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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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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독일군 병영 1박2일 체험기

독일군 모병제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

고색창연한 건물과 더 넓은 병영부지! 그러나 병사들의 우렁찬 함성과 젊은 기운이 넘처 나야할 군사기지 안은 텅텅 비어있다. 장기간의 겨울휴가를 즐기기 위해 부대장병 전원이 집으로 돌아 갔단다. 물론 병사들 조차 평일 날 외출도 자유롭다.

평시 병영을 관리하고 잡다한 잡역을 도맡아 하는 용역회사 직원들만 간간히 눈에 띄였다. 그러나 장교학교 후보생들은 교육 중이었기에 별도 막사에서 생활 중 이었다.

글 |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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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병영내의 식당전경

훌륭한 병영시설 완벽한 복지로 모병제 유지
 
 드레스덴 지역 전적지 답사 중 독일군 장교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한국육사 A생도 협조로 학교지원부대 병사막사에서 1박 2일 머무르는 기회를 얻었다드레스덴 군사기지 내부를 걷다보면 1800, 1900년대의 유명 군사전략가 기념비, 부대표지석 등이 곳곳에 남아 있다. 알게 모르게 군사강국 프로이센시대의 찬란한 역사를 미래 독일군 간성들에게 그대로 전수해 주려는 의도가 있는 듯 했다. 군사학도들의 필독서인 롬멜 보병전술도 바로 이곳 군사학교에서 롬멜이 교관으로 재직 중에 쓰여졌다.
 
고색창연한 건물과 더 넓은 병영부지! 그러나 병사들의 우렁찬 함성과 젊은 기운이 넘처 나야할 기지 안은 텅텅 비어있다. 장기간의 겨울휴가를 즐기기 위해 부대장병 전원이 집으로 돌아 갔다. 물론 병사들은 평일 날 외출도 자유롭다. 필요 시 다음 날 일과전 까지 출근하면 된다. 부대안은 병영관리와 잡역을 도맡은 민간용역회사 직원들만 간간이 눈에 띄일 뿐!  그러나  장교후보생들은 교육기간이므로 별도 막사에서 생활 중이다.

 모병제하 독일군 병영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주적(과거 냉전체제하에서는 구소련과 바르샤바군이 가상적)이 사라지고 군대는 PKO 및 국가재난구호, 테러진압 등이 주 임무로 바뀌었다. 특히 유럽 각국은 NATOEU군단 등 다양한 군사동맹을 통해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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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힌 드레스덴 독일군 병영전경
 
 아울러 모병제하 영국·프랑스의 국가방위 주 전력은 핵무기이며 재래식 전력은 큰 의미가 없다. 어느 국가가 감히 핵무기를 가진 영국·프랑스 침공을 생각하겠는가? 그래서 모병병사 한사람 유지에도 엄청난 국방비가 들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병력 감축이 지금도 이루어진다. 오히려 평생을 국가가 책임져야하는 직업군인보다는 일반용역회사에 군 업무를 떠넘기는 것이 예산절감에 유리하다. 과거 영국군 병영을 방문했을 때 대부분의 부대차량은 일반 렌트회사에서 임대하여 사용했다. 심지어 계약직 민간인들이 기지 내 하도 많아 이곳이 부대인지 일반회사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과거 IRA 테러가 심한 시기에는 영국군은 외출 시 군복착용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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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군사전략가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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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독일군 부대 표지석
 
군인은 오직 전투준비만 잡역은 몽땅 민간용역회사가 맡는다
 
 넓직한 실내공간을 가진 11실의 독일군 병사 생활관!  독일의 여유있는 경제수준을 그대로 나타내었다. 단 화장실·샤워장은 2인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병사 개인방에는 침대, 컴퓨터, 책상, 옷장, 사물함 등 한국의 웬만한 대학기숙사보다는 휠씬 넓고 쾌적하다. 텅 빈 막사지만 한국인 VIP(?)들을 위해서 후끈후끈하게 스팀을 아낌없이 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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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병사 개인 생활공간
 
