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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최재형의 2030이여, 돈을 지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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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지배하는 자는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돈을 지배하는 자 vs 돈에 지배되는 자!(18)

글 | 최재형 VIP wealth manager(VIP 자산관리 투자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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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 발견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실력과 운이 맞아야 타인이 내게 자본을 투자한다
 
신대륙인 아메리카 대륙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러나 신대륙발견에 동원된 산타마리아호를 비롯한 3척의 탐험선은 콜럼버스 자기 돈으로 마련한 것이 아니었다. 역사상 최초의 벤처 투자자는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이었다
 
200여 년 간 지속된 십자군 전쟁(1096~1272)은 동방의 차, 비단, 향신료 등을 서양에 소개하였다. 그 중에서도 향신료(후추)는 서양인의 주식인 육류의 부패를 막고 음식에 향을 더해줌에 따라 인기가 매우 높았고 가격도 비쌌다
 
그러나 지중해 무역은 이탈리아가 독점하고 있었고, 육지의 실크로드 무역은 위험하여 산적 떼들에게 돈이 털리기 일쑤였다. 지중해를 가로막고 있는 이탈리아를 피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향신료를 들여오는 무역은 포르투갈이 독점하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이때 향신료를 들여올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는 15세기 조선업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제노바 항구에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항해를 통해 동방무역에서 큰 돈을 버는 무역상을 보고 자란 콜럼버스는 자기도 언젠가는 동방에서 향신료를 들여와 큰 돈을 벌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25세 때인 1476년에 탑승한 제노바의 상선이 프랑스와 포르투갈 해적선의 공격을 받아 침몰해 거의 죽을뻔한 고비를 넘겼다. 그때 침몰한 상선의 널빤지를 붙잡고 포르투갈 해안까지 헤엄쳐와 결국 리스본에 정착하였다
 
리스본에서 항해지도 제작을 업으로 한 콜럼버스는 한때 지도제작자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거대 항구도시 리스본에서 항해를 하고 돌아온 선장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항로와 육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지구가 둥글다는 확신도 가지게 되었다. 마침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으면서 향신료와 금은 보화가 넘쳐나는 동방까지 신항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항해술을 익히기 위하여 자신이 제작한 지도에 의거하여 대서양의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를 항해하기도 했다. 기독교 신자인 콜럼버스는 포르투갈의 교회에서 선장의 딸을 만나 1478년에 꿈의 결혼식을 올렸다. 훗날 그는 장인이 유품으로 남긴 항해 지도와 선장 일지, 지도 등을 장모로부터 물려받았다. 이 유산은 대서양의 바람과 해류에 관한 소중한 기록들을 담고 있어 콜럼버스에게는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
 
마침내 콜럼버스는 대서양 항해를 통해 서인도 도착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콜럼버스는 왕에게 제안할 [인도 항해 계획서]를 만들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구 조건도 만들었다.
첫째, 기사와 제독 작위를 수여할 것, 둘째, 식민지 발견 시 그곳을 다스리는 총독의 지위를 수여할 것, 셋째, 획득되는 총 수익의 10%를 분배할 것.
 
콜럼버스는 1484년 포르투갈 왕 주앙 2세에게 서인도 항해 탐험 계획을 제안했으나 왕은 터무니없는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1486년 콜럼버스는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에게 대담한 항해 계획을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항해 계획은 또 다시 거절당했다. 그는 영국, 포르투갈, 프랑스에 재차 후원을 요청하였다가 번번이 거절만 당하였다.
 
그러나 당시 포르투갈 교회에 대한 경쟁 의식으로 더 넓은 선교지를 필요로 했던 에스파냐 교회의 성직자들에게는 이 제안이 그럴싸하게 들렸다. 성직자들 입장에서는 밑져야 본전이었다. 그래서 여왕을 설득하여 결국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이 콜럼버스의 항해 제안과 요구조건을 받아들이게 됐다. 시쳇말로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벤처투자를 최초로 감행한 것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큰 자금이 필요하면 금융기관에 대출을 신청하거나 주식을 발행 또는 채권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모집할 수 있다. 하지만 1480년대에는 금융이 거의 발달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주식시장도 없었다. 최초의 주식시장은 1600년대 초에 네덜란드에서 출현한다. 하지만 그 주식시장조차 초기에는 커피숍에서 동인도회사 주식을 사적으로 매매하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콜럼버스는 큰 돈을 가진 유일한 자본가인 각국의 왕에게 기존 항로인 지중해와는 다른 반대편을 항해하여 인도로부터 향신료를 들여오는 모험 벤처투자를 제안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상식이지만 그 시대에는 바다 저 끝에는 폭포 같은 낭떠러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콜럼버스 역시 지구가 둥글다는 그의 확신은 맞았지만, 실제 항해 거리는 그의 계산보다 4배가 더 길었다. 만약 지금의 중남미 바하마 제도가 중간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콜럼버스 선단은 인도에 도달하지 못하고 태평양 공해상에서 지쳐 죽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지구가 둥글다는 확신을 갖고 서인도를 향해 목숨을 건 항해를 한 콜럼버스는 위험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물론 인도가 아닌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발견한 땅이 서쪽 인도라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도 산살바도르(San Salvador, 구세주의 섬) 인근 카리브해 연안을 서인도제도라고 부른다.
 
