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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이상흔의 재(嶺) 너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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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여사의 ‘저희나라’ 논란을 보고··· ‘저희’를 일상에서 추방해야 ‘우리’가 산다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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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11월 7일 오후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저희나라”라고 한 것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있다. 김 여사는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멜라니아 여사에게 “먼길 마다하지 않고 저희나라를 찾아주셔서 마음을 다하여 환영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부 국감의 답변에서 “저희의 방어적인 차원에서 내린 결정”, “저희가 주도적으로 많은 안을 내야 한다”, “(사드 문제와 관련해서) 저희가 사과할 일은 없다” 등 우리나라나 정부를 지칭할 때 ‘저희’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있다.
 
‘저희’의 오남용은 비단 김정숙 여사와 강경화 장관 두 사람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미 일상 언어생활에서 ‘저희’란 말이 ‘우리’란 말을 거의 대체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필자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이 저희라는 말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문제로 칼럼도 많이 썼다.  ‘우리’라는 말이 요즘은 ‘우리나라’란 말을 쓸 때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희귀 단어가 되었을 정도인데, 요즘에는 이 ‘우리나라’ 조차도 저희나라에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단적인 예로 스포츠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는 거의 예외 없이 우리나라 선수를 ‘저희 선수’ 혹은 ‘저희 팀’이라고 한다. 동계올림픽 중계에서 아나운서가 하도 ‘저희 선수’라고 하기에 도대체 ‘저희’란 말이 몇번이나 나오는지 수첩에 적다가 포기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We'라는 단어를 전부 ‘저희’라고 번역한 전쟁 다큐
 
필자는 히스토리나 디스커버리,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등에서 하는 다큐멘터리 채널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들 방송을 볼 때마다 거슬리는 것이 바로 ‘저희’라는 자막이다. 한번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2차 세계대전 중 미드웨이 海戰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치열했던 해전을 회고하는 미군(美軍) 노병의 말 중에 ‘우리’를 뜻하는 ‘We’라는 단어를 전부 ‘저희’로 번역해 놓았다.
 
“저희 전우들은 용감했죠.”
“저희 부대는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군은 저희 함대가 다가가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죠.”
 
이런 식으로 한 문장 건너 한 문장마다 ‘저희’라는 단어가 나오니 도무지 문장이 힘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전쟁 다큐멘터리 맛이 나지가 않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리고 적군하고 싸운 이야기를 하는데 말끝마다 ‘저희’라고 번역해 놓았으니 그 어감이 참으로 우습게 들렸다. 이 방송에서는 또 미국 나사(NASA)의 화성 탐사 계획을 다룬 다큐멘터리 자막의 ‘We’라는 단어도 전부 ‘저희’라고 번역해 놓았다.
 
기억을 더듬어 나름대로 고찰해 보면 ‘저희’라는 말이 우리 언어 생활 속에 이렇게 ‘막무가내’로 퍼진 것은 1990년대 들어와서라고 할 수 있다. 당시 10대, 20대의 젊은 연예인들의 방송진출과 생방송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는데 이들은 말끝마다 ‘저희’를 남발했다. 
 
TV나 라디오 진행 방송자나, 아나운서도 예외가 없었는데, 아마 이들은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방송에서 혹시 모를 말실수를 대비해 ‘안전심리’에 의해 자기들 최대한 낮추려 하다보니 ‘우리’라는 말보다 ‘저희’를 갖다 붙여야 뭔가 마음이 놓이는 심리에서 저희를 남발했던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요즘 마트의 판매사원이나 텔레마케터들의 존칭 남발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이다(이들은 심지어 사물에도 존칭을 붙인다).
 
 '저희 팀' '저희 회사'에 이어 '저희 정부' '저희 사회'까지
 
어쨌거나, 어느 순간 저희라는 말은 일상 속에 무차별적으로 파고들어 ‘저희 사장’ ‘저희 회사’ ‘저희 삼촌’은 기본이고, 이제는 ‘저희 사회’라는 말까지 보통으로 사용한다. 이처럼 저희를 남발하는 것은 지금까지 사용해 온 우리의 언어 감각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맞지도 않은 마구잡이 겸양어 사용으로 말의 품위를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 제일 먼저 배운 단어가 ‘나’ ‘너’ 다음에 바로 ‘우리’라는 단어였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나’ ‘너’ 다음에 아마 ‘저희’라는 단어를 배워야 할 판이다.
 
