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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최재형의 2030이여, 돈을 지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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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남은 반쪽은 청춘인 그대들의 미개척지

돈을 지배하는 자 vs 돈에 지배되는 자!(20)

글 | 최재형 VIP wealth manager(VIP 자산관리 투자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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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박람회의 모습 /조선DB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이순신 장군의 23전 전승은 세계 해전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우리가 세계사 교과서에서 들어봤음 직한 넬슨 제독을 비롯, 유명한 해군 제독들은 거의 대등한 전력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군사력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처참한 조건에서 이러한 대기록을 이루어냈다. 이순신 장군은 해상지형, 조수의 흐름, 자연환경 등 주변 정보를 훤히 꿰뚫고, 이를 최대한 활용하여 전투를 치렀다. 그 결과 비탄에 빠진 조국을 구해낼 수 있었다. 열악한 환경을 탓하며 낙담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아직 그대에게는 너무도 푸르고 창창한 청춘과 미개발지 북한이 있지 않은가?
 
1950년 동족 간의 비극적인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무려 장장 3 1개월이라는 긴 전쟁으로 전 국토가 폐허가 되었다, 일제 36년의 식민통치를 벗어나 약 5년 동안의 국가 재건의 노력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우리 민족에게는 그야말로 절망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재건해야 할지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11위 무역 대국이고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불러온 마술!
 
19536.25 전쟁의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 전쟁의 폐허가 다소나마 수습되고 가정이 꾸려지면서 1955년부터 1963년까지 약 730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이들 세대를 베이비붐 세대라고 한다. 이들 베이비붐 세대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1960년대에는 보통 한 학년에 12반이 있었고, 학급 인원은 60명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주간반에 학생을 모두 수용할 수 없어서 오후 2부제 수업을 받는 야간반도 있었다. 당연히 초등학교, 중학교 건설 붐이 일어났다. 새로운 생산과 소비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베이비붐 세대가 대학에 입학하던 70년대, 80년대에는 대학가요제가 유행했고, 7080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들이 생산과 소비의 주도 세력으로 진입하던 70~80년대는 그야말로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며 소득 증대를 가져왔다. 전례 없던 대량의 인구가 소비를 주도하면서 생산을 늘리기 위해 고용이 늘어나고, 이것이 임금 상승을 불러오는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었다. 70~80년대에는 스펙이 좋냐 나쁘냐보다는 열심히 일할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가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갈랐다.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을 하고 중년 가정을 이룬 1990년대에는 TV, 자동차, 주택 등 소위 고급 소비제품이 생산과 소비를 주도하고 소득 증대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불리던 우리나라는 1997 IMF금융위기를 피하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국가부도라는 날벼락을 맞고 만다. 당시 우리나라는 외국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하여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하는 데는 익숙했지만, 기업의 재무건전성에서 글로벌 스탠더드가 무엇인지 몰랐고, 왜 선진국의 글로벌 재무기준에 맞춰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결국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금융위기 속에서도, 고난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불굴의 투지만은 잃지 않았다.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변란에서 터득한 위기 극복의 DNA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IMF금융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차입한 구제금융 지원금을 금 모으기 운동 등을 통하여 만 3 8개월만에 전액 상환하고 IMF관리체제를 벗어났다. 세계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어느 나라도 이렇게 빨리 국가부도 위기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때가 2001 8 23일이었다.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 통치와 6.25 전쟁의 비극을 딛고 불굴의 의지로 선진국에 근접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곧 바로 금융위기를 맞닥뜨렸지만 온 국민이 합심하여 선진국에 가입할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대한민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압축성장을 했고, 또 급격한 성장에 따른 버블 거품을 제거하며 선진국 클럽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으로 남게 되었다. 이로써 단군 후손의 고속 성장기 제1막이 종료되었다.
 
잠에서 깨어난 거인이 가져다 준 빅마켓의 축복!
 
중국은 1842년에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하면서 굴욕적인 난징조약을 체결한 이후 136년 동안 잠든 거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1978년 중국의 리더가 된 등소평이 개혁개방 정책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공산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보다 국민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는 우세한 통치제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등소평의 중국통치 이후 잠에서 깨어난 거인은 무서운 속도로 자유 시장경제를 도입하였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게는 불행이었지만 중국에게는 성장의 기회로 작용했다. 산업혁명은 18세기에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나, 20세기에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그리고 독일과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으나 미국의 자유진영 육성 정책지원의 영향으로 빠르게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차세대 주자로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린 우리나라,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가 신흥국가로 떠오르며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다음으로 중국을 비롯한 브릭스 국가가 순차적으로 고속성장의 뒤를 이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이 위기에 빠졌다. 그러자 중국은 빠르게 세계의 생산공장으로서의 역할을 자원하고 나섰다. 중국은 넓은 영토와 저렴한 인력을 제공하며 선진국 기업들이 중국에 기술을 가지고 들어와 생산하게 함으로써 뒤처진 선진기술을 영리한 방법으로 따라잡았다.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은 2000년 이후 국민들의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소비 역량도 높아졌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우리나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수출 시장을 놓칠 이유가 없었다. 세계적인 수준인 우리나라의 반도체, 자동차, TV 등 모든 공산품이 중국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2008년 이후 미국은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로 소비시장이 크게 위축되었지,만 우리나라의 수출전선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이 고속 경제성장의 거품을 제거하며 하향곡선을 그림에 따라 우리나라도 2014년에 즈음하여 일본식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였다. 단군의 후손 고속성장 제2막은 그렇게 서서히 막을 내려가고 있었다.
 
