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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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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U-보트와 되니츠 제독 이야기

바다의 늑대! 독일 U-보트 박물관 답사기

1, 2차 세계전쟁을 통해 수많은 독일 잠수함 승무원들이 전사했다. 특히 2차 대전 초기에는 독일 육군과 공군의 화려한 전격전으로 인해 히틀러는 해군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독일군은 해군을 ‘서자’처럼 다루었다. 더구나 해군 내에서도 잠수함대는 그 가공할 잠재력에 비해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 원인은 잠수함이 독일 해군 전함 「비스마르크」나 순양함「샤른호르스트」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3제국 군대의 위용을 온 세상에 과시하고 싶은 히틀러의 눈에 차지 않았다.

글 |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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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을 주름잡던 U-boat
한적한 해변에 쓸쓸히 누워있다
 
1940101707:00 ! 함장하인리히소령이 지휘하는 독일군 잠수함 U-48. 어제밤 이 잠수함은 북대서양 연합군 수송선단에 뛰어들어 1만 톤급 유조선 1척과 상선 1척을 어뢰로 순식간에 격침시켰다. 유유히 수면 아래 깊숙한 곳으로 몸을 숨긴 바다의 늑대 U-48호 승조원들은 승전의 파티를 마음껏 즐겼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또 다른 먹잇감을 찾기 위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뿔사, “적기출현! 적기출현!”이라는 함교 견시병의 자지러지는 고함소리와 함께 3명의 당직병들은 짐짝처럼 선실 안으로 떨어졌다. 방수 헷치가 닫히기도 전에 영국 대잠초계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2발의 폭뢰를 떨어뜨렸다. 어제 수송선을 격침시킨 이 늑대를 찾기 위해 초계기들은 밤을 새워가며 교대로 바다 위를 감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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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키일항의 U-보트 박물관
 
순식간에 잠수함 선체는 크게 흔들렸고 실내전등이 꺼짐과 동시에 쌓아두었던 짐짝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긴급 잠항! 긴급 잠항!”
 “현재 심도 80m, 100m, 150m.....200m... 바닥에 착지!"
 
음파 탐지병이 숨 넘어 갈 듯이 긴급하게 하인리히함장에게 보고한다.
함장님! 초계기 연락을 받은 영국 구축함 수 척이 머리 위에 도착했습니다.”
곧 이어 잠수함을 찾기 위해 구축함에서 쏘아대는 --’하는 소나 소리가 기분 나쁘게 함내에 울려 퍼진다. 벌써 안전 잠수심도 100m를 넘어선 잠수함은 금방이라도 찌그러질 듯이 뿌지직- 뿌지직-’ 거린다. 함장 입술은 바싹바싹 타들어간다. 바다 최저 수심에 납작 배를 깔고 붙어있는 U-boat는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다.
 
간간히 주변에서 터지는 폭뢰로 선체는 금방이라도 깨질 듯이 좌우로 요동친다. 이윽고 입술을 지그시 깨문 하인리히 소령은 전 승무원들에게 드러누워 조용히 취침할 것을 명령한다. 이미 잠수함 내부의 공기는 탁해지면서 질소 농도가 위험 한계치에 근접했다. 승무원들의 의식은 몽롱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잘 훈련된 장교들은 산소통을 들고 수시로 자리를 옮겨가며 승무원들을 격려하며 의식 상태를 확인한다. 가장 두려운 것은 폭뢰 충격으로 선체에 조그마한 균열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이 잠수함은 수심 200m의 엄청난 수압으로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하인리히소령과 승무원들은 무려 10여 시간 이상을 버티었다. 부하 승무원들의 평균 연령은 불과 19!
영국 대잠초계기와 구축함들도 초인적인 U-boat 승무원들과의 버티기 시합에 결국 굴복하고 잠수함 수색을 포기하고 말았다. 오늘 날 까지도 제2차 세계대전 잠수함 전투사에서 U-48 승무원들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인용되고 있다.
 