 커텐을 열고 창밖을 보니 하얀 눈이 곳곳에 수북이 쌓여있다. “어휴! 저 눈 누가 다 치울 것인고?” 오래전 강원도 최전방에서 겨울철 눈만 뜨면 제설작업하던 추억에 자연스럽게 생긴 마음이다. 그 당시 전방철책 근무 병사들은 심야에도 총을 등에 비껴메고 밤새도록 순찰로를 오가며 눈을 쓸었다. 그리고 주간에는 어김없이 보급로 개설을 위한 작업에 매진했다. 왜냐하면 제때 제설작업을 하지 않으면 급경사 빙판길로 곧바로 보급로가 차단되었다.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A생도 왈 선배님! 독일군 병사들은 오로지 훈련에만 전념할 뿐입니다. 제설작업, 세탁, 병영경계, 시설관리 등 몽땅 민간인들의 몫입니다. 왜 군인들이 그런 잡다한 일에 매달립니까?”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고 마음속으로 한국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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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힌 병영 내부

 강원도 양구 모 부대마크는 하얀 삽날 형상이다. 매일 같이 온갖 작업에 시달렸던 그 부대 장병들의 우스개 이야기인 병사는 죽어도 삽날 만은 빛난다!” 말이 오늘 날도 남아있다. 전투준비와 동시에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일상적으로 작업에 동원되는 것이 한국군 현실이다. 우리도 독일군 처럼 전투준비와 훈련외의 모든 업무를 몽땅 민간용역회사에 맡기는 호사스러운 군 생활은 과연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그리고 그 엄청난 예산을 국민들이 다 부담한 각오는 되어 있는지?
 
 100만 대군이 첨예하게 휴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안보현실과 유럽은 하늘과 땅 차이다. 혹자는 대만의 모병제 사례를 자주 거론한다. 이 또한 현실을 모르는 소리. 현재 대만은 UN에서 국가로서의 인정도 못받고 있다. 아울러 대만은 이미 거대한 중국에 무력저항을 포기한지 오래다. 그들의 생존문제는 국제역학을 잘 이용하여 오로지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아울러 대만과 중국의 활발한 인적·물적 교류로 인해 양국 간 전쟁을 상정하기는 곤란하다. 물론 대만은 나름대로 최소한의 자위력을 위해 국방력 강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대만은 2011년 모병제로 전환 이후 병력충원의 어려움과 예산부족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결국 또다시 2017년도로 제도시행을 전격적으로 연기한 실정이다. 혹자는 병력축소에 따른 예산절감으로 모병인원들의 처우를 개선하면 된다는 극히 단순한 논리를 제시한다. 한국군의 경우 일반 병사 10만명 감축 시 절감되는 예산은 수천 억에 불과 하다(2004년 기준 2000억 원. 지금은 병사 급여인상으로 약간은 달라질 수 있음). 또한 약 10여만 명 감축에 따라 지상군은 2개 군단정도를 해체해야 한다.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첨단전력으로 전력공백을 메꾸는데 소요되는 국방예산은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아울러 모병제 시행시 병사들의 업무경감을 위해 추가적인 민간용역 예산, 현 의무경찰.해경.소방제도의 폐지에 따른 추가 공무원 증원에 따른 예산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과거 참여정권 시절 정부는 "국방개혁 2020"을  수시로 부르짖으며 50만 병력의 첨단과학군 건설을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약속한 단계적 국방예산(621조 원)지원은 공념불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국방비는 예산편성시 국회에서 삭감 대상 1호가 되었다. 그동안 수 많은 부대는 해체되었고 획기적인 전력증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후 2번 씩이나 정권이 바꿘 지금와서는 슬그머니 "국방개혁 2030"으로 슬로건을 바꾸었다. 그렇지만 수백 조에 달하는 국방개혁예산의 안정적인 조달은 불투명하다. 과연 2030년에 한국군이 첨단과학군이 될 수 있을까?  국민들은 스스로 나라를 지키자는 자주국방에 대해 관심조차도 없다. 또한 우리의 생존을 위해 과감하게 자신의 지갑을 열 의지도 없는 듯 하다.
 
▶깨끗한 병영식당과 풍족한 보급지원으로 복무만족도를 높힌다
 
 다음날 이른 아침 독일군 병영식당(후보생 및 병사들이 공동 사용)에서 식사를 했다. 깨끗하고 쾌적한 대형 식당에 메뉴도 푸짐하다. 갓 구워낸 말랑말랑한 독일식빵, 소세지, 쇠고기구이, 계란찜, 싱싱한 야채샐러드, 요구르트, 과일, 우유, 쥬스 등 시내 어떤 식당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이렇게 영양가 있는 식사로 인해서인지 삼삼오오 자유롭게 식사하는 후보생들의 체격들은 대부분 건장하고 키가 커서 은근히 우리들에게 위압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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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하고 시설과 영양가있는 음식으로 복무만족도를
 높히는 병영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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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후보생들의 식사 전경
 
