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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흔의 재(嶺) 너머 이야기

<남한산성> 이병헌과 김윤석 둘만의 국선변호인같은 무기력한 연기

실제 긴박하고 중요한 장면들은 모두 외면... 영화가 왜 실패했는지 알 것 같다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2017-10-2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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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스틸컷.

영화 <남한산성>을 뒤늦게 보고나니 이 영화가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 알 것 같았다. 영화 누적 관객수는 10월 25일 기준으로 379만 명으로, 제작사가 밝힌 손익분기점 500만 명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역사를 다룬 영화가 예고되면 늘 기대를 하게 되지만, 그 기대는 언제나 ‘역시나’로 끝나곤 한다. 영화와 TV 드라마를 통틀어 억지 감동 주입과 고증의 엉터리, 왜곡과 날조가 판을 치는 것이 우리나라 사극의 현실이다. 주로 고대극은 고증이 너무 엉터리라 차마 눈뜨고 못 볼 수준인 경우가 많고, 일제 강점기를 다룬 근ㆍ현대극으로 넘어오면 시종일관 과장과 왜곡으로 점철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 영화 중에는 만화책 한권만큼의 감동도 주지 못한 <명량>이 필자가 꼽는 대표적 ‘망작’이다. 성의없는 그래픽, 억지 감동 자아내기, 긴장감 없는 전투장면, 어울리지 않는 주연 배역, 역사 인물에 대한 왜곡 등에 대해 필자는 가혹한 평을 남긴 적이 있다. 
 
최근 10년 사이 나온 역사 영화 중에는 <사도> 정도가 그나마 고증과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따르려고 노력했고, 스토리 전개도 긴장감 있게 구성되어 평가해 줄 만한 수준이지만, 그 나머지 영화는 사실 평가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사도>의 시나리오와 고증이 봐줄만 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서울대 국문과 정병설 교수가 2012년 펴낸 《권력과 인간》 책의 내용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 필자는 당시 영화를 보자마자 일반 작가 수준에서 나올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자료를 찾아보니 역시 사도세자를 깊이 있게 연구해서 펴낸 《권력과 인간》이라는 책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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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을 연기한 이병헌./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전쟁 영화가 오락적 요소가 없다면, 비장미라도 있던가
 
영화 <남한산성>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임진왜란 다음가는 엄청난 피해를 안겼던, 병자호란을 그린 영화다. 청나라의 무지막지한 인적수탈의 후유증과 반작용으로 이후 수백년간 조선 사회는 반청 분위기가 지배, 더욱더 명분 사회로 빠진 측면이 있다.
 
영화는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후 45일간 일어났던 일을 다루고 있다. 화려한 전투장면이나, 극적인 효과를 최대한 배제한 채 주화파로 대변되는 최명길(이병헌 분)과 척화파로 대변되는 김상헌(김윤식 분)의 논리와 명분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당시 임금과 백성들이 처했던 절박한 상황이 전해지지 않았고, 배우의 연기에 감정 이입이 일지 않았다. 긴장감없이 그저 국선 변호인이 사건의 변호를 펼치듯 김윤식과 최명길이 긴 대사를 소화하기 바쁘다는 인상만 전해졌다. 영화에서는 심지어 산성에 포위된 병사들이 겪었던 굶주림과 살인적인 추위, 불안감, 절박함이 전달되지 않고, 마치 나들이 나온 것처럼 한가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흥행보다는 작품의 완성도를 먼저 생각했다고 강조했는데, 그가 생각하는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기준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감독이 원작소설을 읽으면서 받았던 느낌을 영상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고, 원작가인 김훈 소설가도 만족했다고 했으니 감독이 말하는 완성도의 기준을 짐작만 할 뿐이다.
 
필자는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못해 원작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혹은 이 영화가 얼마나 원작을 충실하게 따랐는지 알 수 없지만, 영화라는 게 반드시 원작소설을 읽은 사람만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동안 원작을 영화로 옮긴 수많은 영화가 원작이 주지 못하는 또 다른 감동을 주거나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도 셀 수 없이 많다.
 