 이런 독일군 U-보트의 활약으로 제2차세계대전을 통해 총 2,603척 13,50만톤의 연합국 상선과 175척의 군함이 바다속으로 수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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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외부 대공포 장치
 
좁은 내부와 열악한 잠수함 생활
참전 승무원의 75%가 전사포로
 
독일 북부지역에 위치한 키일(Kiel)!
이 도시는 독일 슐레스비히흘슈타인주의 주도(州都)이다. 함부르크에서 자동차로 약 3시간 정도 달려 U-boat 박물관에 도착했다. 바닷가에 전시되어 있는 잠수함은 옛날 강성했던 독일 제국을 상징하듯 웅장했다. 그러나 주변은 너무나 황량하고 찾는 관광객도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1,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U-boat는 연합군을 공포에 떨게 하며 맹활약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전범 국가의 잠수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탓인지 U-boat 조차도 숨을 죽여 가며 말없이 갯벌에 누워 있다. 계단을 통해 잠수함 내부로 들어갔다. 흡사 거인 나라의 큰 통조림 깡통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 실내 구조도 비교적 단순하다. 함장실, 잠망경실, 조타실, 승무원 침실겸 어뢰실 그리고 엔진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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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내부 잠망경 조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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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엔진실
 
다른 국가의 잠수함 박물관과는 다르게 독일 해군의 구체적인 활약상이나 전승 기록 등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하기사 독일군 활약상을 홍보한다는 자체가 전쟁 피해국가 입장에서는 정말 기분 나쁜 일.
마침 견학을 온 독일 꼬마는 승무원들의 일상사를 기록해 둔 전시물을 유심히 지켜본다. 이런 잠수함을 견학하며 이 아이는 무엇을 생각할까? 자기 선조들의 과거의 영광을? 아니면 전쟁 중에 겪었을 선조들의 고통을?
 
전쟁 중 독일 U-boat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있다. 1940년 대 부터 유럽 인근 대서양에서 주로 작전을 하던 독일 잠수함들이 1942년대에는 북미와 남미대륙에 까지 작전영역을 확장했다. 미국 동해안의 경우에는 7척의 독일 잠수함이 숨어 있었다. 19421월과 2월에 이 7척의 잠수함들이 무려 130척의 연합군 선박을 격침시켰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은 일본 잠수함과 협력이 가능한 동아프리카와 인도양까지 U-boat 작전범위를 넓혔다. 말라카 반도 페낭에 독일·일본 연합 잠수함 기지를 건설했다. 1942년 중순 U-boat는 북미 동해안에 21, 멕시코 만에 15, 카리브해에 12, 서인도제도에 11, 북대서양에 8, 대서양 중앙에서 15척이 작전했다. 19421년동안 독일 잠수함이 격침시킨 연합군 선박은 총 1,160척으로 626만 6,215톤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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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침실겸 어뢰보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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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를 인정받지 못하는
전범국가 참전자들의 서러움
 
1, 2차 세계전쟁을 통해 수많은 독일 잠수함 승무원들이 전사했다. 특히 2차 대전 초기에는 독일 육군과 공군의 화려한 전격전으로 인해 히틀러는 해군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독일군은 해군을 서자처럼 다루었다. 더구나 해군 내에서도 잠수함대는 그 가공할 잠재력에 비해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 원인은 잠수함이 독일 해군 전함 비스마르크나 순양함샤른호르스트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3제국 군대의 위용을 온 세상에 과시하고 싶은 히틀러의 눈에 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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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되니츠.
그러나 걸출한 해군제독
되니츠의 활약으로 나중에 히틀러는 U-boat100 척까지 늘려주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되니츠는 뒤이어 늑대떼 전술'을 개발하여 연합군의 수송전단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게 된다. 후일 되니츠 제독은 만약 200척의 U-boat가 있었다면 영국대륙으로 가는 수송선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었고, 300척이 있었다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도 있었다고 술회했다.
 
