하게 시위대를 진압했다. 이 비상계엄은 동독지역에서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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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6월 동독주민들의 반공시위 모습

1950년대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많은 소련 위성국가에서도 이같은 반소 운동이 수시로 발생하여 세계언론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박물관 전시물은 소련 강제수용소의 인권탄압 사례를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소련 비밀경찰과 동독 인민위원회는 점령지역에 특별 수용소를 설치하고 엄청난 수의 독일인들을 수감했다. 이런 수용소는 과거 유대인 수용소를 활용하기도 하고 일부는 전범 수용시설을 이용했다. 수용자 일부는 왜 소련군에게 체포되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적절한 식료품 공급이나 의료시설도 없는 곳에 수용되어 고통을 받았다.
 
1945년에서 1950년 사이, 123,000명의 수감자 중 4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수감자들은 독일백러시아우크라이나폴란드헝가리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강제 수용소에서의 참상을 폭로하고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반인륜 반대단체(Action Group Against Inhumanity)에서 900,000여 통의 항의서한을 1950년대 말까지 소련에 발송했다.“(출처: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 German Red Cross 전시물)
 
1945년 한반도 분단 이후
북한의 소련군 군정 상황과 똑같아
 
19458월 한반도는 일제 치하에서 해방되었으나 38선을 중심으로 남북이 분단된다. 당시 북한은 소련군정 치하에 있었고 김일성은 스탈린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공산정권을 수립했다. 숨 막히는 공산 정권에 반대하는 수많은 반공인사들은 체포되어 소련 수용소로 끌려갔다. 독일 패망 후 동독 정치상황은 당시 북한과 너무나 흡사했다.
 
한반도에서 소련군과 공산정권에 반대하여 신의주 학생 의거 등 수많은 북한의 민중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소련 전투기와 탱크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 또한 체포된 반공인사들은 대부분 소련 수용소로 끌려가 현재까지 생사는 아는 사람들이 없다. 지구 반대편 동유럽 지역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은 판에 박은 듯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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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의 미대통령 레이건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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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에 열광하는 동서독 시민들
 
냉전 체제붕괴 이후 베를린에서는 과거 공산주의자들의 악행이 명명백백히 들어나 Chint Point 찰리 박물관에 수많은 증거들이 제시되어 있다. 베를린을 여행하는 많은 한국의 여행객들도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그러나 참혹했던 한반도 냉전상황에서의 역사 교훈을 깨닫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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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베를린 지역의 소련군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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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베를린 지역의 미군 전차

 왜냐하면 최근 한국 역사교과서 현대사 분야 논쟁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즉 역사교과서에서 해방정국 당시의 소련이나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언급하는 것은 철저하게 금기시 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복잡한 이념 문제를 따지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박물관에서 역사적 사건을 확인하면 공산주의자들이 인류사에 끼친 수많은 반인륜적인 해악을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금방 깨달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역사적 만행을 비판하면 수구 골통으로 매도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필자는 도저이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구나 지구 반대편 냉전이 해체된 독일조차도 과거 역사를 이렇게도 생생하게 전하고 있지 않은가?
 
100만 대군이 휴전선을 중심으로 첨예하게 이념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
 
공산주의 악령이 지배하고 있는 북한에서의 소련의 과거 만행을 역사적 교훈 차원에서도 신세대는 기억하고는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해방정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잘못을 입도 벙긋 못하게 재갈을 물리는 대한민국 역사교육이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Tip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박물관 설립 유래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뒤 베를린의 동서를 왕래하는 외국인들은 미군 검문소 체크포인트 찰리를 지나야 했다. 이 검문소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동베를린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상징하는 곳이었습니다. 동독을 탈출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동독 국경수비대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 박물관은 1962년에 처음 문을 열어 베를린 장벽이 낳은 갖가지 비극과 동독경비대의 만행을 자료로 모아 전시했다. 특히 이 박물관을 처음 세운 사람은 라이너 힐데브란트(Lainer Hildebrandt)라는 여성인데 그의 남편은 2차대전시 나치에 저항하다가 수용소에 1년 반 동안 수감되어 있었다. 전쟁 후 그의 남편은 또다시 동독의 독재정권에 맞서기 위하여 현 박물관 근처에 방 2칸을 얻어 전시 공간을 확보하였다.
 
