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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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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뒤 남겨진 여성들의 이야기... '베를린의 한 여인'

글 | 신종태 육군지상전연구소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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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점령 소련군이 독일국회의사당에 소련기를 세우는 장면

▶ 히틀러와 애인 에바 브라운의 최후
 
 1945년 4월 30일 15:30분, 베를린의 지하 전쟁지휘소! 히틀러는 측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후 침실로 들어간다. 곧 이어 한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와 애인 에바 브라운은 자결했다. 그날 저녁, 소련군 병사 2명이 빗발치는 총탄을 무릅쓰고 베를린 국회의사당 추녀 끝으로 아슬아슬하게 기어오른다. 22:30분! 그 병사들은 피 묻은 소련국기를 옥상 틈새로 힘껏 박아 넣었다. 베를린 시내에서 싸우던 소련군은 국회의사당 꼭대기에서 밤하늘을 배경으로 힘차게 휘날리는 국기를 보고 광적인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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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파괴된 베를린 시가지 모습
 
다음 날 오전 06:00, 의사당을 지키던 독일군은 항복했고 베를린 수비대장은 소련군 추이코프 대장에게 더 이상의 살육과 약탈을 막아줄 것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살아남은 독일 시민들은 실존하는 지옥을 경험하는 운명에 놓인다.
 
▶‘베를린의 한 여인’ 일기장과
  지옥 속의 처참한 시민생활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은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야수들로 변했다. 장교들이 병사들의 집단적인 비이성적 행위를 제지하면 “독일군이 우리 마을을 점령했을 때 내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데요?”라고 하며 강하게 항의했다. 결국 전쟁은 쌍방 간 증오와 피의 복수만을 부를 뿐이었다.

익명의 한 독일 여성기자는 점령군 치하에서 자신의 경험을 일기에 빼곡히 써놓았다. 기록에는 소련군이 여성들에게 가한 짐승 같은 행동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후 이 일기의 주인공은 소련군 병영에서 주로 세탁일과 잡역의 대가로 얻은 한 조각의 빵으로 하루하루의 목숨을 유지한다. 그 곳에서 만난 많은 독일 여성들을 통해 소련군의 이와 같은 광란이 베를린 전역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났던 것을 확인한다. 한동안 독일정부는 너무나 수치스러운 이 기록의 공개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 그 일기는 “베를린의 한 여인(Eine Frau in Berlin)"이라는 제목으로 책과 영화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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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한 여인' 영화무대인 지하터널 입구 전경

전쟁 후 독일 남성 1인당 여성의 수는 세 명. 1946년 12월, 베를린에서 점령군에 의존하여 겨우 살아가는 여자가 50만에 달했으며 고아 청소년 10만 명 중 소녀들의 80%가 성병에 걸렸다. ‘아무리 나쁜 평화도 아무리 좋은 전쟁보다는 낫다’ 말이 있다. 실제 전장 현장에 일어나는 참상보다 그 뒷면에서 겪는 국민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전쟁참상 알리기 위해 보존된
지하대피소와 빌헬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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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보존한 베를린 빌헬름교회
 
베를린 시내 중심부에는 1930년대부터 만든 대형 지하대피소가 곳곳에 있다. 전쟁 중 많은 독일인들이 지하실이나 이런 곳에서 주로 생활했다. 실제 지하 터널은 영화 “베를린의 여인”의 한 장면과 흡사했지만 너무나 열악했다. 철제계단 아래의 격실은 아직도 퀴퀴한 냄새와 녹슨 침대들만이 관람객을 맞아준다.

또한 시내 중심부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과 빌헬름 교회는 베를린의 상징건물이다. 공습으로 철저하게 파괴된 빌헬름 교회는 전쟁참상을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알려준다는 차원에서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교회 첨탑부분에 흉물스럽게 뻥뻥 뚫여 있는 전쟁의 상흔들이 70여 년 전 한 독재자의 망상과 독일인들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아직도 준엄하게 꾸짖고 있는 듯하다.