오늘날 암흑 같은 바다 속에서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렸던 U-boat 승무원들의 공적을 기리는 흔적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단지 전쟁사를 연구하는 일부 역사학자나 군사 매니아들만이 간간히 그들의 투혼을 책이나 영화로 전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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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차 세계대전 전몰자 추모비
 
U-boat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1, 2차 세계대전 전몰자 추모탑이 덩그렇게 솟아 있다. 또한 키일(Kiel)에서 출항하여 스칸디나비아 대륙으로 항해하는 대형크루즈선이 수시로 이 박물관 근처로 지나간다. 동행한 J소령 말에 의하면 많은 독일 청년들의 꿈이 틈틈히 저축하여 모은 돈으로 저 크루즈선을 타고 밤새도록 즐겁게 놀면서 스칸디나비아 국가로 여행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반세기 전, 수많은 그들의 선조들이 처참한 전쟁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역사를 기억하는 후손들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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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대륙행 크르즈선

"어뢰에 맞아 처참하게 불타는 수송선, 곧이어 소리소리 지르며 달려오는 구축함, 폭뢰, 물속 깊은 곳으로 숨을 헉헉거리며 도망치는 U-boat!···" 잠수함 밖으로 나오면서 이런 상념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진정으로 이런 참혹한 전쟁의 역사가 두 번 다시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과 함께 발길을 돌렸다.
등록일 : 2014-09-16 오전 9:25:00   |  수정일 : 2014-09-1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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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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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 2014-09-19 )  답글보이기 찬성 : 9 반대 : 11
임문채 선생님!

감사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에게 질문했으나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해 주시는 분은 없었습니다.

인류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다!는 말이 군사박물관에 가면 실감이 납니다.

이처럼 전쟁에 이기기 위하여 그 국가가 가진 과학기술력을 신무기 및 장비개발에 최선을 다했죠, 아마 이런 기술력은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민간 산업기술로 곧 전환되었을 것입니다.

한국도 북한보다 수십 배나 우세한 과학기술력을 군사력 강화 부분에 전환한다면 아마 수년내에 자주국방이 가능한 국가가 될 것 입니다.
임문채  ( 2014-09-19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2
신교수 님께서 질문 하시니 영광입니다.

항모잠수함(submarine aircraft carrier)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어서, 제1차세계대전중 독일 유보트인 U-12가 1915년1월에 최초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제2차세계대전(주로 일본)및 1950년대까지 여러 열강에서 활발히 개발되었으나 전략사상이 바뀐 현대의 잠수함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인것같습니다.

제1차대전 당시는, 기술적으로 유치했던 시기로, 잠수함은 "잠수가 가능한 함정"에 불과하기에 일반적으론 해상에서 운항하다, 적과의 거리가 가까와지면 잠수하여 작전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러기에 주로 정찰을 목적으로 항공기(수상비행기)를 갑판에 고박하여 탑재한 상태로 수상 운행하다가 적대국 가까이 가서, 살짝 잠수하여 비행기를 수상이륙시키는 정도 지요.
즉 항공기를 탑재한 상태로 잠수할 수 없었습니다.

대전 끝무렵에는 잠수함 갑판에 이륙장치를 장착한 잠수함도 개발되었습니다만, 당시 유보트의 길이가 고작 60여미터 남짓한걸 고려하면 대단한 수준이 아니지요. 이륙한 항공기는 적국상공에서 임무(주로 정찰 이나 간혹 폭탄을 손으로 투하하는 정도)를 마친후 자력으로 귀환(잠수함이 아닌 기지로)하는 형태였습니다.

전간기와 제2차세계대전기간중 개발된 항모잠수함은 갑판과 전망탑(conning tower)사이에 불룩하게 솟아오른 별도의 수밀공간을 두어 탑재항공기를 격납(날개를 접어서)하는 형태로 발전 합니다. 즉 항공기를 수밀공간에 격납하고 잠수하였고 갑판에는 캐터펄트(catapult)를 설치하여 짧은 거리에서도 탑재항공기의 이륙이 가능하도록 발전했습니다. 임무를 마친 항공기(그때도 수상항공기를 탑재했습니다)는 바다에 착륙하고 크레인으로 끌어올려 다시 격납하는 형태였습니다. 당연히 해상상황이 악화되면 이륙도 착륙도 어려워 집니다.

이런 형태의 항모잠수함으로 유명한 것이 대전 말기인 1944~1945년에 일본이 개발한 I-400 시리즈 (I-400,401 및 402 총 3척이 건조되었습니다)입니다. I-400은 배수톤수 6500여톤, 길이 122미터, 항공기(경 폭격기) 3대를 탑재할 수 있었고 1회주유로 지구를 한바퀴반을 순항할 수 있는 당시까지 개발된 세계최대 잠수함 이었습니다. 일본은 미국본토와 파나마운하를 공격하기위해 자원이 쪼달리던 대전말기에도 이런 초대형잠수함을 개발했었지요. 눈에 띄는 전과는 없었습니다만...
종전후 미해군은 이 잠수함들을 철저히 조사하였고 이후 소련이 조사단을 보내겠다고 하자, 하와이와 큐슈해안에 전부 침몰시킵니다.

