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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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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짓밟힌 룩셈부르크 전쟁역사!

룩셈부르크가(家)의 창시자 아르덴 백작 지크프리트는 AD 963년, 오늘날의 수도 룩셈부르크시에 성채를 구축하고 독립하였다. 그 이후 1,000여 년 동안 에스파니아·프랑스·오스트리아·프로이센 등의 숱한 침공과 지배를 당했으며 제1·2차 세계대전 간에는 독일의 점령국으로 또다시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특히 “북유럽의 지브랄탈”이라고 불리는 언덕 위의 룩셈부르크 요새는 400여 년 동안 약 20여회 적군에게 포위되어 전쟁을 치렀지만 끝까지 민족의 정통성과 독립성은 유지하였다.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 시 연합군의 반격통로에 위치한 룩셈부르크는 본의 아니게 처참한 전쟁의 참화에 휘말려 전국토가 초토화 된다.

글 | 신종태 육군지상전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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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짓밟힌 룩셈부르크 전쟁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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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전쟁역사를 이야기하는 룩셈부르크 성채
 
작지만 강한 나라 룩셈부르크...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민
 
 룩셈부르크(Luxembourg)는 세계지도 상에서는 영어로 국가이름을 영토 안에 다 쓸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나라이다. 그래서 통상 Lux.로 줄여서 지도상에 표기한다. 제주도의 2배 크기 정도인 2,586 Km²의 국토면적과 인구는 약 50만 명 정도. 이렇게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외국 금융업자들의 구미에 잘 맞는 금융법과 세제법을 만들어 전 세계의 주요 은행들을 끌어 모아 국가의 부를 축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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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적 요새구축이 가능한 룩셈부르크시 지형
 
 또한 EU 의회가 있는 수도 룩셈부르크시는 1995유럽의 문화도시로 선정되면서 엄청난 관광객들을 유치하였다. 룩셈부르크 국민들의 연간 개인소득은 약 6만 불!
이런 생활의 여유로 룩셈부르크인은 혼자 있을 때는 장미를 가꾸고, 둘이 모이면 커피를 마시고, 셋이 만나면 악단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경제 부국은 꼭 자연 자원이 풍부하고 넓은 국토를 가진 국가만이 가능한 일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룩셈부르크는 한국과는 전통적인 우방국으로 벨기에, 네덜란드와 더불어 국제무대에서 항상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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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부국 룩셈부르크 수도 전경
 
 이런 작은 나라에서도 한국전쟁 당시 1개 소대의 병력을 벨기에군 대대에 배속시켜 한반도에 파병하였다. 연 참전인원 85명 중 2명 전사, 15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한국전쟁 관련 자료는 룩셈부르크 군사박물관에 상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전쟁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룩셈부르크시의 성곽과 포대
 
 룩셈부르크가()의 창시자 아르덴 백작 지크프리트는 AD 963, 오늘날의 수도 룩셈부르크시에 성채를 구축하고 독립하였다. 그 이후 1,000여 년 동안 에스파니아·프랑스·오스트리아·프로이센 등의 숱한 침공과 지배를 당했으며 제1·2차 세계대전 간에는 독일의 점령국으로 또다시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특히 북유럽의 지브랄탈이라고 불리는 언덕 위의 룩셈부르크 요새는 400여 년 동안 약 20여회 적군에게 포위되어 전쟁을 치렀지만 끝까지 민족의 정통성과 독립성은 유지하였다.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 시 연합군의 반격통로에 위치한 룩셈부르크는 본의 아니게 처참한 전쟁의 참화에 휘말려 전국토가 초토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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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요새구축으로 자신들의 생존을 유지한 역사유적
 
 작은 도시 룩셈부르크시의 명물인 아돌프 다리에서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시내 중심부의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웅장한 성채와 포대이다. 그 옆에는 제1차 세계대전시 독일 침공군에 대항해 싸우다 전사한 룩셈부르크 전몰용사들을 위한 황금의 여신상이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추모탑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지시에 의해 철거되는 비운을 겪었다. 또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깎아지른 듯한 절벽위의 보크(Vock) 포대와 성곽은 룩셈부르크인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역사적으로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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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룩셈부르크 성채
 