필자는 아무리 기억을 곱씹어 생각해 봐도 어릴 때 어른들 앞에서 ‘저희’라는 말을 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른이나 선생님이 사는 동네를 물어보면 “우리 동네는 어디에 있어요” 하고 대답을 했다. 동네 노인이 부모님의 이름이나 거처를 물어볼 때도 “우리 아버지는….” 혹은 “우리 엄마 장에 갔어요” 라고 대답을 했다. 이처럼 어른들이 물을 때 ‘우리 동네’, ‘우리 아버지’, ‘우리 삼촌’, ‘우리 학교’라고 대답을 했지, ‘저희 동네’, ‘저희 아버지’, ‘저희 삼촌’, ‘저희 학교’라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린이날 노래 가사에서도 ‘5월은 프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고 했다. 오래전에 작곡된 MBC 로고송에서도 ‘우리 문화방송’이라고 하지 ‘저희 문화방송’이라고 하지 않았다.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예전에 여성 국무총리가 국회본회의장에 나와서 북한의 핵실험관련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 “저희는 몰랐다”느니 “저희는 그런 계획이 없다”고 대답하는 것을 보았다. 이 국무총리는 정부를 가리켜 ‘저희’라고 표현한 것이다. 비단 총리뿐 아니다. 장관이든 차관이든, 운동선수든, 학교 교수든, 회사원이든 가정 주부든 자기가 속한 조직이나 집단을 가리키는데도 거의 예외없이 ‘우리’ 대신 ‘저희’란 말을 사용한다.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서도 ‘우리’라고 표현
 
우리말에서 자기를 낮출 때 ‘나’라는 말 대신 ‘저’란 말을 씁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를 낮출 때도 ‘저희’를 써야 하지 않는 가”하고 오해를 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라는 말은 낮춤말 높임말이 적용되지 않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낮춤말이 ‘저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라는 말은 낮출 필요도 없고 더 높일 필요도 없는 말이 되는 것이다.
 
굳이 우리 고전을 고찰할 것 없이 간단한 예를 들어 본다.
 
현재 성경은 1950년대 개역(改譯)된 것을 주로 사용하지만, 사실상 구한말 우리 조상들이 번역한 것을 맞춤법 등을 고쳐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일상에서 100년도 훨씬 넘은 번역체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는 서적은 성경밖에 없을 것이다. 성경이 그만큼 번역이 잘 되어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 성경에 ‘저희’란 단어만 보더라도 ‘저희’는 우리의 낮춤말이 아니라, 단지 ‘그들’ 이란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경의 주기도문을 보면 ‘우리’라는 단어가 여섯 번 나온다.
 
이처럼 당시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저희’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신분 질서가 엄격하던 당시에 임금보다 더 높은 유일신 앞에서 ‘저희’가 아니라 ‘우리’라는 말을 썼다는 것은 실제 언어 생활에서 '우리'라는 말에 높임말 낮춤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저희’를 일상에서 추방해야 ‘우리’가 산다
 