상선의 통상파괴가 주 전략이었던 독일은 항모잠수함을 발전시키진 않았습니다만, 대전 말기엔 조립식 "자이로콥터(Gyrocopter 혹은 오토자이로 autogyro 라 합니다)"혹은 "자이로카이트(회전날개 연)"를 "전망탑"후미의 수밀실에 탑재하여 수면에 부상했을때 조립하여 정찰목적으로 운영했습니다. 아무래도 잠수함의 높이가 낮아 해상주위를 살피는데 한계가 있으니 높은곳에서 주변을 정찰하겠다는 목적이었지요. 보통 120미터 고도까지 상승하여 주변약25마일까지 정찰이 가능했다 합니다. 참고로 자이로콥터는 헬리콥터가 발명되기전에 사용되었던 헬리콥터와 고정형 비행기를 섞어놓은것과 같은 형태의 날틀로 회전날개와 프로펠라를 동시에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전날개에 동력이 전달되어 부양과 추진력을 갖는 헬리콥터와는 달리, 동력이 전달되지않는 회전날개는 자연적인 회전력으로 부양력을 주며 동력이 전달되는 프로펠라가 추진력을 발생시킵니다.
이동석  ( 2014-09-21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6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에 독일해군은 56척의 유보트 잠수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 9월부터 독일이 항복한1945년 5월초까지 독일해군은 800척에 가까운 유보트 잠수함들을 격침당해 3만명에 가까운 유보트 잠수함 승무원들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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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용  ( 2014-09-16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0
예전에 시카고 산업박물관에서 2차대전 당시 미국이 노획한 U-505를 본 적이 있는데 이 유보트와 비슷하게 생겼군요. 가까이서 보니 엄청 견고하게 잘 만든 것 같았습니다. 길이가 77미터였던 것 같은데 바로 옆에서 보니 엄청 길더군요. 당시 잠수함 기술은 독일이 세계 최강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보트 때문에 과학기술이 엄청 발전했다고 들었습니다. 영국은 유보트 잡는 법을 연구하고 독일은 그에 대응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탱크는 롬멜이고, 유보트는 되네츠군요.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09-16 )  찬성 : 4 반대 : 0
되네츠기 아니고 되니츠입니다.
이동석  ( 2014-09-16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12
신종태 선생님께 질문이 있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개발된 잠수함들과 오늘날에 쓰이는 잠수함들의 함교와 갑판 위에는 대포와 기관총이 없으나 독일 유보트를 비롯한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잠수함들은 위의 유보트 사진에 나와 있듯이 함교와 갑판 위에 대포들과와 기관총들이 있었는데 내가 알고 싶은 것은, 함교와 갑판 위에 대포들과 기관총들이 설치되었던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잠수함들은 물 속으로 들어갈 때 갑판과 함교에 달려있는 대포들과 기관총들을 어떻게 운용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갑판 위에 대포와 기관총이 달려 있는 잠수함들이 물 속에 들어가면 물 때문에 함교와 갑판 위에 있는 대포들과 기관총들이 부식되거나 대포와 기관총안에 물이 들어가 수압에 눌려 대포들과 기관총들이 고장날 것 같은데 물속에 들어간 잠수함의 함교와 갑판 위에 살치된 대포들과 기관총들은 어떻게 했는지 가르쳐 주세요.
      답글보이기  임문채  ( 2014-09-17 )  찬성 : 5 반대 : 5
지나가다 답변 답니다.

일반적으로 합금강 (해수 부식에 약한) 재질의 포신 내외부에 "내부식성 라이너"를 입혀, 해수에서도 부식에 견딜수 있게 하며, 아울러 갑판포의 설계시 작동메카니즘이 해수에 접촉하는 걸 고려하여 설계하기에 사용연한동안은 큰 문제가 없습니다.

