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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최재형의 2030이여, 돈을 지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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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포드와 맥도널드 형제-레이 크록의 공통점

돈을 지배하는 자 vs 돈에 지배되는 자!(16)--기회를 읽어낼 줄 아는 능력과 경험을 통한 요령 터득

글 | 최재형 VIP wealth manager(VIP 자산관리 투자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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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도날드의 성공은 최초의 맥도날드 형제의 식당 경영 시스템에 기초하여 시대와 현지 환경 변화에 맞춰서 이루어진 복제에서 출발했다./사진 한국맥도날드
변화에 맞춰 산업 기회를 찾아내라
 
근대 산업혁명기까지도 생산의 양과 가격을 결정하는 자는 생산을 지배한 장인들이었다. 장인들은 생산제조업자 단체인 장인길드를 만들어 생산과 판매만이 아니라 노하우 전수라는 배타적 권리까지 가지며 군림하였다. 따라서 중세시대에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견습생인 도제로 들어가 노비처럼 일하면서 몇 년간 기술을 전수받아야 했다. 그렇게 몇 년간 하인처럼 일하며 기술을 습득한 후에도 장인의 눈 밖에 나면 자립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장인길드에 기존 장인의 추천이 없으면 등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생산과 판매의 규모를 결정하고 가격을 결정하는 막강한 파워를 가졌던 장인들이 하루아침에 생산의 지배세력에서 쫒겨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원래 장인은 명품 구두나 의류, 마차까지도 당시에 돈이 제일 많았던 왕실에 납품하였다. 물론 돈이 많은 부자들에게도 명품을 만들어서 팔았다. 그러나 방직기계가 출현하고 기계 생산 면제품이 나오면서부터 장인들의 입지는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헨리 포드(1863~1947)는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아직 어린아이였던 1880년대에는 자동차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말이 이동수단으로서 훨씬 인기가 높았다. 13살이 되었을 때 그는 자동차를 처음 보고 나서 완전히 그 매력에 빠져 버린다. 말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이동하는 최신형 마차 그것이 곧 그의 눈에 비친 자동차였다.
 
그는 일찍이 자동차 정비소에 취직하여 자동차 관련 기술을 완전히 터득하고, 1903년 나이 40세가 되던 해에 자본주들의 돈을 모아 15만 달러로 포드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다. 설립 초기의 모든 기업들이 그렇듯이 포드 자동차 회사도 돈이 항상 부족하여 은행에 대출을 신청하였다. 그러자 지점장이 헨리 포드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더니 “여보게, 저기 힘 좋고 안전하고 풀만 먹여 주면 기름값도 안 드는 말들이 저렇게 많은데, 시끄럽고 고장도 잘 나고 기름값도 대야 하는 자동차를 도대체 몇 명이나 사겠는가? 정신차리게!!!”라고 말했다.
 
그러나 헨리 포드는 1908년 혁명적인 자동차 T형 포드를 만들어 1927년까지 무려 1,500만대를 팔았다. 포드의 T형 자동차는 분업 생산관리 시스템인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하여 생산 효율성을 혁신적으로 높였고, 가격을 대폭 낮춤으로써 20세기 전반 전 세계의 자동차 시장을 독점하였다. 당시의 다른 자동차 가격이 2천 달러를 호가할 때 포드 자동차는 혁신적인 생산관리 시스템 도입으로 모델 T의 가격을 단돈 260달러에 판매하였다. 한때 부자들의 장난감이었던 자동차를 중산층인 보통 사람들의 필수품으로 바꾸어 놓았다.
 
헨리 포드의 혁신적인 자동차 생산관리 시스템은 장인들이 갖고 있던 생산판매 독점권이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경영자에게 옮겨가는 계기가 되었다. 장인의 독점권이 붕괴되고 경영자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실제로 헨리 포드 이후 미국은 세계 자동차 대량생산의 원조이자 왕국이 되었으며 전 세계인의 삶과 문화를 완전히 바꿔 버렸다. 포드 자동차의 혁신적인 경영관리 시스템의 위대함을 보고 생산효율성을 높이는 경영학 연구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 바로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이다.
 
인간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꿔 버린 헨리 포드의 업적은 위대했다. 혁신적인 생산관리 시스템으로 자동차 생산 원가를 대대적으로 낮추었으며, 판매가격 또한 상상 이상 수준으로 낮추었다. 그로 인해 포드 자동차 회사 직원들은 일반 노동자 월급의 두 배가 넘는 고임금을 받았다. 즉, 헨리 포드는 일반 대중 노동자가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가격을 낮추었고, 또 노동자들의 월급을 올려줌으로써 자동차를 상류층이 아닌 대중의 소유물로 만들어냈다.
 
한때 주 교통수단이었던 말이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동차가 들어서자 인간의 삶과 도시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에 꾸불꾸불했던 길이 자동차가 다니기 편리하도록 완전히 바둑판처럼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주말에 집에 있지 않고 차를 몰고 교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변화된 도시환경에 맞는 New Biz 출현

맥도날드(1909~1971) 형제는 일반 대중들이 너도 나도 모두 차를 한 대씩 소유하자 새로운영업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차량 안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받아갈 수 있는 드라이빙 인 서비스 식당을 차린 것이다. 맥도날드 형제는 삶의 환경이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사업모델을 착안해 내었다. 1948년에는 메뉴와 서비스를 대폭 줄이고, 햄버거와 음료수만 테이크 아웃(Take Out)으로 가격을 대폭 낮춰 판매하여 대박을 내었다.
 
