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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이동순교수의 가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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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연인이었던 막간가수-이애리수

글 | 이동순 영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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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속에 갈무리된 이른바 ‘끼’라는 것은 아무리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제압하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지요. 줄곧 무대 위에서 활동하는 배우나 가수들이야말로 이 타고난 끼를 마음껏 발산하고 그 재주를 뽐내어야 비로소 대중적 스타로서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가수 이애리수(李愛利秀)는 타고난 끼에 자신의 모든 운명이 휘둘려서 생의 한 구간을 살아갔던 인물입니다.

이름도 특이한 이애리수는 1930년 <황성(荒城)의 적(跡)>(<황성 옛터>의 원래 이름) 한 곡으로 우리 문화사에서 그 살뜰한 이름을 결코 잊을 수 없는 고운 사람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한 경과를 보면 한 사람의 가수로서 많은 곡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민족의 심금을 울려주는 단 한 편의 절창을 남길 수 있는가의 문제는 더욱 소중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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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리수는 1910년 경기도 개성에서 출생했습니다. 부모가 누구인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자세하게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어렸을 때의 이름이 음전(音全)으로 예능의 끼가 펄펄 넘치는 아이였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완고한 집안 어른들에게 그리 달가운 모습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순회연극사 소속의 이애리수는 여러 단원들과 함께 관서지방 일대를 돌며 공연을 펼쳤습니다. 그 악극단이 마침내 경기도 개성 공연을 마치던 날, 극단의 중요 멤버인 왕평과 전수린 두 사람은 멸망한 고려의 옛 도읍지 송도의 만월대를 산책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휘영청 보름달이 뜬 가을밤이었는데, 더부룩한 잡초더미와 폐허가 된 궁궐의 잔해는 망국의 비애와 떠돌이 악극단원으로서의 서글픔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비감한 심정에 젖은 두 사람은 눈물에 젖어 돌아와 그날 떠오른 악상을 곧바로 오선지에 옮겼고, 가사를 만들었습니다.
 
그해 늦가을 서울 단성사에서 공연의 막을 올릴 때 이 노래를 배우 신일선에게 연습시켜 막간에 부르도록 했습니다. 신일선은 나운규가 만든 무성영화 <아리랑>에서 주인공 영희 역을 맡았던 어여쁜 배우였습니다. 이 곡을 듣는 관객들의 볼에는 저절로 눈물이 주르르 타고 내렸습니다. 여기저기서 탄식의 깊은 한숨까지 들렸습니다. 모든 청중들의 가슴에는 망국의 서러움과 가슴 저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비분강개한 심정이 끓어올랐습니다. 하지만 이후 무대에서는 주로 이애리수가 이 곡을 불렀고, 1932년 봄 마침내 빅타레코드사에서 정식으로 음반을 취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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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리수의 황성의 적 가사지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른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버레 소래에 말없이 눈물져요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의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나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덧없난 꿈의 거리를 헤매여 있노라
 
나는 가리라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처가 없이도
아 한없난 이 심사를 가삼 속 깊이 품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넷터야 잘 있거라
 
-<황성옛터(황성의 적)> 전문
 

전국의 가요팬들은 이 <황성의 적> 음반을 구입하기 위해 레코드판매점 앞에 길게 줄을 섰고, 축음기 판매량도 늘어났습니다. 주로 악극단 공연이나 무대를 통해서만 보급되던 유행창가나 영화주제가들이 드디어 음반을 통해 정식으로 보급되는 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 음반이 나오자마자 불과 1개월 사이에 5만장이나 팔려나갔다고 하니 그 인기의 정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워낙 인기가 높아가자 일본 경찰 당국에서는 바짝 긴장의 털을 곤두세웠습니다. 혹시라도 이 노래의 가사 속에 민족주의 사상이나 불온한 내용이 없는지 뒤지고 두리번거렸지요.
 
극장에서도 반드시 임석 순사가 입회하여 흥분한 관중들 앞에서 가수가 이 노래를 여러 번 반복해서 부르는 것을 금지했고, 나중에는 기어이 트집을 잡아서 발매금지를 시키고 말았지요. 이 노래를 만든 작사가 왕평과 작곡가 전수린은 경찰서에 불려갔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이애리수의 인기는 1935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기울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왕수복과 선우일선을 비롯한 기생가수의 출현, 이난영, 전옥 등 새로운 창법과 감각을 지닌 후배가수들에게 가요팬들의 시선이 쏠리게 된 것이지요. 창가풍의 단조로운 음색에 익숙한 이애리수의 노래는 인기 반열에서 차츰 퇴조하게 됩니다.
 
묵은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간의 질서를 구축하는 변화의 거친 물결은 그 자체가 너무나 비정하고 막을 수 없는 것일 테지요. 한 잡지사가 조사한 레코드가수 인기투표 결선에서도 이애리수의 노래는 앞 순위에 오르지 못하고 점점 그녀의 이름은 관심권에서 멀어져갔습니다.
 
이러한 때 이애리수는 그녀의 노래를 몹시 사랑하던 한 대학생과 우연히 만난 이후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연희전문 졸업반 학생이던 배동필! 하지만 이미 배동필에게는 부모가 맺어준 처자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애리수에게도 지난날 그녀의 노래를 사랑하던 이광재란 자산가청년과 진작 정분을 맺어 세 살 바기 아기가 하나 있었던 처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젊은 유부남 유부녀가 불륜으로 만나 사랑을 키워간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학생과 가수라는 현격한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불행한 난관이 수렁처럼 자꾸만 앞을 가로막습니다.
 