남은 반쪽의 축복은 푸른 청춘인 그대에게는 엄청난 기회다!
 
베이비부머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이끌던 초기 1970년대에 우리나라는 가난했다. 하지만 생산, 고용, 소비가 선순환을 이루며 성장을 지속하여, 1990년대에는 떠오르는 유망 국가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해외에서 과다하게 차입한 자금으로 성장한 것이 화근이 되어 1997년 해외 자본이 일시에 빠져나갔고, 곧 금융위기에 빠졌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 세계 최대 시장 중국이 바로 옆에서 긴 잠에서 깨어나며 다시 한 번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시장도 그렇지만 바로 옆 세계 최대시장인 중국 또한 충분히 성장하여 단기 포화상태에 도달하였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디플레이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 시장도 이제는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이후 거품을 충분히 제거하고 경제가 회복추세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노동자 임금도 이미 미국만큼 크게 높아졌기 때문에 수출시장으로서의 미국의 매력은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우리나라는 수출에서 벌어들이는 경상수지 흑자가 32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3년 연속 대규모 흑자를 이룰 전망이다. 그럼에도 저성장 고실업의 공포는 점차 확산되는 모습이다. 사회에 진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재산을 축적할 기회를 갖지 못한 젊은 그대들은 막연한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월 급여는 얼마 되지 않는데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으니 겁을 먹을 만도 하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정신만 차리면 그대들 모두 부자로 잘 살 수 있다. 청춘이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자산과 한반도의 남은 반쪽 미개척지에 기회가 있지 않은가?
 
1950년대에 우리의 선조들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가지고 목숨을 건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우리의 후세대들은 분명히 다른 삶을 살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고르바초프 이후 개혁개방 시장 경제로 돌아선 지 오래다. 중국은 개혁개방에 그치지 않고 미국 주도의 세계 금융시장 구도를 중국 주도의 금융시장 구조로 재편하겠다는 일념으로 미국과의 일전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 북한만 사회주의 이념을 고집하며 과거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북한엔 이미 장마당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처럼 하나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고 탈북 여대생 박연미 씨가 워싱턴포스트지에 기고하였다. 그리고 북한의 최고 권력자들이 동시에 인천경기장에 내려와서 아시안게임 폐막식을 참관했다. 또 남북러 경제협력의 산물인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러시아 석탄이 북한을 거쳐 포항으로 들어왔다.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이 남북러 경제협력 사업을 공동번영의 기회로 연결하자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젊은 그대들은 적어도 필자보다는 뛰어난 시력을 가지고 있다. 눈에 확! 보이지 않는가? 5, 10년 후에 미래의 북한이 현재의 중국만큼 성장하는 과정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는 구경꾼으로 남아 있지 않으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돈을 지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청춘이라는 무기를 가진 그대들은 부모들 세대보다 20년 늦게 삶의 안정을 갖추게 될 것이다. 주변 경제환경 여건이 그렇게 변하였기 때문이다. 늦게 경제적 안정을 이루는 대신에 그대들은 부모들보다 20년 더 젊게, 더 오래 살 것이다. 의학의 발달이 건강과 장수를 약속할 것이다.
 
아직 푸르고 창창한 청춘을 가진 젊은 그대들에게 남은 미개발지 반쪽은 위대한 기회일 수 있다. , 이순신 장군처럼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미리 준비하는 자세와 불굴의 투지가 있을 때에만 자신이 하늘에서 받은 모든 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등록일 : 2014-12-16 16:14   |  수정일 : 2014-12-1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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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VIP wealth manager(VIP 자산관리 투자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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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장  ( 2014-12-16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11
젊은이 들이여 북한에 투자하라∼∼
양펀드  ( 2014-12-16 )  답글보이기 찬성 : 1 반대 : 2
멋진 글입니다. 통일은 아니더라도 북한의 개방은 도둑처럼 올것같습니다.
원형  ( 2014-12-16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1
당시 국민학교 한반에 80명이 넘는건 보통 이었습니다
버스매냐  ( 2014-12-16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1
거시적 관점에서 경제발전의 축이 어떻게 이동해가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 좋은 글이네요. ㅎ 이어서 나올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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