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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흔의 재(嶺) 너머 이야기

[國語 이야기(13)]우리나라 고유의 농경언어와 문화는 영영 사라질 운명인가?

도시화와 정보화로 곧 사라지게 될 풍부한 우리말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2017-10-3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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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별신굿에서 '초랭이'가 양반에게 버릇없게 행동하고 있다. 초랭이는 안동 현지 발음으로 '초래이'라고 하며, 아주 촐랑대고, 버릇없고, 경망스럽고, 까불락거리는 사람을 일컫는다./출처: 국립무형유산원 디지털 아카이브(1982년)

오래전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재미있는 글을 발견한 적이 있다. 아마 언어에 관심이 있는 서울에 사는 어떤 학생이 쓴 글 같은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가 흥미로운 얘기 하나 해보려고요. 물론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줄 곳 서울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지만. 예전에 경상도 사투리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어서 그 기억을 더듬어보며 경상도 말의 장점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경상도 말은 서울 표준어보다 압축률도 뛰어나지만, 또 다른 큰 장점이 있으니 바로 말의 높낮이로 표준어의 동음이의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네요.
 
예를 들자면 한국어 ‘가지’란 말이 있습니다. 가지는 1. 먹는 가지 2. 나뭇가지 3. 개수 셀 때(한 가지 두 가지) 4. 동사 (집에 가지)의 여러 의미가 있지만, 표준어에서는 동음이의어 문제는 다만 음의 장단 즉 발음을 길게 하거나 혹은 짧게 함으로 파악을 하거나 혹은 단순히 문맥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경상도 방언은 다양한 음의 높낮이(Pitch)가 존재해서 단순히 음을 높였다가 내리던가 혹은 내렸다가 올리는 방식만으로도 동음이의어를 경상도 주민들은 그게 무슨 단어인지 파악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울러 위 글을 쓴 이는 “우리말이 서울 지방의 말로 흡수되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말이 오히려 퇴보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 섞인 이야기를 덧붙였다.
 
사실 이렇게 성조(고저장단)에 따른 뜻 구분은 비단 경상도 지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말이 가진 일반적인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지방에서는 언어생활의 고립성과 보수성으로 그 특징이 비교적 잘 전달되어 내려오는 것뿐이다.
 
아직 지방에는 우리말의 어원과 원형을 많이 간직한 말과 사물의 상태나 사람의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표현하는 단어가 풍부하게 남아 있는 편이다. 하지만 위 글을 쓴 이의 말처럼 현대 사회에서 서울이 가진 권위로 인해 지방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필자도 늘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자기 고향만 벗어나면 통하지 않는 수많은 고유어
 
현재 시골에 있는 70~80대의 부모님 세대가 모두 사라지면 수천년 내려오던 풍부한 우리말은 사어(死語: 죽은 말)가 되고, 수많은 농경언어와 문화는 영영 사라질 운명을 맞게 된다. 왜냐하면, 현재 시골에 남아 있는 노인들이 대대로 전해진 전통적인 의미의 농경문화를 간직한 사실상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이다. 현재 세대는 자기 지역의 농요나 농악, 민요를 윗대로부터 있는 그대로 전수받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있는 전수관 같은 데서 통일화되고 정형화된 형태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지방 말은 자기 고향을 벗어나면 통하지가 않고, 생활 속에서 쓰지 않기 때문에 보존할 방법이 마땅히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례로 요즘 거의 안 쓰는 경북 시골 말 중에 ‘헝큰물’이라고 있다. ‘흙탕물’하고 비슷하지만 좀 다른 어감이다. 흙탕물은 흙이 섞인 탁한 물인데, 헝큰물은 ‘헝클어 놓은 물’이라는 뜻으로 흙탕물을 포함 흐리고, 탁하고, 이물질이 섞인 모든 물을 말한다. 고향을 벗어난 후 헝큰물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시골에서는 날이 새기 전 빛이 희미하게 드는 순간을 ‘붐하다(희붐하다)’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 단어가 아니면 짧은 여명(黎明)의 찰나를 묘사할 적절한 단어가 없다. 경상도에서는 아주 심하게 까불락거리고, 경망스러운 아이나 사람을 일컬어 ‘돌초랭이(현지 발음은 돌초래이)’라고 하는데 안동 하회탈 중에 ‘초랭이탈’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돌상놈’, ‘돌깡패’처럼 한 단계 질이 더 나쁜 사람을 표현할 때 앞에 수식어로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돌’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 밖에 부루(상추), 무-리(오이, 어원: 물외), 괴지(고양이, ‘괴’는 고양이의 옛말), 옹골지다(아주 된통 고소하다), 깨까달스럽다(무지 깐깐하고 까다롭다), 빠대다(마구잡이로 짓밟다), 삣대다(실속없는 행동으로 시간만 허비하다), 능끝(낭끝, 절벽, 낭떠러지), 상구(아직, 옛시조에 등장하는 ‘상기’라는 말), 하마(벌써), 포시랍다(부잣집 도련님 마냥 까다롭고 귀하게 굴다), 짜구나다(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에 걸리다) 등등등 적어 나가자면 끝이 없다.
 
한자(漢字)가 고유 우리말을 밀어내는 게 아니다
 
수년 전 모 교수가 해방 후 우리 고유어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는 통계를 발표한 적이 있다. 한자(漢字)를 수천 년 동안 주요 표기 수단으로 써 왔지만 이와 더불어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온 우리 고유 말이 도시화와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한자를 쓰는 것이 우리 고유 말을 사라지게 하는 주범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막연한 추론일 뿐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수천년 간 한자어로 된 우리말과 잘 어울려 내려오던 수많은 우리 고유 말이 최근 반세기 만에 거의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고유어만 사라질 뿐 아니라 오늘날 한자를 쓰지 않으면서 한자를 통해 보여주었던 선조들의 수준 높은 조어력이나 풍부했던 한자로 된 국어 표현들도 수없이 사라지고 있다. 한자를 모르니 새로운 말을 만들지 못하고 무작정 외래어를 받아들이거나 일본에서 만들어 수입한 한자말이 넘쳐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우리는 현재 한자를 몰라 한자로 된 풍부한 우리말과 미래에 태어날 우리말도 잃어버리고, 급격한 도시화와 정보화 시대를 맞아 풍부한 지역의 고유 우리말도 서울이라는 하나의 지역 말로 흡수되어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등록일 : 2017-10-31 17:26   |  수정일 : 2017-10-3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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