전쟁 영화에서 오락적 요소가 없다면, 비장미라도 있어야 할텐데, <남한산성>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영상 소설’ 같은 작품이 되고만 느낌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 영화는 당시 벌어진 일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영화치고는 너무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너무 많이 빠뜨린 것이 문제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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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을 연기한 김윤식./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대의냐 현실이냐의 사이에서
 
1636년 12월 1일 엄동설한에 청태종이 13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한양으로 진격했다. 당시 형세가 얼마나 급했던지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을 하려다 청군에 의해 길이 차단되자 부랴부랴 예정에도 없던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게 된다. 세자비, 원손, 봉림대군, 인평대군을 비롯하여 종친과 백관 가족 일부가 강화도로 아슬아슬하게 피신하는 데 성공했다.
 
남한산성은 대규모 전쟁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산성 안에는 병력과 음식, 전쟁 물자가 절대로 부족했지만, 높은 산을 의지한 산성은 청군이 쉽게 함락할 정도로 호락호락한 대상이 아니었다. 영화에서는 청나라가 쉽게 성을 공략하고 인조가 포위 직전까지 몰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성곽이 청의 대포에 무너지고, 성안의 군졸과 백성들이 살육을 당하자, 최명길이 적진으로 달려가 적장에게 “공격을 제발 멈추어 달라”며 울면서 호소하는 장면이 있다. 임금을 비롯한 고관대작들이 성 밖에서 백성이 당하고 있는 고통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성안으로 청군이 공격해오니 부랴부랴 뛰쳐나가 한 번만 살려달라고 애걸을 하는 것처럼 비춰졌다.
 
당시 조정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다시 세워준 은혜(再造之恩: 재조지은)를 입은 명나라를 배신할 수 없다는 측(흔히 척화파)과 조선의 군사력으로 청나라를 상대할 수 없다는 측(흔히 주화파)으로 갈라졌다.
 
당시 조선을 지배하던 성리학자들 대부분은 나라가 망해도 깨끗하게 망하는 것과 더럽게 망하는 것이 있는데, 설사 나라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의를 지키다 깨끗하게 망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보니 많은 사람이 ‘병자호란’에 대해서는 일종의 스테레오타입(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당시 전쟁까지 각오했던 식자층의 모든 행위와 생각을 가치없는 것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물론 당시 주전파라고 해서 반드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통해 자폭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버티면서 청군을 안팎으로 공격하면 멀리서 온 지친 청군을 충분히 물리칠 수 있다는 나름의 계산을 하고 있었다. 또한 이미 왕자들 일부가 강화도로 피신했기 때문에 산성이 함락되는 최악의 경우에도 조정은 유지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중요한 사실이 누락되면서 맥빠진 영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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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와 교섭을 진행했던 최명길.
조선의 멸망이 아니라, 항복을 받는 것이 목적이었던 청군은 남한산성을 포위하면서, 한편으로 협상카드를 내밀었지만 조선이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월 말이 다 되도록 협상의 진척이 없자, 청군은 강화도 공략에 들어간다. 
 
한편 최명길은 현실적으로 조선의 힘으로 청국에 대항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나라가 망하고 없으면 의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에 “만고의 죄인이 될지라도 임금을 반드시 망할 땅에 둘 수는 없으니 일단 화친을 해서 나라를 보전한 후 훗날을 도모하자”고 주장했다. 최명길이 양명학의 영향을 받아 이런 현실적이고 유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하는 사이 조선과 청은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으며, 협상의 조건을 두고 교섭을 진행했다. 계속된 교섭에서 청나라는 왕의 동생과 대신을 인질로 보내라, 전쟁을 주장하는 척화파 주모자를 잡아 보내라, 임금이 직접 나와서 항복하라는 등의 조건을 내세웠다.
 