만날 기회조차 잃어버린 그들은 이승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저승에서라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깊은 밤 몰래 만나 칼모친이라는 독약을 함께 삼키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손목을 면도칼로 그어서 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정사를 시도합니다. 이런 아슬아슬한 정황이 집주인에게 발견되어 긴급히 경성제국대학병원으로 입원을 하게 되지요.
 
몇 차례나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기력을 회복한 두 사람은 당시 언론과 사회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기어이 동거생활로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갑니다. 배동필은 두 아내를 처첩으로 거느린 야릇한 광경으로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갔습니다. 처첩간의 갈등이 왜 없었겠습니까. 이애리수는 이후에도 또 다시 자살을 시도해서 신문기사의 화제로 오르는데 두 번째의 자살시도에 대해서는 언론과 사회에서 매우 싸늘한 반응을 나타내었습니다. 
 
이애리수는 자신의 처연한 심정을 담아낸 듯한 노래 <버리지 말아 주세요>(이고범 작사, 전수린 작곡)를 마지막 곡으로 취입하게 됩니다. 그 애처로운 음색은 듣는 이의 가슴을 서러움으로 빠뜨렸고, 눈물까지 뚝뚝 흘리도록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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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리수 음독기사

하늘에 구름지면 꽃잎도 움츠리고
님께서 눈물지면 내 맘도 섧습니다.
우실 때 같이 우는 마음이 약한 나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버리지 말아요

가물어 물 마르면 꽃잎도 시들시들
님께서 성내시면 내 맘도 조입니다
성낼 때 떨고 있는 마음이 약한 나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버리지 말아요

광풍이 불어오면 꽃잎도 나불나불
님께서 뿌리치면 내 맘도 아득해요
가시는 옷깃 잡는 마음이 약한 나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버리지 말아요
 
-<버리지 말아주세요> 전문
 
그토록 완고하던 배동필의 부모는 이 노래를 듣고서 결국 두 사람의 부부로서의 사랑을 승낙하게 됩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2남7녀의 자녀가 태어났고, 이애리수는 무대를 아주 떠나서 현모양처로 살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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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생존 확인이 보도될 당시 이애리수. 
그런데 지난 2008년, 뜻밖의 기사 하나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것은 왕년의 가수 이애리수가 경기도의 한 노인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이 보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대를 떠나 종적을 감춘 지 무려 80여년 세월이 흘러서 가수는 호호백발 할머니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20대 시절의 사진과 현재의 얼굴모습을 찍은 두 장의 사진은 오랜 세월이 흘러갔으나 그 선과 윤곽이 또렷하게 닮아있었습니다. 언론에서는 특집을 준비하고 인터뷰 프로그램을 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2009년 3월31일 99세를 일기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요.
 
해마다 가을밤만 되면 처량한 귀뚜라미 소리를 효과음으로 해서 이따금 라디오나 TV를 통해 듣게 되는 귀에 익은 슬프고 애잔한 가락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애리수의  <황성옛터(황성의 적)>입니다. 줄곧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노래 한 곡이 지닌 위력은 그토록 완강하던 식민지의 어둠을 조금씩 깨어 부수는 힘으로 움직였고, 전체 한국인들이 험한 세월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저력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등록일 : 2013-12-29 10:19   |  수정일 : 2013-12-2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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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영남대 국문과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가요해설가

경북 김천 출생. 경북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시집 <물의 노래> <발견의 기쁨> <묵호> 등 14권 발간.
가요에세이 <번지없는 주막-한국가요사의 잃어버린 번지를 찾아서> 등 각종 저서 50여권 발간.
신동엽창작상, 김삿갓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경북문화상, 금복문화상 등을 받음.
대구MBC 라디오에서 <이동순의 재미있는 가요이야기> 프로의 MC로 활동.
현재 미국 워싱턴DC 소재 자유아시아방송(RFA) 라디오에서 <남북이 같이 듣는 노래> 프로를 매주 전화녹음으로 방송 중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 전국회장
현재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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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진  ( 2014-01-02 )  답글보이기 찬성 : 13 반대 : 2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춘배  ( 2013-12-30 )  답글보이기 찬성 : 10 반대 : 16
좋은글 잘잃었습니다 새로운느낌이라 가슴이찌릿함니다 .또한 아래 조영일 님의 지적도 아주적절하시다 생각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소중한것들을 느끼지못하고 그져 앞으로만 달려가지않느가 해서 많이 아쉽습니다.
김무열  ( 2013-12-29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1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상현  ( 2013-12-29 )  답글보이기 찬성 : 20 반대 : 22
우리의 인생사도 어쩌면 노래가사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어떻게 사는것이 사는것인지도 모른체 흘러가다 보면 어느덧 황혼이 접어들고 남은 것은 후회와 회한,,, 과연 사색하는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하려고 살아왔는가,,
김태영  ( 2013-12-29 )  답글보이기 찬성 : 7 반대 : 6
한 여인의 슬픈 인생사도 가슴이 찡∼하지만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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