어른 키 높이의 십자가 1,065
 
이렇게 출발한 박물관은 통독 이후 베를린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1년에 약 6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철거될 때까지 약 30년 동안에 베를린 장벽을 넘어 탈출에 성공한 동독인은 약 5천여 명에 이른다. 또한 탈출간에 경비병의 총에 맞아 숨진 인원도 약 200여명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숫자는 아니다.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 앞에는 어른 키 높이의 십자가 1,065개가 서 있다. 이 십자가들은 동독을 탈출하다가 희생된 넋들을 기리고 있다.
등록일 : 2014-09-30 오후 2:44:00   |  수정일 : 2014-09-3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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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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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석  ( 2014-10-01 )  답글보이기 찬성 : 14 반대 : 16
신종태 선생님이 쓰신 저 위의 글의 내용처럼 재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소련군은 동유럽과 동부독일과 북한에 진주하여 공포정치를 시행하고 강간 살인 약탈 폭행등의 악행을 저지르며 그들의 꼭두각시들을 조종하여 그들이 점령한 지역을 공산화했고 특히 동부독일에 진주한 소련군은 동베를린과 동부독일 지역에서 약 200만여명의 독일 여자들을 강간하고 죽이고 동무 독일지역의 민간인 남자들을 마구 죽이고 약탈하고 불을 지르고 파괴했다.
그런데도 한국에는 소련군이 동부 독일에서 저지른 살인 강간 폭행 약탈 등의 악행은 소련을 침략한 나치독일에 대한 정당한 보복이라고 생각하고 소련군의 악행을 전혀 비난하지 않는 한심한 쓰레기 인간들이 있으니 어이가 없다. 소련둔의 만행을 전혀 비난하지 않는 남한의 종북 빨갱이들은 소련군이 북한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동부독일에서 소련군이 저지른 악행이 소련을 침공한 나치독일에 대한 소련군의 정당한 보복이라고 생각하는 얼간이들은 소련에게 아무런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일본의 폭정에 시달리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져서 일본의 폭정에서 겨우 벗어난 우리나라 북쪽에 진주한 소련군이 저지른 악행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북한에서의 소련군의 만행을 철저하게 숨기고 소련군을 민족의 해방군으로 왜곡하는 꼴은 정말로 어이가 없다. 북한에서 소련군의 악행이 하도 심해서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 장군은 상부에 소련군의 악행을 기술한 보고서를 보낼 정도였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더욱 더 어이가 없는 것은 2005년에 러시아가 그들의 대독전쟁 승리 60주년을 맞이하여 모스크바에서 벌인 소련군의 대독전쟁 승리를 축하하는 행사에 종북 빨갱이 노무현이 한국의 축하인사 자격으로 모스크바에 가서 소련군의 대독전쟁 승리를 축하한 것이다. 종북빨갱이 사상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자기나라의 반쪽을 공산화시켜 분단시키고 6.25전쟁을 일으킨 원흉 소련군의 대독전쟁 승리를 축하하려 갔던 것은 정말로 어이가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독일이 소련을 타도하지 못한 것은 독일과 우리나라에 분단의 비극과 특히 우리나라에게는 6.25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자본주의 자유국가인 미국과 영국이 나치독일보다 훨씬 더 악독한 스탈린의 공산주의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길 수 있게 도와준 것이 큰 잘못이다.
제2차 세게대전이 끝나자마자 공산주의 소련 때문에 가장 큼 피해를 입은 나라가 우리나라이고 소련의 북한 공산화 때문에 나라기 분단된지 70년이 다 되었는데도 한국에서는 소련군의 만행이 언급되는 것을 수구반공꼴통으로 비난하고 한국의 분단의 원인은 소련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소련군의 악행을 철저히 숨기는 세력들이 날뛰고 있다. 인터넷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군이 동부독일과 동유럽과 북한에서 저지른 악행을 정당화하는 글을 쓰는 못된 인간들이 많다.
한국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대통령 때까지는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바른생활 교과서를 비롯한 초등학교 고학년 바른생활 교과서에는 1945년 10월 23일에 신의주에서 일어났던 신의주반공학생의거 이야기와 8.15광복 뒤에 북한에서 있었던 소련군에 대한 저항운동에 대한 글들이 있었으나 이제 한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8.15해방 뒤에 북한에서의 소련군의 만행과 소련군에게 반항했던 이야기들은 없다.
1990년대초에 소련이 무너지자 소련이 공산화했던 동유럽과 동부독일에서는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동부독일은 서부독일에 흡수되어 독일은 통일되었는데도 독일과 같이 1945년에 제2차 세게대전이 끝나자마자 소련군이 북한을 공산화하여 분단시킨 한국은 소련이 없어졌는데도 북한의 김씨공산독재체제가 무너지지 않아 남북한이 동일되지 않고 진보 민주의 탈을 쓰고 날뛰는 종북 빨갱이들 때문에 나라가 엉망이 되었고 공산주의 소련 스탈린의 후예들인 북한의 김씨빨갱이들 때문에 독일과는 전혀 다르게 나라를 통일하지 못하고 계속 남북한이 갈라져서 싸우고 있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상태에 있으니 정말로 한국의 상황은 매우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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