협상 과정에서 왕의 동생과 대신을 인질로 보내라는 요구에 조선 조정은 가짜 왕제(王弟) 일행을 보냈지만, 탄로가 나 죽임을 당했다. 영화에서는 이런 긴박했던 사실 뿐아니라, 척화 주장의 주모자로 청나라에 인질로 보내졌다가 죽임을 당한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는 아예 언급조차 없다.
 
1637년 1월 22일 강화도가 함락되고, 산성에서 더는 버틸 힘이 없던 인조는 화친을 하자는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최명길이 쓴 항복문서를 김상헌이 찢어버리며 통곡을 하자, 최명길이 국서를 다시 주워 모으면 “대감은 찢었으나 나는 이것을 주워 붙여야 한다”고 한 적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병자호란의 이 극적이고 상징적인 사실이 누락되었다.
 
실제 항복이 이루어지기까지 조선과 청나라가 벌인 팽팽한 신경전과 비참했던 교섭 과정도 영화에서는 거의 표현되지 못했다. 청태종이 한 차례의 국서를 보내는 것을 만주어로 읽어주는 장면이 있지만, 당시 조선이 청에 보냈던 처절하면서도 비굴하고 처참하여 지금도 읽기가 괴로운 항복 문서의 내용은 제대로 소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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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상헌의 형 김상용.
강화도가 함락되면서 임금과 대신들이 받았을 충격과 공포, 좌절감은 아예 영화에서 취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조참판이었던 정온이 인조가 항복을 결정하자 자결을 시도했던 장면도 없다.
 
강화도를 지키던 김상헌의 큰 형인 김상용은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자결로 순절하였다. 이때 그의 13살 난 손자도 함께 자결하는데 절개와 의리를 숭상한 김상헌 집안의 가풍을 읽을 수 있는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이처럼 실제 남한산성에서 일어났던 주요한 역사적 장면을 빼버린 채 오직 최명길과 김상헌 두 명만 등장해 소설 문체 같은 대사로 장황하고 맥빠진 설전을 벌일 뿐이다.
 
척화파와 주화파로 대변되는 두 신하의 팽팽한 의견 대립 후 “나는 살고자 한다”는 인조의 말 한마디로 상황이 정리되는 설정은 45일간 국운을 걸고 벌인 논쟁의 결말치고는 너무나 가볍게 느껴졌다.
 