2차대전시 사용된 미국잠수함의 경우 "갑판포(deck gun)"는 바닷물의 부식성을 고려하여 구리-니켈합금재질의 라이너(liner)로 포신을 마감합니다. 확실한 자료는 없으나 독일잠수함은 포신을 크롬도금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강철이나 합금강은 바닷물에 쉽게 부식됩니다. 스텐레스스틸또한 바닷물에 포함된 "염소"로 인한 "스트레스 부식(stress corrosion)"이 심각하기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언급한 "구리-니켈"이 바닷물에 가장 내부식성이 좋으며 그밖에 청동재질의 "포금(gun metal)"또한 내식성이 좋습니다.

아울러 갑판포(deck gun)을 설계할때, 잠수함의 설계수압을 충분히 고려한 작동 메카니즘을 구현하기에 귀하가 생각하듯이 수압으로 망가진다든지 하는 문제는 없었던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가로 유보트의 경우, 잠수하기 전에 탄력성있는 고무 폼(rubber foam)의 마개로 88m 나 105mm 포신의 양 출구를 막아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게 합니다. 아울러 갑판포의 여러곳에 그리스를 자주 주입하여 녹을 방지하는것이, 수면에 부상시 주요 활동중에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대공포(20밀리 단장 ~ 37밀리 다연장)의 경우엔 마개로 막지 않았고, 주요 부분만 내부식성 재질이나 포신라이닝만 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보트의 갑판포엔 방수탄약고가 위치해있어, 수면으로 부상시 그 탄을 사용해 즉시 포를 발사할 수 있었고, 추가의 탄약은 "콘트롤 룸"근처의 탄약고에서 탄약을 가져와 (3명이 릴레이로 탄을 운반) 포를 발사하게 됩니다.
      답글보이기  신종태  ( 2014-09-18 )  찬성 : 12 반대 : 8
임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도 이동석 선생님의 질문을 받고 잠수함전문가에게 확인 중 이었습니다.

그런데 U-boat 운용경험이 없다보니 정확한 답변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친김에 저도 임 선생님께 질문드리고자 합니다.

과거 1차대전 혹은 2차대전 중의 잠수함에는 정찰용 항공기(주로 수상기)를 탑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잠수함의 잠항시 갑판 상단부의 항공기가 어떻게 수압을 견디었는지 궁금합니다.

영국 등 공군박물관이나 잠수함박물관에 가면 잠수함에 탑재된 비행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많이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09-20 )  찬성 : 0 반대 : 19
신종태 선생님의 답변을 기다렸는데 이제라도 답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특히 나의 질문에 자세하게 답변해주신 임문채선셍님에게 고마움을 드립니다.
      답글보이기  신종태  ( 2014-09-20 )  찬성 : 1 반대 : 8
이동석 선생님!

늘 전쟁사에 관심을 가지고 필요시 적절한 조언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한국의 자주국방을 위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보다 과거 전쟁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미래 우리의 생존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학계, 여성계, 정치계 할 것없이 전쟁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영향으로 우리 국민들은 군사 이슈가 생기면 극히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진지한 성찰과 실질적인 해결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는 실정 입니다.

예를 들면 윤 일병 사건으로 "병영문화 혁신방안"이 연구되지만 실제 제도 시행을 위한 추가적인 예산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항상 말로만 떠들다가 끝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생각하면 절로 한숨만 나오네.

앞으로도 국가존망에 관련되는 전쟁 칼럼에 대해 언제든지 이 선생님의 날카로운 비판을 부탁드립니다.

추가적으로 잠수함 운용경험이 있는 분에게 확인 결과 잠항시 양쪽 구멍이 있는 물체는 수압에 영향이 없다고 합니다. 즉 잠수함 갑판에 노출된 대공포 포신은 양방향으로 물이 들어와 수압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부상 즉시 총포 정비가 제1순위 작업이 되었다고 합니다.

군사칼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09-21 )  찬성 : 1 반대 : 0
신종태선생님이 쓰신 것처럼 전쟁문제와 군사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정부도 국민도 심지어는 군대도 자주국방의 절박성을 느끼지 않는 우리나라의 상황은 매우 답답합니다.
그리고 잠수함 갑판위에 있는 갑판포가 수압을 받는 문제에 대해 답변을 주신 것에 고마움을 느낌니다.
앞으로도 군사분야의 재미있는 글들을 많이 써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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