‘저희’는 ‘저’라는 말에서 파생되어 나온 말이다. ‘저희’에서 ‘희’는 무리를 지칭하는 ‘~들’이라는 접미어와 같은 말로 쓰인다. 구한말에 번역한 성경에서는 ‘저희’를 우리의 낮춤말이 아닌 ‘저들’ 혹은 ‘자기들’ 등의 의미로 쓰고 있다는 데서 이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밥과 진지’, ‘집과 댁’, ‘보다와 뵙다’, ‘주다와 드리다’ 등은 명백한 높임말 낮춤말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만, ‘우리’와 ‘저희’는 이런 식의 높임말 낮춤말 관계가 아니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떠나 저희의 남발은 우리 언어감각과도 맞지 않고, 지나친 겸양으로 말의 품위와 품격을 심각하게 떨어뜨리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  ‘저희’라는 말의 남발이 계도 차원으로는 해결 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이 말을 의도적으로 언어생활에서 추방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나라’라는 단 한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라는 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등록일 : 2017-11-17 09:18   |  수정일 : 2017-11-1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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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 2017-12-16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6
온 찌라시 포털 미디어가 좌좀들한테 장악당해서 받들어주니까 여왕인 줄 알았나보지 ㅋㅋㅋㅋ 살이나빼라 돼지야
  ( 2017-11-19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29
말을 하다보면 실수할수 있지 이런걸로 꼬투리 잡기는 일상에서 쓰는 영어와 외국어 방송에서 쓰는 외국어나 지적질하고 싫으면 실다고 해라 똘아이도 아니고 이런 유치한 기사를 쓰나 그리고 김일성 장군 만세라고 호외낸 너희들 반성은 하냐
김선제  ( 2017-11-17 )  답글보이기 찬성 : 21 반대 : 7
국어 사전에 분명히 '저희'는 '우리'의 낮춤말이다고 되어있다. 즉 손위 분 앞에서는 '우리 아버지'라기 보다 '저희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 바른 표현이란 뜻이다. 엄연히 '우리'와 '저희'는 모두 구분되어 사용되는 바른 우리 말들이다. 일부 사용자가 상황에 따라 바르게 사용하지 못했다고 해서 "'저희’라는 말의 남발이 계도 차원으로는 해결 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라며 저희란 말의 표현 자체를 추방해야한다는 것은 기자의 생각이 너무 극단적이고 '너무'란 말을 긍정에도 부정에도 두루 사용할 수 있게 한 이후 '매우, 아주, 참, 등등'의 아름다운 우리 말들이 일반 표현 속에서 거의 사라져 버리게 된 우와 같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본다. 최근의 바른 우리 말 교육이 사라진 국내 교육 환경을 먼저 개선하고 바르게 가르치고 사용하게 할 뿐만 아니라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 등의 사람들이 먼저 기사 작성 상에서 우리 말이 신중하게 또 바르게 사용되어져야 할 것이다.
최성관  ( 2017-11-17 )  답글보이기 찬성 : 20 반대 : 7
언어 선택은 한 인격의 수준이다. 우리나라와 저희 나라의 쓰임새를 구분 못할정도면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선 부끄러운 것이다. 이상흔 가자의 칼럼에 동감이다. 한 가지 추가하면 기자들이 왜 골프를 친다”고 기사를 쓸까? 골프는 하는 것’이다. 축구를 하고’, 야구를 하고’, 농구를 한다’, 운동 제목 다음에 한다’고 해야 바른 우리말 표현이다. 트럼프가 어제와 골프를 첬다’고 국내 모든 신문이 제목을 달았다. 기가 막힌다. 이상흔 기자는 그러지 말기를 부탁한다.
송문건  ( 2017-11-17 )  답글보이기 찬성 : 23 반대 : 4
우리나라 ㅡ 저희나라, 내 아내 ㅡ 우리 부인, 바보 명청이들이 쓰는 소리.
글쎄올시다  ( 2017-11-17 )  답글보이기 찬성 : 28 반대 : 3
우리와 저희, 나와 저 라는 표현을 보면 각각 사용해야할 경우가 있는것으로 아는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잘못썼다고 해서 통째로 바꾼다고 하면 너무 극단적이 아닐런지. 더 늦기전에 그들을 교육시켜서 국격을 손상시키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것이 급선무인건 틀림없고, 그렇지 않아도 한국사회가 극단이 아니면 행세를 못하는 지경으로 달리는것 같아 위태로운데...엄마가 화난다고 애를 고층에서 밖으로 집어던지고, 아빠가 애를 죽이고 강간하고, 선생이 학생을 잡아먹고, 애들도 덩달아서 고층에서 뛰어내리는 등등,,,
말 나온김에 한마디 더, 조선일보 만이라도 기자들을 뽑을 때에 한글만큼이라도 확실히 아는 사람을 가려야 한다. 기자 특유의 사명감은 밥말아 먹었어도 한글 마춤법이 너무나 종종 틀려서 독자들을 실망시키는 결과는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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