 그러나 '작은 고추가 맵다'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동반한 한국대학생 P군과 육사생도 A군은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적어도 식사만큼은 뒤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거인들 속에 파묻혀 악착스럽게 그들보다 더 많은 음식을 먹어치웠다. 한술 더 떠서 A생도는 필요하시면 점심 식사용 빵과 과일을 마음껏 포장해 가셔도 괜찮습니다.”라고 한다. 튼튼한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독일 병영의 여유 있는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 주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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늠름한 한국대학생(좌)과 육사생도(우) 모습
 
▶모병병사들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인센티브
 
 모병제도이지만 독일군 병사들의 급여는 생각 외로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1년 정도 근무한 병사 월급이 1086 유로(한화 약 150여 만원) 수준.  A생도 말에 의하면 독일의 일반적인 봉급생활자들은 월급에서 엄청난 세금을 공제하지만 병사들은 형식적인 극히 적은 세금을 부과한다고 하였다. 아마 이런 제도적 보완책으로 병사들의 실질 급여를 보전해 주고 있는 듯 했다. 또한 직업군인에 대한 다양한 인센티브로 청년들을 군으로 끌어들였다. 예를 들면 무료의료혜택, 해외파병시 국내급여의 2배 지급, 전역 후 1년까지 실업수당 제공, 기혼자 주택제공, 여행 시 교통비 할인쿠폰 지급, 자녀보조금 중복지급(정부지원을 이중으로 받음), 전역 후 취업지원 등 이다. 이런 제도적 지원을 돈으로 환산하기는 어려웠으나 독일정부 차원에서도 정예병을 육성하려고 애쓰는 흔적은 역력했다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모병 경쟁률은 높지 않은 듯 했다.
 
 오래 전 프랑스와 영국의 병영을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독일 국경지역에 있는 프랑스 1 보병연대 병사들의 격투기와 건물작전 시범은 한국군 훈련수준과 비교한다면 어린 아이 장난과 같았다. 유럽 각국 군대의 주임무는 대테러작전이나 PKO 파병이다. 남북 쌍방 200여만의 대군이 순간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한반도의 안보상황과는 너무나도 다른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유럽 각국은 30대를 훨씬 넘긴 사람들과 이민족 청년들도 모병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결국 대규모 전면전은 이미 프랑스·독일·영국에서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전제하의 유럽군대와 한국군의 성격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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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O활동 대비 테러 의심차량 수색훈련 중인 영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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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체험 일반인들에게 보여주는 영국군 훈련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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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국경 알사스 로렌지역의 프랑스군
 
 
 
연합군 폭격으로 전도시가 초토화된
   비극의 역사를 가진 드레스덴
 
 이곳 드레스덴은 제2차세계대전 시 가장 민간피해가 많았던 대표적인 도시다. 1945213일부터 215일 까지 미·영 연합군 공군은 독일의 드레스덴에 대규모의 폭격을 가했다. 4,900 여대의 폭격기로 650,000 여개의 소이탄이 포함된 3,900 톤의 고성능 폭탄을 이 도시에 퍼부었다. 그 결과 독일 작센주의 주도이자 바로크 문화로 빛났던 드레스덴은 초토화되면서 25,000 여 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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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시가지 전경
 
 당시 폭격의 현장을 경험했던 생존자 마거렛 프레예씨의 증언이다. “214일 이른 아침, 드레스덴의 도심부는 1,500°C가 넘는 온도의 화재 폭풍에 휩쌓였다. 갑자기 내 옆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달리다가 넘어졌고, 그 아이는 그대로 아치문 안의 불속으로 날아갔다. 다시 오른 쪽에서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겁에 질렸고 손짓으로 무었을 말할려고 하다가 쓰러졌다. 소이탄 폭발에 따른 산소부족으로 그들은 죽었으며 곧 불에 타서 재로 변해 버렸다.“ 아직까지 정확한 사망자의 수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1966년 도시재건을 위한 공사 도중에 1,858구의 희생자가 한꺼번에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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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성의 외곽과 내부(현재 박물관으로 운영 중)


과거를 참회하고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드레스덴 군사박물관
 
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파괴됐던 독일의 히로시마드레스덴에는 전쟁 참화를 잘 설명해 주신 군사박물관이 있다. 독일 정부는 제2차세계대전을 반성하는 의미로 1870년대 적센 왕국시절의 병기창 건물을 약 850억원을 들여 박물관으로 개조했다.
 