성벽 속의 견고한 화포진지...생존을 위한 피와 땀의 결정체
 
 성벽 위나 포대진지에서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면 지금도 발끝이 간질간질하게 느껴진다. 더구나 현대적인 건설기기가 없었던 당시에 이런 난공사를 위해 국민들은 거의 평생을 노역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리고 틈틈이 군량미 확보를 위한 농경작업과 전쟁준비에 나머지 시간을 보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선조들의 생존을 위한 피와 땀이 있었기에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는 결과적으로 오늘 날까지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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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동굴요새가 처절했던 전쟁상흔을 말해준다
 
 아침 출근시간대의 룩셈부르크시 중앙역은 등교 길의 학생들과 출근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작은 나라이지만 시골 마을들을 연결하는 간선 철도가 잘 발달되어 있다. 역무원에게 룩셈부르크의 전쟁기념관을 물으니 잘 모른다. 다른 직원을 통해 겨우 안 것은 정부가 운영하는 기념관은 없고 기차로 북쪽으로 약 2시간 정도 가면 디키르히(Diekirch)라는 작은 마을에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군사박물관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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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국경 부근 도시에서 만난 룩셈부르크 군인
등록일 : 2014-06-26 05:04   |  수정일 : 2014-06-26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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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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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 2014-06-28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7
열강과 바짝붙은 작은나라의 필연적이고 숙명적인 그래도 우리는 바다가 막고있어 룩스보다는 나은환경이죠.우리같이 작은나라는 한마디로 부국강병과연합동맹으로 나라를지켜야합니다 언제 중국,일본애들이 또 과대망상에 빠질수있으니까여
이동석  ( 2014-06-27 )  답글보이기 찬성 : 14 반대 : 8
신종태 성생님!

재2차 세계대전을 격은 서유럽국가들에 대하여 신종태 선생님이 쓰신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특히 위의 글은 내가 전에 요청을 드린대로 제1차 세게대전과 제2차 세게대전으로 정확히 표기해주셔서 매우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게대전을 격은 서유럽국가들에 대해서 글을 쓰신 뒤에는 폴란드같이 제2차 세계대전을 격은 동유럽국가들에 대한 글도 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2차 세게대전 때 서유럽국가들보다 훨씬 더 처참한 고통을 격은 동유럽국가들의 상황은 제2차 세게대전의 처참한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이동석  ( 2014-06-27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10
신종태 선생님이 위에 쓰신 글처럼 룩셈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때에 독일군에게 점령되었는데, 1940년 5월 10일 새벽에 독일군은 네덜란드와 밸기에와 룩셈부르크를 침공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발행된 제2차 세계대전 책들 가운데는 1940년 5월 10일에 독일군이 룩셈부르크를 침공한 사실이 빠진 책들이 많습니다.
      답글보이기  신종태  ( 2014-06-26 )  찬성 : 9 반대 : 18
이 선생님!

전쟁사에 대한 많은 관심과 좋은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룩셈부르크 군사박물관장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시 독일군은 단 2시간 만에 룩셈부르크를 점령하였고 수많은 룩셈부르크 청년들이 조국을 탈출하여 연합군에 가담해 침략군과 싸웠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끝나고 한국전쟁이 발발되었을 시 룩셈부르크는 자신들을 독일군으로부터 구해 준 미국이 한국전쟁에 파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보은 차원에서 즉각적으로 참전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불과 40여 명의 파병군인을 선발하는데 하도 지원하는 청년들이 많아 엄격한 테스트를 한 후에 소대편성을 하기도 했더군요,

지금도 군사박물관에는 한국전쟁 참전장병(총 85명) 개개인의 사진과 약력이 게시되어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사설 군사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전쟁사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박물관장은 한국전쟁 기념행사 차 룩셈부르크 참전용사들과 수 차례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한국인에 대해 각별한 호의를 보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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