그렇다 보니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인조의 삼전도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항복 의식 장면에서는 인조와 조선 백성이 겪었던 굴욕이 전해지기보다는 이병헌의 명품 눈물 연기만 유독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에 김상헌이 뜬금없이 자살을 하는 것으로 역사를 왜곡해 놓았는데 뻔한 사실을 그렇게 비틀어 놓으면 전해지는 감동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등록일 : 2017-10-26 11:12   |  수정일 : 2017-11-0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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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 2017-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20 반대 : 7
글쎄요..
전 전문적인 지식이 많이 부족해서
기자님께서 쓰신부분이 맞다 틀리다
정의내릴순 없겠지만
솔직히 주변 재미없다는반응을 뒤로하고
혼자보러갔다가 오열 비스무리 하고나온
1인입니다
그감동을 중1딸에게도 주고싶어
그날 저녁영화 바로예매하고
혹시나 재미없다함 어쩌나했는데
웬걸요 저보다 더 우는데
모녀지간이라 감성코드가 맞아서 그런건진
몰라도 영화보고오는길 간만에 딸래미랑
댓와의꽃도 피위고 전 너무너무좋았거든요
기자님이 말씀하신 부족한부분들을
날까로운 시선으로 보질못하니
그져 좋았던걸수도있겠지만
변호인다음으로 이리울면서본영화가 없는
저로선 망했다 망한덴 이유가있다 이런
내용이 좀 안따까울뿐입니다
이병곤  ( 2017-10-26 )  답글보이기 찬성 : 17 반대 : 4
정작 중요한 건 단 하나도 보지 못하셨군요. "남한산성" 영화든지 아니면 역사에서요... 기자분뿐만 아니라 한국사람들 모두... 진짜 중요한 건 이겁니다. 어쨌든 전쟁이 났습니다. (청나라 홍타이치가 보낸 서신을 읽어보니 참으로 조선의 행동이 스스로의 분수를 모르는.. 한마디로는 가관이었다는 것이 분명하긴 하지만.. 청나라가 반드시 조선을 공격할 필요는 없었지만.. 조선은 이미 하수라 반드시 공격할 이유도 없었고.. 그래서 삼전도 후에도 조선을 그냥 남겨놨던 겁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졌습니다. 실록에는 살짝.. 다른 데서는 적나라하게.. 조선왕이 항복할 때, 청나라 홍타이치가 싼 오줌이 조선왕 얼굴에 튀었다지요? (대놓고 얼굴에 쌌는지도 모르지요..) 나라의 수치.. 왕의 수치.. 국민의 수치... 어쨌든 전쟁이 종결되었으면, 전쟁에 대한 반성이 반드시... 반드시... 있었어야 했던 겁니다. 만약 조선이 정상적인 나라였다면... 만약 조선의 왕이 정상적이었다면... 조선의 관리들이 정상적이었다면... 조선의 사람들이 정상적이었다면... 그리고 영화의 작가나 영화감독이 정상적이 었다면... 책임자들의 목이 날아가야 하는 겁니다.. 책임지는 사람이 있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럼 실제 역사에서는? 영화에서는? 어쨌든 책임지는 사람은? 국정의 최종 책임은 왕이니, 왕이 책임지고 물러났나요? 책임질 사람이 왕이 아니었으면, 최소한 전쟁을 주장하거나 평화를 주장하거나 했던 어느한쪽은 책임을 지웠어야 되는 것이었는데, 전쟁책임으로 누구 목을 날렸나요? 나라가 붕괴위기에 있었습니다. 한국사람 수십만이(지금으로 보면 서울 사람 절반쯤?) 청나라 군대에게 잡혀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화냥년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불렸던 여자분들? 지금의 "위안부"와 뭐가 다른 가요! 화살 과녁이 되어 죽은 사람들 이야기 아는 한국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역사를 모르는 한국사람들... 누군가 잘못때문에 나라가 휘청하고 적에게 학살당하고, 노예로 끌려가고, 성노예가 되었던 사람도 어마어마 했는데... 왕은 책임지지 않고 계속 왕이고, 그런 왕은 누구에게도 책임 묻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그런 일 벌어졌다? "적의 말을 듣는 자는 죽어마땅하다." 누가 어느때 한 말인지 아시죠? 우선 우두머리부터 죽은 목슴이겠지만, 살았다 하더라도 책임져야 할 어느 한쪽은 모조리 할복.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란'에서 여자들이 서로 칼로 쩔러 자결하는 장면 잘 한번 새겨보십시오) 그렇게 일본은 책임졌고, 책임집니다. 나라를 붕괴직전에 몰고갔어도 책임지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한술 더떠 나는 당당하다를 외쳤고, 이후 사람들은 그들에게 비분강개 선비라는 박수를 보내줍니다. 말다했습니다. 조선은 일본이 억지로 식민지로 만든게 아니고, 조선 스르로 망하게 한 걸.. 아니 속으로 망해있었던 걸...일본은 그냥 가져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일본은 우리 대한민국 사람보다도 한수 윕니다. 한국사람보다 훌륭한 사람들인 겁니다. 그럼 "남한산성"이란 영화요? 나라에 어떤 피해를 끼쳐도 책임질 일 없다는 아주 좋은(?) 교훈만을 보는 사람들에게 은연중.. 아주 은연중.. 아무런 반성도 없이... 심어준 겁니다. 그것도 확실히... 덤으로 말하면... 역사는 반복된다죠?
호오  ( 2017-10-28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4
쯔쯔쯔.... 영화를 평하는자가 영화 보는 눈을 못 갖췄으니 딱한 노릇.
또한 작품 원작자와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혼자 논하니 그또한 딱한 노릇. 이 작품을 전쟁영화로 보고 스펙터클과 비장미를 갈구하니... 조선 문화부 기자 수준이 언제 이리 되었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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