1902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53세까지 주방용품 세일즈맨을 하고 있던 레이 크록은 그날도 다른 날처럼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의 작은 드라이브 인 식당에서 신제품 믹서기를 무려 8대나 구입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또 한편으로 믹서기 영업을 벤치마킹할 목적으로 그는 맥도날드 형제의 가게를 찾아갔다. 그리고 문전성시를 이루는 그 작은 식당을 직접 보았다. 그날 그는 그의 운명을 바꿀 놀라운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대량 복제 아이디어도 시대를 읽는 눈에서 나온다

평생을 세일즈맨으로 아이스크림 기계와 믹서기를 팔며 살아온 레이 크록에게 판매란 항상 힘들고 버거운 일이었다. 그런데 저들 맥도날드 형제의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며 너무 쉽게 판매를 하고 있었다. 바로 저것이다!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 형제의 식당운영 시스템을 복제하여 전국의 도로변마다 세우면 크게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다.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 형제에게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안했고 양측은 변호사를 대동하고 만나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매장 이름을 비롯하여 메뉴, 매장 구조, 운영 방식, 심지어 맥도날드 햄버거의 상징물인 금색 아치까지도 맥도날드 형제가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복제했다.
 
맥도날드 햄버거 체인이라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레이 크록은 아내와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55년4월 15일, 자신의 고향인 시카고에 맥도날드 1호점을 개장한다. 물론 처음부터 대박을 내면서 성공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고수하며 체인점을 끝내 성공시켰다. 청결을 철두철미하게 강조한 크록은 “완벽이란 성취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맥도날드에 완벽을 바랐다”고 회고했다. 레이 크록은 “품질, 서비스, 청결 그리고 가치”라는 기준을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1960년에 맥도날드의 지점 수는 200개를 돌파했다. 레이 크록이 자서전을 발표한 1976년에 맥도날드는 창립 20주년만에 총수입이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22개국에 4,177개의 매장을 거느렸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총수입 100억달러에 매장이 1만개를 돌파했다. 이 모든 것이 최초의 맥도날드 형제의 식당 경영 시스템에 기초하여 시대와 현지 환경 변화에 맞춰서 이루어진 복제에서 출발했다. 
 
남들이 이룬 성공은 지나고 나서 보면 너무 쉽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자 사람들은 이미 존재한 대륙에 배를 타고 가기만 하면 되는 데 누군들 못하겠느냐고 비아냥댔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달걀을 주면서 똑바로 세워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계란을 세로로 세우지 못했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달걀 밑부분을 살짝 깨뜨려서 달걀을 똑바로 세웠다. 그러고 나서 “또 그 쉬운 걸 누군들 못하겠느냐고 말할 텐가?”라고 물었다.
 
이미 남들이 이루어 놓은 일은 지나고 보면 너무 쉽다. 그러나, 내가 해 보면 너무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저 말이 의심스러운가? 주식 투자를 한번 해 보라! 매입시점과 매도시점을 적절히 골라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는 투자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옆에서 훈수야 누군들 못 두겠는가? 어떻게 말하든 내겐 손실 위험이 없으니 생각나는 대로 훈수를 두는 것이다.
 
이미 성공이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을 복제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워 보인다. 그러나 그것 조차도 시대 변화와 인간 삶의 변화를 어느 정도 읽어낼 줄 알아야 가능하다. 지난 50여 년간 고도성장시대를 살아온 베이비 부머 세대들이 하나둘 무대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들이 어릴 적엔 동네마다 아이들이 넘쳐 났고, 왕성한 현역일 때는 자동차와 주택 등 모든 것이 대량생산∙대량소비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은퇴하고 노년기에 들어서자 실버산업이 꽃을 피우고 있다.
 
베이비 부머 세대가 한참 성장하던 시대에는 먹을 것이 많지 않았기에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가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대량소비를 이끌어 낼 인구도 많지 않거니와 먹을 것이 남아도는 시대에 진입함에 따라 건강을 챙기는 슬로우푸드(Slow Food)가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달라진 사회구조와 시대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늘 기회는 항상 주변에 넘쳐 난다고들 말한다. 따라서, 그 기회를 읽어 낼 줄 아는 눈이 없음을 안타까워해야 할 것인가? 아니! 어쩌면 기회를 정확히 읽어 내는 능력은 모두 다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마치 주식을 매수할 때는 확신을 가지고 매수하지만 사놓고 돌아서면 이거 실수한 거 아닌가? 하는 인간의 나약함이 우리들의 성공을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정확히 읽어 냈었다. 다만, 성공의 기회를 끝까지 붙잡고 버텨내지 못하고 작은 시련에도 너무 쉽게 무너져 버린 경우가 많았다.
 
돈을 지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머리가 반드시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재능이 반드시 뛰어나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비록 가진 것이 없고 빈손이지만 10년 뒤에는 반드시 역전시킬 수 있다는 자긍심과 경험을 통한 요령 터득 그리고 복제의 노하우 터득∙∙∙∙∙∙ 그것이 전부였다.
 
다음엔 대량 복제의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마지막으로 알아본다.
 
등록일 : 2014-02-18 오전 9:28:00   |  수정일 : 2014-02-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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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VIP wealth manager(VIP 자산관리 투자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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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영  ( 2014-02-19 )  답글보이기 찬성 : 26 반대 : 19
Wealth managing에서 출현할 new trends는 과연... 무엇이 될지.. 연재 끝에 답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홍준영  ( 2014-02-19 )  답글보이기 찬성 : 19 반대 : 25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통찰력, 세상을 읽는 눈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제 1 덕목이지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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