이 박물관의 디자인은 폴란드 유대인 출신 다니엘 리베스켄트가 맡았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부모로부터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박물관의 내부에는 1800년대 작센 왕국시대부터 최근까지의 군사물품 총 7,000여 점이 전시되 있다. 내부 디자인도 외양과 동일하게 독일의 반성과 전쟁의 참상을 컨셉으로 삼았다. 이곳 직원의 말을 빌리면 런던과 파리의 군사박물관은 전쟁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공간에 가깝지만 이곳은 전쟁의 고통을 증언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박물관의 한 층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됐던 독일의 드레스덴, 폴란드의 비엘루,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등에서 가져온 돌들로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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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군사박물관
 
박물관 내부를 걷다보면 맨 꼭대기에 이르게 되며 지붕 밑은 전쟁과 기억의 공간이라고 불린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작전명 발키리(2008)’ 세트장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이 영화는 히틀러를 암살하고 나치 정부를 전복하려는 계획이었다. 히틀러와 나치의 광기에 온 나라가 도취했던 과오를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담았다고 한다.
 
*Tip
드레스덴 독일군 육군장교학교
독일 육군장교학교는 독일 동부 작센주(Sachsen)의 주도인 드레스덴(Drebden)이라는 도시에 위치한다. 19세기 말에는 작센의 군대왕 알버트(Albert: 1873-1902)에 의해서 드레스덴은 독일 내에서도 가장 큰 군대 주둔지로 성장하였다. 2차 세게대전 이후, 구동독연방에 편입된 드레스덴은 베를린 다음으로 큰 도시로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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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장교학교 내부전경
 
독일 육군장교학교는 그 역사가 19세기 말부터 시작하게 된다. 최초에는 작센왕국의 생도학교(Kadettenschule)로 출발하여 1차 대전이후에 해체되었다. 1926년에는 독일군 보병학교가 이곳에 세워졌으며 롬멜장군이 교관으로 근무하며 롬멜 보병전술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1935년에는 장교 전문 양성학교인 전쟁학교(Kriegsschule)로 개편되어 우수한 독일군 장교들을 교육했다. 그러나 2차 대전이 끝난 후 소련군이 주둔하면서 전쟁학교는 해체되고 인민경찰학교로 활용되었다.
 
1990년 통독 이후 이 군사시설들은 이용되지 않아 황폐화 되었다. 그러나 1997년 독일 육군장교학교가 하노버에서 드레스덴으로 이전하면서 다시 과거의 군사시설들이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장교학교 및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과 부지는 예전 규모의 1/10에 불과하다고 하니 예전의 영광을 미루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등록일 : 2014-09-03 08:01   |  수정일 : 2014-09-0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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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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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권  ( 2014-09-04 )  답글보이기 찬성 : 9 반대 : 12
드레스덴은 Dresden으로 표기되며 독일은 모병제하에서 군복지에 많은 투자를 함에도 점차 젊은이들로 부터 매럭을 잃어가고 있어 독일 국방부장관의 주도로 독일군의 매력을 증가시키고 우수젊은이들을 군으로 유치하기 위해 8개영역 27개 과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진영  ( 2014-09-03 )  답글보이기 찬성 : 8 반대 : 1
제 동료중에 독일계 미국인이 있는데 그친구 하는말이 독일에는 독일군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미군이 대신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미국의 국방비는 전세계 나라들의 국방비를 다 합친것보다 많다는거 같습니다.
김봉주  ( 2014-09-03 )  답글보이기 찬성 : 9 반대 : 8
잘 읽었습니다...^^
이명숙  ( 2014-09-03 )  답글보이기 찬성 : 9 반대 : 2
글쎄요...현역, 예비역, 군속, 정치가, 군납업자 등등이 빨대만 꼽지 않아도.
wlskrkek  ( 2014-09-03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5
위에서 세번째 사진은 군사전략가 기념비가 아니라 장성급 군의관이었던 빌헬름 로트의 기념비입니다. 1870년 보불전쟁에 군의장교로 참전했던 로트는 군의료 관련 책도 저술하는 등 군 관련 의료 행위에 많은 공적을 남긴 의사입니다.
      답글보이기  신종태  ( 2014-09-03 )  찬성 : 18 반대 : 15
죄송합니다!

기지내의 안내자가 유명 장군이나 전략가의 기념비라는 설명을 듣고 옮겨 적었습니다. 위 사진외 기념비나 표지석들이 부대내 많이 있었으나 일일이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자료사진을 올리면서 정확한 내용을 다시 한번 파악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관심을 갖고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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