이렇게 이사벨 여왕의 콜럼버스에 대한 벤처 투자로 1492년에 신대륙이 발견되었다. 에스파냐는 신대륙의 은광에서 들여온 은으로 무적함대를 만들었고, 16세기(1500년대) 후반 펠리페 2(재위 1556~1598)가 통치할 때는 유럽에서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에스파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포토시를 비롯한 대규모 은광이 잇달아 발견되면서, 막대한 부를 얻었다. 에스파냐가 남미에서 유럽으로 들여온 은의 규모가 얼마나 많았던지 유럽의 물가를 폭등시킬 정도였다. 16세기에 무적함대를 통해 유럽을 호령한 에스파냐의 영화는 콜럼버스의 목숨을 건, 도박 같은 항해 탐험 덕분에 가능하였다.
 
인간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돈이 모여든다

필자는 [돈을 지배하는 자 vs 돈에 지배되는 자] 칼럼 초반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종자돈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종자돈이 마련되면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 경험을 해야 하고, 일단 투자에 성공하면 자연히 습득되는 투자 실력으로 투자 복제를 통하여 경영경험을 충분히 습득하여 역량을 갖추라고 주장하였다. 본 칼럼 종반부에서는 돈을 지배하는 마지막 단계, 타인의 자본이 내 사업 경험과 경영 능력에 투자하게 만드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잘 알다시피 어떤 이는 젊은 나이에 성공하고, 또 어떤 이는 나이가 들어 성공하기도 한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라.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고시에 패스하면 성공한 인생인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도 중년 이후 인생이 고달픈 경우도 많다. 따라서 고시합격이 성공한 인생의 보증수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중년 이후에 성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험도 쌓이고 또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시기가 일반적으로 중년 이후기 때문이다.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돈이 따라온다. 나 혼자 잘났다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면 절대 돈이 따라오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타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도록 나 역시 무언가를 그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어린 나이에는 설혹 큰 돈을 벌거나 물려받더라도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금전적으로 빨리 성공하고 싶은 20~30대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가진 50~60대는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힘든, 위험성이 높은 젊은 세대에게 투자하길 꺼린다. 20~30대는 실패와 성공을 통해 경험을 쌓아서 역량을 키워야 하는 시기이지 금전적으로 성공을 완성하는 시기가 아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20대 초인 1872년 이전부터 동방무역을 꿈꾸고 준비하기 시작하여 12년 후인 1484년 에스파냐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왕들에게 재정지원 제안서를 냈다. 그리고 1486년 이사벨 여왕으로부터 항해 탐험 재정지원을 약속 받고도 6년이나 지난 1592년에 이르러서야 재정 지원을 받아서 항해에 나설 수 있었다.
 
아이디어가 즉시 현금으로 변화되는 시대

과거에는 정보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어서 내다 팔아야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전자시대에는 모든 것들이 순간적으로 이동한다. 예를 들어 불과 5~6년 전 까지만 해도 골프장에서만 골프 게임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0평 내외의 지하실에서 거의 실제 골프장에서와 같은 느낌으로 스크린 골프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스크린 골프 아이디어를 창안해낸 사람은 스크린 골프 매출을 통해서 아이디어를 현금화하는 것이 아니다. 스크린 골프회사가 주식을 발행하여 아이디어 창안자에게 주식을 배분한 다음 주식시장에 상장시켜서 주식을 현금화한다. 즉 아이디어가 현금으로 변환된 것이다. 물론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부터 일부 운영비를 수금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스크린 골프 회사 운영을 위한 자금이다.
 
주식시장에서 투자되는 모든 자금은 타인의 자본이다. 즉 이 시대에는 좋은 아이디어와 좋은 상품을 가지고 수익을 내는 모델을 가진 기업에 투자할 자금들이 넘쳐난다. 문제는 내가 나이든 후에도 풍부한 경험과 역량을 갖지 못하여 타인 자본(투자금)이 내게 투자할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돈을 지배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먼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실패를 통해서 성공하는 요령을 터득하면 나이가 든 중년 이후에는 세상을 즐기면서 살 수 있다.
 
물을 두려워만 하는 자는 절대 물가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물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자는 수영하는 법을 터득한다. 물을 지배하는 자는 파도타기를 즐긴다. 돈을 지배하는 법도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터득해야 한다. 그 뒤에는 넘쳐나는 유동성이 당신의 수익모델에 투자할 것이다.
 
다음엔 또 다른 타인 자본으로 투자하는 단계를 알아본다.
등록일 : 2014-03-28 오전 9:18:00   |  수정일 : 2014-03-2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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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최재형 VIP wealth manager(VIP 자산관리 투자전략가)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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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영  ( 2014-04-09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1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돼지아빠  ( 2014-03-29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19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럽다. 한 번의 싧개가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패를 빨리해야 회복의 기회도 많아진다. 일단 저질러야 성공이든 실패든 할것이 아닌가.
양펀드  ( 2014-03-29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7
요즘 후회되는건 젊었을때 좀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겁니다. 안전한 직장만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네요. 좋은글 계속 부탁드립니다.
돼지아빠  ( 2014-03-29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11
무엇을 하던 실패를 먼저 걱정하면 될 일도 안되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kyFund  ( 2014-03-28 )  답글보이기 찬성 : 13 반대 : 11
성공과 실패라...말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만 실패하고 인생 종칠수도 있습니다.
최서영  ( 2014-03-28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8
아무튼 아무 도움도 안되는 식의 글이군요. 뭐 콜럼부스같이 하다 잘못하면 영창가서 인생버리는데 문론 광주 그 사람같이 일당 5억이 될수도 있겠는데 한국의 콜럼버스군요. 정말 기사 황당하고 한국도 황당하다고... 맞는 말일수도 있겠군.. 요지는 사기를 쳐라란 말인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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