세계를 상대로 이런 전쟁을 2번씩이나 일으킨 독일의 군사적 능력이 과연 어떻게 태동되었을까? 따라서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의 생가와 주요 군사학교가 있는 드레스덴, 함부르크를 직접 찾아가 보기로 계획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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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통일독일을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 문

등록일 : 2014-07-16 오전 9:34:00   |  수정일 : 2014-07-1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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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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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r17084  ( 2016-12-28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0
소련군은 야만적인 군대라고 다들 생각하시지만 그렇게 야만적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소련특성상 못배운애들이 많아서.....
정확히는 일본군과 독일군이라고 볼수있겠네요.
소련으로 독일이 침공할때 독일군은 각 사병의 충동적인 사고행위가 아닌
독일군 상부나 지휘부의 주도적으로 학살과 강간을 자행했습니다.
이런 독일군의 야만적인 행위덕분에 개전초기에만 만단위의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전쟁이 끝나면 소련(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등 포함)의 사상자는 3,000만명이 넘을정도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거의 하루에 2만명이 독일군의 야만적인 행위로 죽어나간것이나 다름없습니다.게다가 독일군은 이에 대해 뒷처리를 하지않고 후퇴했고 그 자리에 소련군이 목격합니다.
러시아,벨라루스,우크라이나의 수천키로미터를 진격하고 독일군의 야만적행위를 보거나 들은 병사들은 날로갈수록 더욱더 분노하게 될것이고 독일인에 대한 만행을 할것입니다.
학살과 강간을 주도적으로 진행한 독일군지휘부와 다르게 소련군지휘부는 이런 병사들의 행위를 통제할려고 했습니다.
베를린에서 강간을 자행한 병사들을 적발해서 시베리아나 굴라크로 보냈다고 하는군요.
그에비해 일본군과 독일군의 전쟁범죄는 격이다릅니다.
일본군과 독일군은 주도적으로 전쟁범죄를 일으켰고 일본군의 난징대학살에 이어 고의적으로 포로를 시식한 식인사건에이어 위에 말씀하다싶이 독일군지휘부 주도로 학살과 강간을 자행했습니다.
오해할까봐 다는글입니다만 필자는 소련군이 한반도에서 저지른 행위는 인정합니다.
유럽의 해방자로 불리는 이들이 조선에와서 자신들의 적도아닌 조선인들을 상대로 강간을 벌였는지 저도 궁금해할따름입니다.
소련군의 한 대위도 일기에다가 자신의 부하들이 무서울정도로 강간을 했다고합니다.그러나 소련도 사람이 운영하는 국가라서 그런지 민심을 확보하기위해 제한적이나마 강간범을 적발해 굴라크로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석  ( 2014-07-23 )  답글보이기 찬성 : 23 반대 : 35
제2차 세계대전때에 소련군은 일본군과 더불어 강간군대로 악명이 높은 아주 야만적인 군대였다. 그래서 소련군은 그들이 갔던 동부 독일과 동유럽국가들과 북한에서도 계속 강간과 실인 폭행 약탈을 했다. 동유럽사람들과 동부독일 사람들이 흉악한 소련군에게 당은 만행은 제2차 세계대전뒤애 북한 사람들이 격을 재양의 예고편이였다. 특히 북한에서의 소련군의 강간 살인 약탈 폭행이 하도 심해서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의 장군은 소련군 지휘부에 소련군의 만행을 적은 보고서를 낼 정도였다. 그것만 아니고 소련은 독일과 불가침 조약과 비밀협정을 맺고 1939년에 폴란드 동부지역을 공산화하면서 폴란드 동부지역에 있던 폴란드군포로 지식인 종교지도자들을 미구 학살하고 그 시체를 카친숲에 묻어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카친숲 사건은 독소전쟁이 일어나 독일군이 소련이 점령했던 동부 폴란드지역을 점령하고 2년이 다 된 1943년4월에 소련군에게 학살된 폴란드사람들의 매장지가 발견됨으로서 알려졌는데 소련은 자기들의 행위가 아니고 독일군의 행위라고 거짓선전을 했다.
우리나라가 분단되고 6.26전쟁이 일어난 것도 다 소련때문이다. 그런데도 아래의 글을 쓴 미옥순같이 소련군의 만행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소련군이 우리나라를 일본의 폭정에서 해방시켰고 우리나라의 분단이 소련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못된 인간들이 한국에 있다는 것은 정말로 어이가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빨갱이 소련이 나치스 독일에게 망하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와 독일에게는 큰 재양이였다.
이옥순  ( 2014-07-17 )  답글보이기 찬성 : 28 반대 : 27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했을 대 저지를 일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라고 봐야 됩니다. 독일군은 슬라브 민족을 인간 이하라고 생각했으며 소련 국민을 장차 노예로 이용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베를린의 독일 여성들이 당한 일은 독일군의 범죄행위에 비교하면 약과입니다.
      답글보이기  신종태  ( 2014-07-17 )  찬성 : 15 반대 : 15
물론 일부 소련군의 행동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베를린을 분할 점령한 미국군, 영국군, 프랑스군의 행동은 달랐습니다.

비슷한 관점에서 1945년 8월, 소련군이 북한을 점령했을 당시에도 한국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과 주민재산 약탈이 공공연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이 소련 사람들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전쟁 중에도 그 국가의 전통, 사상, 국민성 등에 따라 점령국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중국군이나 일본군 역시 점령국가의 국민들은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전통이 강했습니다. 결국 국가분쟁에서 최소한 자신의 나라를 지킬 확고한 의지가 부족한 민족은 언제든지 비참한 운명에 처해진다는 것이 불변의 진리인 것 같습니다.

      답글보이기  이동석  ( 2014-07-23 )  찬성 : 27 반대 : 10
이옥순 한심한 바보야! 소련군은 독일뿐만 아니라 동유럽국가들과 북한에 와서도 강간 살인 폭행등의 못된 짓을 했다. 소련군의 만행은 독일에 대한 보복때문이 아니라 흉악한 소련군의 본성 때문이다. 독일에서 저지른 소련군의 만행이 정당하다고 하는 너는 소련군과 같은 한심한 인간 쓰레기다. 우리나라가 분단되고 6.25전쟁을 격은 것도 다 소련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바보야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러시아가 아니고 소련이였다. 너나 너의 잡안 사람들이 소련군에게 살해되거나 강간당해도 소련군의 행위가 당연한 것이나?
임형섭  ( 2014-07-16 )  답글보이기 찬성 : 19 반대 : 13
독일 콜총리 부인이 이차대전 패배후 강간당한 후유증에 의한 우울증으로 자살한게 불과 몇년전으로 기억합니다. 현재 대한민국 여성들이 휴전중이고,적과 대치중이라는 위기인식이 너무 부족합니다.. 실제 전시에는 전부 희생양이 될텐데 여성인권만 내세우니 답답합니다..
      답글보이기  신종태  ( 2014-07-16 )  찬성 : 22 반대 : 9
사실 한반도 역사의 구비구비에도 수많은 전쟁이 있었죠. 가까이는 6.25전쟁으로 부터 러일전쟁, 청일전쟁, 병자호란, 임진왜란 등. 조금만 우리의 전쟁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면 현재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지는 쉅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뿌리깊은 문존무비(文尊武卑)사상으로 전쟁은 천한 것들이나 관심을 갖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죠. 그래서 생존과 국방의 문제는 가장 후순위의 국민 관심사항이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일반 공무원 선발 경쟁비는 수십대 일을 넘어 서지만 군대 간부 선발시험은 일부 미달되는 경우도 허다하죠. 이미 군대는 "더럽고 천한 집단!"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니 애국심을 가진 유능한 젊은이들이 국가의 간성이 되고자 하는 경우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일반 병사보다 못한 수준의 일부 청년들이 마지못해 군간부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 결과 부하들이 피투성이되어 쓰러져도 소대장은 자신만 살겠다고 도망가고 수 차례 탈영병을 만나도 상식 이하의 대처로 놓치는 현상이 일어나죠.

과거 고구려, 신라의 청년들처럼 강건하고 씩씩한 상무적 기풍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우리 사회가 다시 살리지 못한다면 중국.일본 사이에 끼인 우리는 언제가 또다시 그들 앞에 무릎을 꿇는 역사가 되풀이 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김맹식  ( 2014-07-16 )  답글보이기 찬성 : 15 반대 : 8
일본도 동남아에 저지른 만행의 수백배를 받았으면 터진입에서 지금과같은 씨레기같은말은 아나올텐데 천주의 한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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